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대로 끝? ‘라돈 침대’ 집단소송전 현주소

2022.08.16 10:43:05 호수 1388호

4년 기다리고 ‘쓴맛’

[일요시사 취재1팀] 남정운 기자 = 사람이 하루 8시간씩 맞닿아 있는 곳. 바로 침대다. 건강을 위해 웃돈을 주고 샀던 침대에는 알고 보니 발암물질이 가득했다. 충격에 빠진 소비자들은 앞다퉈 소송에 나섰지만, 상황이 여의치 않다. 4년을 끌어온 소송전. 소비자 70여명은 이미 패소의 쓴맛을 봤다. 그리고 또 다른 판결을 기다리는 소비자는 5886명. 과연 이들은 합당한 보상을 받아낼 수 있을까. 



‘고진감래’를 기대했건만, 현실은 달랐다. 4년 만에 처음 나온 ‘라돈 침대’ 손해배상소송 판결에서 소비자가 패했다. 서울중앙지방법원 민사206단독 장원지 판사는 지난 9일 소비자 69명이 대진침대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청구소송 1심에서 원고 패소 판결을 내렸다.

건강 대신
모나자이트

라돈 침대 사건의 발단은 2018년 5월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언론 보도를 통해 대진침대가 생산한 침대 매트리스에서 방사성물질 ‘라돈’이 기준치 이상으로 검출된 사실이 드러났다. 라돈은 호흡기를 통해 몸속에 축적돼 폐암을 유발하는 방사성 기체다.

세계보건기구(WHO) 산하 국제암연구센터(IARC)는 라돈을 1급 발암물질로 지정했다.

한때 불었던 ‘음이온’ 열풍이 화근이었다. 라돈은 대진침대가 매트리스에 도포한 음이온 파우더 원료 ‘모나자이트(Monazite)’에서 검출됐다. 애초에 모나자이트 자체가 소량의 우라늄과 토륨을 포함한 방사성물질이다. 하지만 당시 세간에선 모나자이트의 위험성보다 ‘음이온을 발산한다’는 검증되지 않은 속설이 이목을 끌었다.


그 결과 모나자이트는 수년간 별다른 제지 없이 각종 생활용품에 활용됐다.

이 중 상당 비율이 대진침대를 거쳐 라돈 침대로 유통됐다. 2019년 MBC 보도에 따르면 이전 6년간 국내 유통된 모나자이트는 총 40톤. 그중 7%가 넘는 2.9톤이 대진침대에 공급된 것으로 알려졌다. 대진침대는 2005년부터 꾸준히 관련 제품을 판매했다.

이를 고려하면 실제로 대진 침대를 통해 시중에 풀린 모나자이트는 이보다 많을 것이 확실시된다.

원자력안전위원회는 조사 끝에 “대진침대 매트리스에서 방사선 피폭선량이 기준치를 최고 9.3배 초과했다”고 발표했다.

대진침대 측은 최초 보도 후 닷새 만에 전량 회수 및 리콜을 결정했다. 라돈이 검출된 매트리스 4종이 그 대상이었다. 이는 추후 7종까지 늘어났다. 대진침대는 2010년 이후 해당 제품들을 총 6만1406개 생산한 것으로 파악됐다.

사태는 걷잡을 수 없이 커졌다. 줄곧 법적 대응을 시사했던 소비자들이 결국 칼을 빼들었다. 대진침대 소비자들은 적게는 수십명, 많게는 수천명이 모여 공동소송을 개시했다. 

예컨대 소비자 69명은 2018년 7월 대진침대를 상대로 위자료를 청구하는 소송을 냈다. 이들은 인당 200만원, 총 1억3800만원을 위자료로 책정했다. 

발암물질 침대 소비자 위자료 청구서 패소  
유사한 재판 줄지어 대기 중…영향 미칠까?

이들은 재판에서 “대진침대는 안전기준에 어긋나는 침대를 제조·판매하는 위법행위를 해 채무불이행 또는 불법행위를 저질렀고, 침대를 사용함에 따라 소비자들이 입은 정신적 손해에 대해 위자료를 지급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반면 대진침대 측은 라돈 검출 사실은 인정하면서도 “2018년 5월14일 안전기준이 변경되기 전까지는 아무런 문제가 없는 제품이었기 때문에 불법행위가 인정되지 않는다”고 맞섰다.


서울중앙지법만 해도 관련 사건 약 10건이 계류 중이다. 이 중 대부분이 집단 손해배상 청구 소송인 것으로 알려졌다. 4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결론이 난 사건은 거의 없다. 앞서 제기된 소송 결과를 기다리는 등 외적 지연 요인이 많았기 때문이다.

그 사이 사건을 수사한 검찰은 2020년 1월 대진침대 대표와 납품업체 관계자들을 무혐의 처분했다. “라돈 침대 사용과 폐암 발생 간 인과관계가 있다고 단정하기 어렵다”는 이유에서다.

‘물건값’에 대한 보상 여부도 정리됐다. 지난해 12월 서울동부지방법원은 “대진침대가 사건 당시 소비자들에게 교환·환불을 약속하고도 장기간 이행하지 않아 손해배상 책임이 인정된다”며 “매트리스 교환 가치에 상응하는 돈을 배상하라”고 판결했다. 

다만 물건값 배상과 위자료 지급은 다른 문제다. 법원은 위자료 청구 소송의 첫 판결에서 대진침대 손을 들어줬다.

장 판사는 “대진침대가 소비자들에게 침대를 제조·판매한 것이 생활방사선법을 위반한 제품을 판매한 것으로서 불완전 이행에 해당한다거나, 당시 대진침대가 음이온을 배출한다고 알려진 모나자이트가 라돈을 방출하고 이로 인해 인체에 피폭되는 방사선이 해로울 수 있음을 알았다거나 알지 못한 데 주의 의무를 다하지 못한 과실이 있다고 인정하기 부족하고, 달리 이를 인정할 증거가 없다”고 판시했다.

연쇄작용?
일단 미지수

이어 “가공제품의 연간 피폭방사선량에 관한 기준을 규정한 생활방사선법이 2011년 7월 제정돼 2012년 7월 시행됐다”며 “원자력안전위원회의 2018년 5월자 라돈 검출 침대 조사 중간결과에 따르면 대진침대가 2015년과 2016년에 생산한 매트리스 속 커버 제품 2개에 대한 외부 피폭선량이 생활방사선법상 가공제품 안전기준인 연간 피폭선량 1mSv에 못 미치는 0.05mSv 내지 0.15mSv에 불과한 것으로 조사됐다”고 덧붙였다.

또 “신체 외부 및 내부에 피폭하는 양을 모두 합해 가공제품의 연간 피폭 방사선량을 측정하고 제품에 첨가하는 것이 금지되는 원료물질에 라돈이 추가된 생활방사선법 개정은 2019년 1월 비로소 이뤄지고 같은 해 7월 시행됐다”며 “가공제품 피폭 방사선량 한도인 1mSv는 유해 기준이 아니라 안전 관리기준에 해당하고, 라돈 침대의 사용과 폐암 등 질병 발병과의 인과관계가 입증됐다고 볼만한 증거가 없다”고 설명했다.

일부 소비자는 이번 재판 결과의 ‘연쇄작용’을 우려한다. 순차적으로 진행될 다른 재판 판결들이 ‘선례’를 따라가지 않겠냐는 걱정이다.


반면 법조계는 이번 판결이 다른 재판에 절대적 영향력을 발휘할 가능성은 작다고 보고 있다. 법조계에 따르면 대법원판결과 다르게 통상 지방법원의 1심 판결은 기속력이 없다. 대법원은 사회적으로 논란이 되는 사건을 대법원 전원협의체 판결로 정리한다.

이후 결정되는 유사 사건 판결은 앞선 대법원판결 법리를 따르게 된다. 이것이 ‘기속력’이다. 반면 지방법원 1심 판결에는 이 같은 권위가 없다는 설명이다.

다만 영향을 미칠 가능성을 전면 배제할 수는 없다. 피고인 대진침대가 각 재판에서 동일한 변호인을 고용했다면, 이번 판결을 활용해 유사한 판결을 유도할 수 있다. 재판부에 이번 판결을 참고해달라고 요청해 ‘인용 판결’을 노리는 전략이다.

어느 방향이든 사건의 최종 결론이 나오기까지는 더 시일이 걸릴 것으로 보인다. 특히 공동소송 플랫폼 ‘화난사람들’에서 모인 소비자들이 제기한 소는 여전히 재판이 한창이다. 이 인원만 해도 5886명에 달한다.

인원뿐만 아니라 청구 금액 규모도 훨씬 크다. 위자료 명목으로만 1인당 1000만원을 책정했다. 치료비 등은 별개다. 소송 인원 모집 당시 예상 청구액은 1인당 3000만원을 넘겼다. 

알면서도
판매 강행?

이들은 앞선 재판보다 세부적인 근거를 제시해 인과관계를 인정받겠다는 계획이다. 공동소송 담당 변호사는 “대진침대의 일부 모델에서 라돈이 검출된 점, 라돈이 발암물질이고 인체에 유해하다는 점은 명백한 사실”이라며 “잠복기가 길어 언제 증상이 발현될지 알 수 없는 상황”이라고 전했다.

이어 “일단 라돈이 검출된 침대를 구매해서 사용했다는 사실만으로도 정신적인 손해는 발생했다고 본다”며 “침대 때문에 혹시나 나에게 건강상 이상이 생기지는 않을지, 불안에 떨어야 하는 상황이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공동소송단은 본 사건의 입증 책임이 대진침대 측에 있다고 주장한다.

담당 변호사는 “실제로 진단서상 드러나는 질환이 있다면 그 신체상 손해를 계산해서 배상을 청구하겠지만, 이 부분은 인과관계의 입증이 굉장히 까다롭다”면서 “다만 라돈이 인체에 유해하다는 사실은 이미 공지된 사실이므로, 만약 대진침대를 사용한 소비자 집단의 발병률이 일반적인 한국인 집단보다 더 높다면 이는 라돈 침대로 인한 영향일 것이라고 보아 인과관계가 추정된다고 본다”고 말했다.

이어 “이에 따라 대진침대에서 검출된 라돈으로 인해서 발병된 것이 아니라는 점을 대진침대 쪽에서 입증하는 것이 공평의 원칙상 타당하다는 입장”이라고 강조했다.

공동소송 참여자 중 일부는 원자력 병원에서 전문 검사를 받고, 그 결과를 증거로 제출했다. 담당 변호사는 “검사 결과, 이들은 유전자 파괴 정도가 일반인에 비해 심했다”며 “충분히 유의미한 수치를 얻었다고 판단해 증거로 제출했다”고 밝혔다. 

공동소송단은 대진침대에 대한 검찰 수사기록을 확보해 분석했다. 변호사는 이를 통해 대진침대가 침대 판매 전부터 그 위험성을 인지했음에도, 이를 묵인하고 판매를 강행한 정황을 발견했다. 수사기록대로라면 당초 음이온 파우더 상품화는 ‘A테크’ 설립자인 김모씨 제안에서 시작됐다.

5900명 뭉친 ‘본 게임’ 남았다
뒤집기 성공할까…추가 쟁점은?

대진침대는 제안을 받아들여 음이온 파우더 활용 상품을 ‘B 베드산업’이 개발하게 했다. 

김씨는 “대진침대·B 베드산업과 매트리스를 공동으로 기획·개발하다 중도 이탈했다”고 진술했다. 이를 기점으로 두 업체가 라돈 검출 매트리스의 기획·제작·판매의 주축이 됐다는 주장이다.

검찰 측이 공개한 김씨 진술조서에는 “2004년 하반기에 위 요업기술원의 성분분석을 통해 음이온 파우더에서 방사선이 방출된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서, 그 사실을 B 베드산업을 방문해 성분분석서와 함께 토륨·우라늄 등 방사성물질이 포함된 사실을 알렸다”고 적혀 있다.

또 대진침대 내부 직원 진술조서에도 B 베드산업에게 보고받아 내부에서 업무보고서를 작성한 것으로 기록돼있다. 

공동소송단은 “관련자들 진술에 따르면 대진침대는 상품 기획 및 개발단계부터 음이온 파우더에서 방사선이 나온다는 것을 알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제품 제작 및 판매를 강행한 것으로 의심된다”고 지적했다.

이어 “음이온·은나노 마케팅 광풍이 불던 시기 대진침대는 한 백화점에서 매출이 저조해 퇴출될 위기에 처했다는 것이 B 베드산업 개발 책임자의 전언”이라며 “그는 진술조서에서 ‘대진침대가 당시 경쟁사에 비해 판매가 저조해 어려움을 겪고 있었다 토로했다’”고 덧붙였다. 

공동소송단은 대진침대 측이 “위기를 모면할 심산으로 음이온 매트리스 판매를 강행했다”고 의심한다. 실제로 방출 위기에 처해있던 대진침대는 라돈이 검출된 음이온 매트리스의 판매고 덕에 위기를 모면한 것으로 전해진다. 

관련 의혹이 모두 사실로 판명된다면, 판세를 뒤집을만한 핵심 증거로 작용할 것으로 보인다. 이를 근거로 앞선 판결서 인정되지 않았던 대진침대의 과실과 고의성을 입증할 수 있기 때문이다. 공동소송 담당 변호사는 지난달 해당 진술조서를 증거로 제출했다. 대진침대 측은 증거 제출 이후로도 별다른 대응을 취하지 않고 있다.

새 증거로
뒤집을까

담당 변호사는 “검찰 측 자료인 만큼 증거의 신빙성은 의심할 여지가 없어 보인다”며 “다만 증거력은 재판부가 자유로운 심증으로 판단하기 때문에, 재판에 얼마나 큰 영향을 미칠지는 두고 봐야 알 수 있다”고 부연했다. 본 재판은 다음 달부터 다시 속행될 예정이다. 빠르면 올해 안에 1심 판결이 나올 수 있다는 전망도 제기된다.


<jeongun15@ilyosisa.co.kr>

 

저작권자 ©일요시사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설문조사

진행중인 설문 항목이 없습니다.






Copyright ©일요시사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