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일요시사 취재2팀] 박정원 기자 = 한국 축구가 ‘가위바위보도 져선 안 된다’는 한일전에 3연패라는 치욕을 경험했다. 안방에서 일본에게 우승 잔칫상을 차려줬고, 홍명보호는 기대 이하의 졸전 끝에 패배의 멍에를 썼다.
홍명보 감독이 이끄는 한국 남자 축구대표팀은 지난 15일 오후 7시24분 용인미르스타디움에서 열린 2025 동아시아축구연맹(EAFF) E-1 챔피언십(동아시안컵) 일본과 대회 최종 3차전에서 0-1로 패했다.
최종 스코어 2승1패로 대회를 마친 한국 대표팀은 이날, 3전 전승으로 일본이 우승 트로피를 들어올리는 모습을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지난 2022년에 이어 이번에도 일본이 동아시아 챔피언 타이틀을 지켜낸 순간이었다.
더 굴욕적인 것은 한국 축구 역사상 처음으로 한일전 3연패라는 치욕을 안게 됐다는 점이다.
2021년 요코하마, 2022년 나고야에서 연달아 0-3으로 패배의 쓴맛을 본 대표팀은 이번에 안방에서조차 승리를 거머쥐지 못했다. 게다가 이번 경기는 동아시아의 진정한 ‘호랑이’가 누군지 가리는 자리였다.
결과보다 더욱 뼈아픈 건 여전히 무엇 하나 눈에 띄는 것 없는 경기력이었다. 홍 감독은 중국, 홍콩과 대결에서 썼던 스리백 전략을 그대로 들고 나왔다. 이전 경기들에선 이 포메이션이 긴요하게 먹혀 들었으나, 그들은 약팀으로 평가되는 팀들이었고 일본은 압박과 조직력이 몇 수 위나 높은 강팀이었다.
이날 한국은 여전히 세밀한 조직력보단 롱볼과 기존의 득점 루트인 측면에서 올리는 크로스만으로 득점을 노리는 전략을 구사했다. 이 같은 전략은 결국 유효 슈팅이 단 ‘하나’밖에 나오지 않는 결과로 이어졌다.
대표팀은 전반 8분에 선제점을 내주면서 어려운 경기로 시작했다.
일본이 역습 상황에서 소마 유키(마치다 젤비아)의 크로스를 저메인 료(산프레체 히로시마)가 논스톱 왼발 발리슛으로 득점에 성공하면서 다급해졌다. 이후 경기 내내 일본의 수비 조직을 제대로 뚫지 못하는 답답한 모습만 보였다.

홍 감독은 경기 직후 인터뷰에서 “오늘 양팀을 놓고 봤을 때는 우리 선수들이 더 잘했다고 생각한다. 일본이 가진 장점은 그렇게 발휘하지 못했다. 물론 몇 장면 있었지만, 전혀 우리 수비한테 위협을 주지는 못했다”고 평가했다.
그러면서 “전체적으로 볼 점유율이라든지 슈팅 수라든지 모든 수치 면에서 우리가 훨씬 앞섰고, 그걸 떠나서 득점 장면 외에 우리 수비수들을 전혀 괴롭히지 못했다고 생각한다”고 설명했다.
그는 “일본은 지금까지 최종 예선 등 몇 년 동안 계속 같은 시스템에서 운영돼왔다. 새로운 선수가 들어오더라도 대표팀에 있는 매뉴얼 때문에 (구사하는 축구를) 금방 다 알 수 있다”며 “우리는 스리백이라는 것을 중국전을 시작으로 3경기에서 했다. 물론 결과를 못 낸 것에 아쉽고 팬들한테 미안하지만, 우리 선수들한테 희망을 본 경기라고 생각한다”고 부연했다.
그러나 대다수의 국내 축구팬들은 홍 감독의 ‘고평가’에 대해 이해할 수 없다는 분위기다. 인터뷰를 접한 축구팬들은 “어떻게 더 잘했는데 질 수가 있는 거냐” “경기 본 사람들은 안다. 전혀 위협적이지도 않았다” “모든 수치 면에서 앞섰으면 이기는 게 맞는 거 아닌가” “조별 리그도 아니고 결승전에서 지고 한 인터뷰가 이게 맞나” 등의 부정적인 반응을 쏟아냈다.
이날 경기장에서 눈에 띈 것은 텅 빈 관중석이었다. 한일전은 언제나 흥행 보증수표였다. 날씨, 장소, 교통, 해외파의 출전 유무 등 그 어떤 제약에도 구애받지 않고 흥행을 만들었던 게 바로 한일전이다.
그럼에도 이날 용인미르스타디움엔 1만8418명 밖에 오지 않았다. 심지어 경기장에서는 붉은 악마의 함성보다, “니뽄”을 외치며 일장기를 흔드는 일본 응원단 ‘울트라 니뽄’의 모습이 더 두드러졌다.
역대 한일전 홈경기는 1984년 정기전에서 5만명을 넘긴 것을 시작으로, 1985년 멕시코 월드컵 예선에선 7만명을 돌파했다. 역대 최다 관중은 1997년 프랑스 월드컵 예선에서 기록한 7만2000명이었다.
반면, 관중 집계가 시작된 이래 최소 관중 기록은 1989년 정기전의 2만명이었다. 홍명보호는 이 기록마저 경신하며 역대 한일전 ‘최소 관중’이라는 불명예까지 떠안게 됐다.
일각에선 홍명보호를 향한 한국 축구팬들의 ‘불신’(不信)이 여실히 드러난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
홍 감독은 지난 2013년, 동아시안컵 일본전에서 4만7258명 관중을 모았던 바 있다. 그러나 그때와 지금은 상황이 다르다. 홍 감독은 대표팀을 이끌면서 ‘불공정한 선임’이라는 논란마저 등에 업고 있기 때문이다.
북중미 월드컵까지 남은 기간은 단 1년, 홍명보호는 한국 축구의 경기력뿐만 아니라 성난 축구팬들의 민심까지 되돌려야 하는 적지 않은 과제를 떠안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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