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점장 금품 갈취 사건에 휘말린 부산은행

2010.02.16 11:08:48 호수 0호

시중은행의 한 금융인이 기업인을 협박해 돈을 갈취한 사건이 발생했다. 주인공은 부산은행의 전 지점장이다. 부산은행에서 30여 년간 근무해 온 정모(54)씨는 기업인이 부동산 소유과정에서 탈세를 한 혐의를 빌미로 협박해 수억 원의 금품을 갈취하다가 쇠고랑을 찼다.



고교후배 손잡고 기업인에게 ‘부동산 탈세 신고하겠다’ 협박 갈취
지점장실서 1억원 건네받아…1년 뒤 2억5천만원 추가 요구 ‘뻔뻔’

사건은 지난 2008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부산지역에서 부동산중개업을 하는 김모(50)씨는 지난 2~3년간 모 철강회사 대표 허모(67)씨의 부동산 매매를 책임져왔다. 김씨는 허씨의 토지 관련 매입, 매각 관련 일을 중개하며 그동안 1억2000만원가량의 수수료를 받는 등 돈독한 관계를 유지해 왔다.

그러나 2008년에 들어 허씨가 자신이 아닌 타 중개업자와 거래를 트자 김씨는 이에 불만을 품었다. 그동안 허씨의 땅 매매를 10여 차례 중개하며 그의 탈세 사실을 포착했던 김씨는 이에 자신의 고교선배인 부산은행 지점장 정씨를 찾아 범행을 모의했다. 연출과 시나리오는 김씨가 맡았고 정씨는 행동대장으로 나섰다.

‘탈세혐의’ 미끼로 협박

정씨는 2008년 3월 허씨의 철강회사 사무실을 직접 방문했다. 이 자리에서 그는 “내가 부산의 한 구청장을 잡아넣은 적이 있다. 탈세 사실을 검찰, 세무서, 언론사 등에 고발하겠다”며 협박했다.


정씨는 기업체를 운영하는 허씨에게 앞으로 은행권 금융 대출 시에도 불이익을 가할 것이라는 등의 압박을 가했다. 경찰에 따르면 정씨는 두 달 사이 총 5~6회에 걸쳐 허씨에게 전화를 걸거나 직접 사무실을 찾는 등 끈질기게 허씨를 협박했다. 결국 2008년 5월7일 허씨는 부산 사상구 덕포동에 위치한 은행 지점장실에서 정씨에게 수표 1억원을 건넸다.

그러나 지점장의 만행은 여기서 끝이 아니었다. 정씨는 최근 허씨에게 또 한 차례 수억 원을 요구했다. 이번에는 허씨의 철강회사 사무실에서 일한 경험이 있는 농산물도매시장 중개업자 김모(40)씨, 허씨와 사업거래를 하며 탈세혐의에 대해 알고 있었던 건축업자 황모(57)씨 등도 함께 했다.

부동산중개업자 김씨와 지점장 정씨는 이번에는 직접 고소장까지 작성해 허씨를 강도 높게 협박했다. 정씨는 허씨에게 고소장을 검찰청과 국세청 등에 접수했고 이를 철회하기 위해서는 대가가 필요하다며 재차 돈을 요구했다.

원하는 액수도 크게 늘었다. 정씨는 허씨에게 3억원, 5억원 등의 고액을 요구했고 2억5000만원에 절충안을 마련했다. 만나는 장소는 부산 동구에 위치한 국제호텔. 날짜는 2월3일로 정했다.

정씨는 허씨에게 검찰청과 국세청 등에 있는 관계자들을 입막음하려면 무조건 현금이 필요하다고 강요해 1억원은 현금, 나머지는 수표로 준비하도록 지시하기도 했다.

그러나 정씨 일당의 이같은 범죄는 최근 그 꼬리가 잡혔다. 2년간 수차례 협박과 금품 요구에 시달렸던 허씨가 지난달 말 더 이상의 고통이 싫다며 이 사연을 경찰에 알린 탓이다.

허씨는 지난해 10월부터 최근까지의 협박 전화 녹취록과 함께 자신의 사무실에 찾아와 협박하는 정씨 등의 모습이 담긴 CCTV 화면 등을 경찰에 제공했다. 사건을 접수한 부산지방경찰청 수사과는 지난 3일 국제호텔 현장에서 허씨로부터 현금을 건네받는 정씨를 검거했다.

경찰은 정씨를 금품갈취 등 처벌에 관한 법률 위반 혐의로 구속하고 부동산중개업자 김씨도 같은 혐의로 구인장을 발부했다. 경찰은 또 공동 공갈에 가담했던 혐의로 농수산물도매시장 중개업자인 김씨와 건축업자 황씨를 불구속 입건했다.

1억 받고도 모자라(?)

사건을 조사한 경찰 한 관계자는 “피해자 허씨는 자신의 탈세 혐의를 스스로 밝히겠다고 결심을 바꿀 정도로 그동안 정신적 고통을 많이 받은 상태”라며 “이번 사건의 주범은 부동산중개업자지만 지점장은 앞장 서 수차례 돈을 요구하고 협박하는 등 허씨를 수년간 괴롭혔다. 죄질이 상당히 나쁘다”고 밝혔다.

확인 결과 정씨는 지난 1월 말에 있었던 부산은행의 인사발령으로 자리를 옮긴 상태였다. 지점장에서 부산은행 본사 소속의 중소기업지원담당으로 이동한 것.


경찰 한 관계자는 “정씨가 최근 은행 내부비리 혐의로 지점장에서 본사 지원담당자로 후선배치 됐다”고 귀띔했다.

부산은행은 이번 사건에 대해 공식 입장 표명을 꺼리는 분위기다. 부산은행 한 관계자는 “이번 사건은 회사와는 관계가 없는 일로 지점장 개인의 비리다. 지점장실에서 돈이 오고 간 것을 회사가 알 수 있는 방법은 없다”고 잘라 말했다.

또한 관계자는 “인사발령은 영업점 실적이 나빠서 변경된 것이지 내부비리와는 관계가 없다”며 “이번 사건과 관련해서는 경찰 조사가 끝난 이후 내부징계 등 별도의 조치를 취할 것”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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