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찰수사 발표로 본 기막힌 건설사 입찰비리 행태

2009.12.15 09:37:50 호수 0호



학연·지연 총동원 공무원·평가위원 등 전방위 로비
골프·술자리 접대 등 수년간 공들여 인맥 관리하기도

수면 아래서 떠돌던 건설사 입찰비리가 공개됐다. 지난 8월 입찰평가위원으로 참여했던 한 대학교수의 폭로로 드러나게 된 건설사 입찰비리 실체가 경찰 수사 4개월 만에 꼬리를 드러낸 것이다. 경찰 수사 결과에 따르면 수백억원 규모의 공사를 수주하기 위한 건설사들의 입찰 선정 시나리오는 장기간 공들여 완성된 프로젝트였다. 실제 건설사들의 로비 행태는 007작전을 방불케 했다. 입찰 평가에 선정된 위원들에게 봉투를 건네기 위해 새벽부터 집 앞에서 대기하는가 하면 수차례에 걸친 사전접대를 통해 장기간 친밀한 관계를 형성하는 등 시간과 노력을 아끼지 않았다.



지난 5월말, 금호건설 김모 상무는 경기도 파주시 교하신도시 복합커뮤니케이션센터 입찰 평가위원의 명단을 입수하기 위해 파주시청 공무원 김모씨를 매수했다. 당시 공무원 김씨에게 전해진 금액은 8000만원. 그 대가로 김씨는 평가위원 후보자 918명에 대한 명단을 건설사에 건넸다.

금호건설은 이를 토대로 입찰평가 후보자들에 대한 전방위 로비를 벌였다. 우선 후보자의 출신지와 출신학교 등을 알아내 관계가 있는 회사 내 직원 등을 통해 철저한 ‘사전관리’에 들어갔다.

‘전방위 포섭 대작전’

설계적격심의위원회가 열린 지난 7월17일 새벽에는 두둑한 로비 자금을 마련한 금호건설 직원들이 선정이 유력한 일부 평가위원의 집 인근에 전면배치 됐다.

같은 날 새벽 4시쯤 무작위 추첨한 10명의 평가위원 선정 결과는 사전에 매수된 통신업체 직원의 도움으로 고양시의 한 PC방에 자리한 담당자에게 전해졌고 이 명단은 본사에 전달됐다. 대기 중이던 부하 직원들은 곧바로 평가위원들의 집 앞으로 달려가 돈을 건넸다.


평가위원에 선정된 환경관리공단 김모 팀장은 입찰 당일 새벽 4만 달러, 우리 돈으로 5000만원을 받았다. 환경관리공단 박모 팀장은 사전에 500만원 상당의 골프와 향응을 제공받고 평가 이후에도 상자 2개에 각각 1000만원씩 2000만원을 전달 받았다. LH공사의 한 팀장에게도 입찰 평가 10여 일 뒤 감사의 표시로 2000만원이 전달됐다.

교하신도시 복합커뮤니케이션센터 입찰에 참여했다가 금호건설에 패한 동부건설은 입찰 평가위원을 상대로 소위 ‘보험’을 들어놓는 방법을 택했다.

동부건설의 손모 영업과장은 여러 입찰에 대비해 지난 2∼3년간 평가위원 자격이 있는 교수와 조달청·LH공사 등 공기업 직원, 군인에게 골프와 술을 접대하며 인맥관리를 해왔다. 각 분야 전문가로 구성된 이들은 모두 25명에 달했다.

손 과장은 사내 컴퓨터에 메모 형식의 파일을 별도로 작성해 관리하는 치밀함을 보였다. 파일에는 후보자 수십 명과 식사를 한 날짜와 시간, 비용 등 로비 접대 현황이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이 같은 건설사의 입찰 로비행태는 지난 8월 이후 4개월에 걸친 경찰수사 결과 형체를 드러내게 됐다. 파장은 뇌물수수혐의 관계자들의 무더기 입건으로 이어졌다.

실제 금호건설의 경우 건설업체와 교수, 공기업 직원, 공무원 등 17명이 줄줄이 입건됐다. 경찰 수사결과에 따라 평가위원들에게 금품과 향응을 제공한 혐의를 받고 있는 금호건설 홍모 팀장이 구속되고 금품을 받은 평가위원 3명도 구속됐다. 나머지 금품을 전달한 혐의를 받고 있는 금호건설 직원 9명과 비리에 연루된 4명은 불구속 입건됐다.

수년간 향응을 제공하며 로비를 벌인 것으로 드러난 동부건설 관계자 및 예비 평가위원들 15명도 뇌물수수 및 뇌물공여 혐의로 불구속 입건됐다. 현역 군인인 영관급 장교 11명의 명단은 군 수사기관에 이첩됐다.

업계 일각에선 이번 입찰비리 파문이 경찰 수사에 따른 몇몇 기업 관계자들의 입건으로 일단락되지는 않을 것이라는 분위기다. 파주 신도시 입찰비리 수사가 확대될 경우 건설사 업계 전반에 걸친 후폭풍이 예상되는 탓이다. 업계가 이런 우려를 나타내는 이유는 건설사 입찰로비가 이미 오랜 시간 업계 내 관행처럼 진행되어 온 데에 기인한다.

실제 업계에선 공공연한 입찰 로비수법들이 전해지고 있다. 업계 일각에 따르면 건설사들은 평소부터 예비평가위원들과 친분을 쌓으며 인맥을 관리한다. 이때 관리대상자는 공공기관 자격자와 교수, 전문인 등 업계 전문가 500명에서 1000명에 달한다.

건설사들은 이들에게 접근하기 위해 학연과 지연 등을 총동원한다. 심지어 각 권역별로 담당자를 나누기도 하는 건설사들은 이후 다양한 로비방법으로 평가위원들과 친분을 쌓는다. 술 접대를 비롯해 고스톱이나 내기 골프 잃어주기, 선물 속에 봉투 넣기, 골프나 콘도 회원권 제공 등이 과거부터 전해져 온 대표적 로비행태다.


이렇게 금품과 향응 등으로 수년간 쌓아온 친분관계가 빛을 발하는 순간은 입찰 시즌이다. 이맘때면 건설사 담당자들은 평가위원 후보자를 찾아다니며 일일이 자사의 설계에 대한 설명과 홍보를 한다. 현장소장들도 입찰 전날까지 설계 설명 등의 명목으로 평가위원들과 접촉하며 선물공세를 펼친다.

관행적 비리 후폭풍 예고

입찰 평가 전후로는 평가위원을 대상으로 수백명의 직원이 동원돼 금품이 전달된다. 금품의 종류는 현금, 상품권, 달러, 수표 등 다양하다.

최근엔 사이즈가 작아진 신권이 본격 유통되면서 현금이 로비자금으로 전달되기 더욱 용이해진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사과박스나 골프백, 여행가방 등을 활용하면 예전보다 더 많은 돈을 실어 나를 수 있다는 게 그 이유다.

업계에 따르면 여행가방, 골프백 등을 활용하면 최대 5억원까지 한 번에 전달이 가능하다고 한다. 다만 이때 전달되는 로비자금의 출처에 대해서는 명확하지 않다. 업계 일각에선 기업의 조직적인 개입을 의심하지만 경찰 조사를 통해 뚜렷이 밝혀지지는 않고 있다.

이번 조사결과 로비혐의가 드러난 금호건설의 경우 수억원의 로비자금이 투입됐지만 해당 직원은 수도권 지역 현장소장 17명이 각출한 판공비와 카드로 상품권을 구입한 뒤 할인 받은 돈 등으로 로비자금을 마련했다고 밝힌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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