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윤호 교수의 대중범죄학> 형벌과 합리적 선택

  • 이윤호 교수
2025.09.29 15:55:27 호수 1551호

흔히들 인간은 합리적이라고 한다. 합리적이란 것은 어쩌면 꽤나 어렵고 복잡한 철학적 의미로까지 들릴지 모르지만 사실은 아주 단순한 논리이다. 즉 인간은 계산할 줄 안다는 것이다. 인간의 모든 행위는 이러한 계산된 결과에 따른 합리적 선택이라는 것이다.



이 같은 인간의 본성, 특성을 가장 잘 활용한 사람이 작고한 미국 시카고대학교의 경제학자인 게리 베커(Gary Becker) 교수다. 그에 따르면 범죄자도 사고하는 존재고, 따라서 계산하는 합리적 존재라는 것이다. 그는 범죄를 경제학적 관점에서 설명한 공으로 노벨 경제학상을 수상했다.

그는 범죄자는 범죄의 이익이 범죄의 비용을 능가하기 때문에 범행을 선택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사람들은 잠재적 비용 대비 기대하는 이익을 계산하는 의사결정 과정을 거쳐서 범행한다는 것이다. 당연히 범죄의 이익이 비용을 능가하지 못한다면 범죄는 선택되지 않고 행하지 않는다는 주장이다.

이런 합리적 선택과 관련된 인간 본성을 하나 더 더한다면 바로 자유의사(Free Will)일 것이다. 인간은 자유의지를 가진 존재며, 그의 모든 선택은 강제되거나 강요된 것이 아니라 스스로 자신의 자유의지에 따라 결정한 선택이다.

따라서 사람들은 누구나 자신의 선택과 행위에 전적으로 책임을 져야 한다는 것이고, 여기에는 범죄행위도 예외일 수 없다. 바로 이런 논리가 고전주의 관점의 형벌관이다.

이 같은 자유의사와 합리적 선택이라는 관점의 틀에서 본다면, 형벌은 체포돼 처벌될 위험성을 높여서 잠재적 이익과 보상을 능가하게 함으로써 스스로 인식하고 있는 범죄의 비용을 증대시켜서 계산할 줄 아는 합리적 존재인 개인들이 범행하지 않도록 범행의 동기를 억제하기 위해 의도된 것이라고 한다.


그렇다면 형벌을 통한 범죄 억제 효과를 높이기 위해서 형벌은 어떻게 해야 할까? 이 같은 취지의 형벌이라면, 당연히 신속하고, 확실하고, 엄중해야 한다. 누구나 어떤 범행을 할 때는 반드시 처벌되도록 하는 확실한 처벌이, 그것도 가급적이면 신속하고 엄중하게 이뤄져야 한다.

좀 더 구체적으로 합리적 선택에서 바라보는 형벌을 설명한다면, 가장 먼저 전제돼야 하는 게 비용-편익의 분석(Cost-Benefit Analysis)이다.

인간은 자신이 경제적 이득이건 개인적 만족이건 잠재적 이득이 구금이나 벌금이나 사회적 수치심 등 잠재적 손실과 비용보다 크다고 믿을 때만 비로소 범행하는 합리적 행위자라는 것이다. 이런 합리적 행위자에게 형벌은 범죄행위의 인지된 비용을 높임으로써 하나의 억제재(Deterrent)로 작용할 수 있다.

물론, 이런 합리적 선택의 관점도 나름의 한계가 없지는 않다. 우선, 과연 인간은 합리적 선택을 할 수는 있는가?

합리적 선택은 가능한 모든 조건이 제시되고 그중 가장 비용-편익이 긍정적인 것을 선택할 수 있어야 하나 몇 가지 문제가 있다.

먼저 이처럼 완전한 합리성(Rationality)은 있을 수 없으며, 기껏해야 제한된 합리성만 있을 뿐이고, 설사 합리적 선택이 가능한 조건이라도 모든 사람이 다 모든 경우에 합리적 선택, 그것도 동일한 계산과 선택을 하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더불어 모든 인간의 행위, 당연히 모든 범죄행위가 다 합리적 행위만은 아니라는 것이다. 예를 들어 감정적 충동에 의한 표출적 범죄(Expressive Crime), 합리적 선택과 결정의 장애가 있을 수 있는 미성년자나 정신 건강의 문제가 있는 사람에게도 과연 합리적 선택이 적용될 수 있을지 묻고 있다.

물론 합리적 선택과 인간의 자유의지에 기초하는 형벌을 통한 범죄 억제의 효과에 대해서는 당연히 논란과 논쟁이 현재도 진행 중이다.

하지만, 어쩌면 아직도 가장 보편적인 형벌로 자리 잡고 있다면 나름 정책적 함의가 없지 않은 것임에도 과연 우리는 이 같은 정책적 함의에 충분히 귀 기울이고 활용하고 있는지 의심스럽다.

안타깝게도 최근 빈발하고 있는 공중 협박 범죄, 어린이 약취 유인의 미수와 시도, 심지어 촉법소년에 의한 범죄에 대응함에 있어 합리적 선택을 전제로 하는 형벌을 통한 범죄 억제에 조금은 소극적이지 않았나 우려되는 부분도 없지 않다.


죄를 지어도 확실하고 신속하고 엄중하게 처벌되지 않는다면, 그 결과는 죄의식의 둔감화와 모방범죄의 성행이라는 원치 않는 부작용으로 돌아올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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