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패직원 솎아내기 팔 걷어붙인 기업 암행감찰<속으로>

2010.01.26 09:43:47 호수 0호

“사정 칼끝 겨누고 암행어사 출두요~”

정부 감찰기관의 암행어사 출두는 예나 지금이나 갑작스럽다. 이들은 재계 곳곳을 누비며 부패하거나 부정한 부분을 찾아낸다. 최근엔 금융가가 당국의 불심검문에 떨고 있다는 소식이 업계에 들려온다. 기업 입장에선 저승사자나 다름없는 암행감찰반의 등장은 소문만으로도 가슴을 졸이게 만든다. 자칫 시범케이스로 걸려 뭇매를 맞을 수도 있는 탓이다. 일부 기업들은 이에 자체 감찰시스템 강화로 내부 비리 척결에 앞장서기도 한다. 사전에 논란의 불씨를 만들지 않겠다는 의도다. 게다가 몇 년 사이 고객 관리를 위해 암행감찰을 적극 활용하는 기업들도 늘고 있다. 현대판 암행어사로 불리는 ‘미스터리쇼퍼’ 제도를 실시, 현장 점검에 나서는 것. 특히 외식?유통?서비스업계에는 이들의 활동 영역이 점점 넓어지고 있다.

금융당국 불심검문에 은행가 ‘노심초사’…증권가 감사 시즌 앞두고 ‘벌벌’
기업 자발적 암행감찰로 내부 비리 근절 노력… KT·LG 등 적발시 처벌 강화


최근 은행가에서 금융당국의 암행감찰이 한창이라는 소식이 들리고 있다. 금융감독원 관계자에 따르면 금감원은 지난해 4/4분기부터 은행 영업점 감사팀을 조직해 본격적인 활동에 돌입했다.
국내외 일선 영업점의 일명 ‘꺾기’ 등 불건전 영업행위, 내부통제시스템 등을 중점적으로 살피기 위해서다. 금감원의 이 같은 조치는 그동안 금융당국이 본점 위주의 감사를 실시해 온 것에 비교해 볼 때 이례적인 조치다.

시중은행 영업점
불심검문 ‘화들짝’

금감원 한 관계자는 “이번 전담반 개설은 지난해 시중은행 영업점에서 발생한 사고들이 많아 만들어진 것”이라며 “당국의 지속적인 검사에도 ‘꺾기’ 등 불건전영업행위가 종식되지 않아 현장 관계자들에게 경각심을 일깨우기 위해 마련됐다”고 밝혔다.
관계자는 이어 “지난해 말부터 국민, 신한, 우리, 하나은행 등 일부 시중은행의 영업점에 대한 감사가 진행됐으며 추후 타 은행 영업점에 대한 감사가 지속적으로 진행될 예정”이라고 덧붙였다.

금감원은 사전예고 없이 불심검문하는 방식을 취하고 있다. 한 영업점당 2~3명의 감독관이 출동해 최대 2~3일 내에 감사를 마치는 등 신속하게 조사를 실시해 나간다는 방침이다.
금감원은 영업점 선정 기준에 대해서는 정확히 밝히지 않고 있다. 다만 무작위 선정이 아닌 점포 내역을 살피는 등 별도의 내부 기준이 존재한다는 관계자의 귀띔이 전부다. 이에 업계는 그동안 금융사고 및 불건전영업행위로 논란이 됐던 일선 영업점이 감사의 주요 타깃이 될 것이라는 전망을 내놓고 있다. 이에 따라 은행업계는 대비책 마련에 분주한 모습이다.

실제 시중은행 한 관계자는 “지난달부터 금감원이 각 은행 영업점을 상대로 불심검문에 들어갔다는 소식이 전해지면서 시중은행들이 영업점에 대한 내부 관리 및 입단속에 신경을 쓰는 분위기”라며 “특히 지난해 ‘꺾기’ 등으로 도마에 올랐던 영업점에 대해서는 더욱 신경을 쓸 수밖에 없다”고 전했다.
관계자는 “본점이 아닌 영업점 직접 감사라는 당국의 조치가 이례적인 만큼 당분간은 시중은행들이 몸 사리기에 들어갈 것”이라고 덧붙였다. 

금감원의 전격 출두 소식이 전해지면서 증권가에도 긴장감이 팽배하다. 증권가는 지난해 3~4월과 9~10월 두 차례 금융당국의 감찰을 받은 바 있다. 금감원이 펀드, CMA 등 금융상품 판매 서비스에 대한 긴급 점검에 나선 것.
당시 당국의 감찰은 감독관들이 고객으로 가장해 현장에서 판매 행위를 확인하는 ‘미스터리쇼핑’ 방식으로 이뤄져 증권가를 더욱 긴장하게 만들었다.

실제 상반기 1차 감찰 평가를 받았던 증권사들은 2차 감찰 기간을 앞두고 직원 관리에 더욱 분주한 모습을 보였다. 당시 증권가 창구 직원들은 출근 직후 고객 응대 방식에 대해 롤플레잉 연기를 하거나 각종 제도에 대한 벼락치기 공부에 바빴다는 것이 업계 관계자들의 전언이다.
일부 증권사는 자체 감사를 통해 금융상품을 불완전 판매한 직원들을 대상으로 휴일에 ‘나머지 학습’을 시키기도 했다고 전해진다. 당시 신한금융투자와 푸르덴셜증권도 직원들을 대상으로 정기적인 완전판매교육을 실시하는 등 사전 점검에 나섰다.

증권사들이 금감원의 암행감찰에 이렇게 고삐를 죄는 이유는 감찰 결과에 따른 평가 점수 탓이다. 금감원은 감찰에 앞서 “60점 이하(100점 만점)인 서비스 ‘미흡’ 평가를 받는 기업에 대해서는 직접 검사하고 점검할 예정이다. 펀드판매 관행이 개선되지 않고 있다면 경영자 책임도 물을 것이다”라며 엄포를 놨다.

그러나 이 같은 엄포에도 불구하고 지난달 금감원이 발표한 2차 점검의 평균 평가 점수는 67.4점으로 상반기 70.1점보다 낮은 수준이었다. 이에 금감원은 건전한 펀드판매 관행이 정착될 때까지 미스터리쇼핑을 지속적으로 실시할 것이라며 목소리를 높였다.



고객 탈 쓴 감사팀에
증권사 때마다 ‘긴장’

결국 지난해 2차 점검에서 서비스가 ‘미흡’하다는 평가를 받은 교보·동부·삼성·하나대투·하이투자·한화·현대·NH투자증권 등 국내 펀드 판매사들은 다가오는 상반기 또 한 차례 현장 점검이 실시될까 긴장하는 모습이다.
금감원 한 관계자는 “아직 정확한 일정이 나온 것은 아니지만 올 한 해도 펀드판매 정책 강화에 대한 미스터리쇼핑이 확대 시행될 것으로 보인다”고 전망했다.

금융당국의 암행감찰로 재계 일각이 긴장의 끈을 놓지 못하는 가운데 또 다른 일각에선 자체적으로 감찰 기능을 강화, 확대 시행하고 있는 기업들도 있다. 이는 기업의 투명성이 경쟁력과 직결된다는 사회 인식이 확산되면서 각 기업들이 윤리경영 강화에 나선 탓이다.
대표적인 케이스로 공룡 통신기업인 KT를 꼽을 수 있다. KT는 지난해 1월 이석채 회장 취임 이후 내부 비리와의 전쟁을 선포하며 대대적인 감사를 벌이고 있다.

이 회장은 “KT가 성장하려면 과거의 비리를 덮고 갈 수는 없다”는 단언과 함께 서울고검 검사 출신인 정성복 윤리경영실장(부사장급)을 영입했다. 정 실장 부임 이후 KT는 윤리경영실 내 암행어사를 10명에서 20명으로 늘려 활동 보폭을 넓혔다. 이들은 암행감찰과 수사로 KT가 과거 ‘철밥통’의 이미지를 벗고 윤리경영 이미지를 높이는 데 기여하고 있다.

‘미스터리쇼퍼’ 외식·유통·서비스업  新암행어사
직원에게는 ‘저승사자’…고객서비스는 업그레이드


지난해 7월에는 사내 암행어사들의 활약으로 임직원들의 토착비리를 확인, 검찰에 고발하기도 했다. 당시 KT의 제보로 의정부지검은 협력업체로부터 금품을 받은 혐의로 수도권 서부본부 전·현직 임직원 147명을 적발했다.
이들은 2004년 12월부터 2006년 7월까지 특혜 발주와 공사 과정의 하자를 봐주는 대가 등으로 협력업체로부터 18억원대의 금품을 수수한 것으로 드러났다.


LG그룹은 수년 전부터 정도경영TF팀을 구성해 감사활동을 강화해 왔다. 이는 오너인 구본무 회장의 경영원칙에 따른 것으로 이렇게 구성된 감사팀은 수시로 자회사 곳곳에 암행을 나가 정도경영 여부를 감시하고 감사위원회에 감사 사실을 보고하고 있다.
내부비리 척결 의지는 공기업도 예외는 아니다. 한국철도공사는 2007년부터 상시 암행감찰 활동을 전개하고 청렴 옴부즈맨 제도 등을 통해 부패 활동을 통제하고 있다. 또한 비리 연루자의 명단을 내부시스템에 공개하고 관리자에 대해서는 연대책임을 물어 인사고과 시 페널티를 부여하는 등 처벌도 강화하고 있다.

최근 기업의 암행감찰은 본사 내부비리 척결뿐 아니라 고객을 접점에서 상대하는 현장에서도 힘을 발휘하고 있다.
업계에 따르면 지난해 6월 현대백화점은 명품 매장에 ‘현대판 암행어사’로 불리는 미스터리쇼퍼 수십 명을 풀고 20여 일간 직원들을 상대로 고객 응대 태도를 집중 점검했다. 앞선 고객 만족도 조사에서 명품 매장 직원들이 고객을 차별대우하는 등 일명 ‘물관리’를 하고 있다는 지적이 제기된 데에 따른 회사 측의 조치였던 것.

현대백화점은 당시 암행감찰의 결과를 각 명품 회사에 전달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같이 최근 백화점, 마트, 유통 등 각 분야의 기업들은 미스터리쇼퍼를 이용한 현장에서의 암행감찰을 적극 활용하고 있다. 기업 간 경쟁이 치열해질수록 가격과 상품을 넘어 고객에 대한 서비스가 주요 무기로 등장하면서 이를 점검하는 데 유용하게 활용되고 있기 때문이다.

윤리 경영 앞세운 재계
감찰 강화로 기강 확립

실제 대부분의 유통 할인 기업들은 주기적으로 외부의 전문 조사업체를 통해 암행감찰을 실시하고 있다. 업계에 따르면 이마트는 분기 1회, GS마트는 월 1회, 롯데마트는 월 2회, 홈플러스는 월 6회씩 실시하고 있다.
현대백화점은 35명의 모니터 요원들이 연간 11회에 걸쳐 판매사원의 서비스 수준을 평가하고 갤러리아백화점은 외부 전문 모니터 기관과 연계해 매년 2회 이상 주기적으로 시행하고 있다.

미스터리쇼퍼의 활용은 국내 외식업계에서도 이미 필수조건의 하나로 자리 잡고 있다. 지난 2004년 놀부NBG에 의해 처음 도입된 외식업계 미스터리쇼퍼 제도는 이후 원앤원, 인토외식산업, 아시안푸드 등으로 번졌고 현재는 대부분의 외식업체들이 연 1회 이상의 암행감찰로 매장의 청결도, 서비스 태도 등을 체크해 매장 관리에 활용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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