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국정감사 전까지만 해도 뉴스의 중심은 늘 더불어민주당 정청래 대표와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였다. 이 두 여야 대표는 각자의 방식으로 ‘정치의 전면’에 섰고, 언론은 매일 그들의 발언을 헤드라인으로 다뤘다. 그러나 막상 국감이 시작되자 두 대표는 신기할 정도로 조용하다.
여야 대표가 동시에 국감에서 잠잠한 이유는 국감이 끝날 때가지 내년 지방선거 공천 룰의 구도를 잡아야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두 대표에게 국감장은 ‘국감 쇼윈도’에 불과하고, 진짜 정치 현장은 여의도 뒷방 회의실이다.
두 대표는 국감이 시작도 안 된 지난주 자신의 의중이 반영된 공천 룰을 언론에 흘렸다.
정 대표는 이달 초, 직접 컷오프 최소화와 권리당원 강화를 강조했고, 장 대표는 지난 10일 출범한 총괄기획단을 통해 오픈프라이머리(국민참여경선)를 주장했다. 즉 정 대표는 당원의 힘으로, 장 대표는 국민의 손으로 지방정치의 주도권을 잡겠다고 선언한 것이나 마찬가지다.
민주당의 정 대표가 내세운 원칙은 명확하다. 8·2 전당대회서도 밝혔듯이 컷오프를 최소화하고, 공천 과정에서 권리당원의 표 비중을 확대하겠다는 전략이다. 이는 현장 당원 중심 정당으로의 회귀를 밝힌 것이라 할 수 있다.
민주당은 과거 국민참여경선을 통해 흥행에 성공했지만, 동시에 여론조사 중심 경선이 조직력보다 인지도에 좌우된다는 불만도 컸다. 정 대표는 이를 뒤집고, ‘당원이 진짜 주인인 정당’을 복원하겠다는 메시지를 던진 것이다.
반면, 국민의힘의 장 대표는 정당 민주주의를 국민참여형으로 확장하겠다며 오픈프라이머리 주장하고 있다. 이는 당원뿐만 아니라 일반 유권자도 후보 선출에 참여하는 완전 개방형 경선이다. 보수 정당으로서는 과감한 실험이다.
장 대표는 “공천은 국민이, 당은 심판받을 준비를 해야 한다”고 강조해 왔다. 국민의힘은 이미 2022년 대선과 지방선거에서 100% 여론조사 경선을 실시해 흥행을 맛봤던 경험이 있다. 다만 이번엔 이를 한층 더 제도화해 지역별 ‘오픈프라이머리 + 청년·신인 가점 + 현역 감점제’를 병행할 것으로 보인다.
국감 시즌이 끝나면 바로 공천 시즌이 되기 때문에, 두 대표는 국감 기간에 공천 룰을 만들기 위해 막후에서 세밀한 계산기를 두드리고 있을 것이다. 그리고 지방선거 이후 대선에서 충청 대망론의 주인공이 되기 위해 치밀한 전략도 구상할 것이다.
이러니 국감장에 앉아 있어도 마음은 공천과 대선이라는 콩밭에 가 있는 것이더. 국감에서 조용할 수밖에 없는 이유다.
흥미로운 건, 두 대표 모두 충청권 출신 정치인이라는 점이다. 정 대표는 충남 예산 출신, 장 대표는 충북 청주를 지역 기반으로 한다. 내년 지방선거의 상징적 승부처가 충청권인 만큼, 두 대표의 개혁 실험은 결국 ‘충청 민심 싸움’으로 귀결될 가능성이 높다.
내년 지방선거에서 민주당은 ‘내란 종식과 복지, 교육, 균형 발전 등의 정책 성과를, 국민의힘은 이재명정부의 국정 실책, 경제 부진, 부동산·물가 문제 등 정권 심판론을 내년 지방선거 승리를 위한 당론으로 삼을 것이다
그러나 필자는 내년 지방선거가 당론도 중요하지만 공천을 얼마나 투명하고 공정하게 하느냐에 따라 성패가 좌우된다고 본다. 내년 6·3 지방선거는 정권 중간평가이자, 정당 민주주의의 진정성을 시험하는 무대다.
공천은 정당의 얼굴이고, 정당의 철학이 드러나는 무대다. 정 대표의 당원 중심론이든, 장 대표의 국민 개방론이든, 핵심은 ‘누구를 위해’ 정당이 존재하느냐다.
당원을 존중하되 국민과 단절하지 말고, 국민에게 개방하되 정당의 정체성을 잃지 않아야 한다. 내년 지방선거는 단순한 권력 경쟁이 아니라 공천 철학의 대결이 될 것이다. 정 대표의 조직 민주주의와 장 대표의 참여 민주주의, 어느 쪽이 진짜 민심을 얻을지는, 결국 공정성과 신뢰의 온도로 판가름 날 것이다.
지방선거는 단순한 ‘지역 권력의 재편’이 아니라, 차기 대권의 방향타를 미리 보여주는 ‘미니 대선’이기도 하다. 지방 권력을 얼마나 확보하느냐는 향후 총선 공천 구조, 당내 계파 세력, 그리고 대선주자 구도까지 결정짓는다.
특히 당 대표가 직접 공천 전략을 주도해 승리를 이끈다면 그 성과는 고스란히 리더십으로 귀속된다. 내년 지방선거에서 승리한 당 대표는 곧 차기 대선후보가 된다. 당내 경쟁자들이 선거를 이긴 리더를 흔들기 어렵다. 내년 지방선거에서 정 대표와 장 대표의 공천 철학이 어떻게 작용해 누가 승리하느냐가 중요한 이유다.
결국 두 대표의 국감 기간 침묵은 전략적이다. 국감이 끝나면 공천 룰이 당의 운명을, 나아가 자신의 정치적 생존을 좌우할 것이기 때문이다.
정 대표와 장 대표, 둘 다 싸움터를 옮겼을 뿐 멈춘 적은 없다. 지금의 고요는 폭풍전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