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계뒷담화> 대기업 ‘홍보실 괴담’ 실체

2010.02.23 09:32:17 호수 0호

‘기업의 입’ 부풀면 기업이 죽는다?


재계에 흉흉한 소문이 떠돌고 있다. 이른바 ‘홍보실 괴담’이다. 이 괴담은 대기업 정보맨들과 재계 호사가들의 입에서 입으로 빠르게 확산되면서 확대 재생산되는 형편이다. 과연 어떤 내용일까. 그 실체를 파헤쳐봤다.


‘홍보 확대=회사 위기’ 무서운 징크스 회자
대외업무 보강후 자금난…충원뒤 공중분해

 
‘사채 괴담, 부도 괴담, 비자금 괴담, 비리 괴담, 사정 괴담, 사옥 괴담, M&A 괴담….’ 재계가 온갖 ‘괴담’으로 뒤숭숭하다. 한해를 시작하는 연초 기업으로선 소소한 입방아에도 민감할 수밖에 없다. 더구나 금융위기 여파가 아직 가시지 않은 상황이라 더 그렇다.

각종 괴담에 휩싸인 기업들은 “사실무근”이라고 잘라 말하면서도 물밑에선 루머의 불씨를 끄고 괴소문 진원지인 ‘검은 그림자’실체를 캐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다. 사전에 피해를 막기 위해서다. 기업들이 괴담 유포자에 대해 법적 대응에 나서는 등 ‘전쟁’을 벌이는 것도 이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번 퍼진 괴담은 좀처럼 진화되지 않는다.

금융위기 타고 공식화



이런 와중에 새로운 괴담이 재계에 떠돌고 있다. 이른바 ‘홍보실 괴담’이다. 기업 정보맨들과 재계 호사가들 사이에서 빠르게 확산되고 있는 이 괴담은 대기업이 홍보실을 강화하면 위기에 처하거나 어려움을 겪게 된다는 게 주요 내용이다. 심지어 망한 회사도 있다고 한다. 최근 몇 년간 사내 홍보실을 신설 또는 보강한 회사들이 줄줄이 흔들리면서 ‘홍보실 괴담’이 회자되기 시작했다.

일련의 각종 괴담들은 거의 대부분 출처와 실체가 불분명한 낭설로 끝나기 일쑤였다. 그러나 이번 ‘홍보실 괴담’은 소설 같은 이야기에 그치지 않고 정설로 굳어지는 분위기다. 물론 그럴만한 충분한 사례들이 그 근거로 뒷받침되고 있다. M&A로 몸집을 불린 A사는 2008년 대대적인 조직 개편을 단행하면서 홍보 부문을 강화했다. 다른 부서에 딸려 있던 형태에서 단독 부서로 분리하는 동시에 부서 내 조직을 신설·확대했다.

홍보 인력도 충원했다. 승진자들이 줄을 이었고 각 파트별 팀장과 직원들을 새로 영입했다. 그전까지 허름했던 기자실도 리모델링 공사를 통해 새롭게 단장했다. 이후 기자들에게 제공한 간식의 질까지 눈에 띄게 좋아졌다는 후문이다. A사 측은 “어려운 상황일수록 더욱 적극적인 대외 이미지 개선이 필요하다”며 “홍보 부분의 자율성과 독립성을 부여해 그 위상과 기능에 힘을 실어줬다”고 밝혔다.

하지만 A사는 지난해 심한 유동성 위기를 겪다 결국 채권단으로 넘어갔다. 현재 채권단과 최종 합의한 구조조정안에 따라 워크아웃(기업개선작업)이 진행 중이다. B사 역시 2008년 사업 영역이 크게 확장되자 기존에 없던 홍보실을 새로 만들었다. 외부에서 홍보맨들을 스카우트하는가 하면 광고비도 대폭 늘렸다. 홍보팀이 꾸려진 만큼 각 팀장들은 언론에 인사를 다니느라 정신이 없었다. 국내 언론사 기자들을 몽땅 초청해 그럴싸한 기자간담회도 열었다.

그러나 이도 잠시. B사는 홍보팀을 운영한 지 1년도 채 되지 않아 경영난에 시달리다 지난해 공중분해됐다. 홍보맨들은 다른 부서로 자리를 옮기거나 백수 신세로 전락하는 등 모두 뿔뿔이 흩어졌다. C사와 D사의 사정도 비슷하다. C사는 2007년 전세살이를 마무리하고 새 사옥을 매입하면서 ‘회사의 입’을 개설했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금융위기 직격탄을 맞고 금융권 워크아웃 대상에 포함됐다.

C사는 워크아웃 수습책으로 사옥을 처분했고, 당연히 홍보실도 사라졌다. D사는 몇 해 전 인수한 기업과 홍보 업무를 통합해 재벌그룹 부럽지 않은 대외 창구를 재정비했으나 모기업의 자금난으로 간신히 부서명만 유지하고 있다. 한때 10여 명에 달했던 홍보맨들은 거의 다 떠나고 지금은 단 2명이 텅 빈 사무실을 지키고 있다.

홍보실 강화 이유는 다르지만 결과가 같은 경우도 있다. E사는 지난해 오너 일가가 유난히 구설수에 오르는 일이 잦자 방어 차원에서 ‘홍보의 달인’이라 불리는 외부 전문가를 영입하는 등 대언론 인원을 보강했다. 하지만 이들은 E사를 향해 한꺼번에 날아온 화살들을 제대로 막지 못했다.

이에 이 회사 오너는 비난 기사가 나올 때마다 홍보실 직원들을 한명씩 문책해 해직 조치했고 이렇게 줄기 시작한 인원은 어느새 전화만 받는 여직원 1명으로 줄었다. 재계 한 호사가는 “기업이 관련된 괴담은 잘못된 사실을 근거로 과대 포장되는 경우가 많지만 최근 떠도는 ‘홍보실 괴담’은 그럴만한 근거가 충분하다”고 말했다.

무리한 사업 확장 원인

그는 “회사 덩치가 커지면 홍보실을 강화하는 것이 당연한데 문제는 최근 몇 년 간 몸집을 불린 기업들이 하나같이 휘청거리고 있다는 사실”이라며 “이를 역으로 보면 홍보실을 강화하면 회사가 위험하다는 결론으로 풀이된다”고 설명했다. 각 기업의 홍보실 직원들로선 이 괴담이 반가울리 없다. 가뜩이나 과중한 업무로 하루하루가 피곤한 마당에 ‘홍보 확대=회사 위기’란 속설이 정설로 자리 잡으면 일 부담을 더는데 도움될 게 없다는 판단에서다.

모 기업 홍보실 관계자는 “까다로운 기자들을 상대하고 매일 반복되는 술자리와 라이벌 회사 견제 등이 주업무인 홍보실 구성원들은 대외 업무를 맡은 탓에 다른 부서보다 스트레스가 심하다”며 “인력 1명이 아쉬운 상황에서 홍보실을 강화하면 회사가 위험하다는 ‘홍보실 괴담’이 떠돌고 있어 난감하다”고 귀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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