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시사 취재1팀] 남정운 기자 = 군 사망 사고가 끊이질 않고 있다. 지난해 고 이예람 중사 사건이 공론화되면서 군의 미흡한 병력 관리가 입방아에 올랐다. 수뇌부의 개선 약속이 이어졌지만, 안타까운 죽음은 ‘현재 진행형’이다. 지난 7월에만 최소 9명 이상이 사망했다. 게다가 이번 달은 군사법원법 개정 시행 첫 달. 시작부터 ‘개정법 무용론’으로 비판 여론이 매섭다.
이달 들어 언론 보도를 통해 알려진 군 사망자만 해도 9명에 달한다. 또 사망자 중 극단적 선택으로 유명을 달리한 비율이 절반을 넘어간다. 지난 1일부터 25일까지 알려진 사망 사고는 총 9건이다. 산술적으로 사흘마다 1명 이상이 세상을 떠난 셈이다.
여전히…
지난 1일 한미연합사 장교를 시작으로 6일 공군 항공정비전대 부사관, 7일 육군 미사일전략사령부 부사관, 14일 해군작전사령부 병사, 15일 해군본부 장교, 16일 해병대 1사단 병사가 연일 사망했다.
지난 19일에는 공군 20전투비행단 소속 부사관이, 지난 21일에는 육군 28사단 병사가 목숨을 잃었다. 지난 25일에는 육군 수도방위사령부 예하 부대에서 부사관이 극단적인 선택을 한 상태로 발견됐다.
여론은 지난 19일 공군 20전투비행단에서 발생한 사망 사고를 특히 주목한다. 해당 부대는 불과 1년여전 고 이예람 중사의 극단적 선택 사건이 있었음에도, 또 다른 희생자를 막지 못했다. 이 중사 사건 수사도 미처 끝나지 않은 시점에서 벌어진 비극이다.
앞서 이 중사는 지난해 3월 선임 간부에게 성폭력 피해를 당했다. 그는 즉각 신고했지만, 군검찰 수사가 진행 중이던 같은 해 5월 말 극단적 선택을 했다. 그 동기를 두고 이 중사 유족이 “고인이 동료, 선임 등에게서 2차 피해에 시달렸다”고 주장하면서 논란이 일었다.
당시 사건을 수사한 국방부는 총 25명을 형사입건, 그중 15명을 기소했다. 하지만 ‘책임론’이 거셌던 부실 초동수사 담당자와 지휘부는 단 한 명도 기소되지 않았다. 군 안팎에서 비판이 빗발쳤다.
한 간부의 극단적 선택 사건이 부실 수사·봐주기 의혹으로 얼룩졌다. 군의 이 같은 ‘찝찝한’ 행보는 군인권보호관 제도가 신설되고 군사법원법이 개정되는 결정적 계기가 됐다. 사실상 군의 자정 능력에 대한 사회 불신이 제도화를 주도한 모양새다.
최근 한 달 최소 9명 사망…사흘에 한 명꼴
사인 절반 이상이 스스로…군 책임론 대두
군인권보호관은 군 인권침해와 차별행위를 조사해 시정조치와 정책권고 등 권리구제를 담당하는 국가인권위원회 소속 기구다.
또 이달부터 시행된 개정 ‘군사법원법’에 따라 평시 군에서 발생한 성폭력 범죄와 입대 전 범죄, 그리고 사망 사건의 원인이 된 범죄의 수사·재판권이 민간으로 이전됐다. 군 당국이 변사 사건을 인지하고 수사하던 와중에도, 범죄 혐의점이 발견되면 수사·재판권이 민간으로 넘어간다.
문제는 사망 사고와 범죄 혐의점의 인과관계를 판단하는 기준이 주관적일 수밖에 없다는 점이다.
군인권센터 관계자는 <일요시사>와의 통화에서 “‘원인이 된 범죄’라는 개념이 너무 모호하다. 결국 판단 주체 별로 다른 답이 나오는 문제”라며 “지금의 시스템 아래에서는 군이 입맛따라 결정할 수 있다. 결국 법을 바꾸나마나가 된 것”이라고 지적했다.
앞선 군사법원법 개정 취지는 이미 신뢰를 잃은 군의 자의적 판단을 줄이고, 보다 투명한 수사 과정을 확보하기 위함이다. 하지만 여전히 일부 사건은 군의 판단에 의해 외부 개입 여부가 결정된다. 최악의 경우, 사건 은폐·축소 시도에 악용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실제로 군은 법 개정 이후로도 민간 수사기관 협조에 소극적이다. 군은 ‘수사가 종결되지 않았다’는 명분으로 사건 자료를 민간 수사기관과 공유하지 않고 있다.
개정 군사법원법 시행됐지만…
검경 협조 요청에도 ‘버티기’
아울러 새 군사법원법과 함께 시행된 대통령령에 따르면 검시에 참여한 검사나 경찰관은 범죄 의심 정황에 대해 의견을 제시할 수 있다. 이를 위해서도 각종 수사 자료 확보는 필수적이다. 하지만 군은 계속해서 자료 공유 요청에 응하지 않고 있다.
실제로 최근 대검찰청은 국방부에 ‘검사가 사망에 대한 의견을 제시할 수 있게 조사 자료 공유에 협조해달라’는 취지의 공문을 보낸 것으로 알려졌다.
검찰은 이달 들어 관할 군부대에 사망 사건들의 현장 사진이나 유족 진술 등을 요청했지만, 한 건도 받지 못했다. 검찰은 군에게 관련 자료를 전해 받을 때까지 사건 검토와 의견 제시를 보류한다는 방침이다.
의무조항을 넣지 않은 것이 화근이었다. 현 규정대로라면 검사나 경찰관이 군에게 협조받을 길은 열린 건 맞지만, 그게 군 측의 의무는 아니다.
군은 “현장 검시 때 동행한 것만 해도 의견을 제시하기에 충분하다”는 반응이다. 하지만 법조계와 시민단체에서는 “범죄행위가 극단적 선택을 촉발한 경우, 현장에서 인과성을 찾기 어렵다”며 정면으로 반박하고 나섰다.
군 인권센터 관계자는 “민간단체에 수사 내용을 공유하라는 게 아니지 않나. 수사기관끼리 공유·협조 잘해서 수사 완성도를 높이라는 것이다. 왜 거부하는지 모르겠다”며 “군이 앞선 실책에 대한 반성 없이 ‘권한 줄다리기’에만 열중하는 듯한 모양새라 보기 안타깝다”고 꼬집었다.
입맛대로
군은 경찰 정식 수사 전부터 검경에 자료를 제공하긴 어렵다는 입장만 되풀이하고 있다. 국방부 관계자는 “사건이 민간 관할로 확정되기 전에 사건 기록을 민간 검경에 공유하는 절차에 대해선 관계기관의 협의가 필요하다”고 전했다.
<기사 속 기사> 공군 여군 간부는 왜?
고 이예람 중사가 근무했던 공군 비행단에서 또 다른 여군 간부가 숨진 채 발견됐다.
고인은 부대 내 괴롭힘을 견디지 못하고 극단적인 선택을 한 것으로 드러났다.
지난 19일 공군은 “오전 8시10분쯤 충남 서산에 있는 공군 제20전투비행단 영내 독신자숙소에서 강모 하사가 숨진 채 발견됐다”고 밝혔다.
강 하사는 지난해 3월 임관한 뒤 한 달쯤 지나 현재의 보직에 배치된 것으로 알려졌다.
공군 수사단은 유족과 군인권센터 관계자 등이 입회한 가운데 현장 감식을 진행했다.
군인권센터는 지난 27일 기자회견을 열고 “현장에서 발견된 유서로 추정되는 다이어리에 기재된 내용과 여타 정황을 볼 때 강 하사의 사망에 부대 요인이 있다고 판단했다”며 “군 수사기관 초동 대응의 문제점도 확인했다”고 주장했다.
군인권센터에 따르면 유서에는 “아무 잘못도 없는 나한테 다 뒤집어씌운다” “내가 운전한 것도 아니고 상사님도 있었는데 나한테 왜 그러냐” “○○사 ○○ 담당 중사, 만만해보이는 하사 하나 붙잡아서 분풀이하는 중사, 꼭 나중에 그대로 돌려받아라” 등의 내용이 담겨있었다.
또 “내 직장이 여기가 아니었다면 어쩌면 지금보다 훨씬 행복할 수 있었을까” “관사로 나온 게 후회가 된다. 다시 집 들어가고 싶다” 등의 구절도 적혔다.
이와 관련해 군인권센터 관계자는 “강 하사는 군 복무 중 겪은 모종의 사건으로 인해 입대를 후회하고 군 생활을 원망하며 사망에 이른 것으로 보인다”며 “유서에는 아무런 잘못이 없는 강 하사에게 이유 없이 비난한 사람이 있었다는 점 등 부당한 처사를 겪은 이야기가 다수 적혀 있다”고 설명했다. <운>
※우울감 등 말하기 어려운 고민이 있거나 주변에 이런 어려움을 겪는 가족·지인이 있을 경우 자살 예방 상담전화 ☎1393, 정신건강 상담전화 ☎1577-0199, 희망의 전화 ☎129, 생명의 전화 ☎1588-9191, 청소년 전화 ☎1388, 청소년 모바일 상담 ‘다 들어줄 개’ 어플, 카카오톡 등에서 24시간 전문가의 상담을 받을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