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속시리즈> 김성수 기자가 파헤친 비밀 [제29탄] ㈜둘리나라 ‘둘리’

2009.12.08 09:18:14 호수 0호

‘탁상행정’이 빚은 비극…국민캐릭터 ‘둘리’ 죽였다!

[일요시사=경제1팀] 총체적 불황 속에서도 유독 잘나가는 ‘절대 강자’가 있다. 막강 브랜드를 앞세운 기업들이다. 기업 수익과 직결되는 브랜드 경쟁력으로 확보한 아성은 어느 누구도 무너뜨릴 수 없을 만큼 견고하다. 하지만 ‘1등 브랜드’에도 숨기고 싶은 비밀이 분명 존재한다. 
소비자 눈을 가린 ‘구멍’이 그것이다. <일요시사>는 대한민국 산업의 발전 방향 모색과 소비자들의 정당한 권리 차원에서 히트상품의 허점과 맹점, 그리고 전문가 및 업계 우려 등을 연속시리즈로 파헤쳐 보기로 했다.




캐릭터 산업은 ‘황금알 낳는 거위’다. 그 시장이 엄청난 규모로 성장하고 있는 탓이다. 한국문화콘텐츠진흥원에 따르면 국내 캐릭터 시장은 2005년 4조3000억원, 2006년 4조4000억원, 2007년 4조7000억원으로 해마다 증가 추세다. 지난해엔 약 5조원을 넘어섰다. 여기에 불법복제품까지 포함하면 국내 캐릭터 시장은 이를 훨씬 상회할 것이란 게 업계의 추산이다.
이 시장을 개척과 동시에 주도하는 ‘국민 캐릭터’가 ‘아기공룡 둘리’다. 사람 나이로 치면 올해 26세인 둘리는 수요가 한정돼 있는 ‘신생 캐릭터’들과 달리 유아·어린이는 물론 성인들에게까지 두루 사랑받은 장수 캐릭터이기도 하다. 캐릭터업계 관계자는 “한국 캐릭터들이 빠르게 성장하고 있지만 아직 세계 캐릭터 시장을 95% 이상 점유하고 있는 미국, 일본, 프랑스, 영국, 캐나다 등엔 미치지 못하는 형편”이라며 “수십년 동안 이어 온 세계적인 캐릭터는 유아뿐만 아니라 남녀노소 누구에게나 사랑받고 있다는 공통점이 있는데 국내 캐릭터 중 거의 유일하게 둘리가 그렇다”고 말했다.
1억년 전 남극에서 빙하를 타고 온 둘리와 다른 행성에서 지구로 온 도우너, 아프리카 서커스단에서 도망쳐 나온 또치와 음치 가수 지망생 마이콜. 이들이 고길동 가족과 살면서 펼쳐지는 좌충우돌 이야기를 다룬 아기공룡 둘리의 인기는 시대를 초월한다. 토종 캐릭터들의 맏형인 둘리는 1983년 김수정 작가가 월간 만화잡지 <보물섬>에 처음 연재한 이래 TV만화, 극장용 애니메이션, 뮤지컬 등 다양한 형태로 선보여 왔다.
특히 캐릭터의 브랜드화 인식이 전무했던 1980년대 중반부터 식품류, 문구류, 의류 등 별의별 상품에 둘리와 그 친구들의 얼굴이 달려 나왔다. 1980∼90년대만 해도 미국, 일본 등 외국 캐릭터 일색이던 국내 시장에 토종 캐릭터의 불씨를 지핀 것. 둘리가 찍힌 상품들은 그야말로 날개 돋친 듯 팔렸다. 그동안 둘리 캐릭터 상품은 1500여 종 가까이 만들어졌고 각종 한국 캐릭터 선호도 조사와 브랜드 가치 순위에서 항상 선두권을 유지하고 있다.



도봉구 190억원 투입 ‘둘리 테마존’ 전면 백지화
“제 맘대로 추진” 계약 파기…구청 업무처리 비판

김 작가는 1995년 아예 ㈜둘리나라를 설립했다. 그는 “지속적이고 세계적인 캐릭터로 성장시키기 위해 조직적인 활동의 필요성을 느꼈다”고 회사 설립 배경을 설명했다. ㈜둘리나라는 둘리의 캐릭터 라이선싱과 애니메이션 제작 등을 주로 한다. 현재 70여 개 업체와 캐릭터 라이선싱 계약을 맺고 있으며 지난해 말부터 26부작으로 제작된 새 버전이 공중파를 타 높은 시청률을 기록했다.
하지만 둘리 사업이 늘 성공한 것만은 아니다. 대표적인 사례가 바로 ‘둘리 테마존’ 조성 계획이다. 서울 도봉구 쌍문동에 자리 잡을 국내 최대 캐릭터 사업이 무산된 것으로 뒤늦게 확인된 것. 도봉구청이 대대적으로 홍보한 이 사업은 올해 상반기 착공 예정이었지만 공사는 첫 삽도 뜨지 못한 채 수포로 돌아갔다.
최선길 도봉구청장은 ‘도봉산 관광브랜드화 프로젝트’를 임기 중 최대 역점사업으로 정하고 사업건의서를 오세훈 서울시장에게 제출했다.
이 프로젝트의 핵심 가운데 하나가 ‘둘리 테마존’이다. 도봉구청은 2007년 1월 쌍문동 산 241번지 일대 5022㎡(약 1522평)에 190억원의 예산을 투입해 ‘둘리 테마존’을 만들 예정이라고 밝혔다. 도봉구청은 이를 위해 ㈜둘리나라와 둘리 캐릭터 무상사용 계약을 체결했다.

토종 캐릭터 ‘맏형’

시대·나이 초월 인기

국내 첫 만화 마을로 꾸며질 ‘둘리 테마존’은 ▲둘리의 머리 모양을 본뜬 원형의 둘리미술관 ▲만화책이 펼쳐진 모양의 3층짜리 어린이도서관 ▲만화 속 인물인 고길동과 무명 가수 마이콜의 쌍문동 집 등이 들어설 계획이었다. 또 둘리길, 고길동길, 희동이길, 또치길 등도 조성하기로 했다. 

도봉구청이 둘리를 선정한 것은 원작의 무대가 쌍문동이기 때문이다. 만화 배경에 둘리가 살고 있는 고길동의 집과 작은 하천이 나오는데 그곳이 쌍문동과 우이천이다. 김 작가도 이 지역에 20년 이상 거주한 토박이다. 


이런 인연으로 최 구청장은 2007년 9월 애니메이션 캐릭터 가운데 최초로 둘리에게 ‘명예호적’까지 부여했다. ‘둘리 테마존’ 조성 등 구정 홍보활동에 활용하기 위해서다. 둘리 호적등본엔 주인공인 둘리와 만화에 등장하는 여러 캐릭터들의 신상명세가 기재됐다. 물론 이들의 호적상 본적지는 쌍문동이다.

당시 도봉구청 측은 “국내 첫 만화마을인 ‘둘리 테마존’은 국내뿐 아니라 세계적인 명소로 건립될 것”이라며 “서울시 심사를 거쳐 2009년 상반기에 착공해 2011년 어린이날에 완공된다”고 설명했다. 최 구청장도 “국내 최초로 특정 만화 주인공이 중심이 된 테마사업이 조성되는 도봉구가 캐릭터 관광산업의 발원지가 될 것”이라며 “서울의 새로운 명소를 개발해 관광객 1200만 시대를 여는 서울 문화 프로젝트에 일조하겠다는 취지”라고 말했다.

그러나 이 사업은 ‘일장춘몽’으로 끝났다. 올해가 다 가도록 ‘감감무소식’이더니 결국 좌초된 것으로 드러났다. 양측은 재협상의 여지가 남아있다고 전했지만 일단 계약 자체는 파기된 상태다. 도봉구 시민단체 등에 따르면 도봉구청과 ㈜둘리나라는 지난 2월 서로 합의하에 둘리 캐릭터 사용 계약을 전면 파기했다. ‘둘리 테마존’의 첫 삽을 뜨기 직전 저작권과 운영권 등을 두고 맞선 양측의 의견 차이로 사업을 접은 것. 둘리의 명예호적도 발급 서비스가 중단됐다.

저작권·운영권 이견
“행정불신 자초한 꼴”

㈜둘리나라 관계자는 “둘리 캐릭터 활성화와 공익에 초점을 맞춰 이미지 사용료를 무료로 제공하는 대신 시설물, 포스터, 책자 등 사업 일체의 디자인은 회사 또는 김 작가의 검토를 거쳐야 한다고 계약서에 명시돼 있다”며 “그러나 도봉구청이 원작자 측의 의견을 전혀 수렴하지 않은 채 무리하게 독자적으로 사업을 진행해 계약이 무산됐다”고 지적했다. 그는 이어 “구청의 요청으로 재계약을 놓고 다시 상의하고 있지만 성사 여부는 아직 미지수”라고 덧붙였다.

주민들은 구청의 아마추어식 어설픈 행정이 낳은 결과라고 비판하고 있다. 문화콘텐츠 관련 전문지식이 부족한 상태에서 성급하게 밀어붙인 전형적인 ‘탁상 행정’이란 지적이다. 도봉구청은 이번 사업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설계 현상공모 등에 수억원의 예산을 이미 소요한 것으로 알려졌다. 한 주민은 “그동안 구청에서 떵떵거린 대규모 사업이 이렇게 허무하게 무너질지 꿈에도 몰랐다”며 “2년 넘게 사업을 진행하면서 퍼부은 막대한 혈세 등의 재정적 손실과 기대가 컸던 주민들의 상실감을 보상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첫 삽도 뜨지 못했는데…”
공사전 수억원 예산 소요

쌍문동 한 부동산중개인은 “구청의 둘리사업 발표 이후 예정지 주변 땅·집값이 크게 요동치는 등 투기 바람까지 거세게 일었다”며 “공무원들의 업무처리 미숙으로 행정 불신을 자초했다”고 꼬집었다. 도봉구청 측은 행정 미숙에 대해 어느 정도 시인했다. 

구청 담당자는 “2년 넘게 사업이 진행되면서 담당자가 여러 번 바뀌는 등의 문제로 혼선이 있었던 것은 부인하지 않겠다”며 “㈜둘리나라와 원만한 협의가 이뤄지지 않아 본 계약은 철회됐으나 재협상 여지가 남은 만큼 무산이 아닌 잠정 보류로 해석해야 한다”고 밝혔다.

사실 둘리를 내세운 대형 프로젝트가 뒤집어진 것은 처음이 아니다. 앞서 2004년 강원도 평창 일대에 3만9600㎡(약 1만2000평) 규모의 테마펜션, 둘리박물관, 만화 체험관 등을 중심으로 한 종합리조트 시설인 ‘둘리 테마파크’가 조성될 예정이었으나 역시 무산된 바 있다. 


당시 국내 최대 캐릭터 사업이란 점에서 언론은 물론 콘텐츠 산업 전체가 떠들썩했다. 그러나 ㈜둘리나라에 이 사업을 제의한 시공사인 K사가 둘리를 앞세워 “수배에 이르는 높은 프리미엄을 보장한다”는 과장 광고로 1년여 간 투자자들을 모은 뒤 슬그머니 발을 빼 사기 분양 논란이 일었다. 둘리 캐릭터를 믿고 선뜻 투자를 결정한 투자자들은 프리미엄 수익금은 고사하고 원금도 되돌려 받지 못하는 피해를 입기도 했다. 

“단기간 성과에 급급”

큰 사업 잇달아 무산

이에 “둘리 캐릭터 사용만 허용했을 뿐 전체 사업과는 전혀 무관하다”고 해명한 ㈜둘리나라는 2005년 ‘둘리 테마파크’가 착공 시기를 한참 넘기는 등 사업이 지지부진하자 K사 측에 계약 파기를 통보했다. ㈜둘리나라도 캐릭터 계약금 중 20% 정도를 K사로부터 받지 못한 것으로 알려졌다. 

㈜둘리나라 관계자는 “자꾸 이런 일이 생겨 유감이지만 솔직히 대규모 사업들이 계약 직전 무산된 게 한두 번이 아니다”라며 “사업 주체들이 캐릭터의 성장잠재력이 아닌 단기간 성과에 급급해 문제가 생기는데 회사로선 당연히 캐릭터 보호·육성 차원에서 꼼꼼히 검토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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