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삼기의 시사펀치> 말은 금이고, 글은 은이다

2025.02.05 17:13:08 호수 1518호

인류가 삼라만상을 다스리면서 눈부시게 발전할 수 있었던 가장 큰 이유는 태초부터 지금까지 새로운 원리와 이론이 계속 나오고 그 명맥이 이어져왔기 때문이다. 그래서 인류는 원리와 이론을 만들어낸 철학자, 과학자, 사상가 등을 잊지 않고 기억하며 존경한다.



특히 인류는 인문학적 원리와 이론을 학문으로 체계화한 2000여년 전의 철학자 소크라테스와 공자, 그리고 기독교와 불교를 창시해 인류의 종교적 기틀을 마련한 예수와 석가모니를 존경하고 있다. 인류가 소크라테스, 공자, 예수, 석가모니를 세계 4대성인이라고 부르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철학과 종교의 창시자라고 할 수 있는 4대성인 모두 책을 한 권도 쓰지 않았다.

뇌로부터 나오는 생각을 사람들에게 알리고 그 생각을 보전하려면 말로 표현하거나 글로 기록해야 한다. 그런데 기록하는 글은 생각을 놓치는 경우가 많다. 생각은 속도가 빠르지만 기록은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4대성인이 책을 쓰지 않은 이유일 것이다.

말은 생각하는 순간 표현이 가능해 체계적이진 못해도 생각을 더 정확히 알릴 수 있다.

먼저 “너 자신을 알라”는 명언을 남겼던 서양 철학의 창시자 소크라테스(BC 470~399)는 자신의 사상을 글로 쓰지 않고, 문답식 대화로 자신의 철학 세계를 펼쳤다. 대부분 그의 사상은 제자 플라톤에 의해 저술돼 세상에 알려졌다.


동양 철학의 원조라 할 수 있는 공자(BC 551~479) 역시 자신의 사상을 직접 글로 쓰지 않고, 제자와의 문답식 대화로 자신의 철학 세계를 구축했다. 우리가 흔히 공자의 저서로 알고 있는 <논어>조차도 공자가 직접 집필하지 않았다.

기독교의 시조인 예수(BC 4~AD 30)와 불교의 시조인 석가모니(BC 624~544)도 책을 한 권도 쓰지 않고, 제자들이 스승의 가르침(말)을 정리해 경전을 썼다.

새로운 원리나 이론을 만들어내는 것처럼 칼럼을 쓰는 것도 창조적인 행위라 할 수 있다. 필자도 혼자 글을 쓸 때보다 누군가와 어떤 주제를 놓고 대화하면서 더 새로운 아이디어를 떠올린 적이 많다.

글을 쓸 때보다 누군가와 대화할 때 뇌가 더 민첩하게 작동했고, 그리고 뇌의 생각을 놓치지 않고 말로 바로 연결하면서 그 생각을 체계화 할 수 있었다.

물론, 2000여년 전엔 기록할 수 있는 환경이 좋지 않아 사상가들이 깊고 방대한 수준의 새로운 원리나 이론을 글로 정리하는 게 지금보다 훨씬 더 어려웠을 것이다.

현대도 획기적인 원리나 유명한 이론은 혼자 연구소서 논문 집필에 몰두하는 학자보다 교단서 제자들에게 말로 가르치는 교수로부터 더 많이 나오고 있다. 말은 마력이 있어 생각을 리드하고, 말을 하면서 아이디어가 떠오르고 새로운 생각을 생산할 수 있기 때문이다.

새로운 원리와 이론을 만들어내 인류에 유익을 준 4대성인이 글 대신 말로 자신의 사상을 전할 수밖에 없었다는 데, 설득력을 더해주는 좋은 예다.

주로 정신세계를 다루는 필자 주변의 교수나 목사나 작가도, 큰 아이디어나 깨우침은 대중에게 자신의 지식이나 생각을 알려주면서 많이 얻는다고 했다.

필자도 누군가와 대화하면서 영감이나 새로운 원리를 많이 깨닫게 돼 그 때마다 메모하곤 한다. 그런데 메모하는 순간 그 영감이나 원리가 더 이상 발전하지 못했던 경험이 많다. 그래서 누군가 필자의 말을 정리해줬다면 필자의 생각이 더 이어졌을 것이고 깊이를 더했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많다.

우리 사회가 4대성인의 제자들처럼 누군가 대화중에 툭툭 던지는 큰 생각을 듣고 잘 정리해야 큰 원리나 이론이 체계화돼 인류에게 유익이 된다는 점을 간과해선 안 된다.


앞으로도 새로운 원리와 이론이 계속 나와 인류를 더 행복하게 하게 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선 우리 사회가 툭툭 던지면서 쏟아내는 사상가들의 메시지를 놓치지 않고 잘 정리해야 한다.

“침묵은 금이고, 웅변은 은이다”는 서양 격언이 있다. 이는 침묵은 웅변보다 강한 힘을 갖고 있어 말을 잘하는 사람보다 침묵을 잘 지키는 사람이 상대의 마음을 더 얻을 수 있다는 의미로 대인관계에 국한된 속담일 뿐이다.

글은 생각을 혼자 정리하는 수단이지만, 말은 생각을 상대에게 전하는 수단이다. 글은 생각을 과대 포장할 수 있지만, 말은 생각을 과대 포장하지 못한다. 글은 소리가 없지만, 말은 소리를 동반한다. 그래서 말이 더 리얼하고 힘이 있다.

지구촌엔 인류의 생각이 글보다 말로 수천배 많이 표현되고 있다. 인류가 사람의 말 속에서 사상도 원리도, 그리고 영적인 메시지도 찾아내야 한다.

성경에 의하면, 천지도 하나님의 말씀으로 창조됐다. 글보다 말이 위대한 창조 행위에 더 가깝다는 뜻이다. 말은 금이고, 글은 은이다.

<skkim596@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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