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꾸로’ 노사 선진화 “이대론 미래 없다”

2009.12.22 09:20:00 호수 0호

2009년 역행 노조문화 실태 긴급진단


2009년 대한민국 노조문화. ‘혹시나’ 했는데 ‘역시나’였다. 여전히 부족했다. 아직도 갈 길이 멀다. 고질병은 그대로였고 큰소리도 변하지 않았다. 뒤숭숭한 경제 상황 또한 그다지 반영되지 않았다. 올초만 해도 ‘변해야 산다’는 자성이 넘친 노동계에 국민들의 기대가 컸던 탓일까. 그만큼 실망이 컸던 그 자화상을 들여다봤다.



올해 노동계의 최대 이슈는 노사 선진화 방안의 핵심 과제인 노조전임자 임금 지급 문제다. 이 논란의 핵심은 일손을 놓고 있는 노조전임자에게 굳이 회사에서 월급을 줘야 하느냐는 것이다.

한국노동연구원에 따르면 지난해 기업에서 급여를 받은 국내 전체 노조전임자는 1만583명으로 노조전임자가 회사로부터 받는 임금이 평균 1인당 4300만원에 달한다.

“내부부터 추슬러야”

‘노조 왕국’현대차의 경우 노조전임자가 200명이 넘는다. 일절 회사일을 제쳐두고 노조 업무에만 몰두하는 이들은 월급은 물론 고정 잔업비, 휴일 특근비 등 갖가지 수당과 차량, 유류비 등의 특혜까지 지원받는다. 반면 주요 선진국들은 ‘무노동 무임금’원칙을 기본으로 노조전임자에 대한 급여 지급을 100% 노조가 자체 부담하고 있다.

‘전임자는 회사로부터 급여를 지급 받아서는 안 되고 회사도 전임자에게 급여를 지급해서는 안 된다’는 내용이 담긴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 조정법(노조법)’은 1997년 개정됐다.


하지만 노동계의 강력 반발로 13년간 3차례나 유예됐고 그 최종 기간이 올해 말까지였다. 2010년 1월 시행을 코앞에 두자 노동계는 또다시 반기를 들었다. “전임자 임금 부분을 아예 삭제하거나 법으로 규정하기보다 노사 자율에 맡겨야 한다”며 강경 모드로 돌변한 것. 과거 유예 기간 만료 때마다 빼든 대정부 투쟁 등 으름장도 빼놓지 않았다.

결국 눈치만 보던 한나라당은 “법 시행을 더 이상 미룰 수 없다”는 기존 입장을 뒤집고 지난 8일 노조전임자 임금지급 금지를 6개월 유예하는 내용의 노조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벌써 네 번째 유예다.

▲기업의 부담 가중 ▲전임자 지위 유지를 위한 무리한 요구 및 비합리적 투쟁 주도 ▲전임자의 특권화와 권력화에 따른 비리·부패 만연 등을 이유로 전면 금지를 주장해온 재계의 불만은 당연하다.

그러나 일단 한숨 돌린 노동계의 ‘떼쓰기’가 멈추지 않고 있다. 노사정 합의를 주도한 한국노총 내부에선 “너무 물러섰다”는 강경론이 만만찮다. 일부 조합원들이 “이번 합의안을 받아들일 수 없다”며 현 지도부의 사퇴를 요구하는 목소리가 거세지고 있는 것.

한노총과 함께 노동계를 양분하고 있는 민주노총은 노사정 합의 사실이 전해지자 ‘추악한 거래’란 성명을 내고 철회를 외치고 있다. 노사정 합의에서 배제된 민주노총은 이를 촉구하는 장외투쟁에 나선 상태다.

‘떼쓰기’뿐만 아니라 불법 파업도 노동계가 풀어야 할 해묵은 숙제다. 올해 전 세계적인 경제 불황에도 불구하고 막무가내식 파업이 끊이지 않았다. 하지만 대부분 싸늘한 외부의 시선에 ‘백기’를 들었다. 철도노조와 쌍용차 사태가 대표적이다.

철도노조는 지난달 26일 사측의 단체협약 해지 철회를 위해 무기한 전면파업에 돌입했다. 이에 정부는 ‘불법파업’으로 규정, 검찰의 압수수색 등 전방위 압박에 나섰다.

이명박 대통령도 “어떤 일이 있더라도 원칙은 지켜져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이런 일이 반복될 것”이라며 단호한 의지를 보였다. 게다가 “명분 없는 정치투쟁”쪽으로 여론까지 악화되자 철도노조는 8일 만인 지난 3일 전격적으로 파업을 철회했다.

지난 5월 인력 구조조정을 놓고 76일 동안 지속된 쌍용차 파업은 전쟁터를 방불케 했다. 볼트새총, 사제총, 화염병, 쇠파이프 등이 난무했고, 노-노간 집단 난투극을 벌이는 상황까지 치달았다. 쌍용차 내부 인사들은 ‘막장 파업’ 원인에 대해 쌍용차와 무관한 세력들이 끼어들어 당사자의 현안과 거리가 먼 정치투쟁을 벌인 탓으로 분석했다.

정치색 짙은 강경투쟁


결국 이 사태는 전원 고용 원칙을 고집해 온 노조가 한 발 물러서는 선에서 마무리됐다. 이외에 민주노총 전국노동자 대회의 폭력적인 시위 행태와 S&T기전 공장 불법점거, 현대기아차 부분파업, 한국쓰리엠(3M) 전면파업 등도 여론의 비난을 받았다.

무차별적인 강경 투쟁에 대한 화살은 상급단체로 쏟아졌고 급기야 ‘무용론’까지 나오고 있다. 정부와 국민들은 물론 경제·사회단체, 급기야 내부 조합원들마저도 불만을 터뜨리고 있는 것. 명분과 실익이 없다는 이유에서다.

올해 들어서만 정치·이념 중심의 투쟁노선에 반대해 KT, 쌍용차, 울산NCC, 인천지하철공사, 인천국제공항공사, 영진약품, 그랜드힐튼호텔, 단국대 등 20여 개 노조가 상급단체에서 탈퇴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나아가 현대차를 비롯해 기아차, GM대우 등의 노조 내부에서도 상급단체에 대해 회의적인 반응이 속출하고 있다. 일부 사업장에선 양측의 반목과 갈등이 깊어질 대로 깊어지고 있어 ‘탈퇴 도미노’조짐까지 감지된다.

노동계 전문가들은 사업장 노조에 앞서 상급단체의 변화를 주문하고 있다. 지금과 같은 강경한 정치투쟁 노선이 아닌 기존 노동현장 노선으로 되돌아가야 한다는 것.

한 노동운동가는 “상급단체가 이젠 ‘떼쓰기’식 투쟁노선에서 구체적인 혁신 노력을 보여줘야 한다”며 “과연 누굴 위한 조직이며 무엇을 위한 파업인지, 다시금 되새겨 볼 시점”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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