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본무 LG그룹 회장 일가의 수상한 대물림이 확인됐다. 무려 15만여 평에 달하는 부동산이 ‘LG 황태자’ 광모씨 수중으로 흘러들어간 정황이 석연치 않다. 광모씨 소유가 되기까지 회사 임원들이 조직적으로 개입했고 어린 나이로 어떻게 ‘큰돈’을 마련했는지 매입 자금도 불분명하다. 특히 구 회장이 광모씨를 양자로 들이기 직전 서둘러 모든 명의이전을 끝냈다는 점에 의혹의 시선이 쏠리고 있다. LG그룹 후계자로 한창 뜨고 있는 광모씨의 발목을 잡을 만한 ‘아킬레스건’을 도려내봤다.
15만평 매입 자금 출처 불분명
회사 임직원 조직적 개입 정황
양자 입적 전 서둘러 명의이전
LG그룹 후계자로 광모씨를 의심하는 시선은 적다. 구본무 회장이 아직 공식적으로 인정하지 않는 등 그룹 측은 “이르다”라고 선을 긋고 있지만, 그룹 안팎의 의견을 종합해보면 광모씨가 언젠간 대권을 승계할 것이란 데 별다른 이견이 없다.
지난해 9월, 한 중소기업 사장 딸과 결혼한 광모씨는 10월 미국 스탠퍼드대학 경영대학원 석사과정(MBA)을 마치고 LG전자(과장)로 복직했다. 본격적인 경영 수업으로 사실상 승계 신호탄이 쏘아진 셈이다.
2006년 9월 LG전자 재경부문 금융팀 대리로 입사한 광모씨는 이듬해 유학길에 올랐다. 광모씨는 조만간 다시 출국해 LG전자 해외 법인에서 현장경험을 쌓을 예정이다.
LG인화원 주변 부지
회장 일가 ‘싹쓸이’
광모씨의 그룹 지배력도 상당한 수준이다. 틈틈이 사들인 ㈜LG 지분이 어느새 4.67%나 됐다. 구 회장(10.60%), 구본준 LG상사 부회장(구 회장 둘째 동생·7.58%), 구본능 희성그룹 회장(구 회장 첫째 동생·5.01%)에 이어 4대주주다. ㈜LG가 그룹 지주회사인 탓에 충분히 계열사들을 지배할 수 있는 위치다.
이는 가족들이 밀어준 덕분에 가능했다. 광모씨는 친인척이 처분한 주식을 도로 사는 방식으로 지분을 늘렸다. ㈜LG뿐만 아니라 LG상사, LG이노텍 등 계열사 지분 매입도 마찬가지다.
여기에 들어간 돈만 2300억원이 넘지만 현재 광모씨의 주식 평가액은 이를 훨씬 뛰어넘는 6200억원에 이른다. 재벌가 자제들의 주식부자 순위에서 다섯 손가락 안에 드는 금액이다. 광모씨는 안정적인 경영권 확보를 위해 앞으로 더 지분을 늘릴 것으로 보인다.
다만 그는 철저히 베일에 싸여 있다. 공식석상은 물론 전혀 외부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그동안 광모씨가 다른 그룹 총수일가와 달리 단 한 번도 구설수에 휘말리지 않은 이유다. 그 흔한 호사가들의 소소한 입방아에도 오른 적이 없다.
그러나 흠집이라곤 찾아볼 수 없는 비교적 ‘깨끗한’ 광모씨에게도 숨기고 싶은 ‘아킬레스건’이 있다. 바로 땅 문제다.
<일요시사> 확인 결과 광모씨는 경기도 이천시 마장면 해월리 LG인화원 주변의 임야와 농지 등 48만2837㎡(14만6000여 평)에 달하는 부동산을 소유하고 있다.
대법원 부동산 등기부등본에 따르면 광모씨가 보유한 임야는 산31(5만7124㎡), 산32-1(9만8678㎡), 산33(4860㎡), 산35(23만8691㎡), 산43(4만7200㎡), 산45(1만9686㎡) 등이다. 또 100-3(287㎡), 165-5(992㎡), 186-2(2284㎡), 187(1884㎡), 188(2334㎡), 189-3(3091㎡), 189-4(5726㎡) 등의 농지도 광모씨 명의다.
광모씨는 이들 부지의 시세가 하루가 다르게 천정부지로 치솟으면서 ‘돈방석’에 앉았다. LG인화원을 비롯해 지산리조트, 청강대학교 등이 들어선 게 호재였다.
국토해양부에 따르면 해월리 일대의 임야 공시지가는 광모씨가 매입한 2004년 2000∼3000원대에서 지난해 1만4000∼1만5000원대로 5배 이상 뛰었다. 농지는 같은 기간 1만5000∼1만7000원대에서 3만8000∼4만원대로 올랐다.
현지 부동산업계 관계자들은 이 일대의 토지 실거래가가 공시지가보다 수십∼수백배 비싼 가격으로 흥정된다고 입을 모은다. 이를 감안하면 광모씨의 땅이 현재 적게는 수백억원, 많게는 수천억원을 호가한다는 계산이다.
문제는 무려 15만여 평에 달하는 부동산이 광모씨 수중으로 들어간 과정이다. 편법 상속 논란이 될 소지가 다분하다. 광모씨 소유의 모든 이천 땅이 그렇다.
우선 매입 자금의 출처가 불분명하다. 총 13개의 필지가 광모씨 소유로 넘어간 시기는 2월27일(3건), 3월4일(5건), 3월5일(5건) 등 2004년 2월 말∼3월 초에 집중돼 있다. 소유권 이전 방식은 매매(5건)와 증여(8건)다. 일부 증여의 경우 광모씨와 그의 사촌인 형모(구본준 LG상사 부회장 장남), 웅모(구본식 희성전자 사장 장남)씨 등 LG일가 4세들이 공유하고 있다.
부동산 거래 당시 광모씨는 26세(1978년생)였다. 어린 나이로 어떻게 ‘큰돈’을 마련했는지 의문이 제기되는 대목이다. 더구나 그는 학생 신분으로 군복무 중이었다.
광모씨는 국내에서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곧바로 미국 뉴욕주 로체스터 공대에 입학한 뒤 2003년부터 2005년까지 3년간 국내 IT 솔루션 회사에서 산업기능요원으로 병역을 마쳤다. 산업기능요원 시절 대규모의 부동산을 증여받거나 사들인 것이다.
13개 필지 임야·농지
실거래가 수천억 호가
특히 이천 땅이 광모씨 소유가 되기까지 회사 임직원들이 조직적으로 개입한 정황도 포착됐다.
광모씨의 매매·증여 경로는 크게 두 가지로 나뉜다. LG그룹의 옛 동업자였던 GS일가 2세 허승효 알토 회장으로부터 임야 1필지(5만7124㎡·1만7000여 평)를 매입한 것을 제외하고 대부분 ‘구자준 → 구광모’ 또는 ‘김화중 → 구광모’로 명의가 이전됐다.
구자준(LIG손해보험 회장)씨는 고 구인회 LG그룹 창업주의 동생 고 구철회 회장의 4남4녀 중 막내로 구본무 회장의 당숙이다. 구씨는 임야 4필지(7만2033㎡·2만2000여평)를 모두 매매로 광모씨에게 팔았다.
이미 세상을 떠난 김화중(전 희성금속 회장)씨는 구자경 명예회장의 큰사위로 구본무 회장과는 처남 매부지간이다. 김씨는 임야와 농지 8필지(35만3680㎡·10만7000여 평)를 광모씨에게 증여했다.
석연치 않은 점은 구씨와 김씨가 광모씨에게 넘긴 이 땅들을 원래 그룹 ‘컨트롤타워’였던 기획조정실 소속의 전현직 임원들이 갖고 있었다는 사실이다. ‘현지주민→기조실 임원→LG일가→광모씨’ 순으로 회사 임원들이 매입한 부동산이 LG일가를 통해 광모씨로 이전되는 사실상 ‘세탁’을 거친 것이다.
군복무 중 매매·증여…큰돈 어디서 구했나?
‘기조실 사람들’등장…컨트롤타워 작품인가?
취득 8개월 뒤 호적정리…뭔가 구린 구석 때문?
이 과정에서 가장 많이 등장하는 인물은 S씨다. 현재 그룹 계열사 부사장으로 재직 중인 S씨는 기조실에서 근무하던 1984년 4월 186-2, 187, 188, 189-3, 189-4번지 등 농지 5필지를 매입했다가 2003년 1월 김씨에게 팔았고, 김씨는 이듬해 3월 광모씨에게 증여 형식으로 넘겼다. S씨는 땅 매입 직전 이천시로 주거지를 옮겨 위장전입 의혹도 사고 있다.
S씨뿐만 아니라 기조실 임원 출신의 B씨, L씨, K씨 등도 광모씨 대물림에 한몫(?)했다. 이들도 S씨와 비슷한 시기에 LG인화원 인근의 부동산을 샀다가 거의 동시에 내놨고, 이는 고스란히 광모씨에게 넘어갔다. 이들 역시 땅 매입 직전 S씨와 같은 주소지로 이주해 위장전입 의혹을 받고 있다.
B씨는 1986년 12월 산45번지 1필지를 매입했다. L씨는 1987년 9월 산43번지를, K씨는 1985년 6월 산33번지를 각각 사들였다. 세 명이 소유했던 임야들은 1999년 2월 일괄적으로 구자준씨가 매입했고 다시 광모씨가 ‘주인’이 됐다.
회사 임원들 외에도 J씨가 눈에 띈다. J씨는 1991년 12월 산32-1번지 소유권 일부를 LG유통(현 GS리테일)으로부터 넘겨받은 뒤 1999년 1월 김씨에게 전부 이전했다. 김씨는 이 땅을 광모씨 등 LG일가 4세들에게 나눠줬다. 결국 J씨가 LG일가 대물림의 ‘연결고리’ 역할을 했다는 것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모 조경업체를 경영하던 J씨는 한때 여의도 LG트윈타워와 역삼동 GS타워에서 ‘꽃집’을 운영해 이천 땅과 관련 LG일가와 은밀한 거래가 있었던 게 아니냐는 의혹이 나오고 있다. 공교롭게도 J씨가 대표로 있는 조경업체가 LG인화원 인근의 구씨일가 소유 부지에 자리 잡는가 하면 J씨는 ㈜LG와 LS산전 등 수십억원의 LG그룹 계열사 주식을 소유한 바 있어 의혹을 더한다.
한 부동산 전문가는 “재벌일가가 ‘명의수탁자’를 통해 부동산을 대물림하는 수법은 오래전부터 계속된 전통적이고 전형적인 편법 상속 방식”이라며 “회사 직원이나 제3자를 내세우다 보니 부동산 세탁 중 고의적으로 빼돌리는 등 ‘사고’도 많이 일어나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재벌들이 이 수법을 쓰는 것은 뭔가 구린 구석이 있기 때문 아니겠냐”고 말했다.
이런 이유에선지 광모씨의 부동산 거래는 구본무 회장이 양자로 들이기 전 이뤄졌다. 이천 땅이 광모씨 소유로 된 것은 2004년 2∼3월 사이다. 광모씨는 그로부터 8개월 후 구 회장의 양아들이 됐다.
1994년 외아들 원모씨를 불의의 사고로 떠나보낸 구 회장은 슬하에 딸만 둘을 두고 있는 상황에서 장자의 대를 잇고 집안 대소사에 아들이 필요하다는 유교적 가풍에 따라 2004년 12월 아랫동생 구본능 회장의 장남 광모씨를 양자로 입적했다.
당시 LG그룹은 총수 일가의 ‘집안일’이었지만 이례적으로 언론에 알렸다. 그룹 관계자는 “광모씨의 양자 입적은 2004년 11월 구자경 명예회장을 비롯한 LG그룹 구씨일가의 가족회의에서 결정된 것”이라고 밝혔다.
2004년 3월 땅 거래
11월 양아들로 입적
‘정도(正道) 경영’.
구 회장이 1995년 회장 취임식에서 처음 화두로 던진 이후 줄곧 추구해 온 경영철학이다. 한마디로 부당·편법 없이 정정당당하게 승부하자는 뜻이다. 이는 곧 LG그룹 경영방침이기도 하다.광모씨의 부동산 취득 과정에서 불거진 의혹에 대해 누구나 쉽게 납득할 만한 해명이 없다면 구 회장이 강조하는 ‘바른 길’은 무리한 요구일 수 있다. 이를 아는지 모르는지 LG그룹 측은 “회사 일도 아니고 개인 거래라 모른다”며 입을 굳게 다물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