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수 칠 때 떠나는 ‘달인’ 김병만

2011.11.16 10:00:00 호수 0호

노력하는 ‘작은 거인’ “목숨 걸고 웃겼다”

[일요시사=송응철 기자] 김병만이 KBS 2TV <개그콘서트>의 간판 코너인 ‘달인’을 떠난다. 지난 2007년 첫 방송 이후 3년11개월만이다. 달인은 그간 숱한 부침 속에서도 꾸준하게 시청자들의 사랑을 받아왔다. 그런 달인을 떠나보내는 시청자들의 표정엔 아쉬운 기색이 역력하다. 섭섭하기는 김병만도 마찬가지. 달인이야말로 지금의 김병만을 만들어 준 코너기 때문이다. 박수를 받으며 떠나가는 김병만이지만 그 뒷모습이 사뭇 쓸쓸해 보이는 이유다.

두개골 골절에도 노동판 전전하며 생계유지
소싯적 개그맨 꿈 이루기 위해 무작정 상경

김병만은 전북 완주군 화산면의 작은 산골마을의 가난한 집 장남으로 태어났다. 그야말로 찢어지게 가난했다. 여기에 아버지가 영농자금을 빌려 시작한 하우스 농사를 태풍으로 망치면서 가세는 완전히 기울었다. 집안이 빚더미에 올랐다.

산골마을 찢어지게
가난한 집 장남



어머니는 식당 허드렛일로 집안을 책임져야 했고, 누나는 중학교도 졸업하지 못한 채 봉제공장에 다녀야 했다. 두 여동생의 생활 역시 다르지 않았다. 김병만도 고교 졸업과 함께 건설현장 막일을 피할 수 없었다. 4층 건물에서 떨어져 두개골이 골절되는 중상에도 가족의 생계를 위해 다시 아파트 현장으로 향해야 했다.
김병만의 꿈은 어릴 적부터 개그맨이었다. 어느 날 우연히 던진 말에 사람들이 웃는 것을 보고 너무 행복했던 기억이 계기가 됐다. 김병만은 19세가 되던 해, 자신의 꿈을 이루기 위해 단돈 30만원을 손에 쥔 채 무작정 서울행 버스에 몸을 실었다.

하지만 개그맨이 되는 것이 생각처럼 쉽지만은 않았다. 건물철거, 신문배달, 보조출연 등 닥치는 대로 일을 하며 개그맨 시험에 올인 했지만 생활이 녹록치 않았다. 방세가 없어서 무술체육관 바닥에 몸을 뉘어야 했고, 라면 살 돈이 없어 라면 하나를 사골처럼 고아서 먹기도 했다.

이렇게 배고픈 생활 속에서도 끊임없이 개그맨 공채시험에 도전했다. 그러나 그 때마다 결과는 번번이 실패로 돌아갔다. 김병만은 MBC와 KBS 공채 개그맨 시험에서 각각 4번, 3번씩 모두 7번 고배를 마셨다.

주변에서는 158.7cm의 작은 키 때문에 방송출연이 어려울 것이라고 말했다. 자신의 처지를 비관하며 어머니 가슴에 못을 박은 게 한두 번이 아니다. 수면제 40알을 사들고 포기하려고 생각한 적도 있었다. 그러나 김병만은 거듭된 실패 속에 스스로 체득한 교훈으로 자기 삶에 최선을 다하기로 마음을 바꿨다.

뜻이 있는 자에게는 길이 있었다. 김병만은 지난 2002년 여덟 번째 만에 개그맨 합격 통보를 받고 KBS 17기 공채 개그맨으로 데뷔했다. 그야말로 칠전팔기인 셈이었다. 김병만은 벅차오르는 감격에 말없는 눈물을 흘렸다.

그러나 기쁨도 잠시, 꿈에도 그리던 개그맨이 됐지만 방송 출연 기회는 주어지지 않았다. 그래도 김병만은 불평하지 않았다. 대신 항상 웃길 준비를 했다. 동료 개그맨들이 방송에 나가 웃음을 주며 대중의 사랑을 받을 때에도 무대 뒤편에서 묵묵히 웃음의 무기들을 갈고 닦았다.

그런 김병만의 화려한 날갯짓이 시작된 건 지난 2007년 KBS2 <개그콘서트>의 한 코너인 달인을 맡으면서다. 당초 이 코너에 대한 제작진의 반응은 부정적이었다. 과거에도 비슷한 포맷의 코너들이 있었지만 큰 재미를 보지 못했기 때문이다. 제작진의 반대에도 김병만은 달인을 밀어붙였고 보기 좋게 성공했다.

달인에서 김병만은 트램펄린의 달인, 추위를 못 느끼는 오한의 달인, 흡입의 달인, 몸 그림의 달인, 링 위의 달인, 미각을 못 느끼는 달인, 잠수의 달인 등을 연기하며 그간 쌓아 올린 무기를 아낌없이 선보였다.

스탠딩 개그가 대세일 때 그는 슬랩스틱 개그로 시청자에 웃음을 선사했다. 외줄과 외발자전거 타기는 물론 각종 격투기와 묘기에 가까운 차력쇼 등 신기에 가까운 슬랩스틱 코미디를 보여줬다.

수많은 부상조차도
그에겐 영광의 상처

상상을 초월한 개인기와 관객반응과 상황에 따른 기막힌 애드립, 허를 찌르는 코믹 연기 등 매회 달라지는 달인을 보며 수많은 시청자들은 갈채를 보냈다. 2분짜리 브리지 코너로 시작한 달인이 <개콘>의 최고 인기코너로 자리 잡는 데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단순히 뛰어난 개인기와 코믹 연기 때문만은 아니었다. 매회 고도의 육체적 고통과 어려움을 동반하는 달인 아이템을 완벽하게 소화하기위해 온몸을 던지는 김병만의 노력과 피눈물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실제 김병만이 매주 달인을 위해 들인 노력은 매우 특별하다. 그의 사무실에는 외발자전거가, 차 안에는 카우보이들이 쓰는 채찍이 항상 준비돼 있다. 달인 코너를 준비하기 위한 트레이닝은 이미 생활이 됐다. 5분 남짓한 꼭지를 위해 1주일 내내 연습하고 또 연습했다. 구르고, 맞고, 뛰는 만큼 그의 몸은 휘어지고, 부러지고, 뒤틀렸다. 하지만 이마저도 그에겐 영광의 상처다. 달인이 김병만에 의한, 김병만을 위한, 김병만의 코너라는 말이 나오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웃음을 위한 그의 끝없는 노력은 김연아와 함께 하는 SBS <키스 앤 크라이>에서도 잘 드러난다. 김병만은 첫 번째 경연 당시 인대부상에도 불구하고 여자 파트너와 놀라운 호흡으로 멋진 연기를 선보여 관객들로부터 뜨거운 기립박수를 받았다. 평발이라는 약점과 스케이트를 처음 타보는 악조건에서도 혹독한 연습을 거듭한 결과다.

8번 만에 공채 합격했지만 출연 못해
뼈와 살 깎는 노력 끝에 최고의 개그맨

당시 연기를 끝내고 심사평을 듣는 순간 김병만은 심사위원들에게 양해를 구하고 무릎을 꿇은 채 심사평을 들었다. 김병만은 “난 정말 꾀병 같은 건 부리기 싫다. 너무 너무 죄송한데 도저히 서 있을 수 없었다. 연기할 땐 모르지만 연기가 끝나면 통증이 한꺼번에 몰려온다”고 말해 시청자도 울리고 김연아도 울렸다.

주위에선 몸으로 하는 게 한계가 있지 않느냐는 이야기도 많이 듣는다. 하지만 김병만은 힘  닿는 데까지 ‘몸으로 웃기는’ 개그맨으로 남고 싶다고 했다. 그는 ‘말로 웃기는 개그맨’으로 이미지 변신을 하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단언했다.

김병만은 이처럼 선천적인 몸개그와 뛰어난 운동감각, 지독한 연습과 노력, 그리고 초심을 잃지 않는 자세로 웃음의 포인트를 가장 잘 잡는 예능인으로, 그리고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뛰어난 코믹 연기력을 갖춘 이시대의 최고의 광대로 우뚝 섰다. 이를 바탕으로 김병만은 2009년 제45회 백상예술대상 TV부문 남자예능상과 제21회 한국PD대상 코미디부문 출연자상, 2010년 KBS연예대상 코미디부문 남자최우수상을 수상하는 영광을 누렸다.

그동안 쉴 새 없이 달려온 김병만은 지금의 자신을 있게 해준 달인을 떠난다. 지난 2007년 12월 첫 선을 보인 후 4년여만이다. 이날 마지막 녹화를 마친 김병만은 “달인은 인생의 가장 큰 선물”이라며 “여기까지 올 줄은 생각도 못했다. 참 길게 왔구나라는 생각이 든다”는 소회를 밝혔다.

그는 벌써 새로운 시작을 고민 중이었다. 김병만은 “(개콘을) 관두는 분위기처럼 됐는데 아니다. 다시 또 새로운 코너를 준비할 것”이라면서 “달인을 이길 수 있는 코너를 선보여야 할 것 같아 부담이 크다. 복귀는 2~3주 뒤가 될 수도 있고, 빠르면 다음 주가 될 수도 있다”고 전했다. 김병만은 새로운 코너에서도 달인에서 호흡을 맞춘 류담, 노우진과 함께할 계획이다.

웃음 위한 노력
‘현재진행형’

빚더미 아버지, 식당일 하는 어머니, 봉제공 누나, 그리고 노가다 김병만. 이것이 젊은 시절의 그를 규정했던 가혹한 현실이다. 그러나 깊은 아픔 속에서도 그는 화려한 꽃을 활짝 피워 냈다. 최고의 개그맨으로 저 높은 곳에 우뚝 섰다. 그럼에도 관객들에게 더욱 큰 웃음을 주기 위한 그의 노력은 현재진행형이다.

“저는 거북이입니다. 언제 도착할지는 모를지언정 쉬거나 포기하지는 않았습니다. 뱁새가 황새 따라갈 수 있습니다. 그만큼 더 빨리 움직이면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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