첩간판도 사람도 없다. 불도 꺼져있다. 낡은 밥상 위에 적힌 ‘가가책방’을 보고서야 제대로 찾아왔구나 싶었다. 책방 문도 자물쇠로 잠겨있으니 ‘영업 중(OPEN)’ 공간이라는 것을 짐작하기도 어렵다.
가가책방은 손님이 직접 자물쇠를 따고 들어가야 한다. 비밀번호를 알려면 책방 문에 적힌 전화번호로 전화를 걸어야 하는데, 그것부터 손님들에겐 진입 장벽이다. 문을 열고 입장했다 한들 남은 일이 많다. 모든 이용 방법은 스케치북에 적혀있다. 정독을 해야 가까스로 무인 책방 운영 방식을 알게 된다. 마치 상점을 오픈하고 마감하는 주인처럼 조명과 에어컨을 켜는 것부터 모두 손님 몫이다. 반전은 이런 불편 요소가 묘하게 재미있다는 거다. 찾아온 손님들은 이를 즐기는 듯했다. 메모지를 들추며 의도치 않게 감춰진 스위치를 찾아내는 것부터 잘 짜인 방탈출 게임을 하는 느낌이다.
반전
2019년 오픈 당시엔 지금의 분위기와 달리 방명록만 펼쳐져 있었다. 공주시에서 삼행시 이벤트를 한 계기로 엽서를 비치하면서 지금의 ‘메모서가’로 바뀌게 됐다. 손님이 남기고 간 메모를 들여다보는 일이 가가책방의 또 다른 독서다. 작은 메모지에 담긴 타인의 인생사가 구구절절 와닿고, 일러스트 못지않은 그림이 즐비하다. 마치 자서전의 한 챕터를 써 내려간 듯 자기 고백이 책방을 가득 채운다. 어떤 이는 주인 대신 ‘블루투스 연결법’을 상세하게 적어뒀다. 결국 가가책방의 모습은 다녀간 손님들이 만들어 낸 것이다.
몇 시간을 머물다 간들 누구도 상관하지 않는 공간이니, 문을 여닫는 잠깐의 수고로움은 기꺼이 용납된다. 문의는 오전 9시부터 오후 9시까지지만, 이용은 24시간 가능하다. 지금의 운영 방식도 코로나19가 계기였다. 당시 책방지기가 어린아이를 돌봐야 했고, 5인 이상이 한자리에 모일 수 없는 규정이 맞물려 ‘무인 운영’으로 귀결된 것이다. ‘과연 책방 운영이 사람 없이 가능할까’라는 실험은 결과적으로 성공이었다.
“고양이 이름이 가가여서 가가책방인가요?” 라는 메모를 보며 같은 궁금증이 일었다. 책방 앞에는 고양이집과 물그릇이 놓여있기 때문. 서동민 책방지기는 ‘가가호호’에서 상호를 떠올렸단다. 집처럼 어디나 있지만 사실은 유일한, 어디에도 없는 곳이라 생각해서 지었다. 그러고 보니 원도심 한가운데 위치한 이곳은 분명 주거지고, 여행객이 아닌 이들이 주인인 곳이었다. 가가책방 인테리어에도 ‘방’의 느낌을 담은 이유가 주거를 위한 공간이었음을 표현하고자 했기 때문이다.
오픈 당시에는 없던 5000원 입장료는 손님들의 권유에 생겼다. 손님들이 책을 구매하기도 그렇고 무료로 운영하다가는 공간이 사라질 것을 염려해 하나둘 의견을 낸 것이다. 그래서 단서가 붙어 있다. ‘좋았다면’ 입장료를 계좌로 내달라고 말한다. 초창기엔 책방열쇠 비밀번호를 물어온 10명 중 입장료 지불 인원이 1~2명에 불과했는데 지금은 비율이 압도적으로 올랐단다. 가끔 새벽 2~3시에 입금되는 경우도 있다. ‘좋았다’는 의미일 터. 머물다 보면 입장료를 지불할 의사가 생긴다. 아니어도 그뿐, ‘편하게 쉬어가는 공간’이라는 가가책방의 의도는 변하지 않는다.
불편 요소가 주는 반전 재미
신뢰로 운영되는 무인 책방
서동민 책방지기는 공주에서 버려지거나 뜯겨진 것, 못 쓰는 것을 일부러 모아 고쳐서 책방을 꾸몄다. 공주의 시간을 축적한다는 의미다. 간판을 만들지 않은 것도 찾는 사람만 올 수 있게 하려는 의도였다. 거울 앞 풍금도 그렇다. 동네 카페에서 쓰던 골동품이었는데, 공간이 바뀌면서 바깥에 내놓은 걸 가지고 왔다. 손때 묻은 낡은 풍금에 왜인지 눈길이 갔다. 가가책방을 오픈하고 6개월 뒤 60대 여성분이 본인이 쓰던 풍금을 알아봤단다. 그 손님은 제자리에 놓인 것 같아 고맙다는 말을 남기고 갔다.
책 큐레이터였던 책방지기의 경력답게 가가책방을 가득 채운 서적들은 한눈에 봐도 고전문학, 인문학, 역사서 등 양서로 가득하다. 메모는 자연적으로 떨어지는 것만 치운다. 마스킹 테이프의 접착력은 같은데 어떤 것은 몇 년째 그대로인 것도 있다. 그 또한 메모의 운명이다.
주말엔 사람이 붐빌 때도 있다. 요즘 젊은 사람들 사이에서 SNS를 통해 공주 여행에서 빼놓으면 안 될 장소가 됐기 때문. 서동민 책방지기는 말한다. “이미 가가책방은 제 공간이 아니라고 생각해요. 생물처럼 자기 스스로 공생하는 곳, 저는 최소한의 관여만 할 뿐, 운영 방식을 결정할 수 있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만 손님이 많을 때면 모두가 편히 머물지 못하게 되어 고민되는 지점이긴 합니다.”라고. 가가책방을 ‘목적지’로 둔 손님들이 더 잘 이용할 수 있는 방법을 모색 중이다.
가가책방의 키워드는 불편함에서 어느새 사람에 대한 신뢰로 옮겨간다. 이곳에 CCTV가 없는 이유다. 오픈 후 한동안 손님들은 불편함을 개선하도록 ‘변화’를 요구했다. 자물쇠 대신 원격 도어락이나 인터넷을 설치해달라는 것. 하지만 지금은 입을 모아 변화를 반대한다. 오래도록 이 공간이 자생하도록 두는 것이 상생임을 어렴풋하게 알아서일까. 가가책방을 즐길 방법은 단 하나, 아무것도 기대하고 오지 말길 바란다. 불편함이란 단어에 불을 켜면, 어느새 마음속에 편함이 다가올 뿐이다. 나올 때 불은 꼭 끄고 나오길!
불편함
한 블록(10~20m)만 걸어 나가면 제민천변을 따라 ‘블루프린트북’ ‘느리게 책방’ 등 지역 책방 투어도 가능하다. 블루프린트북 역시 무인으로 운영되며 독서와 책 구매도 자율적으로 이루어진다. 도서 구매 노트에 쓰인 저마다 다른 글씨에서도 색다른 감성이 느껴진다.
<여행 정보>
당일 여행코스
가가책방 → 블루프린트북 → 나태주풀꽃문학관 → 공산성
1박2일 여행 코스
-첫째 날 가가책방 → 블루프린트북 → 나태주풀꽃문학관 → 공산성
-둘째 날 국립공주박물관 → 공주한옥마을 → 공주 무령왕릉과 왕릉원
관련 웹 사이트 주소
-공주 문화관광 https://www.gongju.go.kr/tour/
-국립공주박물관 gongju.museum.go.kr
-나태주풀꽃문학관 http://www.gjliterary.org/
-블루프린트북 https://www.instagram.com/blueprint_book/
-공주한옥마을 https://www.gongju.go.kr/hanok/
문의 전화
-공주시 관광과 041)840-8381
-가가책방 010)9403-4982
-블루프린트북 0507)1363-6163
-느리게 책방 0507)1336-9807
-국립공주박물관 0507)1401-6300
-나태주풀꽃문학관 0507)1379-2708
대중교통
버스 서울-공주, 서울고속버스터미널에서 하루 26회(06:45~ 23:35) 운행, 약 1시간30분 소요. *문의: 서울고속버스터미널 16 88-4700, 코버스 www.kobus.co.kr, 전국시외버스통합예약안내서비스 https://txbus.t-money.co.kr, 공주종합버스터미널 1666-8401 기차 용산역-공주역, KTX 하루 21회(05:08~21:18) 운행, 약 1시간 소요. 공주역 새터방면 200번 승차, 중학동(산성시장방면)하차 후 도보300m *문의: 레츠코레일 1544-7788, www.letskorail.com
자가운전
공주TG→공주 IC‘부여, 공주, 무령왕릉’방면 우회전→전막교차로‘공산성’방면 우회전→공산성회전교차로에서‘시청, 부여’방면 10시 방향→의료원삼거리에서‘중학동주민센터’방면 우회전→대통1길 방면 좌회전→‘당간지주길’방면 우회전→가가책방
숙박 정보
-공주하숙마을: 당간지주길 21, 041)852-4747, hasuk.gongju.go.kr
-공주한옥마을: 관광단지길, 041)881-2828
-호스텔정중동: 웅진로 145-9, 010)2369-0902
식당 정보
-곰골식당(생선구이): 공주시 봉황산1길, 041)855-6481
-진흥각(짬뽕): 공주시 감영길 20, 041)855-4458
-고가네칼국수(칼국수): 공주시 제민천3길 56, 041)856-6476
-중동오뎅집(군만두): 공주시 제민천3길 42, 041)855-4411
주변 볼거리
충청남도역사박물관, (구)공주읍사무소, 공주책공방북아트센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