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안 성환에 위치한 아파트 ‘e-편한세상’을 둘러싼 잡음이 연일 계속되고 있다. 시공사인 고려개발을 향한 계약자들의 성토가 끊임없이 이어지는 탓이다. 해당 아파트는 지난해 10월 시공사의 허위 과장 광고 등을 이유로 계약자들이 삭발 시위까지 벌이며 논란이 됐던 곳이다. 이후 본격적인 입주가 시작되면서 사태가 일단락되는가 싶었던 계약자와 시공사 측의 대립은 최근 다시 불이 붙었다. 계약자 일부가 계약 전면 철회를 요구하고 나선 것. 계약자와 시공사 간 사그라졌던 불씨가 다시 붙고 있는 원인은 무엇인지 현장을 찾았다.
시공사 “‘추후 문제 제기 안 하겠다’ 동의서 쓰면 현금 보상 해줄게”
동의서 요구에 계약자 ‘발끈’…계약 전면 철회 요구하며 대립 재발
“이전 집의 전세계약 만료로 갈 곳이 없어진 가족이 뿔뿔이 흩어졌어요. 남편은 원룸에서 홀로 지내고 저는 아이와 친정에서 따로 떨어져 지내고 있어요.”
천안에 살고 있는 이모씨의 한숨 섞인 목소리다. 이씨는 지난 2007년 6월 천안시 성환읍에 위치한 ‘e-편한세상’ 아파트를 분양받은 계약자다.
남편과 한평생을 모은 돈으로 내 집 장만의 꿈을 이룬 그녀는 아파트 입주를 손꼽아 기다렸다. 하지만 그녀는 준공 후 입주가 시작된 지 석 달이 지나도록 입주를 하지 않고 있다. 그녀는 계약자의 정당한 권리를 찾기 위해 시공사와 투쟁 중이라고 설명했다.
“강제 동의서 인정 못해”
해당 아파트의 입주를 거부하고 있는 계약자는 비단 이 씨뿐만이 아니다. 지난해 11월부터 입주가 시작됐지만 아직 수십여 가구의 계약자들이 입주를 거부하며 고려개발과 대립각을 세우고 있다.
분쟁의 시작은 지난해 9월부터다. 지난해 9월12~14일 입주를 앞두고 사전점검을 마친 계약자들은 황당함을 감출 수 없었다. 사전점검 결과 2년 전 고려개발의 분양 광고와 상이한 점이 한두 가지가 아니었던 탓이다.
70% 이상이라던 분양률은 계약자 확인 결과 571세대 가운데 209세대인 36.6%에 불과했고 분양 카탈로그에 3.6m로 표기됐던 132㎡(구34평)형 아파트 안방의 길이는 실제 3.3m에 불과했다. 당시 계약자들은 사기분양을 주장하며 고려개발에 보상을 요구했다.
반면 고려개발은 “분양률이 일부 과장된 점은 인정하나 허위분양의 의도는 없었다. 안방 크기 오차는 카탈로그 제작과정에서 일어난 인쇄 실수였다”고 해명할 뿐 사기 분양이 아니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결국 계약자 100여 명은 입주민비상대책위원회를 결성, 지난해 10월 고려개발 본사 앞에서 단체 입주거부 항의 시위와 함께 삭발 투쟁을 벌이기도 했다. 이후 고려개발은 입주민비대위와 합의점을 찾기 위해 협상에 들어갔고 분쟁은 해결되는 듯 보였다.
그러나 최근 이들의 대립이 여전하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이제 계약자들은 입주 거부가 아닌 ‘계약 전면 철회’라는 보다 강경한 태도로 맞서고 있다.
원인이 된 것은 고려개발이 협상의 조건으로 제시한 동의서였다. 고려개발은 계약자들에게 발코니 확장비용 50% 할인, 중도금 40%에 대한 1년 무이자 대납 조건 등 8가지의 현금 지급 혜택을 내놓았다.
단 이 혜택을 받기 위해서는 그동안 비대위 측이 제기했던 시설물에 대한 문제점 지적, 입주율에 대한 항의 등 어떠한 논란에 대해서도 앞으로 문제 제기를 하지 않겠다는 내용의 동의서에 사인하도록 했다. 고려개발은 보상 혜택을 조건으로 미분양분에 대한 판매 조건에 대해서도 추후 문제 삼지 않겠다는 데 동의하도록 했다.
고려개발은 비대위 회원을 중심으로 해당 동의서를 받고 있으며 입주를 거부하고 있는 세대에 대해서도 오는 1월 말까지 동의서를 제출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계약자들은 고려개발의 이 같은 태도에 발끈했다. 계약자 이모씨는 “고려개발이 협상을 조건으로 꼼수를 부리고 있다”며 “고려개발이 동의서를 받는 것은 추후 임대아파트 전환, 분양가 파격 할인 등 다양한 방법으로 미분양분 땡처리에 들어가기 위해 포섭 행위를 하는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는 “동의서에 사인한 계약자들은 이후 분양가가 큰 폭으로 떨어져 아파트 값이 동반 하락해도 항변 한 번 못하게 된다”며 “이미 대거 미분양 됐다는 소식에 아파트의 시세가 2500만원이나 떨어져 있어 추후 가치 하락은 불 보듯 뻔하다”고 지적했다.
실제 계약자들 사이에서는 “고려개발이 낮은 분양률로 인해 임대아파트 전환에 나섰다. 기존 분양가의 20% 이상을 할인한 가격으로 특별 분양에 들어간다”는 등의 소문이 퍼지고 있다.
고려개발은 일부 계약자들 사이에서 퍼진 헛소문일 뿐이라고 일축했다. 고려개발 한 관계자는 “임대아파트 전환은 하지 않겠다는 방침을 입주민비대위와 이미 약속한 사안이며 특별 분양에 대한 구체적인 방안도 아직은 없다”고 해명했다.
그러나 계약자 이씨는 고려개발의 약속을 믿을 수 없다고 말했다. 그는 “고려개발은 지난해 대구시 다사 지역에서도 분양률을 허위로 속여 논란이 되자 잔금 면제 등의 보상안을 제시하며 임대아파트 전환을 하지 않겠다는 약속을 입주민들에게 한 적이 있다”며 “그러나 지난해 8월 고려개발은 약속을 어기고 150가구에 대해 임대주택 전환을 시행했고 이로 인해 기분양자들은 상당한 재산상의 손해를 입어야 했다”고 꼬집었다.
현재 이들 계약자들은 고려개발의 일방적인 동의서 요구에 응할 수 없으며 그동안 허위 광고 등 잦은 문제점으로 피해를 입은 만큼 이에 대한 책임을 지고 계약을 전면 철회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동의서 없인 보상도 없어”
고려개발은 계약 철회는 있을 수 없다는 입장이다. 고려개발 한 관계자는 “동의서는 입주민비대위와 지난해 12월 말 1차 협상 이후 지난 1월 초 최종 협상을 한 사안이기에 문제될 것이 없다”며 “물론 당시 양측이 100% 만족한 협상은 아니었지만 회사에서도 보상을 위해 최대한의 성의를 보인 만큼 협의안을 이행해 주길 바란다”고 전했다.
관계자는 이어 “1월 말까지인 동의서 제출 기간을 이행하지 않을 시에는 별도의 보상 혜택은 없으며 앞으로는 공급계약서에 따른 원칙적 대응만이 가능하다”고 덧붙였다.
반면 이에 응할 수 없다는 일부 계약자 30여 세대는 지난해 12월27일 ‘천안 성환 e-편한세상 계약무효추진위원회’를 결성하고 차후 적극적인 대응에 나선다는 방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