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시사 취재2팀] 박정원 기자 = 서울 강북구 일대 모텔에서 남성 2명을 살해하고 여러명에게 약물이 든 음료를 건넨 혐의를 받는 피의자 김모(22)씨에 대해 경찰이 지난 19일, 신상 비공개 결정을 내린 이후 논란이 좀처럼 가라앉지 않고 있다.
수사기관이 ‘잔혹성 미충족’을 이유로 신상을 공개하지 않기로 하자, 온라인상에서 누리꾼들이 직접 피의자를 찾아내는 ‘사적 제재’가 횡행하고, 급기야 피의자의 외모를 칭찬하며 범죄를 두둔하는 기이한 현상까지 벌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앞서 서울 강북경찰서는 지난 19일 김씨를 살인 및 특수상해, 마약류관리법 위반 혐의로 검찰에 구속 송치하면서 신상정보는 공개하지 않기로 결정했다.
현행 ‘특정중대범죄 피의자 등 신상정보 공개에 관한 법률’은 ▲범행 수단이 잔인하고 중대한 피해가 발생할 것 ▲충분한 증거가 있을 것 ▲공공의 이익을 위해 필요할 것 등을 요건으로 규정한다.
경찰은 내부 검토 결과 김씨의 범행 수단인 ‘독살(약물 투여)’이 법이 요구하는 ‘잔인성’ 요건을 충족했다고 보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신체를 직접 훼손하는 흉악 범죄와 비교할 때 약물을 이용한 방식은 상대적으로 잔혹성이 낮다는 법리적 해석이 작용한 것으로 전해졌다.
하지만 다수의 남성을 잇달아 유인해 계획적으로 범행을 저지른 연쇄 범죄가 잔혹하지 않다는 판단은 국민 법감정과 괴리가 크다는 지적이 나온다.
특히 비슷한 강력 사건들에서 피의자 신상 공개 여부가 제각각 결정돼 통일성이 없다는 점도 문제로 제기된다.
실제로 2024년 이웃 주민을 무차별 폭행해 살해한 최성우(30)의 신상은 공개됐지만, 날 길이 약 75㎝, 전체 길이 약 102㎝에 달하는 일본도를 휘둘러 이웃을 숨지게 한 ‘일본도 살인사건’의 범인 백모씨(40)의 신상은 공개되지 않았다.
두 사람 모두 망상에 빠져 일면식 없는 이웃을 잔인하게 살해했다는 공통점이 있었지만, 신상 공개 여부에 대한 판단은 서로 달랐다. 이처럼 유사한 범죄 유형임에도 결과가 엇갈리면서 ‘잔혹성’과 ‘공공의 이익’이라는 기준이 지나치게 추상적이고 자의적으로 적용되는 것 아니냐는 문제는 꾸준히 제기돼 왔던 지적이다.
이번 사태에서는 경찰의 비공개 결정이 역설적으로 온라인 공간에서 무분별한 ‘신상 털기’를 부추겼다는 비판도 나온다. 경찰 발표 직후 온라인 커뮤니티와 SNS에는 ‘강북 모텔 살인마 신상’이라는 제목으로 김씨의 이름, 나이, 출신 학교, SNS 계정 등이 무차별적으로 유포된 탓이다.
김씨의 것으로 추정되는 SNS 계정이 공개되자, 불과 200명 남짓하던 팔로워 수는 순식간에 1만명을 돌파했다.
게시물 댓글창은 피해자에 대한 추모 대신 피의자의 외모를 평가하는 글들로 도배됐다. “예쁘면 무죄” “저런 외모면 나라도 따라가서 마셨다” “누나가 주는 약이라면 먹고 죽겠다” 등 범죄를 미화하고 피해자를 조롱하는 2차 가해성 댓글이 1800개 넘게 쏟아졌다.
이는 사법 시스템이 채워주지 못한 정의를 구현하겠다던 ‘사적 제재’가 되레 범죄자를 스타로 만들어주는 ‘가해자 서사 부여’로 변질된 모양새다.
전문가들은 이번 사태의 근본 원인이 수사기관의 ‘고무줄 잣대’에 있다고 입을 모은다. ‘잔인성’과 ‘공공의 이익’이라는 기준이 지나치게 추상적이다 보니, 수사기관의 자의적 해석이 개입될 여지가 크고 이는 결국 공권력에 대한 불신으로 이어진다는 것이다.
한 경찰행정학과 교수는 “공식 절차를 거치지 않은 온라인 신상 털기는 명백한 위법 행위이자 처벌 대상”이라면서도 “약물 살인이나 아동학대 등 물리적 훼손이 적더라도 결과가 중대한 범죄에 대해 ‘잔혹성’을 어떻게 해석할지에 대한 구체적인 가이드라인 마련이 시급하다”고 지적했다.
한편, 김씨의 범행은 추가 피해 정황이 드러나며 수사가 확대되고 있다.
25일 <CBS 노컷뉴스> 보도에 따르면 서울 강북경찰서는 최근 30대 남성 A씨를 불러 조사했다. A씨는 지난달 중순 서울 강북구 수유동의 한 노래방에서 김씨가 건넨 숙취해소제를 마신 뒤 의식을 잃었다고 진술한 것으로 전해졌다. 정신 차린 이후에도 신체 이상 증상을 겪어 경찰과 소방에 신고해 현장 처치를 받았던 것으로 알려졌다.
A씨가 피해를 당한 시점은 현재까지 확인된 1·2차 범행 사이로 파악됐다. 앞서 김씨는 지난해 12월14일 경기 남양주시 한 카페 주차장에서 당시 교제 중이던 남성 B씨에게 약물이 든 음료를 건네 의식을 잃게 한 혐의를 받는다. B씨는 이틀 만에 회복했다.
이후 김씨는 지난달 28일과 이달 9일 서울 강북구 수유동 모텔에서 각각 남성 C씨와 D씨에게 같은 수법으로 약물이 든 음료를 건넸고, 두 사람은 숨졌다. 김씨는 범행 직후 피해자들에게 태연하게 문자메시지를 보낸 정황도 포착됐다.
수사 과정에서 김씨가 생성형 인공지능 서비스인 OpenAI의 ChatGPT에 ‘수면제와 술을 함께 먹으면 위험한지’ ‘사망 가능성이 있는지’ 등을 질문한 기록도 확인됐다. 경찰은 이를 토대로 김씨가 사망 가능성을 인지하고도 범행을 이어간 것으로 보고, 기존 특수상해 혐의에서 살인 혐의로 변경해 송치했다.
김씨는 조사에서 첫 피해자가 의식을 회복하자 이후 범행부터는 약물 투여량을 두 배 이상 늘렸다는 취지로 진술한 것으로 알려졌다. 다만 그는 B~D씨 등 3명에게만 약물을 건넸다고 주장했으나, A씨의 존재가 확인되면서 진술의 신빙성에도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
경찰은 현재 김씨와 연락을 주고받은 다수 남성을 상대로 전수조사를 진행하며 여죄 여부를 확인하고 있다. 김씨에 대한 사이코패스 진단 검사 결과는 이르면 이번 주 후반에 나올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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