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찰 맘대로’ 재정신청제도 논란

2009.12.01 09:44:42 호수 0호

‘툭하면 시비’기소권한 독점“불신만 키운다”

‘검사가 피고인에게 무죄를 구형한다?’ 언뜻 이해하기 힘든 이런 ‘촌극’이 재판장에서 자주 연출되고 있다. 범죄를 입증해야 할 검찰이 피고인에게 무죄를 구형하는 이상한 광경이다. 법원이 또 검찰의 무혐의 수사를 뒤집는 일도 허다하다. ‘재정신청’ 제도의 기형적인 구조를 보여주는 단면들이다. 취지와 의미가 무색해진 재정신청의 문제점을 짚어봤다.

검찰 무죄 주장 3건 중 1건 법원서 유죄 결정
“재정결정 공소유지권 변호사에 넘겨야” 지적


정몽준 한나라당 대표는 지난해 18대 총선 과정에서 “오세훈 서울시장이 동작 사당동을 뉴타운 지역으로 개발하기로 약속했다”는 허위 공약을 한 혐의로 고발됐지만 검찰은 지난해 9월 무혐의 처분을 내렸다. 민주당은 곧바로 “정 대표에 대한 검찰의 불기소결정이 부당하다”며 서울고등법원에 재정신청을 냈고 법원은 지난 1월 이를 받아들여 정 의원을 재판에 회부했다.

‘무죄는 영원한 무죄?’

검찰은 어쩔 수 없이 정 대표를 기소했지만 지난 3월 결심공판에서 “재판부가 알아서 판단해 달라”고 사실상 무죄를 구형했다. 결국 법원은 정 대표에게 벌금 80만원의 유죄를 선고했고 정 대표는 지난달 대법원의 원심 확정으로 의원직을 유지하게 됐다.

이를 두고 정치권을 중심으로 ‘특정인 봐주기’ ‘검찰 직무유기’란 논란이 일자 검찰은 “검찰이 무혐의 결정한 사건을 법원이 재정신청을 받아들여 기소한 사건에 대해 공소유지 과정에서 새로이 밝혀진 증거 등을 종합해 유죄 또는 무죄 구형을 하고 있다”며 “공소유지 과정을 통해서도 무죄에 대한 확신이 있으면 무죄구형을 하고 있다”고 해명했다.

‘재정신청’이란 검찰이 불기소 처분한 사건에 대해 고소인이 불복할 경우 직접 고등법원에 재판 회부를 요청하는 제도다. 고등법원이 심리 결과 검찰의 불기소 판단이 부당하다고 결정하면 직권으로 재판을 진행한다. 문제는 당초 불기소 처분을 내린 검찰이 그대로 사건을 맡는다는 점이다. 과거 재정신청 사건의 공소권은 검찰이 아닌 법원이 지정한 변호사(특별검사)에게 있었다.

그러나 2007년 형사소송법 개정 때 검찰이 맡도록 바뀌었다. 검찰의 기소독점권을 견제하자는 재정신청의 취지와 의미가 무색해진 것이다.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소속 한 의원은 “2007년 정부가 국회에 제출한 형사소송법 개정원안엔 기존 공소유지 담당변호사 제도를 유지하자는 내용이 포함돼 있었지만 국회 법사위 논의 과정에서 검찰 측의 강력한 요청에 따라 변호사 대신 검사에게 맡기는 것으로 개정됐다”며 “검찰은 기소독점권이 고소인과 법원에 의해 견제될 상황을 우려해 공소유지권을 요구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검찰이 피고인에게 무죄를 구형하거나 법원이 검찰의 무혐의 수사를 뒤집는 ‘촌극’이 반복되는 이유가 바로 이런 재정신청의 기형적 구조 탓이라는 지적이다. 검찰로선 법원의 재정결정에도 불기소 입장을 고수할 수밖에 없다. 이미 무혐의 처분을 내린 사건의 피고인에 대해 유죄를 구형하는 것은 수사가 잘못됐다는 점을 자인하는 꼴이기 때문이다.

일반인이 겪는 고충은 더하다. 법원에서 재정신청이 기각되기 일쑤다. 또 법원이 재정신청을 받아들이기까지 적게는 수개월에서 많게는 1년 넘게 장기간 소요되기도 한다. 참여연대가 박영선 의원(민주당)을 통해 입수한 ‘재정신청 사건 및 처리 현황’에 따르면 재정신청 사건의 공소유지권이 검찰에게 넘어간 지난해 1월부터 지난 6월 말까지 접수된 재정신청 사건 중 판결이 선고된 사건은 총 61건이다. 이 가운데 절반 이상인 42건(68.8%)이 유죄 판결을 받았다.

특히 재정신청이 받아들여진 이후 검찰이 재차 무죄를 구형하거나 구형 의견을 제시하지 않은 사건은 28건(45.9%)으로 나타났다. 이 중 13건(46.4%)이 법원의 유죄 판결을 받았다. 검찰이 무죄 주장을 굽히지 않았던 사건이 유죄로 결론 난 것이 약 3건 중 1건인 셈이다. 참여연대 측은 모순된 재정신청제도의 오류와 욕심에 비해 불성실한 검찰이 빚어낸 결과라고 지적했다.

참여연대 관계자는 “무죄를 주장하는 검사가 공소유지 기능을 담당하는 모순적인 상황은 검찰에게 기소독점권을 부여하고 있는 한계를 개선하자는 재정신청 제도의 취지를 무너뜨리는 것”이라며 “특정인에 대한 봐주기, 특혜 시비를 검찰 스스로 자초하고 있다”고 비난했다. 일부 법조계의 의견도 다르지 않다. 이들이 주장하는 해결 방안은 간단하다. 형사소송법의 원상복구다. 법원이 재정결정한 사건의 공소유지 권한을 원래대로 변호사가 맡아야 한다는 것.

박 의원은 지난 9월 이 같은 내용이 포함된 형사소송법 개정안을 발의한 상태다. 개정안엔 재정신청 대상 사건을 고소사건 외 고발사건까지 포괄하는 동시에 공소유지 담당 변호사제도를 복원하는 취지가 담겨 있다. 국내 유명 로펌 한 변호사는 “기소하지 않기로 결심한 검찰에 공소유지를 맡기는 건 현실적으로 앞뒤가 맞지 않는 조치”라며 “검찰은 재정신청이 받아들여져 형사재판을 다시 시작하더라도 무죄라고 판단했다면 무죄구형을 한다는 것인데 이는 검찰의 불기소결정이 부당해 형사재판을 시작토록 하는 재정신청 제도의 취지에 반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법 원상복구해야”

그는 이어 “검찰의 무죄 기소에서 법원의 재정신청까지 1년 가까이 질질 끈 한 사건의 경우 피의자의 자백에도 불구하고 검찰이 끝까지 무죄 의견을 밀어붙여 흐지부지 종결되기도 했다”며 “이 사건의 피해자들이 헌법재판소에 위헌 신청을 제기해 결과를 기다리고 있다”고 덧붙였다.

또 다른 변호사도 “검찰을 견제하기 위한 수단이 돼야 할 재정신청의 폐해 사례가 속출하는 등 왜곡되고 있다”며 “검찰개혁을 위해서라도 검찰이 공소유지권을 내놓고 변호사가 맡는 방향으로 현행 형사소송법이 개정돼야 바람직하다”고 주장했다.


 ‘재정신청’ 일본에선?

이웃나라인 일본도 우리나라의 재정신청제도와 같이 검찰의 잘못된 기소권한 행사를 견제하기 위한 방안을 시행하고 있다. ‘검찰심사회’가 그것이다. 일반 시민 11명으로 구성된 검찰심사회가 2/3 이상(8명)이 2회에 걸쳐 검찰의 불기소처분이 부당하다고 결정하면 해당사건은 곧바로 형사재판에 회부된다. 하지만 검찰이 기소독점권을 갖고 있는 우리나라와 달리 일본의 공소유지는 법원이 지정한 변호사가 맡고 있다. 2007년 개정된 이 법은 지난 5월부터 시행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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