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시사 취재1팀] 김성민 기자 = 노소영 아트센터 나비 관장이 과거 김문수 국민의힘 대선후보를 지지한 사실이 재조명된 가운데, 대선판을 흔들었다는 분석이 나왔다. 노 관장이 이혼 재판에서 재산 분할을 위해 꺼내든 ‘선경(SK) 300억’ 메모가 노태우 전 대통령의 비자금이었다는 의혹이 짙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최태원 SK그룹 회장과 노소영 아트센터 나비 관장의 이혼소송 과정이 1년을 넘기고 있다. 항소심 판단에 결정적 영향을 끼쳤던 ‘노태우 전 대통령 비자금’ 등 최 회장의 자산 증식 배경을 둘러싸고 공방이 이어지면서다. 법조계에선 대법원이 전원합의체에 사건을 넘겨 재산 분할에 대한 새 법리를 세울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뒤집힌 여론
지난 18일 법조계에 따르면, 대법원 1부(주심 서경환 대법관)는 지난해 7월 사건 접수 이후 1년 가까이 최 회장과 노 관장 간 이혼소송을 심리하고 있다. 본격적인 본안 심리 없이 상고를 기각하는 ‘심리불속행 기각’ 가능 기한은 지난해 11월9일자로 도과됐다.
위자료 지급 명령은 지난해 9월 최 회장 동거인인 김희영 티앤씨재단 이사장이 이행해 대법원 심리 대상에는 ‘재산 분할’만 남은 상태다.
법리 다툼이 주가 되는 통상의 대법원 상고심과 달리, 양측은 1년간 입증자료를 제시하며 반박하고 있다. 사건 기록을 보면 최 회장 측은 4건의 참고 자료를 제출했고 노 관장 측도 이에 대한 의견서와 참고 자료를 냈다. 변론을 열지 않고 서면으로 법리적 쟁점만 따지는 상고심에선 새로운 증거가 발견되더라도 ‘참고 자료’ 형태로 제출되는 게 일반적이다.
특히 최 회장 측이 세 차례에 걸쳐 제출한 멀티미디어 자료 중엔 최 회장 부친인 최종현 전 회장의 육성 파일이 포함된 것으로 파악됐다. SK그룹은 최근 기업 수장고 등에 보관해 온 최 전 회장의 기업활동 자료를 정리하는 과정에서 오디오 테이프 3530개를 발견했다.
최 회장 측은 이 가운데 일부를 제출한 것으로 알려졌다. 최 전 회장은 생전 각종 회의와 간담회, 행사 등을 녹음해왔다.
대법원에 제출된 육성 파일 속 발언은 1990년대 SK그룹에 제기된 노태우 특혜 의혹을 최 전 회장이 부인하는 내용일 것으로 보인다. 항소심은 노태우 전 대통령의 후광이 기업 성장에 혁혁한 역할을 했다며 노 관장 몫을 1심보다 더 많이 인정했다.
최 전 회장은 회의에서 “정치는 5년이면 끝나는데 제일 문제가 되는 건 국민한테 오해를 받는 거다. 사돈 힘을 빌리는 건 일절 피했다”는 취지의 얘기를 자주 언급했다고 한다. ‘정경유착’ 의혹 수사를 거론한 대목이 포함됐을 수 있다.
이재명 대통령 ‘군사정권 엄벌’ 약속
검찰 수사 속도···일가 계좌 정밀 추적
최 전 회장은 아들 부부가 결혼한 직후 노 전 대통령에게 30억원을 준 일이 문제가 돼 1995년 검찰 조사를 받았다. 대법원은 이를 뇌물로 보기 어렵다고 결론 내렸다. 당시 수사를 받고 돌아온 최 전 회장은 직원들에게 “검사도 그러더라고. 별로 한 게 없다고. 그건 내가 조심해서 그렇다(고 답했다)”며 상황을 공유하기도 했다.
반면 노 관장 측이 제출한 자료 중엔 편지가 포함된 것으로 전해졌다. 최 회장이 업무상 배임 등 혐의로 구속된 2003년에 노 관장에게 보내온 옥중 서신으로, SK그룹 운영과 관련한 내용이 일부 담긴 것으로 알려졌다. 노 관장 측에선 최 회장이 당시 경영에 대한 의견을 노 관장과 주고받았고, 기업가치 상승에 기여했다고 주장했을 것으로 보인다.
일각에선 정치권이 노 관장을 비호하고 있기에 속 시원한 결론이 지어지지 않고 있다고 봤다. 21대 대선을 가른 것은 당연히 12·3 계엄령이지만, 지난해 10월 ‘노태우 비자금 인식조사’에서 70%가 ‘노태우-노소영 비자금’에 대해 철저한 조사와 엄정한 처벌, 전액 국고 환수 등을 지지했다.
지난 5월 조사에서는 73%로 3%포인트가 높아졌다.

그만큼 노태우 비자금은 온 국민에게 분노의 대상이 됐다. 노 관장과 김 후보의 친분이 이번 대선의 판도를 바꿨다는 분석도 제기됐다. 노태우-전두환 군사정권의 존재 및 이들 유산에 대해 민감한 국민들은 당시 김 후보를 지지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이재명 대통령은 후보 당시 ‘노태우 전두환 등 군사정권의 비자금에 대해 어떻게 할 것인가’를 묻는 질문에 “5·18 등 군사정권 관련자들에 대한 단죄가 완전하지 못하고 불완전해서 지난해 12월3일 어처구니없는 친위 군사 쿠데타를 시도하는 일이 벌어졌다”며 “국가권력의 (대국민) 살상 행위 또는 시도에 대해서는 시효를 배제해야 한다”고 말했다.
당시 이 후보의 이 같은 언급에 대해 정치권 일부에서는 “이재명 후보가 표심을 잡기 위해 공약과 비판을 했었는데, 그중에서 최고의 강도로 얘기한 ‘사이다 발언’”이라고 할 정도로 파장을 만들어냈다.
이어 “(문제를 일으킨) 그가 생존하는 한 반드시 형사 책임을 물어야 하고, 민사상 소멸시효도 배제해 상속재산 범위 안에 있다면 그가 사망한 뒤 상속자들한테까지도 민사상 책임을 끝까지 물어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강조한 바 있다.
“사돈 힘 빌리는 건 일절 피했다”
선대 회장 육성·서신 공개 파장
이 발언은 노태우 전 대통령의 비자금을 전액 환수해야 한다는 1997년 대법원 판결을 무시하고 불법으로 은닉, 상속해 온 노 관장과 동생인 노재헌 이사장을 염두에 둔 발언으로 해석됐다.
이 후보의 발언과 반대로 당시 김 후보는 이에 대해 일체 언급하지 않았다. 최종 후보로 결정돼 대선을 치른 김후보는 물론, 국민의힘 내부 경선 당시 같이 참여했던 한동훈·안철수 등 어떤 후보도 노태우 비자금에 대해 아무런 언급조차 하지 않았다. 국민의힘은 군사정권이 탄생한 정당의 후신이라는 해석도 있다.
실제로 노태우 비자금의 국고 환수를 주장하고 있는 군사정권범죄수익국고환수추진위원회(이하 환수위)는 대선이 시작되던 초기인 지난 4월에 국민의힘에 공개 질의했던 바 있다.
당시 환수위는 “전 감사위원장 출신으로 국민의힘 전 인권위원장이던 최재형 전 의원이 노태우 비자금이 핵심이 된 노소영 이혼소송의 대법원 상고심 변호를 담당하고 있는데, 국민의힘은 왜 그걸 방치하고 있느냐” 물었다. 당시 최 변호사는 한동훈 캠프의 선대위원장을 맡고 있었다.

정치권에서는 국민의힘이 노태우 비자금에 대해 한마디 못하고 있는 데 대해 김 후보와 노 관장의 개인적인 인연이 작용했을 것으로 보고 있다. 노 관장은 2016년 김문수 후보가 대구 수성갑 새누리당 후보로 나섰을 때 대구에 직접 내려가 공개적으로 지지했다.
이 관계로 인해 김 후보가 노태우 비자금에 대해 함구한 것이라는 분석이다.
실제로 노 관장은 지난 2016년 4월 총선 당시 김 후보 지지를 선언하면서 “대구를 위한 인물을 선택하는 것은 시민 여러분들의 몫이지만 대구의 미래를 위해 당을 떠나 누구를 선택해야 하는지는 매우 중요하다. 김문수 후보께 대구 미래를 맡겨보는 것이 좋은 선택”이라고 말한 바 있다.
당시 김 후보 측은 “노소영 관장이 대구에 대한 애정이 있어 지원 요청을 받아들인 것으로 안다”고 밝힌 바 있다.
김 밀었다
한 선거 전문가는 “윤석열과 이재명 후보가 경쟁했던 20대 선거(윤 48.56%, 이 47.83%)처럼 지금 대선에서는 1위 간의 득표가 큰 차이가 나지 않기 때문에 표심에 민감한 이슈에 대해선 후보들이 경쟁적으로 입장을 밝힐 수 밖에 없다”며 “전 국민의 분노를 키운 노태우 비자금 이슈 같은 건에 한마디도 하지 않는 김문수 후보에 비해 강력 대응을 선언한 이재명 후보가 국민들의 지지를 더 받은 것은 당연한 결과”라고 분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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