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속시리즈> 김성수 기자가 파헤친 비밀 [제32탄] 미소금융

2010.01.26 09:39:45 호수 0호

1%만 바늘구멍 통과 ‘무늬만 서민대출’

[일요시사=경제1팀] 총체적 불황 속에서도 유독 잘나가는 ‘절대 강자’가 있다. 막강 브랜드를 앞세운 기업들이다. 기업 수익과 직결되는 브랜드 경쟁력으로 확보한 아성은 어느 누구도 무너뜨릴 수 없을 만큼 견고하다. 하지만 ‘1등 브랜드’에도 숨기고 싶은 비밀이 분명 존재한다. 소비자 눈을 가린 ‘구멍’이 그것이다. 
<일요시사>는 대한민국 산업의 발전 방향 모색과 소비자들의 정당한 권리 차원에서 히트상품의 허점과 맹점, 그리고 전문가 및 업계 우려 등을 연속시리즈로 파헤쳐 보기로 했다.






지난해 정부가 학자금 대출, 보금자리주택 등과 함께 친서민 정책의 하나로 마련한 ‘미소금융사업(마이크로크레디트)’이 제 역할을 못하고 있다. 은행 문턱이 높은 가난한 사람들에게 돈을 빌려주겠다는 당초 취지와 달리 기존 은행권 대출과 마찬가지로 까다로운 심사 기준 탓에 사실상 대출이 쉽지 않다는 지적이다. 도움을 기대한 방문객들은 대부분 한숨을 내쉬며 발길을 돌리는 형편이다.
 이명박 대통령은 지난해 6월 “서민에게 도움을 줄 수 있는 마이크로크레디트 제도를 적극 활용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로부터 3개월 뒤 미소금융중앙재단이 본격 출범했다. 이후 사업 주체와 기부금 등을 놓고 말이 많았으나 중앙재단을 중심으로 꾸려지는 각 지역별 지점에 6개 대기업과 5개 은행의 독자적인 재단이 운영되는 ‘큰 그림’이 그려졌다.


미소금융은 저소득층의 경제적 자립을 위해 소액 신용대출을 해주는 사업이다. 자활의지가 있지만 신용도가 낮아 제도권 금융 이용이 어려운 저소득, 저신용층, 영세사업자 등이 지원 대상으로, 담보나 보증 없이 낮은 금리로 사업자금을 빌려준다. 향후 10년간 20∼25만명이 혜택을 받는 대출 금액은 보통 500∼1000만원(최대 1억원), 금리는 4.5% 이내다. 대출상품은 ▲프랜차이즈 창업자금 대출 ▲창업 임차자금 대출 ▲시설개선자금 대출 ▲운영자금 대출 ▲무등록사업자 대출 등 다섯 가지다.
총 사업비는 2조원이다. 이중 1조원은 미소금융사업에 참여한 삼성그룹, 현대·기아차그룹, LG그룹, SK그룹, 롯데그룹, 포스코 등 6개 그룹이 책임진다.
삼성그룹은 계열사들이 매년 300억원씩 앞으로 10년간 출연하는 3000억원을 재원으로 재단을 운영한다. 현대·기아차그룹과 LG그룹, SK그룹은 각각 연간 200억원씩 10년간 모두 6000억원을 자사 재단에 출연하기로 했다.
 ‘하늘의 별따기’까다로운 심사 기준·조건 논란 
신용등급, 채무, 보유재산 등 대부분 ‘부적격’ 

롯데그룹과 포스코는 500억원씩 총 1000억원을 각출해 이 사업을 추진한다. 나머지 1조원은 휴면예금 7000억원을 포함한 5개 은행(국민은행, 신한은행, 우리은행, 하나은행, 기업은행) 기부금으로 채워진다. 기부금을 출연하는 이들 기업과 은행들은 이미 각사의 이름을 건 미소금융재단을 설립, 자율적으로 운영 중이다. 금융위원회에 따르면 미소금융이 첫 출범한 지난달 16일부터 지난 15일까지 한 달 동안 전국에 설립된 미소금융지점은 7개 중앙재단 지점과 14개(지부 3개) 대기업·은행 재단 등 모두 21개다.

사업비 2조원 책정
20∼25만명 혜택

금융위 측은 “상반기 미소금융사업을 담당할 지역법인 20∼30개를 추가로 설립해 50개 이상으로 늘어날 것”이라며 “지난해 10월 1차 모집공고 시 144명이 신청했는데 오는 5월까지 목표를 달성할 수 있도록 1월 중 제2차 지역지점 대표자 모집 공고를 낼 계획”이라고 밝혔다. 문을 연 각 미소금융 지점엔 상담자들이 대거 몰렸다. 상담 전화도 폭주해 업무가 마비될 지경이었다. 미소금융 지원 사례가 들린 건 얼마 지나지 않아서였다.
50대 박모씨는 남편 건강과 보증 빚 청산 등으로 어려움을 겪고 신용이 하락해 은행대출이 어려웠다. 그러던 중 미소금융을 접하고 상담을 통해 대전에서 운영하던 과일 판매점 시설 개선과 과일 구입 자금을 신청했다. KB미소금융재단은 박씨가 자활의지와 자립 가능성이 있다고 판단, 500만원(연 2%)을 지원했다.

“실제 대출 어렵다”
내방객 점점 줄어

지난해 6월 서울의 한 시장 거리에 향수 판매 노점을 시작한 20대 중반 정모씨도 사업 자금을 신청했다. 우리미소금융재단은 현장실사 후 영업력과 상환 의지가 좋다고 보고 정씨에게 500만원(연 2%)을 대출해줬다. 남편의 친구 대출보증으로 빚더미에 앉은 40대 정모씨는 본인명의로 중고 오토바이 수리·판매점을 운영하다 중고 오토바이 구입자금을 신청했다.
하나미소금융재단은 소상공인진흥원 컨설팅 결과 정씨의 사업성이 우수하다고 나오자 1000만원(연 4.5%)을 빌려줬다. 하지만 그냥 발길을 돌린 사람이 더 많다. 일반 금융권 못지않게 대출 자격 조건이 워낙 까다로운 이유에서다. 금융위에 따르면 지난 1개월간 전국 21곳에 마련된 미소금융재단을 찾은 사람은 1만3400여 명(전화 문의 등 약 7만 건 제외)이다.
신규 창업 시 임차보증금 지원 또는 원자재 구입 등 운영자금 지원에 관한 상담이 5770여 건(71%)으로 가장 많았다. 이어 ▲창업(3220건) ▲운영자금(2555건) ▲무등록사업자(1157건) ▲시설개선(606건) ▲프랜차이즈(166건) 등의 순이었다. 생활비, 주택전세보증금 등 미소금융 지원대상이 아닌 자금수요에 관한 상담도 420여 건(5.2%)에 달했다는 게 금융위 설명이다.
방문객 1만3400여 명 가운데 상담을 받은 사람은 절반이 채 안 되는 8100여 명으로 신용등급과 재산보유 현황 등에 대한 기본적인 심사 결과 신청자격이 있는 상담자는 2440여 명(30%)에 불과했다. 신용등급이 6등급 이상이거나 채무 과다 등이 자격 미달의 주된 요인이다. 그나마 지난달엔 신청자격자가 20%대에 머물렀으나 미소금융의 취지, 신청요건 등에 대한 홍보효과 등으로 ‘합격률’이 늘어난 것이다.
눈에 띄는 점은 실제 대출 건수가 신청자격자의 1% 수준인 총 27건(1억4800만원)에 그쳤다는 사실이다. 500만원 이하 소액 대출은 24건에 1억1800만원, 500만원 이상 창업자금은 3건에 3000만원이 각각 지원됐다. 결국 한 지점당 약 1∼2건씩 대출된 셈이다. 심지어 대출이 단 한 건도 없는 지점도 있다.

수도권 중심 개설
‘브로커’까지 등장


사정이 이렇다 보니 미소금융지점 내방객은 점점 줄고 있다. 지점당 1일 평균 상담자는 약 35명인 반면 지난 15일 기준 최근 4일간은 하루 약 21명만 상담을 받았다. 모 지점 담당자는 “재단 출범 초기 하루 수백 명이 다녀갔지만 지금은 20∼30명에 그치고 있다”며 “상담을 받을 수 있는 일부 신청자격자를 빼면 상당수 그냥 돌아가는 실정”이라고 귀띔했다.
미소금융 탈락자가 속출하면서 일부 대출 조건을 완화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우선 미소금융 대출을 받으려면 신용도가 7등급 이하(1∼6등급)만 가능하다. 또 신용불량자는 물론 빚(채무비율 50% 미만)이 있으면 대출 불가다. 이외에도 ▲대도시 거주자 보유재산 1억3500만원 이하(기타 지역 8500만원 이하) ▲세금 체납이나 부도 무기록 ▲대출금 50% 이상 자기자금 보유 ▲2년 이상 사업 지속 등 넘어야 할 대출 문턱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한 시민단체 관계자는 “미소금융의 까다로운 기준을 보면 저소득, 저신용층, 영세사업자를 위한 진정한 서민금융지원 프로그램이 맞는지 의심스럽다”며 “겉과 속이 다른 ‘무늬만 서민대출’에서 뺨을 맞은 서민들은 더 이상 갈 곳이 없다”고 꼬집었다. 미소금융지점이 수도권 중심인 것도 문제다. 전체 지점의 60% 이상이 서울과 경기 등 수도권에 몰려있다. 그만큼 지방 거주자들은 후순위로 밀려 소외될 수밖에 없다.
방문객 1만3400명 중 8100명만 상담
신청자격자 2440명…대출 승인 27건

현재 지방에서 운영되는 지점은 포스코미소금융재단의 포항, 광양 지부와 대전 은행동 국민미소금융재단을 비롯해 중앙재단 지역지점인 충북 청주지점, 광주 서구지점, 대구 서구지점, 강원 춘천지점, 부산 중구지점 등 8개뿐이다. 최근엔 미소금융 대출이 어렵다는 점을 악용한 전문 브로커까지 등장해 피해가 우려된다.
실제 한 브로커는 인터넷 카페나 블로그 등을 통해 미소금융 대출을 도와주겠다고 유인, 서류를 대신 접수해준 뒤 20∼30만원의 중개수수료를 챙기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미소금융 대출을 받게 해주는 대신 수수료를 입금하라는 신종 ‘보이스피싱’ 피해도 발생해 경찰청 사이버수사대가 수사에 착수했다. 현행 대부업법은 무등록 대부(중개)업자의 광고 및 대부(중개)행위와 수요자로부터 중개수수료 수취행위를 금지하고 있다.
금융위 측은 당분간 심사 기준을 그대로 유지할 방침이다. 다만 지점의 전국 분산과 브로커 단속엔 즉각 개선 의지를 분명히 했다. 금융위 관계자는 “마구잡이식의 대출로 ‘눈먼 돈’이란 비판과 무보증·무담보이므로 도덕적 해이가 생길 수 있기 때문에 수혜자 선정 과정에 엄격한 심사가 불가피하다”며 “사업 초기에 나타나는 제도상 또는 운영상 미비점 등에 대해 지속적으로 개선책을 검토해 점차 조건과 지원을 보완해 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지점이 수도권에 몰려있다는 지적에 대해선 “저신용자의 40% 이상이 서울과 경기 등에 거주하고 있어 먼저 수도권 중심으로 개설했지만 점차 지방에 지점과 지부를 설립해 나갈 계획”이라며 “당장 1∼3월 제주, 대전 등에 설립이 예정돼 있는 등 상반기까지 10개 이상의 지방 지점을 낼 것”이라고 해명했다.
그는 또 “‘미소금융 브로커’가 등장함에 따라 불법 중개수수료 수취행위에 대한 단속과 국민의 주의환기를 위한 홍보를 지속적으로 강화해 나갈 것”이라며 “대출 상담이 필요한 경우 미소금융중앙재단이 운영하는 콜센터나 홈페이지 등을 통해 자격요건, 상품내용, 신청서류 등의 정보를 확인하고 미소금융 지점을 방문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조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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