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건희 전 삼성그룹 회장이 특별사면을 받았다. 삼성SDS 신주인수권부사채(BW) 저가발행 사건과 관련해 배임 및 조세포탈 혐의로 징역 및 집행유예를 선고받은 지 불과 4개월 만이다. 이번 사면 결정을 두고 각계의 볼멘소리가 들려오는 가운데 이제 업계는 사면복권된 이 전 회장의 차후 행보에 관심을 집중하고 있다. 업계 일각에선 애초 올림픽 국내 유치 사명이 전제되었던 만큼 충분한 성과를 기록해야 할 것이라고 강조하고 있다.
정·재계 및 체육계 필요에 의한 선택…‘한 마음 한 뜻’으로 청원
국민적 설득 위해선 ‘평창 동계올림픽 유치’ 등 성과물 만들어야
이건희 전 삼성그룹 회장이 돌아왔다. 체육계를 선두로 정·재계 인사들이 한 목소리로 이 전 회장의 사면복권을 외친 지 두 달여 만의 성과다. 그러나 정작 많은 이들의 성원에 힘입어 컴백하게 된 이 전 회장의 어깨는 가벼워 보이지 않는다. 이 전 회장의 사면 결정 저변에 깔린 그의 역할론이 묵직한 무게감으로 다가오고 있는 탓이다.
이 전 회장의 이번 사면이 국가적인 차원에서 필요에 의한 선택이었다는 것이 각계의 중론이다. 그의 컴백을 염원했던 재계와 체육계도 ‘국익’을 앞세워 정부를 설득하는 데 성공했다. 재계는 국내 최대 기업의 수장이었던 그의 탁월한 리더십이 국내 경제 발전을 위해 필요한 때임을 강조했고 체육계는 올림픽 유치라는 국가적 염원을 실현시키기 위해 이 전 회장의 존재가 필요함을 강변했다. 향후 이 전 회장의 행보가 경제 살리기와 올림픽 유치에 집중될 것이라는 예측도 자연스러운 결과다.
양 어깨 숙제 한가득
특히 사면 이후 이 전 회장의 행보는 당분간 평창 동계올림픽 유치활동에 집중될 전망이다. 업계 관계자들은 이 전 회장이 국민적 불만을 해소하고 이해를 구하기 위해서는 국가적 염원인 올림픽 개최지 선정의 성과가 유일한 해결책이라고 강조하고 있다. 이 전 회장도 국민적 기대에 부응하기 위한 움직임에 총력을 기울일 예정이다.
실제 삼성그룹 측은 이 전 회장에 대한 정부의 사면 결정 이후 보도 자료를 통해 “이 전 회장이 동계올림픽 유치라는 국민적 기대에 부응하기 위해 최선을 다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에 따라 이 전 회장은 사면 직후 다시 IOC 위원 자격을 회복해 2018년 동계올림픽 유치에 올인 할 것으로 예상된다. 우선 이 전 회장은 불과 한 달 뒤에 치러질 2월 초 밴쿠버 올림픽에 참석할 전망이다.
밴쿠버 올림픽은 2018년 동계올림픽 개최지 선정발표가 있는 7월 이전에 마지막으로 IOC총회가 개최되는 장소다. 이에 밴쿠버에서 열릴 IOC총회는 2018년 동계올림픽의 행선지에 대한 윤곽을 짚어볼 수 있는 장소이자 우리나라 입장에서는 마지막 홍보유치 장소가 되는 셈이다. 세계 체육계의 거물로 인정받고 있는 이 전 회장은 바로 이곳에서 2018년 동계올림픽 국내 유치를 위해 전방위 스포츠외교 능력을 발휘해야 한다.
앞서 두 번의 올림픽 유치 실패를 경험한 체육계 관계자들은 이제 남은 것은 스포츠 외교밖에 없다며 이 전 회장의 실력 발휘에 기대를 모으고 있다. 이들은 지난 1996년부터 10여 년간 IOC 위원으로 활동해 온 이 전 회장의 인맥과 IOC의 톱 스폰서로 활동 중인 삼성그룹의 브랜드파워가 희망적인 결과를 가져올 것이라는 전망을 내놓고 있다.
반면 재계 관계자들은 올림픽 개최라는 국민적 염원에 대한 총력전 이후에 펼쳐질 이 전 회장의 행보에 관심을 집중하고 있다. 업계는 이 전 회장의 행보가 언제까지 스포츠 외교에 머물지는 않을 것이라는 전망과 함께 이 전 회장의 경영복귀 시점에 대해 갖가지 관측을 제시하고 있다. 그중 이 전 회장이 당장은 업무 복귀가 어려워 경영 전면에 나서지는 않겠지만 차후 삼성그룹의 경영에 어떤 형태로든 관여할 것이라는 관측이 대두되고 있다.
실제 재계에 따르면 이 전 회장은 그동안 실무에서 물러난 후로도 경영 전반에 대한 사안을 보고받고 진두지휘하는 등 그룹 내 파워를 자랑해 왔던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여기에 지난해 말부터 삼성그룹 사장단들이 약속이라도 한 듯 오너경영 체제 복귀의 필요성을 여러 차례 강조해온 것도 이 전 회장의 복귀설에 힘을 싣고 있다.
이에 한편에선 이 전 회장의 경영 복귀가 조기에 이뤄질 수 있다는 가능성도 제기되고 있다. 그룹의 명예회장 취임부터 계열사의 대표이사 등재까지 다양한 방안들도 나오고 있다. 일부에선 이미 내부 검토가 끝나 복귀시점에 대한 적절한 추이를 지켜보고 있다는 소식도 전해진다. 한편 국가적 필요에 의한 특사였다는 정부의 해명에도 불구하고 이 전 회장에 대한 사면복권 결정 후 각계의 불만의 목소리는 여전히 거세다.
지난해 12월29일 한 라디오방송을 통해 박선영 자유선진당 의원은 “판결문에 잉크도 채 마르지 않았다”며 “법치주의라는 관점에서 보면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강조했다. 시민단체들도 재벌기업에 대한 특혜라며 반대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볼멘소리 여전
경제개혁연대는 “대통령까지 나서서 (범죄를) 없던 일로 만들어주는 꼴은 대한민국의 국민임을 부끄럽게 만든다”고 꼬집었다. 경실련 역시 “특별사면은 어떠한 명분으로도 국민들에게 납득될 수 없다”며 “이는 명백히 법치주의에 위배되는 것일 뿐 아니라 법체계에 대한 사회적 신뢰를 저버리는 것”이라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