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윤호 교수의 대중범죄학> 사상누각과 탁상공론…공공 범죄학이 필요한 이유

  • 이윤호 교수
2025.03.15 00:00:00 호수 1522호

전통적으로 하나의 사회과학적 학문이 범죄학의 주류로 이해됐고, 이 같은 범죄학을 우리는 ‘학술 범죄학(Academic Criminology)’이라고 부른다. 학술 범죄학은 학문의 범주 안에서 주로 학술적·학문적 연구와 이론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범죄학은 상대적으로 짧은 역사에도 대학을 중심으로 학문적으로 제도화됐다. 다양한 학술단체, 연구기관, 학술지 등이 출범하는 등 양적 급성장을 이뤄냈다. 이 과정서 학문적 경쟁은 심화됐고, 범죄학은 전문화된 영역으로 세분화됐다.

대신 어느 순간부터 소수가 전문적 지식을 공유하는 분위기가 조성됐고, 그들만의 소통이라는 비판이 나오기 시작했다. 과거 어느 때보다 범죄학이라는 학문 공동체는 덩치가 커졌지만, 그럴수록 학자들의 전문성은 더 협소해진 것이다.

결과적으로 협소해진 전문 분야에 몸담고 있는 게 아니라면 정책 논쟁에 참여하는 것조차 어려워졌다.

산학 또는 관학 협력이 강조되는 이유도 바로 이런 이유 때문이다. 정책 결정자나 입안자는 학자들의 학문이나 제안을 현실과 동떨어진 탁상공론에 지나지 않는다고 아쉬워하고, 학자들은 실무자들과 그들의 정책이 이론적 근거도 과학적 증거도 없이 그냥 모래 위에 쌓은 모래성, 사상누각에 불과하다고 지적한다.

가장 이상적인 모형은 이론적 근거와 과학적 증거에 기초한 정책을 위한 학문적 연구다. 병원서 의사들의 처방전을 환자가 알아들을 수 없듯이 범죄학의 연구물이 정책 당국이나 시민에게 환자에게 전문 의학용어처럼 들리면 안 되지 않을까?


이런 아쉬움으로부터 시작된 것이 바로 ‘공공 범죄학(Public Criminology)’이다. 공공 범죄학이란 학계를 넘어 정책 개발, 입안자, 실무자, 그리고 심지어 대중들을 포함하는 훨씬 더 넓은 범위의 청중들에게 범죄학적 연구 결과를 전파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실용적인 성격이 뚜렷하다고 볼 수 있다.

공공 범죄학은 ▲강의 ▲학술 세미나 ▲공청회 ▲공개 강좌 ▲언론 등 다양한 형태로 실행될 수 있다. 청중은 인식과 증거의 간극을 메우기 위해서라도 양질의 정보와 지식을 토대로 경험적으로 엄격한 관점을 필요로 한다는 점 때문이다.

좋은 정책은 직접적으로 영향을 받는 표적 집단과 지역의 참여로 결정되고 시행될 수 있어야 한다. 범죄 정책 역시 범죄학자들이 지역사회와의 소통하면서 연구를 진행하고 결과를 전파해야 한다.

이런 면에서 공공 범죄학은 범죄에 관한 새로운 관점을 불러일으키는 동시에 범죄에 관한 공공 정책과 논쟁을 재형성하는 데 일조한다고 볼 수 있다. 지나치게 순수 학문적 성향인 데다, 탁상공론에 불과하다고 비판받던 학술 범죄학의 한계를 극복할 대안으로 부각된 것이다.

범죄학이 공공 정책에 상응하려면 시의적절하게 지식을 생산하고, 이를 유용하게 소비할 수 있는 환경이 조성돼야 한다. 그렇다고 범죄학과 범죄학자가 언제나 정책 입안이나 결정자와 정책에 적절하다는 것은 아니다. 학문적·학술적 지식도 중요하며 단지 그것만이 유일한 것은 아닐 뿐이다.

학술 범죄학이 없는 공공 범죄학은 그야말로 사상누각이고, 공공 범죄학이 없는 학술 범죄학은 탁상공론의 위험을 배제할 수 없다.

[이윤호는?]
동국대 경찰행정학과 명예교수
고려사이버대 경찰학과 석좌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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