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시사 취재1팀] 양동주 기자 = 1946년 설립된 삼화페인트는 평소 친분이 깊었던 김복규·윤희중 창업주가 의기투합해 세운 ‘동화산업’에 뿌리를 두고 있다. 김 창업주는 영업 및 생산, 윤 창업주는 관리를 맡아 오늘날 삼화페인트를 일궜다.
1946년 설립된 삼화페인트는 평소 친분이 깊었던 김복규·윤희중 창업주가 의기 투합해 세운 ‘동화산업’에 뿌리를 두고 있다. 회사는 두 사람의 협업에 힘입어 일찍부터 건설용 페인트 분야에서 두각을 나타내며 사세를 키웠다.
끝나버린
협력
창업주 세대에 맺어진 끈끈한 유대관계는 오너 2세들이 경영 전면에 나선 이후에도 별 탈 없이 이어졌다. 1993년 김복규 창업주가 세상을 떠난 데 이어, 윤희중 창업주가 2004년에 명을 달리했지만 공동경영이라는 큰 틀은 흔들리지 않았다.
이 무렵 김복규 창업주의 아들인 김장연 현 회장이 사장을 맡았고, 윤희중 창업주의 2세인 윤석영 전 대표는 부사장을 맡아 회사를 운영했다. 2008년 윤석영 전 대표가 갑자기 세상을 떠난 후 김장연 회장이 단독으로 회사를 이끌던 시기에도 잡음은 없었다.
그러나 완벽한 동업은 존재하지 않았다. 두 집안의 동업에 금이 간 건 2013년 4월경이다. 당시 그룹의 모태기업이자 주력사인 삼화페인트공업은 자금조달을 위해 만기 5년짜리 신주인수권부사채(BW) 200억원을 산은캐피탈 등을 대상으로 발행했다.
김장연 회장은 BW 발행과 동시에 사채와 분리된 신주인수권(워런트) 100억원어치를 3억5000만원을 주당 173원에 사들였다. 이전까지 김장연 회장 측과 윤석영 전 대표 일가는 지분율 격차가 크지 않았지만, BW 발행이 완료되면 김장연 회장 측 지분율이 높아지면서 힘의 균형이 무너질 것으로 예상됐다.
이렇게 되자 윤석영 전 대표의 부인이자 주요주주(지분 5.20%)로 있던 박순옥씨는 김장연 회장을 상대로 BW 발행 무효소송을 제기했다. 워런트 인수가 김 회장의 경영권 강화와 상대적으로 동업가의 영향력 축소에 방점이 찍혀 있다고 봤다.
명실상부
1인 천하
법정 분쟁은 2015년 12월까지 3년여에 걸쳐 진행됐고 최종 승자는 김장연 회장이었다. 1심은 박순옥씨의 손을 들었지만 2심에서 자금 사정상 불가피했다는 김장연 회장 측 주장이 받아들여졌고, 대법원 역시 2심을 따랐다.
법적 분쟁에서 패배한 윤희중 창업주 가문은 영향력이 축소됐다. 윤석영 전 대표 직계는 주식 매각을 결정하면서 지분율이 5% 밑으로 떨어졌다. 올해 1분기 기준 윤희중 창업주의 아들인 윤석재씨와 윤석천씨는 각각 지분 6.90%, 5.52%를 보유 중이다.
김장연 회장 측은 법적 분쟁에서 승리한 이래 지금껏 회사에 대한 확고한 지배력을 행사하고 있다. 올해 1분기 기준 김장연 회장은 삼화페인트공업 지분 27.30%를 보유한 최대주주이며, 특수관계인의 지분율 총합은 28.93%다. 우호지분으로 분류되는 일본 제휴선 츄고쿠마린페인트 지분 7.94%와 자사주 13.28%를 감안하면 실질 지분율은 과반을 넘긴다.
김장연 회장 체제에서 삼화페인트는 국내외 총 16개 비상장 계열사를 둔 중견기업집단으로 성장했다. 근간이 되는 페인트 제조뿐 아니라 화학제품(삼화대림화학), 시스템 관리(에스엠투네트웍스), 물류(삼화로지텍) 등을 영위하고 있다.
최근 업계에서는 삼화페인트가 본격적인 승계 작업에 착수할 가능성에 주목하고 있다. 2021년 3월 김장연 회장이 대표이사에서 물러난 것도 승계를 염두에 둔 행보라는 시각이다.
선대의 애틋함 사라지고…
밑그림 그려진 승계 작업
당시 김장연 회장은 이사회 결의를 통해 삼화페인트 대표이사직을 내려놨고, 삼화페인트는 김장연·오진수 각자대표에서 오진수·류기붕 각자대표 체제로 바뀌었다.
김장연 회장의 대표이사 사임은 김현정 전무가 주목받는 계기로 작용했다. 1985년생인 김현정 전무는 김장연 회장의 1남1녀 중 장녀다. 변호사 겸 회계사로, 한양대 법학전문대학원을 졸업하고 공인회계사와 변호사 자격증을 취득했다.
2018년 12월 페인트 도매업체인 이노에프앤씨에서 관리본부장을 맡으며 실무 경험을 쌓았다. 2019년 9월 삼화페인트에 상무로 경영진에 합류해 글로벌전략지원 업무를 담당했고, 얼마 전 전무로 승진하면서 사내 발언권이 강해졌다.
현재는 경영지원부문에서 역량을 발휘 중이다. 구매와 재무를 책임지는 경영지원부문장으로서 회사의 중추 역할을 수행하고 있으며, 최고재무책임자(CFO) 역할까지 맡으면서 사내 역할이 커졌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일각에서는 조만간 김현정 전무가 이사 명단에 포함될지 예의주시하고 있다. 앞서 삼화페인트 대표이사에서 사임했던 김장연 회장은 사내이사직은 유지하고 있는데, 특정 시점에 김현정 전무가 이사진에 포함될 가능성이 충분해 보인다.
꽃길 밟는
후계자
다만 지분 승계 속도는 더딘 편이다. 올해 1분기 기준 김현정 전무의 삼화페인트 지분율은 0.04%에 그친다. 27.30%에 달하는 김장연 회장의 지분율과는 현격한 차이다.
원활한 지분 승계를 위해서라도 김현정 전무에게는 일종의 장치가 필요한 상황이다. 이노에프앤씨를 주목해야 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일각에서는 이노에프앤씨가 김 전무의 경영권 승계를 위한 자금줄로 활용될 수 있다는 평가를 내놓고 있다.
이노에프앤씨는 2011년 3월 자본금 5000만원(발행주식 5000주·액면가 1만원)으로 설립된 업체다. 총자산은 109억원(2021년 말)이다. 중국과 일본에 2개 해외법인을 두고 있으며 김현정 전무는 이 회사의 최대주주다.
삼화페인트는 회사 설립 이듬해인 2012년 단순 투자 목적으로 이노에프앤씨에 2500만원을 출자했고, 지분 15%를 확보했다. 이후 보유 지분 가운데 6%를 2020년 9월 매각했다. 인수자는 김장연 회장의 자녀인 김현정 전무와 김정석씨였고, 두 사람은 3%씩 넘겨받았다. 공식적인 삼화페인트의 주식 매각 이유는 “투자자금을 일부 회수하는 차원”이었다.
이를 계기로 김현정 전무의 지분율은 31%로 올랐다. 나머지 69% 가운데 9%는 삼화페인트가 보유 중이고, 60%는 김정석씨 등 3명이 보유 중이다.
속도 내는
3세 승계
김현정 전무가 삼화페인트로부터 지분을 넘겨받은 2020년을 기점으로 이노에프앤씨는 실적이 개선됐다. 이노에프앤씨 감사보고서에 따르면 2019년엔 매출액 142억원, 영업손실 3억원을 기록했으나, 이듬해 매출액이 220억원으로 뛰었다. 영업이익은 12억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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