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묘수일까, 악수일까. 대통령 당선인이 놓은 수에 정치권은 발칵 뒤집혔다. 누구도 예상하지 못한 상황이 불러올 후폭풍은 가히 짐작할 수 없을 정도. 분명한 사실은 대통령 당선인이 불리한 정치구도에서 ‘승부수’를 띄웠다는 점이다.
대통령 당선 이후 취임하기까지 2개월 동안 온갖 인사의 이름이 거론된다. 내각 인선을 위한 장관 후보자 지명에 관심이 쏠리기 때문. 대통령직인수위원회(이하 인수위)는 새 정부의 국정철학을 실현하기 위한 최적의 후보자를 찾는 데 골몰한다.
아무도
몰랐다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은 ‘실력’을 내각 인선의 우선순위로 삼겠다는 뜻을 공공연히 밝혀왔다. ‘깜짝’ ‘파격’ 인사는 없다는 뜻도 드러냈다. 1차 내각 인선 발표 때에도 이 같은 기조가 지켜지는 듯했다. 다양성 부족 등의 지적이 나오긴 했지만 ‘실력주의’라는 기준으로 일정 정도 용인되는 분위기였다.
지난 4일 김은혜 당선인 대변인도 기자회견에서 “국민의 삶을 나아지게 하고 국익을 확보하기 위해 능력 있고 실력 있는 분들로 구성할 것”이라며 “도덕성을 겸비하고 실력과 능력으로 신뢰감을 구축하는 것이 제1, 2요건”이라고 내각 인선 방향에 대해 밝힌 바 있다.
지난 13일 윤 당선인의 2차 내각 발표는 충격의 도가니였다. 세간의 관심을 가장 많이 받고 있는 법무부 장관 후보자로 한동훈 사법연수원 부원장(검사장)을 지명한 것이다. 서울중앙지검장 등 검찰 요직에 중용될 것이라는 당초 예상을 뛰어 넘는 인사였다.
윤 당선인은 이날 오후 인수위 기자회견에서 한 후보자를 법무부 장관으로 발탁한 배경에 대해 “유창한 영어 실력과 다양한 국제 업무 경험을 갖고 있다”며 “제가 주문한 것은 경제발전을 뒷받침할 수 있는 법무 행정의 현대화, 글로벌 스탠더드에 맞는 사법제도 정비”라고 밝혔다. 그러면서 “절대 파격 인사는 아니다”라고 강조했다.
당선인이 직접 챙긴 인사
검찰 요직 예상 깨고 장관에
한 후보자는 특수통 검사 출신으로 윤 당선인의 최측근 인사로 분류된다. 서울대 법대를 졸업하고 1995년 사시 37회에 합격한 후 2001년 서울중앙지검 검사로 임관했다. 대검찰청 중앙수사부 검찰 연구관, 대검 정책기획과장, 서울중앙지검 초대 공정거래조세 조사부장 등을 지냈다.
SK 분식회계 사건, 대선 비자금 사건, 현대차 비리 사건, 외환은행 매각 사건, 최순실 국정 농단 사건 등에서 윤 당선인과 호흡을 맞췄다. 윤 당선인이 서울중앙지검장으로 발탁됐을 때는 특수수사를 총괄하는 3차장 검사를, 검찰총장 시절에는 대검 반부패‧강력부장을 맡았다.
당시 최연소 검사장이었다. 조국 전 법무부 장관의 가족 비리 의혹 수사 등을 지휘했다.
윤 당선인이 추미애 전 법무부 장관 취임 이후 풍랑의 중심에 섰듯, 한 후보자의 운명도 그와 흡사했다. 추 전 장관이 취임과 동시에 진행한 검찰 인사에서 한 후보자는 ‘추풍낙엽’처럼 휩쓸렸다. 2020년 1월 부산고검 차장검사로 자리를 옮긴 데 이어 법무연수원 용인분원 연구위원, 진천본원 연구위원을 거쳐 지난해 6월부터는 사법연수원 부원장으로 재직하고 있다.
2년 새 4번의 좌천 조치를 당한 셈이다.
4번 좌천에도
자리 지켰는데
이 과정에서 한 후보자는 채널A 기자의 강요미수 사건과 관련해 공모 혐의를 받았다. 검찰의 휴대폰 압수수색 과정에서 폭행을 당하기도 했다. 또 유시민 전 노무현재단 이사장을 상대로 명예훼손 소송을 제기해 재판 중이다. 숱한 논란에도 한 후보자는 “검찰에서 해야 할 일이 아직 남아 있다”면서 사퇴설 등을 일축했다.
3‧9 대선에서 윤 당선인이 승리하면서 한 후보자가 요직으로 중용될 것이라는 전망이 제기됐다. 지난 6일 한 후보자가 채널A 강요미수 사건에서 무혐의 처분을 받으면서 이 같은 전망에 힘이 실렸다.
서울중앙지검 형사1부는 강요미수 혐의로 고발된 한 후보자를 증거불충분 등의 이유로 무혐의 처분했다고 밝혔다. 2020년 4월 시민단체 민주언론시민연합이 MBC의 ‘검언유착’ 보도를 근거로 이동재 전 채널A 기자와 한 후보자의 공모 정황이 있다며 시작된 사건 수사가 2년 만에 최종 결론에 이른 것이다.
수사팀은 그동안 여러 차례에 걸쳐 한 후보자를 무혐의 처분해야 한다는 의견을 냈지만 전임 서울중앙지검장이었던 이성윤 서울고검장 이후 지휘부는 한 후보자의 휴대전화 포렌식이 필요하다는 이유로 사건 처리를 미뤄왔다.
박범계 법무부 장관은 한 후보자를 겨냥해 수사지휘권을 발동하려 했으나 검찰 안팎의 반대에 밀려 철회하기도 했다.
채널A 기자의 강요미수 사건에서 한 후보자의 무혐의가 최종 확정되면서 그를 둘러싼 족쇄는 풀렸다. 그러자 한 후보자의 거취를 둘러싸고 서울중앙지검장, 검찰총장 등의 이야기가 본격적으로 나오기 시작했다. 윤 당선인이 어떤 식으로든 한 후보자를 요직에 배치할 것이라는 게 중론이었다.
실제 윤 당선인은 대선 전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거의(정권 수사를) 독립운동처럼 해온 사람이다. 그가 서울중앙지검장이 안 된다는 얘기는 독립운동가가 중요 직책을 가면 일본이 싫어하기 때문에 안 된다는 논리랑 똑같은 것”이라고 평가했다.
하지만 한 후보자의 법무부 장관 발탁은 당초 전망을 아득히 뛰어넘는 수준이라는 의견이 나온다. 한 후보자가 인수위 사무실에 모습을 드러낼 때까지 그의 법무부 장관 지명을 예측한 언론이 거의 없었을 정도. 윤 당선인의 측근조차 알지 못했다는 말도 들린다. 또 윤 당선인이 법무부 장관 인선만큼은 직접 챙겼다는 말도 있다.
한 후보자는 이날 기자회견에서 “국민들이 네 편 내 편 가리지 않고 오직 법과 상식에 따라서 정의가 바로 서는 법치국가를 바라고 있다는 걸 잘 알고 있다”며 “공직생활하는 동안 강자의 불법에 더 엄정하려고 노력했듯이 용기와 헌신을 가지고 최선을 다하겠다”고 밝혔다.
또 윤 당선인과 이어온 친분으로 검찰의 중립성을 제대로 지킬 수 있을지 의문을 가지는 시선에 대해서도 “제가 일해온 과정을 보면 인연에 기대거나 맹종하거나 하지 않았다는 것을 알 수 있을 것이고 어디서 뭘 하든 그렇게 할 것”이라고 말했다.
또 “박범계·추미애 장관 시절 수사지휘권 남용이 얼마나 국민에게 해악이 큰지 실감했다”며 “장관에 취임하더라도 구체적인 사건에 대한 지휘권 행사는 없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윤 당선인은 검찰 독립성 강화를 골자로 한 법무부 장관의 수사지휘권 폐지를 공약으로 내세운 바 있다.
“수사지휘권
행사 안 해”
현재 정치권 안팎에서는 ‘조선제일검’이라는 별칭으로 불리면서 수사 부서로 이동하리라 예상됐던 한 후보자를 임명직에 지명한 윤 당선인의 의중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장제원 대통령 당선인 비서실장은 자신의 SNS에 “칼을 거두고 펜을 쥐어줬다”고 한 후보자 발탁 배경에 대해 언급했다.
이어 “아마 한 검사장은 검찰에 남아 못다 이룬 검사로서의 꿈을 이어가고 싶었을 것”이라며 “검사라면 누구나 오르고 싶은 중앙지검장, 아니 검찰총장의 꿈도 분명히 있었을 것”이라고 언급했다.
그러면서 “그러나 윤 당선인은 한 검사장에게 펜을 맡겼다”며 “지난 20년간 검찰에서의 경험을 바탕으로 범죄와의 전쟁이 아니라 글로벌 스탠더드에 맞는 선진화된 형사사법 시스템을 만드는 설계자가 되기를 요구한 것”이라고 강조했다.
한편에서는 윤 당선인이 민주당의 검수완박 입법 시도에 ‘강대강’ 맞수를 둔 것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민주당은 최근 검수완박 입법을 당론으로 채택하고 속도전을 벌이고 있다. 윤 당선인 취임 전에 검수완박 입법을 완료해 검찰의 힘을 완전히 빼겠다는 의도로 읽힌다.
검수완박 입법이 진행될 경우 검찰은 그나마 가지고 있던 6대 범죄(부패·경제·공직자·선거·방위사업·대형참사) 수사도 할 수 없게 된다. 민주당에서 검찰의 수사권과 기소권을 완전히 분리하는 내용의 법안을 준비하고 있기 때문.
검찰은 민주당의 검수완박 입법 시도에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김오수 검찰총장은 기자회견을 자청해 문재인 대통령에 면담을 요청하는 등 반대 입장을 분명히 했다. 검사장은 물론 평검사 사이에서도 반발 움직임이 감지되면서 ‘검란’으로 비화될 수 있다는 목소리까지 나온다.
민주당 검수완박 당론 맞수?
지명 철회 요구 검증 예고
하지만 172석의 국회 다수 의석을 가진 민주당이 입법 시도를 밀어붙이면 검찰은 물론 국민의힘에서도 이를 저지하는 것에 한계가 있을 수 있다. 윤 당선인은 그런 상황을 막고자 한 후보자를 법무부 장관에 지명한 것이 아니냐는 분석이 제기된다.
실제 한 후보자 발탁을 두고 정치권 특히 민주당의 반응은 격렬하다. 일부에서는 ‘경악’이라는 표현이 등장할 정도다.
민주당 박홍근 원내대표는 “측근을 내세워 검찰 권력을 사유화하고 서슬 퍼런 검찰공화국을 만든다는 의도를 국민 앞에 공개적으로 천명한 것”이라며 “통합을 바라는 국민에 대한 전면적이고 노골적인 정치보복 선언”이라고 주장했다.
윤 당선인의 승부수는 한 후보자의 청문회 과정과 취임 직후 진행될 6‧1 지방선거에서 그 결과가 나올 것으로 보인다. 민주당이 한 후보자에 대한 대대적인 검증을 예고하면서 청문회는 전쟁터가 될 가능성이 높다. 내각 인선 자체가 한 후보자 지명에 전부 먹혀버린 상황이기 때문에 청문회에 대한 국민적 관심도 높은 상황이다.
여기서 한 후보자가 민주당의 송곳 검증을 이겨낸다면 윤 당선인의 승부수는 ‘묘수’ 쪽으로 갈 가능성이 높다. 반면 검증 과정에서 한 후보자의 도덕성에 치명타가 될 만한 사안이 터진다면 윤 당선인의 승부수는 ‘악수’가 될 수 있다.
한 후보자를 윤 당선인의 최측근으로 보는 사람이 많아 국정 동력에 악영향을 미치는 수준까지 폭발력을 가질 수도 있다는 분석이다.
결과 따라
국정 영향
현재 한 후보자는 청문회 준비단을 꾸리고 인사검증을 준비하고 있다. 청문회 준비단은 서울 서초구 서울고검 청사에 꾸려졌다. 준비단장은 통상적인 관례에 따라 주영환 법무부 기획조정실장이 맡는다. 주 실장은 한 후보자와 연수원 동기로 윤 당선인이 검찰총장 후보자로 지명된 2019년 인사청문회 준비단에서 공보 담당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