
윤석열 대통령이 8일 오후 석방돼 한남동 관저로 복귀했다. 체포 구금된 지 52일 만이고, 윤 대통령 측이 구속 취소를 청구한 지 45일 만이고, 법원이 구속 취소 결정을 내린 지 27시간 만이다.
법원은 윤 대통령의 구속 취소 청구 일자가 지난달 4일인 만큼 늦어도 11일까지 여부를 결정해야 했는데, 7일 오후 2시쯤 결정 내렸다. 그리고 검찰 비상계엄 특별수사본부(특수본)는 윤 대통령에 대한 석방 지휘서를 서울구치소에 즉시 송부하지 않고 27시간 고민 후 8일 오후 5시쯤 송부했다.
윤 대통령의 구속 취소 청구부터 석방까지 과정을 보면, 법원은 조금 빨리 인용했고 검찰은 조금 늦게 결정한 셈이다.
법원이 구속 취소 신청을 인용한 이유는 크게 구속기간 계산 오류와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의 내란죄 수사의 적법성 문제 두 가지다.
윤 대통령의 1차 구속영장 구속 만료일에 대해 윤 대통령 측은 지난 1월25일 오전 12시라고 주장했고, 검찰은 같은 달 27일까지라고 주장해 왔다.
이는 형사사건에 있어 영장실질심사와 체포적부심에 소요된 기간을 구속기간서 공제하는 규정이 있는데, 공제기간을 윤 대통령 측은 ‘시간’으로 계산했고, 검찰은 ‘일수’로 계산했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검찰과 법원은 영장실질심사와 체포적부심에 소요된 기간을 ‘시간’이 아닌 ‘일수’ 단위로 계산한 뒤 이를 구속기간서 빼 왔다. 그런데 이번에 법원이 시간으로 적용한 것이다.
결국 법원은 윤 대통령의 구속기간 만료 시기가 1월26일 오전 9시쯤인데 공소가 제기된 시기는 이날 오후 6시쯤이었다면서 윤 대통령의 구속기간이 만료된 상태서 공소가 제기된 것으로 판단했다.
공수처의 내란죄 수사 적법성 문제에 대해서도 법원은 내란죄가 공수처의 수사 범위에 포함돼있지 않으며, 공수처가 직권남용죄를 수사하다가 내란죄를 인지했다는 증거나 자료가 없어 “내란죄 수사 과정의 적법성에 대한 의문의 여지를 해소해야 한다”고 판단했다.
그러나 특수본은 법원의 구속 취소 결정에도 불구하고 윤 대통령에 대한 석방 지휘서를 즉시 송부하지 않고 시간을 끌었다.
특수본은 “법원이 공제기간을 일수가 아닌 시간으로 산정해야 한다고 판단한 건 수긍할 수 없다“며 “형사소송법 규정에 명백히 반할 뿐 아니라, 지금까지 법원 판결 사례에도 반하는 이례적인 결정”이라고 반발했다.
특히 대검찰청이 7일 심야회의를 거쳐 석방 지휘를 결정했는데도 특수본(본부장 : 박세현 서울고검장)은 법원 결정에 불복하면서 상급심 판단을 받아야 한다며 항고를 주장했다.
필자는 이 상황을 지켜보면서 처음엔 윤 대통령의 석방 여부를 떠나 오래전 검사동일체원칙이 폐지됐다고 해도 특수본이 상급기관인 대검의 석방지휘 명령을 거부했다는 건 항명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했다.
물론 특수본이 대검의 석방 지휘를 거부한 게 아니라, 법원의 결정에 불복하고 상급심 판단을 요구하려 했다는 명분으로 보면 이해가 된다. 그러나 우리 국민이 민감하게 지켜보고 있는 국가적으로 중대한 사안인 만큼 신속하게 처리하지 못해 검찰이 신뢰를 잃은 건 사실이다.
이번 사건서 법원은 지금까지 형사사건과 달리 윤 대통령의 구속 공제기간을 일수가 아닌 시간으로 적용하면서 향후 분란의 여지를 남겨 명분을 잃었고, 법원 신뢰에 금이 가면서 실리도 잃었다. 국민의힘과 탄핵 반대 세력만 명분과 실리를 얻었다.
민주당은 당장 실리를 잃었지만, 장외 집회를 할 수 있는 명분을 얻었다.
필자는 윤 대통령의 석방 문제를 놓고 특수본이 항명이라는 비난을 들어가면서 실리를 잃었지만, 법의 테두리 안에서 업무를 충실히 수행했다는 명분을 챙긴 점엔 박수를 보내야 한다고 생각한다.
권성동 국민의힘 원내대표는 “법원의 구속 취소 결정으로부터 실제 석방까지 24시간 넘게 걸린 건 특수본의 직권남용 불법 감금이었다”며, “법원의 판결은 물론, 검찰총장의 명령까지 불복하며 대통령을 불법 감금한 특수본에 법적 책임을 묻겠다”고 했다.
하지만, 특수본이 대검 지휘부의 지시대로 즉시항고 포기 의사를 밝혔다면 더불어민주당이나 탄핵 찬성 세력으로부터 엄청난 비난을 더 세게 받았을 것이고, 특히 우리 국민으로부터 법원과 ‘짜고 치는’ 검찰이라는 지적을 피할 수 없으면서 결국 명분도 잃었을 것이다.
최근 국회 청문회나 법원 재판정에 나와 실리를 위해 명분을 버리는 장관이나 장군 등을 종종 볼 수 있었다. 정당도 마찬가지다. 국민의힘 지도부는 대통령을 지키기 위한 명분을 챙기려다가 지지율 하락으로 조기 대선 국면서 실리를 잃고 있고, 국민의힘 대권잠룡들은 실리를 챙기려다 명분을 잃고 있다.
민주당도 명분과 실리 사이서 왔다갔다하는 모습만 보이고 있다.
법원이건 검찰이건 정당이건 실리를 챙기기 위해 명분도 없는 주장이나 투쟁을 계속 이어간다면 우리 사회와 국민은 이들을 반드시 외면하고 말 것이다. 현 시국이야말로 우리 정치권서 벌어지고 있는 수많은 주장과 분쟁이 어떤 명분을 갖고 있는지 눈여겨봐야 할 때다.
장관, 장군, 검사는 실리를 챙기기 위해 명분이 필요한 정당과 달리 실리보다 명분을 중요시해야 한다. 그래야 국민이 실리를 챙겨 행복해지기 때문이다. 특수본의 27시간 고민이 필요했던 이유다.
※본 칼럼은 <일요시사> 편집 방향과 다를 수도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