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들어 부쩍 협력사와의 상생을 외치고 있는 LG전자. 그 이면에서 옛 LG전자 파트너가 목 놓아 울고 있다. 신우데이타 사장 김종혁씨다. 그는 달라도 너무 다른 LG전자의 ‘두 얼굴’실체를 뜯어내기 위해 홀로 외로운 투쟁 중이다. 계란으로 바위를 치고 있는 김씨와 백날 쳐봐야 네 손만 아프다는 식으로 버티는 LG전자. 어떤 악연이 있을까. 김씨의 절규와 LG전자의 배짱을 담아봤다.
“충성했는데…”갖가지 압박 뒤 일방적 계약 해지
법적 대응에 맞서 LG트윈타워 주변서 ‘1인 시위’
오전 6시 기상하는 김종혁씨. 그가 향하는 곳은 자신의 회사가 아닌 서울 여의도 LG트윈타워다. 김씨는 하루 종일 LG트윈타워 주변을 맴돈다. ‘시위’를 위해서다. 상대는 LG전자다. 그는 LG전자의 숨겨진 ‘두 얼굴’을 세상에 알리기 위해 매일 LG트윈타워로 ‘출근’한다. 그러나 시간이 갈수록 고통을 호소하는 김씨의 절규와 눈물은 거대한 장막 뒤에 가려져 점점 희미해지고 메말라간다.
피해 내용 공정위에 제소
1년 넘도록 ‘감감무소식’
김씨의 삶이 갈기갈기 찢긴 건 2005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전까진 어엿한 ‘사장님’이었다. 김씨는 PC 판매업체인 신우데이타를 운영하면서 호화스럽고 풍족하진 않았지만 남부럽지 않은 생활을 했다. 한때 잘나갈 땐 100명 이상의 직원도 뒀다. 1997년 설립된 신우데이타는 LG전자 협력사였다. 전국 홈플러스에서 LGIBM의 PC를 판매했다. 김씨와 그의 직원들은 똘똘 뭉쳐 탁월한 영업능력을 보여줬다.
신우데이타는 홈플러스 내 PC와 노트북 점유율 25∼30%대를 꾸준히 유지했다. 경쟁업체인 삼성, HP 등에 절대 뒤지지 않았다. 김씨는 이런 공로를 인정받아 1998년부터 4년간 우수 대리점 종합우승상을 받았고, 2003년과 2004년엔 ‘위너서클’업체로 선정돼 LGIBM 경영진들과 함께 해외여행도 다녀왔다. “정말 미친 듯 일했습니다. 앞만 보고 달렸죠. 직원들과 손발이 척척 맞았어요. 워낙 물건을 잘 팔다 보니 LG의 지원도 많았습니다. 그만큼 LG에 충성했어요. 그냥 하라면 하라는 대로, 시키면 시키는 대로 다했습니다. 사실 당시 LG전자 임직원들에게 골프, 룸살롱 등 적지 않은 향응을 제공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행복한 순간도 잠시. 김씨와 LG의 동행은 2005년 LG전자가 LGIBM의 PC사업을 흡수합병하면서 사실상 끝났다. 여신 축소, 추가 담보 요구, 물품 공급 중단, 수수료 삭감, 입금 미지급 등 LG전자의 압박이 시작된 것. 급기야 2007년 8월 대리점에서 판매대행사로 계약이 전환돼 영업권을 넘긴 데 이어 2008년 말 LG전자로부터 홈플러스 매장에서 철수하라는 통보를 받았다.
LG전자 측은 “대금 입금이 밀리는 등 신우데이타의 경영 상태가 부실해 계약을 해지한 것뿐”이라고 일축했다. 이때부터 김씨는 외로운 투쟁의 길로 들어섰다. “목을 조이다 결국엔 칼을 꽂더라고요. 제 발로 안 나가니까 강제로 쫓아냈죠. 그냥 있을 수 없었습니다. 충성심이 컸던 만큼 배신감이 컸고, 치미는 분노를 참을 수 없어 대기업의 횡포와 부도덕성을 세상에 알리기로 했습니다. 그리고 거리로 나갔죠. 상당히 힘든 결정이었습니다. 여러 기관에 호소했지만 ‘꿀 먹은 벙어리’마냥 아무런 답변을 들을 수 없었습니다.”
김씨는 2008년 10월 LG전자의 불공정거래 등을 공정거래위원회에 제소했지만, 1년이 넘도록 감감 무소식이다. 여러 번 탄원도 접수했으나 소용없었다. 참다못한 김씨는 지난해 5월 LG트윈타워 주변에서 언제 끝날지 모르는 1인 시위에 나섰다. 그의 묵언 시위는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집, 차 등 재산 압류
가전제품도 경매 넘어가
특히 김씨는 지난해 7월 LG전자의 위장거래 탈세 의혹을 국세청에 제보했다. 그는 “LG전자와 신우데이타가 실제로 물품 거래를 하지 않았지만 허위로 거래한 것처럼 장부를 꾸몄다”며 허위거래 자료를 국세청에 제출했다. 이에 영등포세무서는 LG전자에 대해 세무조사를 실시, 지난달 허위·위장거래 사실을 적발했다.
세무서 측은 “LG전자가 2005∼2006년 LGIBM을 흡수합병하는 과정에서 3억원 이상의 가공매입·매출 사실을 적발해 법인세 400만원과 부가세 5700만원 등 총 6100만원 상당의 과세를 부과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LG전자도 가만히 있지 않았다. LG전자는 영등포세무서로부터 과세예고통지를 받자마자 이의 신청을 냈다.
LG전자 관계자는 이의 신청 이유에 대해 “허위·위장거래를 통해 탈세를 했다는 김씨의 주장과 국세청이 밝힌 내용은 사실과 다르다”는 말만 반복했다. LG전자는 앞서 김씨가 언론·출판물의 광고, 인터넷 게재 행위, 유인물 부착·배포 등 방법으로 회사의 명예를 훼손·모욕하고 있다며 명예훼손금지 가처분 신청을 법원에 제기했다. 법원은 이중 LG트윈빌딩 주변 300m 내의 현수막 설치, 유인물 배포 등의 행위만 금지했고 나머지는 모두 기각했다.
“아버지 눈치만 보고 말을 잃어가는 아이들을 보면
가슴이 미어집니다. 고기반찬은커녕 무더위에
수박 한 덩이도 마음 놓고 먹일 수 없는 아비의 심정을 아십니까.”
뿐만 아니다. LG전자는 김씨를 명예훼손 등 혐의로 검찰에 고소했다. 이와 관련 법원은 지난달 김씨의 손을 들어줬고, LG전자는 “수긍할 수 없다”며 즉각 항소했다. LG전자는 이외에도 김씨를 상대로 여러 건의 민·형사 소송과 고발을 제기한 상태다. 3년째 지루한 공방이 오가는 사이 김씨의 가정은 폭삭 주저앉았다. 여기저기 ‘빚잔치’다. 지인들에게 ‘구걸’하다시피 꿔온 돈이 적지 않다. 집과 차는 압류된 지 오래다.
하루가 멀다 하고 “돈 내라”는 독촉전화가 온다고 한다. “가장이 이러고 있으니 가정도 엉망진창이죠. 당장 가족 모두 길거리에 나앉게 생겼습니다. 솔직히 이 지경까지 될 줄은 꿈에도 몰랐습니다. 삶이 고달파요. 육신과 영혼이 황폐해질 정도로 괴롭습니다. 시간이 흐를수록 수렁에 빠지는 느낌입니다. 세상이 더럽더라도 그냥 놔둘 걸 그랬어요. 최소한 가정의 평화를 위해서라도 말이죠.”
최근엔 가전제품들까지 모조리 경매 처분됐다. 김씨가 국세청에 제보한 LG전자의 탈세 의혹이 부메랑으로 돌아온 것이다. 국세청은 신우데이타가 LG전자에 허위·위장거래 영수증을 끊어줬기 때문에 김씨에게도 책임을 물어 LG전자와 같은 과세를 부과했다.
김씨는 “세상은 속여도 양심은 속일 수 없어 불이익을 어느 정도 감수하고 탈세 부분을 공개했지만 대기업과 개인을 대하는 국세청의 이중적 태도에 분노할 수밖에 없다”며 “LG전자의 경우 질질 끌다 마지못해 조사에 나섰고 더구나 이의 신청을 받아들인 상황이지만, 내 사건은 조사부터 경매 처분, 검찰 고발까지 일사천리로 진행됐다”고 울분을 토했다.
“밀린 직원 월급과
사과 한마디만…”
당연히 변호사 선임은 ‘언감생심’ 꿈도 못 꾼다. ‘빵빵한’법조 사단과 대형 로펌을 상대하는 그로선 ‘나홀로 소송’이 최선의 선택이다. “빈털터리로 쫓겨났는데 수백만원에서 수천만원에 이르는 변호사 수임료를 어떻게 감당합니까. 그냥 몸으로 때우는 수밖에요.” 김씨는 물론 그의 가족들이 겪는 고통도 크다. 그의 아내는 극도의 정신 불안에 시달리고 있다. 자다가도 벌떡 일어난 게 한두 번이 아니다.
대학생인 큰 아들은 등록금을 감당 못해 휴학계를 내고 얼마 전 군대에 입대했다. 작은 아들은 다니는 고등학교마저 위태위태하다. “가족들에게 미안한 것은 두말할 나위 없습니다. 아버지 눈치만 보고 말을 잃어가는 아이들을 보면 가슴이 미어집니다. 고기반찬은커녕 무더위에 수박 한 덩이도 마음 놓고 먹일 수 없는 아비의 심정 말입니다. 그런데도 묵묵히 힘을 보태는 가족을 보면 빨리 힘든 싸움을 끝내고 싶을 뿐입니다. 우리 사회가 작은 소리도 귀를 기울였다면 이렇게 한 가족의 인생이 휴지통에 버려지지는 않았을 겁니다.”
법원 “김씨 시위 회사 명예훼손 아니다”
국세청 LG전자 위장거래 탈세 사실 적발
김씨는 LG전자에 ‘큰 것’을 바라지 않는다. 그저 밀린 직원들의 월급과 사과 한마디 정도면 된다. “절대 큰 요구가 아니죠. 하지만 LG전자는 무슨 거액을 원하는 것처럼 오해하고 있어요. 한 맺힌 외침이 LG전자엔 공허한 메아리로 들린 겁니다. 안타깝고 허탈합니다.”
한편 LG전자는 2008년 11월 ‘하도급 공정거래 협약 선포’에 이어 지난해 10월 ‘넘버원 협력사 육성’비전을 발표했다. LG전자는 협력사 상생수준을 세계 최고로 끌어올리겠다는 복안으로 ▲상생협력 전담 인력 육성 ▲사이버 신문고 운영 ▲기술 노하우 전수 ▲전략적 협력사 확대 ▲유망 벤처기업 지원 ▲거래대금 현금 결제 ▲상생협력펀드 조성 ▲협력사 직원 교육 프로그램 등 다양한 협력사 지원제도를 운영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