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명연예인의 그늘<엿보기>

2010.01.26 10:05:10 호수 0호

배고픈 활동, 언제까지…


국세청이 최근 무명연예인 11만5000여 명의 세금 내역을 공개했다. 특급 스타들은 연간 수백억원을 벌어들이고 있지만 뒤편에는 연간 1000만원에 미치지 못하는 무명연예인들이 다수에 이른 것으로 조사됐다. 


탤런트 150만원·가수 80만원·모델 40만원
경기 침체 장기화…“꾸준한 일거리 절실해”


국세청은 지난 1월15일 2008년 거주자 사업소득 원천징수 신고현황을 통해 가수 6535명, 배우·탤런트 2만580명, 패션모델 9567명, 엑스트라 등 연예보조서비스 종사자 7만8427명 등 11만5109명의 사업소득에 대해 원천징수된 세금 내역을 공개했다. 이들은 한결같이 무명으로 분류되는 연예인들이다. 스타급 연예인들은 대형 연예기획사에 소속돼 있거나 개인사업자로 등록해 소득신고를 하기 때문에 포함되지 않았다.

가수의 경우 원천징수된 소득세는 1인당 평균 29만원이었다. 가족 등 환경에 따라 미세한 금액 차이는 존재하지만 역산하면 연간 959만9000원가량을 연예활동으로 벌어들인 것으로 국세청은 추산했다. 월 평균 수입이 80만원정도인 셈이다.

단역배우 일당 5만원



국세청 관계자는 “방송사나 공연주최자 등 원천징수 의무자가 이들에게 지급한 금액을 신고한 것”이라며 “대개 아마추어나 신인 또는 무명가수들이고 부업을 겸하는 것으로 추정된다”고 말했다. 배우·탤런트는 1인당 소득세가 가수보다 높은 평균 57만원이었다. 마찬가지로 역산하면 연 평균 1888만7000원(월 평균 150만원 정도)을 연예활동으로 벌어들인 것으로 나타났다. 반면 스타급 연예인들의 소득은 일반인들의 상상을 뛰어넘을 정도다.

드라마 출연료 차이도 천양지차다. 무명탤런트는 출연료가 회당 10만원 안팎에 불과하고 그나마 출연기회를 얻지 못하는 탤런트가 더 많다. 반면 특A급 배우나 탤런트들은 회당 출연료가 수천만원에서 1억원을 호가한다. 모델이나 연예보조서비스 종사자의 벌이는 더 시원찮았다. 모델은 연 소득이 469만3000원, 연예보조서비스 종사자는 483만9000원이었다. 가수나 배우·탤런트 소득보다 훨씬 낮은 월 평균 40만원 안팎에 불과한 셈이다.

무명배우 김석균, 트렌스젠더 연예인 장채원, 모델 출신 방송인 김지후, 재연배우 여재구, 댄스그룹 엠스트리트의 멤버 이서현 등은 죽은 후에야 세상에 이름을 알렸다. 이들 대부분은 연예인으로서 성공하지 못한 데 대한 비관 등이 쌓여 극단적 선택을 했다는 게 측근들의 설명이었다. 화려하게만 비치는 연예계 뒷모습이다.

한 연예계 관계자는 “연예계는 이름값으로 먹고사는 냉혹한 세계다. 억대스타가 있는가 하면 죽어서야 비로소 이름을 알리는 무명연예인도 있다”며 “열정을 나무랄 수는 없는 일이다. 그러나 스타들의 화려한 면만 보고 환상을 가지는 것은 금물이다”라고 충고했다. 무명연예인 중에서도 TV에 출연하는 단역배우들은 더욱 처절하다. 이들에게 당장 절실한 건 꾸준한 일거리다.

경기 침체가 장기화되다 보니 제작진이 수지타산을 맞추기 위해 자잘한 캐릭터들은 아예 없애 버리는 경우가 많아 조-단역들의 출연 기회도 점점 줄어드는 실정이다. 출연을 한다고 해도 무명연기자의 출연료는 너무 적다. 톱스타들의 개런티는 급여 개념이 아닌 자유계약 개념으로 상한선이 사라져 통상 회당 수천만원에서 1억원을 호가한다. 대박 드라마나 영화 등을 통해 뜬 이른바 연기파 중견들의 경우도 통상 회당 200~300만원 정도의 자유계약을 한다.

반면 일반연기자들의 출연료는 예전처럼 등급제 출연료 개념으로 지급되고 있다. 단역배우는 회당 5만원선. 조역배우는 단계별로 총 18등급으로 나눠 20만원부터 150만원까지 회당 출연료를 차등 지급받는다. 물론 세금은 공제해야 한다. 보통 단역의 경우 오전 6시~저녁 6시까지 12시간 근무 시 기본급이 4만원에 채 미치지 못한다. 밤 10시까지 일하면 1만5000원이 추가되고 밤 12시까지는 2만원이 추가되는 식이다.

문제는 낮은 등급에 속해 있으면서 출연 작품 수도 많지 않은 무명 조-단역 배우들이다. 대부분이 연기 이외의 다른 일거리를 병행하며 불안하게 살고 있다.
일반 직장인들이 누리는 최소한의 비빌 언덕인 4대 보험 가입 등도 당연히 해당사항이 없다. 극빈자 수준으로 사는 연기자들도 적지 않으며 한번은 뜰 것이라고 믿으며 결혼도 못한 채 늙어 가는 노총각 연기자들이 허다하다.

단역배우로 출연하고 있는 A씨는 “우리의 생활은 참담하기 이를 데 없다”며 “단역배우들은 보통 월 150만원 이하를 버는데 100만원도 못 버는 배우들이 허다하다”고 고충을 토로했다. 그는 이어 “이 정도 돈을 벌려면 꾸준하게 섭외가 들어와야 하는데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며 “우리는 퇴직금도 없고 4대 보험도 안 되는 비정규직 노동자들이다. 주위 시선도 단역배우인 우리들을 한 단계 낮은 배우로 치부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상대적 빈곤감과 박탈감은 이들을 더욱 좌절케 하는 요인이다. 연기자의 경우 같은 일에 종사하면서도 대중적 인지도와 인기에 따라 수입의 수준이 말 그대로 하늘과 땅 차이다. 과거엔 인기 스타라고 해도 등급제 출연료의 기준에 따라 출연료를 받았고 대신 CF에서 돈을 벌었는데 요즘 톱스타들은 출연료와 CF 양쪽에서 떼돈을 버니 수입의 격차는 끝간 데 없이 벌어지는 형국이다.

상대적 박탈감으로 좌절

A씨는 “단역배우들은 연간 1000만원을 못 버는데 한 작품에 몇억원씩 버는 주연배우를 보면 커다란 박탈감에 우울증에 시달린다”며 “자살충동까지 느낄 수 있다”고 털어놨다. 그는 이어 “스타들을 보면 달려가 아우성을 치면서 조-단역 배우들을 볼 때는 사람 취급도 안 하는 듯한 싸늘한 시선을 보낼 때 정말 속상하다”고 무명의 설움을 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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