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객기 참사 1주기’ 이 대통령 “깊은 사죄⋯유가족 종합 지원”

2025.12.29 13:34:19 호수 0호

진상규명은 여전히 ‘안갯속’

[일요시사 취재2팀] 박정원 기자 = “사랑하는 가족과 평범한 일상으로 돌아오기 위해 비행기에 올랐던 179분의 소중한 삶이 순식간에 비극으로 변했다.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지켜야 할 책무를 가진 대통령으로서 깊은 사죄의 말씀을 올린다.”



12·29 무안공항 제주항공 여객기 참사가 발생한 지 1년이 된 29일, 이재명 대통령이 고개를 숙였다. 이 대통령은 이날 참사 1주기 추모식에 앞서 공개한 영상 추모사를 통해 정부를 대표해 거듭 사과하며 형식적 약속이 아닌 실질적 변화와 행동을 약속했다.

하지만 이 대통령의 굳은 다짐과 달리, 참사 1주기를 맞은 현장의 시계는 여전히 더디게 흐르고 있다. 179명의 희생자를 낸 비극의 원인을 밝히는 작업은 ‘셀프 조사’ 논란 속에 갇혀 있고, 참사의 피해를 키운 공항시설 개선 작업은 해를 넘길 전망이다.

이 대통령은 이날 “항공철도사고조사위원회(사조위)의 독립성과 전문성 강화를 적극 뒷받침하겠다”고 강조했다. 이는 유가족들이 지난 1년간 줄기차게 요구해 온 ‘조사의 공정성’ 문제와 맞닿아 있다.

현재 사고 조사를 주도하는 사조위는 국토교통부 산하 기구다. 문제는 참사의 핵심 원인 중 하나로 지목된 ‘방위각 시설 콘크리트 둔덕’의 설치와 관리 책임이 국토부와 한국공항공사에 있다는 점이다. 피조사기관이 조사를 주도하는 ‘이해충돌’ 구조 탓에 유가족들은 조사의 객관성을 불신해 왔다.

앞서 사조위는 지난 7월 사고 원인을 겨울 철새인 ‘가창오리’와의 조류 충돌(버드 스트라이크)로 좁히면서도, 엔진 결함보다는 조종사의 대응 미숙에 무게를 둔 잠정 결론을 내리면서 반발을 샀다. 특히 피해를 키운 활주로 끝단 251m 지점의 콘크리트 둔덕이 국제 안전 기준(종단 안전구역 내 장애물 제거)에 미달했다는 지적에 대해서는 명확한 책임 소재를 가리지 못하고 있다.


이에 정치권은 뒤늦게 응답했다. 국회 국토교통위원회는 지난 10일 사조위를 국토부에서 국무총리 소속의 독립 기구로 이관하는 법률 개정안을 의결했다. 김윤덕 국토부 장관 역시 “신속한 이관을 위해 노력하겠다”고 밝혔으나, 조직 개편과 전면 재조사가 불가피해 최종 결론 도출까지는 상당한 시일이 걸릴 것으로 보인다.

정부는 참사 이후 전국 7개 공항의 위험 시설물(방위각 시설 둔덕)을 연내 개선하겠다고 공언했으나, 이 약속 또한 지켜지지 못했다.

현재까지 시설 개선이 완료된 곳은 광주공항과 포항경주공항 등 2곳뿐이다. 여수공항은 연내 완료될 예정이나, 김해와 사천공항은 내년 2월, 제주공항은 내년 8월에야 착공이 가능하다. 정작 참사가 발생한 무안공항은 유가족들의 현장 보존 요구와 협의 절차로 인해 아직 첫 삽도 뜨지 못한 상태다.

다만 피해자 지원과 진상규명을 위한 제도적 장치는 마련되고 있다. 지난 4월 통과된 ‘12·29 여객기 참사 피해 구제 및 지원 특별법’에 따라 배상금 외에도 의료, 심리, 생계 지원이 포괄적으로 이뤄지고 있다.

이 대통령 역시 이날 “유가족의 일상 회복을 최우선으로 삼아 종합적 지원을 빠짐없이 이행하겠다”고 재차 약속했다.

국회 차원의 진상규명도 속도를 낸다. 지난 22일 출범한 ‘12·29 참사 국정조사특별위원회’는 내년 1월 현장 조사와 청문회를 예고했다. 국조특위는 사조위 조사 과정의 적절성, 국토부의 공항시설 관리 부실 의혹 등을 집중 추궁할 계획이다.

이 대통령은 이날 “12·29 여객기 참사는 우리 사회의 구조적 문제와 한계를 여실히 드러냈다”며 “다시는 같은 비극이 반복되지 않도록 하는 것이야말로 희생자 여러분을 기리는 최소한의 도리라고 생각한다. 책임져야 할 곳이 분명히 책임을 지는, 작은 위험일지라도 방치하거나 지나치지 않는, 모두가 안전한 나라를 반드시 만들어 가겠다”고 강조했다.

아울러 “다시 한번 희생자분들의 명복을 빈다. 유가족 여러분께도 깊은 애도와 위로의 마음을 전한다”고 덧붙였다.

한편, 광주·전남 전역에서는 이날 오전 9시3분부터 1분간 희생자를 기리고 재발 방지를 위한 공동체의 책임을 기억하자는 의미를 담은 추모 사이렌이 울렸다.

‘기억하라 12·29, 막을 수 있었다. 살릴 수 있었다. 밝힐 수 있다’를 슬로건으로 오전 10시부터 진행된 공식 추모식엔 유가족들과 사고 수습 참여자를 비롯해 1200여명이 참석해 희생자들의 영면을 기원했다.


추모식엔 김민석 국무총리, 김윤덕 국토교통부 장관 등 정부 고위 부처 관계자들, 우원식 국회의장, 정청래 더불어민주당 대표, 장동혁 국민의힘 대표 등 여·야 정치인들, 김영록 전남도지사, 강기정 광주시장 등 호남 지자체 단체장 등이 대거 참석했다.

김유진 제주항공 참사 유가족협의회 대표는 추모사를 통해 “지난 1년간 사과는 0건, 자료 공개도 0건, 책임자 구속 0건 등 조사는 멈춰서 있다”면서 “179명의 희생 참사에 대해 국가는 단 한 번도 제대로 답하지 않았다”고 호소했다.

그러면서 “유가족에 대한 최소한의 생존권 보장, 수많은 유언비어와 2차 가해로부터 보호, 사조위의 독립성 보장을 다시 한번 간곡히 부탁드린다”며 “제주항공 참사의 진실규명이 제대로 이행되지 않으면 이 같은 비극은 결코 끝나지 않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jungwon933@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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