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벼랑 끝’ 김두관 솟아날 구멍

2024.07.29 12:57:14 호수 1490호

바위로 날아든 달걀?

[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당 대표직에 도전장을 내민 김두관 후보가 고민에 빠졌다. 여의도 안팎에서는 “예상한 결과”라며 입 모아 말했지만 생각보다 묵직한 타격에 다소 당혹스러운 모양새다. 야심 차게 나선 이상 이대로 무너질 수는 없다. 전당대회가 한 달도 남지 않은 시점에서 어떻게든 반전을 꾀해야만 한다.



국민의힘 7·23 전당대회가 끝나면서 정치권의 시선이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8·18 전당대회로 옮겨졌다. ‘어대명(어차피 당 대표는 이재명)’으로 끝날 전당대회라는 우려와 달리 두 명의 후보가 막판에 뛰어들면서 흥미로운 구도가 그려졌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시간이 지날수록 이재명 후보가 크게 앞서면서 김두관 후보의 입지가 급격히 쪼그라드는 양상을 띠고 있다. 지난 28일 기준, 민주당 권리당원 온라인 투표 누적 득표 결과 이 후보가 90.41%를 얻은 반면 김 후보는 8.36%에 그쳤다.

예상은 했지만…

“단 1%의 다른 목소리가 있더라도 대변하겠다”며 출사표를 던진 김 후보지만 실제 눈앞에 찍힌 한 자리 지지율은 쓰릴 수밖에 없다. 이 같은 결과를 두고 정치권에서는 저마다 분석에 나섰다. 다양한 의견이 나왔지만 ‘이재명 때리기’에 몰두한 전략이 오히려 독이 됐다며 입 모아 말한다.

‘민주주의’ ‘다양성’에 초점을 맞췄다지만 “유례가 없는 제왕적 당 대표, 1인 정당화로 민주주의 파괴의 병을 키웠다”는 출마 선언문처럼 이 후보를 견제하는 방식만으로는 좋은 성적을 얻을 수 없을 것이란 해석이다.


반면 이 후보는 출마 선언식에서 ‘미래 비전’ ‘먹사니즘’ ‘기후위기와 에너지’ 등 대선에서나 볼법한 장면을 연출했다. 이로 인해 비명(비 이재명)계 공격수를 자처하게 된 김 후보가 이 후보의 그림자에 가려져 상대적으로 덜 주목을 받았다는 평도 나온다.

한 야권 관계자는 <일요시사> 취재진과 만난 자리서 “민주당을 총선 승리로 이끈 건 이 후보인 게 대전제인 상황에서 ‘1인 정당’을 공격 소재로 삼아도 소용없다”며 “개딸(개혁의 딸) 입장에서는 풍악을 울리던 잔칫집에 문을 박차고 들어와 찬물을 끼얹은 셈”이라고 해석했다.

지난 18일 진행된 첫 토론회서도 김 후보는 이 후보를 집중적으로 공격했다.

CBS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에서 마련한 토론회서 김 후보는 대선 패배 원인, 민주 진영의 분열, 중도층 확장 문제를 지적했다. 특히 김 후보는 “민주당이 차기 대선서 집권하려면 민주진보진영이 고정 지지율 35%에서 적어도 15% 이상의 지지를 더 확보해야만 승리할 수 있다”며 “민주당의 민주성이 훼손되면 절대 중도층의 마음을 살 수 없다”고 힘줘 말했다.

모두가 ‘친명’ 외치는데 혼자서…
“당에 떠도는 전체주의 유령” 일침

사법 리스크, 공천 파동 같은 예민한 문제도 가감 없이 꺼내 들었다. “‘당권은 김두관에게 맡기고 대선을 착실하게 준비하시는 게 어떠냐’는 의견도 있다”며 견제구를 날리기도 했다.

이 후보는 지지 않고 방어에 나섰다. 중도층 확장 우려에 대해 “여당이 집권한 2년 차가 지난 시점에서 야당이 여당의 지지율을 넘어서는 사례가 없다”며 “그걸 갖고 마치 구조적 문제가 있는 것처럼 지적하면 일리는 있지만 지나치게 우리 자신을 위축시키는 얘기가 될 수도 있다”고 반박했다.

일극체제, 1인정당이라는 비판에는 “당원들의 선택”이라는 말을 거듭 강조했다. 연임 도전 이유에 대해서는 “윤석열정부의 패악에 가까운 정치 행태를 외면 방관하고 그대로 둘 거냐? 그 점에서 역할을 해야겠다고 생각했다”고 대답했다.

당 대표 출마에 도전하는 이유를 비교했을 때 이 후보는 윤정부 독주를 막기 위함이지만 김 후보는 이 후보의 독주를 막기 위해서다. 명분 싸움에서 김 후보가 밀릴 수밖에 없다는 아쉬움이 나오는 지점이다.

예상치 못한 곳에서 발생한 실점도 리스크가 됐다. 친명계(친 이재명)계 의원을 비롯한 이 후보의 강성 지지층을 겨냥한 ‘집단 쓰레기’ 발언이 불러온 후폭풍이 만만치 않다.


앞서 김 후보는 지난 22일 자신의 SNS에 “집단지성이 아니라 집단 쓰레기로 변한 집단은 정권을 잡을 수도 없거니와 잡아서도 안 된다”고 주장했다.

이는 합동연설 방식에 문제점을 제기하던 중 나온 표현이다. 지역별로 치러지는 경선서 온라인 권리당원 투표는 후보 합동연설 전날부터 시작해 연설 종료 20분 후에 마감하는데, 이를 두고 “당원을 연설도 듣기 전에 표만 찍는 기계 취급한다”고 꼬집은 것이다.

‘집단 쓰레기’ 발언이 논란으로 번지자 김 후보 측은 “후보 뜻이 와전되어 메시지 팀에서 실수로 업로드된 것”이라고 해명했다. 김 후보는 해당 사실을 인지한 뒤 문제의 문구를 즉각 삭제할 것을 지시했으며 메시지 팀장과 SNS 팀장을 해임했다. SNS를 통해 장문의 사과문을 게시하기도 했다.

거듭된 사과에도 불구하고 논란은 쉽게 사그라지지 않는 모양새다. 초기 대응 당시 아랫사람에게 잘못을 떠넘기려 했던 게 아니냐는 의혹부터 은연중 속마음이 튀어나왔다는 후문까지 돌았다.

한 자릿수 지지율 깨부술 돌파구
그 끝서 꺼낸 ‘개헌 카드’ 먹힐까?

그러던 중 김 후보가 돌연 개헌 카드를 꺼내 들면서 분위기 반전에 나섰다. 아직 이 후보를 높은 수준으로 견제하고 있지만, 개헌 추진 등 정치적 의제를 선도하면서 환기에 나섰다는 해석이다.

지난 24일 김 후보는 긴급 기자회견을 열고 개헌을 논의 테이블에 올렸다. 김 후보는 “대통령이 임기를 1년 단축하고 개헌을 통해 2026년 6월에 지방선거와 대선을 동시에 시행할 것을 제안한다”며 “연말까지 임기 단축과 개헌 추진을 결단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어 “이재명 당 대표 (체제)로는 윤 대통령의 임기 단축과 개헌을 추진할 수 없다”며 “윤 대통령과 이 후보는 둘 중 한 명이 죽거나 둘 다 죽어야 끝나는 ‘치킨게임’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연말까지’라는 구체적인 제안을 두고 정치권에서는 김 후보가 새로운 정치적 의제를 설정함과 동시에 이 후보를 견제하려는 전략이라고 풀이했다.

그러나 여전히 비명계 전선서 벗어나지 못했다는 게 흠으로 작용했다는 평이 나온다. 개헌 논의에 다른 의원들이 뜻을 함께하고 싶어도 “이 후보가 못하는 걸 나는 해내겠다”는 뉘앙스가 강해 선뜻 합류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한 정치권 관계자는 이번 기자회견을 놓고 “김 후보가 외로운 싸움을 시작했다”고도 말했다.지구당 부활 안건에 대해서는 이 후보와 뜻을 같이했지만 종합부동산세, 금융투자소득세 등의 문제를 놓고 또다시 격돌했다. KBS서 진행한 두 번째 토론회서 이 후보는 “1가구 실거주 1주택에 대해 종합부동산세를 대폭 완화할 필요가 있다”고 밝혔지만 김 후보가 “중산층과 서민을 위하는 민주당 당 대표로는 적절치 않은 주장”이라고 반박하면서 논쟁이 벌어진 것이다.

사사건건 부딪칠 날이 더 많은 상황서 김 후보의 지지율을 끌어낼 반전의 카드가 보이지 않는다는 지적이 나온다. 30%대 지지율을 전망했던 이들 역시 예상보다 부진한 성적에 적잖게 놀란 모양새다. ‘약속 대련’ 의혹은 자취를 감췄으며 오히려 김 후보의 정치 인생에 흠이 나지 않을까 우려하는 목소리마저 커지고 있다

불확실한 미래

일각에서는 전당대회 당일까지 추이를 지켜봐야 한다고 말한다. 강성 지지자의 따끔한 회초리를 견디면서도 ‘다른 목소리를 낼 수 있는 정당’이 아직 살아 있다는 걸 보여줬다는 점에서다. 9:1과 8:2, 어쩌면 7:3까지. 두 사람이 받아들 성적표에 따라 해석도 천차만별로 갈릴 수밖에 없다. ‘맹탕 전당대회’라는 지적 속에서도 내심 그 결과에 이목이 쏠리는 이유다.

<hypak28@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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