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의 백자, 군자지향

2025.07.14 07:29:50 호수 1540호

이준광 / 은행나무 / 3만5000원

2018년 평창동계올림픽 성화대의 모델이자, 2023년 미국 크리스티 뉴욕 경매에서 약 60억원에 낙찰돼 큰 관심을 끈 달항아리는 조선백자를 대표하는 슈퍼스타다. 중국과 일본, 유럽이 화려함의 극치를 달리는 도자기에 열중할 때, 조선백자는 그와 정반대로 군더더기는 모두 버리고 핵심만 남겨 깊이를 더하는 순백자를 선택했다.



달항아리의 원래 이름은 ‘백자대호白磁大壺’로, 조선백자의 아름다움에 눈뜨게 하는 마중물과도 같은 작품이다.

그런데 조금 더 들여다보면 조선백자의 범주가 결코 달항아리와 같은 순백자에만 머물러 있지 않음을 알 수 있다. 고려청자의 기법을 물려받은 상감백자에서부터 최고급 안료를 사용해 주로 왕실과 사대부들에게 각광받았던 청화백자, 단지 청화백자의 대용품에 머물지 않고 독자적인 세계를 구축한 철화·동화백자에 이르기까지, 조선백자는 다양한 색과 문양, 형태로 제작되어 조선시대 전반에 걸쳐 그 시대를 살아간 사람들과 고락을 함께했다.

2023년 리움미술관 전시 <조선의 백자, 군자지향君子志向>전은 조선백자 국보 10점과 보물 21점, 그 외 일본 등 해외에 소재한 수준급 백자 34점을 포함해 총 184점을 소개한 역대급 규모인 것은 물론 관람 인원만 10만명에 육박, ‘오픈런’과 ‘N차 관람’까지 이어져 고미술 전시로는 이례적 성과라는 평가를 받았다.

이 전시를 책임 기획하며 ‘리움미술관의 BTS’라는 별명을 얻은 이준광 큐레이터가 직접 쓴 이 책은 전시를 기반으로 한 것은 물론 미공개 작품까지 포함해 현존하는 조선백자 최고의 명품들을 충실히 담아냈다. 무엇보다도 전시 중 관람객들과 직접 나누지 못한 조선백자에 대한 못다한 이야기들 그리고 애정이 이 책을 탄생하게 만들었다.

저자는 고려시대부터 도자기의 부침(浮沈)이 줄곧 국가의 흥망과 궤를 같이 해왔으며, 이것이 15세기 조선백자의 상황과도 꼭 들어맞는다고 말한다. 조선 건국 후 얼마 지나지 않아 1460년대에 왕실 백자를 전적으로 생산하는 관요가 만들어지고 이후 15~16세기에 걸쳐 조선백자 최고의 명품들이 탄생한다.


하지만 눈부신 발전도 잠시, 왜란과 호란, 이후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뒤이은 대기근으로 말미암아 17세기 조선의 국운이 곤두박질치면서 조선백자 역시 난관에 봉착하고 만다. 조선의 곤궁함은 청화안료 수급의 어려움으로 이어졌고 철화와 동화 안료가 그 자리를 대신한다.

그러나 이들은 단지 청화백자의 대체품에 그치지 않고 그 자체로 독특한, 또 다른 미의 세계를 창출해낸다. 용과 같이 왕을 상징하는 전통적인 문양을 개성적으로 변형하여 희화화하거나 사군자의 식물을 단순한 몇 개의 선으로 표현하는 과감한 추상성을 드러내는 등 참신하고 개성 넘치는 멋과 웃음이 백자 속에 담기며 조선백자는 또 한 번의 전성기를 구가한다. 이처럼 조선의 역사와 함께 숨쉬며 발전해온 조선백자를 통해 그간 미처 알지 못했던 고미술의 아름다움에 눈뜨고 옛 선조들의 정신을 마음속에 담는 특별한 경험을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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