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이하 코로나19) 사태가 잦아들 기미가 보이지 않고 있다. 국내외 모든 이슈는 코로나19에 잠식됐다. 정부 또한 모든 행정력을 코로나19에 집중하고 있다. 이 과정서 검찰과 법무부의 갈등도 수면 아래로 가라앉았다. 하지만 불씨는 여전히 살아있다.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이하 코로나19) 사태가 확산되고 있다. 지난달 18일까지 30명대를 유지했던 확진환자 수는 31번 환자를 기점으로 폭발적으로 증가했다. 1일 확진환자 수가 100∼200명 수준으로 늘었으며 사망자도 계속 나오고 있다.
확 번진
전염병에
정치·경제·사회·문화 할 것 없이 모든 분야의 이슈가 사라졌다. 시민들의 관심은 확진환자 수의 증감과 마스크 가격에 집중됐다. 확진환자 수가 가장 많이 나오고 있는 대구·경북의 경우 도시가 초토화되면서 말 그대로 ‘생존’이 1순위로 떠올랐다.
확진환자 수가 정체기에 접어들던 무렵 살짝 고개를 내밀었던 갈등은 뒷전이 됐다. 시민들의 관심사가 코로나19에 집중되면서 자연스럽게 수면 아래로 가라앉았다. 총선을 두 달 앞둔 정치권마저도 숨을 죽이고 있다.
윤석열 총장의 취임과 함께 불거진 검찰발 갈등도 마찬가지다. 윤 총장은 지난해 7월25일 문재인정부 두 번째 검찰총장으로 취임했다. 박근혜정부서 좌천됐다 특검과 함께 돌아온 그는 문재인정부 들어 서울중앙지검장, 검찰총장으로 화려하게 복귀했다.
그는 취임사를 통해 ‘공정한 경쟁질서 확립’을 최우선 가치로 삼겠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형사 법 집행을 함에 있어 우선적으로 중시해야 하는 가치는 바로 공정한 경쟁질서의 확립”이라며 “공정한 경쟁을 통해 헌법의 핵심 가치인 자유와 평등을 조화시킬 수 있다”고 강조했다.
윤 총장은 권력기관의 정치·선거개입과 불법자금 수수, 시장교란 반칙행위를 공정경쟁 질서를 무너뜨리는 요인으로 지목했다. 정치권의 불법행위가 국민 개개인의 정치적 선택을 방해하는 결과로 이어진다는 판단이다.
윤 총장의 존재감은 조국 전 법무부장관의 등장과 함께 더욱 뚜렷해졌다. 지난해 8월9일 문재인 대통령은 조국 전 민정수석을 법무부장관 후보자로 지명했다. 후보자로 지명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사모펀드, 웅동학원 위장소송, 동생 부부 위장이혼 등의 의혹이 제기됐다.
윤, 취임 이후 계속 대치 중
전염병 창궐로 강제 소강상태
가족 논란도 더해졌다. 딸 조모씨의 부산대 의학전문대학원 재학 당시 장학금 논란, 한영외고 재학 당시 논문 논란 등이 거푸 불거졌다. 특히 조씨를 둘러싼 입시 논란은 교육문제에 민감한 국민의 역린을 건드리면서 정치권을 ‘조국 정국’으로 몰고 갔다.
윤 총장 체제의 검찰은 조 전 장관 의혹과 관련된 곳들을 동시다발적으로 압수수색하면서 조국 정국에 뛰어들었다. 법무부장관 후보자와 청와대를 겨냥한 검찰수사의 시작이었다. 검찰은 조 전 장관의 인사청문회 당일인 지난해 9월6일 정경심 동양대 교수를 동양대 표창장 위조 혐의로 기소했다.
사흘 뒤인 지난해 9월9일 문 대통령이 조 전 수석을 법무부장관으로 임명했지만 현직 법무부장관에 대한 수사는 계속 이어졌다. 조국 장관의 법무부와 윤석열 검찰총장이 검찰 개혁안을 쏟아내면서 장외 대결로 번졌다.
이 과정서 문 대통령이 검찰을 향한 경고성 메시지를 날렸다. 지난해 9월27일 문 대통령은 “검찰은 국민을 상대로 공권력을 직접적으로 행사하는 기관이므로 엄정하면서도 인권을 존중하는 절제된 검찰권의 행사가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청와대의 압박에도 검찰은 조 전 장관에 대한 수사를 멈추지 않았고, 검찰의 칼끝은 조금씩 청와대로 향했다. 결국 조 전 장관은 “검찰 개혁의 불쏘시개 역할은 여기까지”라는 말을 남기고 지난해 10월14일 전격 사퇴했다.
조 전 장관의 사퇴로 잠잠해지나 싶던 갈등은 시간이 지나면서 더욱 불붙었다. 지난해 11월 검찰은 조 전 장관을 피의자 신분으로 소환했다. 또 김기현 전 울산시장 관련 청와대 하명수사 의혹 사건을 서울중앙지검으로 이첩했다. 동시에 서울동부지검은 유재수 감찰무마 의혹 수사에 속도를 내기 시작했다.
청와대가 검찰 개혁에 속도를 내기 시작하면서부터는 본격적인 갈등이 시작됐다. 법무부가 검찰 내 직접수사 부서 축소를 추진하자 검찰은 부정부패 수사 역량이 줄어든다며 반발하는 식이다. 문재인정부서 임기 초부터 추진한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이하 공수처)와 검·경 수사권 법안을 두고도 검찰은 반대 입장을 보였다.
갈등도
수면 아래
조 전 장관에 이어 지난 1월2일 추미애 법무부장관이 취임하면서 갈등 수위가 높아졌다. 추 장관은 검찰과 사사건건 부딪쳤다. 추 장관이 인사권으로 압박을 가하면 검찰은 기소권으로 맞선 모양새다. 실제 추 장관은 취임하자마자 검찰 고위간부 인사, 직제개편 등으로 검찰 힘빼기에 돌입했다.
추 장관이 취임 엿새 만인 1월8일 단행한 검찰 고위간부 인사로 윤 총장의 수족이 전부 잘려 나갔다. 일각에선 “윤석열 사단의 해체 작업이 시작됐다”는 말이 나오기도 했다. 조 전 장관 가족 의혹, 청와대 울산시장 하명수사 의혹 등을 맡고 있던 한동훈 검사장, 박찬호 검사장 등이 대거 지방으로 전보됐다.
또 법무부는 지난 1월13일 검찰의 직접수사를 줄이고 민생사건 수사와 공소유지에 집중하기 위해 ‘검찰청 사무기구에 관한 규정’(대통령령) 개정을 추진한다고 밝혔다. 같은 달 28일 정부는 직접수사 부서 13곳을 형사부·공판부로 전환하는 검찰직제 개편 개정안을 공포하고 곧바로 시행에 들어갔다.
최강욱 청와대 공직기강비서관의 기소를 두고도 검찰과 법무부는 강하게 충돌했다. 최 비서관은 법무법인 청맥의 변호사로 일하던 2017년 10월 조 전 장관의 아들 조모씨의 인턴활동 확인서를 허위로 발급해 대학원 입시 업무를 방해한 혐의를 받고 있다.
서울중앙지검 반부패수사2부는 지난 1월23일 최 비서관을 업무방해 혐의로 불구속 기소했다. 법무부는 검찰의 기소를 ’날치기‘로 규정하고 크게 반발했다. 그러면서 최 비서관 기소와 관련된 검찰 관계자들에 대한 감찰을 시사했다.
대검은 최 비서관의 기소는 적벌한 절차에 따라 이뤄졌다고 반박했다. 검찰청법에 따라 검찰 사무를 총괄하고 전체 검찰공무원을 지휘·감독하는 검찰총장의 권한과 책무에 따라 기소를 진행했다는 것이다.
이 과정서 이성윤 서울중앙지검장이 윤 총장의 최 비서관 기소 지시를 따르지 않았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수사팀에선 최 비서관을 기소해야 한다고 거듭 요청했지만 이 지검장이 결재하지 않았고, 윤 총장의 직접 지시에도 불구하고 끝내 따르지 않은 것.
법무부 검찰국장을 지내다 서울중앙지검장으로 온 이 지검장은 문 대통령과 경희대 동문이다.
1월29일 청와대의 울산시장 하명수사·선거개입 의혹 수사 관련자들 기소 과정서도 윤 총장과 이 지검장이 맞붙었다. 서울중앙지검은 이날 송철호 울산시장과 송병기 전 울산시 경제부시장, 황운하 전 울산지방경찰청장, 백원우 전 청와대 민정비서관, 박형철 전 반부패비서관 등 13명을 재판에 넘겼다.
언제 터질지
일촉즉발
이 지검장은 윤 총장이 주재한 간부회의서 사실상 기소에 반대하는 의견을 낸 것으로 알려졌다. 그는 전문 수사자문단 등 협의체에 주요 피의자들에 대한 기소 여부 판단을 맡겨보자는 의견을 냈다. 전날 추 장관이 ’합리적인 사건 처리와 다양한 의견 수렴을 위해 검찰 내·외부의 협의체를 활용하라‘는 취지의 당부와 같은 맥락이다.
추 장관이 지난달 11일 진행한 기자간담회서 언급한 수사·기소 주체 분리 방안은 또 다른 갈등의 시발점으로 떠올랐다. 추 장관은 수사·기소 주체 분리 방안 등을 논의하기 위해 전국 검사장회의도 소집했다. 강금실 전 장관 이후 17년 만에 장관 주재 검사장회의가 예고됐다.
윤 총장과 일선 검사들은 수사·기소 주체 분리 방안에 대해 반대 의견을 개진했다. 윤 총장은 수사와 기소는 한 덩어리라는 입장을 밝혔다. 그는 지난달 13일 부산지검서 “수사는 소추(기소)에 복무하는 개념이고 소추와 재판을 준비하는 게 검사의 일”이라며 “수사와 기소는 분리될 수 없다”고 강조했다.
검찰 내부망인 이프로스에 일선 검사들의 의견도 연이어 올라왔다. 추 장관은 지난달 19일 TBS 라디오 <김어준의 뉴스공장>에 출연해 “검찰이 수사·기소 주체 분리 방안에 대해 조직적인 반발을 보이고 있다”면서도 “국민을 중심으로 놓고 볼 때는 개혁의 방향이 옳다”고 말했다.
수사·기소 주체 분리 방안을 두고 전국 검사장회의서 검찰과 법무부의 강한 충돌이 예상됐다. 당초 검사장회의에서는 ▲분권형 형사사법 시스템 ▲검·경 수사권 조정, 공수처 법안 관련 하위법령 제정 ▲검찰수사 관행·조직문화 개선에 대해 의견 수렴이 이뤄질 예정이었다. 수사·기소 주체 분리 방안은 분권형 형사사법 시스템 부분서 다뤄질 것으로 봤다.
하지만 추 장관이 코로나19 사태 확산을 이유로 지난달 21일로 예정됐던 검사장회의를 돌연 연기하겠다고 발표했다. 갈등의 분출 무대가 될 것으로 예상됐던 검사장회의가 연기되자 검찰과 법무부의 갈등은 소강국면으로 접어들었다. 추 장관은 검사장회의 연기를 발표하면서 코로나19 사태가 가라앉으면 반드시 재개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검사장회의 열리면 다시 시작
임종석 사법처리 여부도 관건
역설적으로 갈등의 불씨가 남은 셈이다. 검찰 고위간부 인사 단행, 직제개편, 중간간부 인사 단행, 검찰 개혁 법안 국회 통과 등에도 대대적인 반응이 없었던 검찰서 수사·기소 주체 분리 방안을 두고 일선 검사들이 반발이 터져 나왔다. ‘검사장회의를 생중계하라’ ‘회의록을 공개하라’는 의견도 나왔다. 검사장회의에 대한 검사들의 관심이 높다는 뜻이다.
갈등의 불씨는 또 있다. 청와대의 울산시장 선거개입·하명수사 의혹 관련자 일부에 대한 사법처리 여부다. 검찰은 선거에 미칠 영향을 고려해 일부 관련자에 대한 조치를 4월 총선 이후 결정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임종석 전 청와대 비서실장과 이광철 민정비서관 등이다.
검찰은 2018년 6월 지방선거 과정서 송철호 현 울산시장을 당선시키기 위해 임 전 실장이 개입했다고 의심하고 있다. 또 임 전 실장은 더불어민주당 경선 과정에도 개입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임 전 비서실장은 피의자 신분으로 검찰에 출석하기 전날인 1월29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비공개로 다녀오라는 만류가 있었지만 저는 이번 사건의 모든 과정을 공개해야겠다고 마음먹었다”고 밝혔다.
이어 “윤석열 총장과 일부 검사들이 무리하게 밀어붙인 이번 사건은 수사가 아니라 정치에 가깝다. 객관적인 사실 관계를 쫓은 것이 아니라 정치적 목적을 가지고 기획해서 짜맞추기를 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검찰은) 청와대와 국무총리실, 기재부와 경찰청 등을 서슴없이 압수수색하고 20명이 넘는 청와대 직원들을 집요하게 소환했다”며 “과연 무엇이 나오는지 국민과 함께 지켜볼 것”이라고 덧붙였다.
일단…
총력 대응
검찰과 법무부는 당분간 코로나19 사태 대응에 총력을 기울이겠다는 입장이다. 법무부는 외국인 유학생들이 출입국·외국인 관서를 직접 방문하지 않고 체류기간 연장을 신청할 수 있도록 절차를 개선했다. 또 외국인 근로자 인력 도입이 지연되고 있는 상황을 고려해 이들의 체류기간도 연장하기로 했다. 검찰 역시 코로나19 확산 저지 태세에 돌입했다. 대검은 ‘대검찰청 코로나19 대응 TF’를 가동하고 18개 지검에 대응 팀을 구성했다. 검찰 소환조사를 최소화하고 시민들의 검찰청사 견학 프로그램 등도 연기하도록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