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지난 10일, 서강대학교 성이냐시오관 강당에서 ‘법률가의 길:헌법소원과 민주주의’를 주제로 문형배 전 헌법재판소장 권한대행의 특별 강연이 열렸다. 문 전 대행은 탄핵 심판 당시의 상황을 전하며 “정치권과 사회에 관용과 자제의 정신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이날 강연에서 문 전 대행은 지난해 10월 헌법재판소(이하 헌재)가 심판 정족수를 7인으로 규정한 헌법재판소법 효력을 당분간 정지하는 헌재법 제23조 1항을 언급했다.
당시 탄핵으로 직무가 정지된 이진숙 방통위원장이 “재판관 7명 이상의 출석으로 사건을 심리하는 효력을 정지해달라”며 낸 가처분신청이 재판관 전원일치 의견으로 인용되면서 ‘6인 체제’로 위헌 심판이 가능케 된 것이다.
이때 진보 진영에서는 문 전 대행을 비롯한 헌재를 향해 비판을 쏟아냈다. 헌재 스스로가 입법 행위에 준하는 결정을 했으며 추후 열릴 헌법재판관 인사청문회 등 추천 절차가 진행될 예정이었다는 점을 꼬집은 것이다.
이에 문 전 대행은 “그때 가처분신청이 없었다면 윤석열 전 대통령에 대한 탄핵 등 아무것도 하지 못했을 것”이라며 “당장 일어나지 않은 문제와 미래라 할지라도 다각도로 생각하는 힘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이어진 질의응답에는 한동수 전 대검찰청 감찰부장이 패널로 참여했다. 사회는 서강대 멘토링 센터장인 박영선 전 중소벤처기업부 장관이 맡았다.
문 전 대행은 “탄핵 심판을 표결할 때 전원일치로 찬성이 가능하겠다는 것을 느꼈다”고 말했다.
그는 “근거는 없었다. 다만 80년대 일어난 계엄은 그들이 이겼지만 2025년에는 과연 국민이 (계엄을) 용납할 수 있을까, 만일 아니라면 재판관도 용납할 수 없다”며 “민주주의는 (상대를 존중하는) 관용과 자제인데 비상계엄은 정치를 없애버리고 군인을 동원해 다스리겠다는 것이다. 헌법재판관들이 그걸 용인하지 않을 거라고 봤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시간이 더 걸릴 수도 있겠다고 느꼈지만, 서두를 문제는 아니”라며 “표결을 번복할 수 없지 않으냐. 충분히 토론하고 생각한 뒤 표결하는 게 좋다고 봤다”고 설명했다.
‘탄핵 심판 결정문을 일부러 쉽게 쓴 것이냐’는 질문에 “여러 차례 평의를 했고 이 과정에서 문장이 제대로 고쳐진 것”이라며 “또한 쉽게 써야 한다는 (재판관들의) 암묵적 동의가 있었다. 이 사건에서 국민은 피해자다. 그러다 보니 피해자가 공감하게끔 쓰자는 암묵적 동의가 있었다”고 말했다.
‘결정문에서 수정하고 싶은 부분이 있는지’에 대한 질문에는 “없다”고 즉답했다. 문 전 대행은 “이보다 더 공들인, 더 많이 고친 결정문은 없었다”며 “예를 들어 ‘더불어’라는 단어가 특정 정당을 연상시킬 수 있어 ‘또한’으로 바꾸기도 했다. 논리나 문장 구조를 토론하는 경우는 있지만 단어를 토론해 결정문을 작성한 것은 처음”이라고 답했다.
대법관 증원 등 사법부 개혁에 대해서는 “신속한 재판을 위해 대법관을 늘리자고 하면서 사실상 4심제를 하자는 것은 모순”이라고 꼬집었다. 문 전 대행은 “재판 소원이 활발한 독일에서도 인용률은 1~2%에 그친다”며 "한국 대법원이 법률심에 그치지 않고 사실 인정 문제까지 건드리고 있다는 점도 논의해야 한다. 논의를 생략하고 결단만 하면 안 된다”고 설명했다.
이 밖에도 검찰개혁에 대한 입장을 묻는 질문에는 “전혀 공부한 적이 없어서 어떤 의견도 없다”면서도 정치권 진출에 대해서는 “명확히 정치할 생각이 없다”고 잘라 말했다.
강연에 참석한 학생들과의 질의응답도 이어졌다. ‘좋은 판사가 되는 요건은 무엇인가’라는 한 학생의 질문에 문 전 대행은 “좋은 인간이 좋은 판사가 된다”고 말했다. 이어 “타인에 대한 공감 능력, 그리고 해결해보겠다는 의지 등 좋은 인간이 되는 길은 좋은 판사가 되는 길과 일치한다”고 강조했다.
이날 강의는 서강대 멘토링센터 ‘생각의 창’ 주최로 진행됐다. 생각의 창은 박 전 장관이 미국 하버드 케네디스쿨의 멘토링 시스템에서 영감을 받아 설립됐으며 ‘경험이 주는 미래’를 슬로건으로 선배들의 축적된 경험을 청년에게 공유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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