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시사 취재2팀] 박정원 기자 = 이재명 대통령이 차기 서울시장 후보군으로 거론되는 정원오 서울 성동구청장을 공개적으로 치켜세우면서 내년 서울시장 선거 지형이 요동치고 있다.
이 대통령은 지난 8일 자신의 엑스(X·옛 트위터)에 성동구가 실시한 구정 만족도 조사 결과를 전한 언론 보도를 공유하며 “정원오 구청장님이 잘하기는 잘하나 보다. 저의 성남 시정 만족도가 꽤 높았는데, 명함도 못 내밀겠다”고 적었다.
이 대통령이 특정 기초자치단체장을 실명으로 언급하면서 공개 칭찬한 것은 취임 후 처음이다.
이 대통령이 공유한 기사에 따르면, 성동구가 한국리서치에 의뢰해 지난 10월21~24일 성동구 거주 만 18세 이상 남녀 150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2025 정기 여론조사’에서 “성동구가 일을 잘하고 있다”는 응답은 92.9%에 달했다. ‘매우 잘한다’는 응답도 48.6%로 절반에 가까웠다.
해당 조사는 휴대전화 가상번호를 활용한 100% 무선전화 면접 방식으로 진행됐으며, 표본오차는 95% 신뢰수준에서 ±2.5%p다.
정 구청장은 곧바로 엑스를 통해 “원조 ‘일잘러’(일 잘하는 사람)로부터 이런 칭찬을 받다니… 감개무량할 따름입니다. 더욱 정진하겠습니다”라고 화답했다. 정 구청장은 이 대통령의 글을 다시 공유하며 같은 메시지를 반복해 ‘직접 소통’ 분위기를 부각했다.
정 구청장을 둘러싼 두 사람의 밀착 이미지는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이 대통령은 더불어민주당 대표 시절부터 정 구청장에게 각별한 관심을 보여왔고, 지난달 청와대 영빈관에서 열린 기초지방자치단체장 간담회에선 정 구청장을 자신의 헤드 테이블에 배석시켜 눈길을 끌기도 했다.
당시 이 대통령은 “여기 계신 분들 중에 나중에 대통령하실 분들이 많이 나왔으면 좋겠다”고 말해 차세대 주자 띄우기 아니냐는 해석을 낳았다.
정치권에선 이번 공개 칭찬을 두고 서울시장 선거를 겨냥한 ‘메시지’가 아니냐는 분석이 나온다. 내년 지방선거를 약 반년 앞둔 상황에서 정 구청장이 민주당 서울시장 후보군의 한 축으로 부상한 가운데, 이 대통령이 사실상 ‘명심(明心)의 선택’을 드러낸 것 아니냐는 관측이다.
여권 안팎에선 박홍근·서영교·박주민·전현희·김영배 등 민주당 현역 의원들, 김민석 국무총리, 강훈식 대통령비서실장 ‘차출설’에 더해 기조단체장 출신 행정가 카드까지 아우르는 ‘다양한 조합 실험’이라는 평가도 나온다.
다만, 대통령실 관계자는 “선거와는 전혀 무관하다”며 “실력으로 본인의 성과를 냈으니 그런 부분에 대해 평가한 것”이라고 선을 그었다. 이 대통령이 성남시장·경기도지사 등 지방자치단체장을 거쳐 대통령에 오른 만큼 ‘일 잘하는 지자체장’을 독려하려는 취지라는 것이다.
그럼에도 여권 일각에선 이를 ‘정원오 띄우기’의 신호로 받아들이는 시각이 적지 않다. 특히 서울시장 선거를 현역 프리미엄이 강한 오세훈 현 시장과의 정면 일대일 대결이 아니라, 실력 좋은 행정가를 내세워 선거판에 신선한 바람을 일으켜 부담을 줄이려는 포석 아니냐는 해석이 나온다.
야권에선 이 대통령의 이 같은 행보에 대해 “관권 선거의 신호탄”이라며 맹공을 퍼부었다.
야권 서울시장 후보 중 한 명인 나경원 국민의힘 의원은 자신의 SNS를 통해 “사실살 여당 서울시장 후보를 겨냥한 ‘명심 오더’이자 대통령발 사전 선거운동”이라며 “특정 인물을 노골적으로 띄우는 선거 개입의 신호탄”이라고 비판했다.
그러면서 “대통령이 미리 찍어놓은 사람을 밀어주는 ‘관권 프라이머리’의 나쁜 싹을 차단해야 한다”며 “선관위는 이 사안을 엄중하게 들여다보고, 대통령의 선거법상 중립 의무와 사전 선거운동 금지 원칙을 훼손하는 행태에 대해 명학한 기준과 권고를 제시하라”고 촉구했다.
정이한 개혁신당 대변인도 논평을 통해 “대통령의 노골적인 명심 낙점”이라며 “단순한 덕담이 아니라 민주당을 겨냥한 노골적 ‘공천 가이드라인’이자 관권 선거 개입 논란을 자초하는 위험한 신호탄”이라고 맹공했다.
정 대변인은 과거 노무현 전 대통령이 ‘열린우리당이 많이 당선됐으면 좋겠다’는 발언으로 탄핵소추까지 당했던 사례를 언급하며 “지금 이 대통령의 발언은 그보다 더 직접적”이라며 “과거를 기준으로 하면 이미 선거 개입 논란의 경계를 훌쩍 넘어선 셈”이라고 주장했다.
이처럼 야권의 반발이 거센 가운데, 정 구청장을 향한 오세훈 서울시장의 평가는 미묘한 파장을 낳고 있다.
오 시장은 지난 7일(현지시각) 말레이시아 쿠알라룸푸르에서 가진 출장 기자단 간담회에서 “요즘 민주당 여론조사에서 두각을 나타내기 시작하는 정원오 구청장의 경우, 조금은 다른(서울시장 후보) 주자들과 차별화되는 입장을 보이고 있다고 평가한다”고 말했다.
특히 그는 정 구청장이 한강버스 사업을 두고 “어차피 시간이 흐르면 성공할 사업으로 보이니 초기에 시행착오에만 초점을 맞춰 비판하기보다는 좀 지켜볼 필요가 있다는 식의 견해를 밝힌 바 있다”고 설명했다.
앞서 지난달, 오 시장은 한 라디오 방송에 출연해서도 정 구청장에 대해 “일이 훌륭하다”면서도 “혹시 적군이 될지도 모르는데 그 이상 후하게 (평가)해야 하느냐”고 언급한 바 있다.
정 구청장의 여론조사 선전과 이 대통령의 공개 칭찬, 오 시장의 이례적인 호평 등이 겹치며 여야 모두 ‘정원오 변수’를 어떻게 관리·활용할지 셈법이 복잡해지고 있는 양상이다.
익명을 요구한 한 정치권 관계자는 “이 대통령의 SNS 한 줄이 정 구청장을 단숨에 전국구 반열에 올려놨다”며 “다만 동시에 여야의 집중포화를 자초한 표적도 달아준 셈”이라고 평가했다.
이 관계자는 “결국 내년 서울시장 선거는 정원오 개인의 경쟁력 못지 않게 대통령의 이런 ‘지원사격’이 약이 될지, 독이 될지를 가르는 시험대가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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