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혐오’ 화교계는 지금…

2025.04.22 06:50:25 호수 1528호

학교서도 “중국어 쓰지 마”

[일요시사 취재1팀] 안예리 기자 = 중국 혐오가 임계점을 넘었다. 단순한 외교 갈등이나 여론의 왜곡을 넘어, 이제는 한국 사회 내 오랜 이주 공동체인 ‘화교 사회’까지 혐오의 불똥이 튀고 있다. 그동안 한국 사회의 경계 밖에서 조용히 살아온 화교들마저 더는 침묵할 수 없다는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최근 정치권 갈등으로 심화된 반중 정서가 화교 사회 내부까지 영향을 미치고 있다. 최근 윤석열 전 대통령에 대한 탄핵 심판이 격화되면서, 서울 광화문 일대에서는 ‘CCP(중국공산당) OUT’이라는 피켓을 쉽게 볼 수 있다. 일부 보수 세력들의 ‘중국 혐오’가 화교 사회까지 번졌다. 혐오 발언은 차이나타운을 포함한 화교 사회 내에서 점점 더 공개적이고 일상적인 일이 돼 가고 있다.

따돌림

지난 12일 인천 차이나타운서 <일요시사>가 만난 주희풍 인천화교협회 부회장은 “중국 혐오가 확실히 심해졌고, 화교 사회도 이를 체감하고 있다”고 우려했다. 인천 차이나타운은 100년이 넘는 역사를 가진 이주 공동체의 거점이다. 겉으로 보기에는 평온해 보이지만, 내부에서는 불안과 긴장이 점점 커지고 있었다.

주 부회장은 “협회 내의 복도서 누군가 ‘여긴 간첩의 소굴’이라고 외치고 간다”며 “그런 발언을 듣고 나면 불쾌함을 넘어 점점 무력감을 느낀다”고 토로했다. 그러면서 “예전부터 이런 일은 있었지만, 최근에는 그 수위와 빈도가 크게 달라졌다”고 밝혔다.

차이나타운에는 중국 혐오로 인한 범죄가 계속해서 증가했다. 이에 따라 차이나타운 인근 순찰도 강화됐다. 주 부회장은 “중국 혐오로 인한 범죄로 경찰 순찰이 강화됐고, 지구대서 협회 사무실을 자주 찾아와 상황을 점검하는 등 신경 쓰고 있다”고 언급했다.


“심화된 중국 혐오로 요즘은 우리를 보살펴 주는 사람들이 많아진 것 같다”고 말한 주 부회장은 “예전에는 이런 조치가 없었는데, 최근 들어 경찰의 순찰이 눈에 띄게 강화된 상황으로 그만큼 혐오 정서가 커지고 있다는 방증”이라고 설명했다.

화교협회에는 중국 대사관과 대만 대표부로부터 윤석열정부 관련 집회 장소 접근 자제를 당부하는 문자가 전달됐다. 주 부회장은 “대만 대표부서 지난 4일 윤석열 전 대통령 탄핵 선고 당시, 광화문과 헌법재판소 일대에 가지 말고 조심하라는 문자를 보냈다”고 전했다.

“간첩의 소굴” 행패
혐중 범죄 순찰 강화

중국 대사관 측에서는 “혹시라도 대규모 집회가 있을 경우, 구경도 하지 말라”는 우려의 문자도 왔다. 그는 “그런 문자를 받으면서 우리도 한편으로는 경계를 늦추지 않으려 노력하고 있다”고 말했다.

중국 혐오 문제는 나이를 가리지 않았다. 주 부회장은 “이제는 화교 아이들이 학교 밖에서 중국어를 쓰는 것조차 눈치를 보게 됐다”고 털어놨다. 그는 “아이들이 외부서 중국어를 사용하는 것이 이제는 눈치 보이고, 심지어 학교서 중국어를 쓰지 말라고 당부하고 있다”고 하소연했다.

모든 아이들이 행복해야 할 어린이날조차도 화교 아이들은 숨을 죽일 수밖에 없었다. 윤석열 전 대통령의 탄핵선고일이었던 지난 4일은 공교롭게도 대만 어린이날이었다. 그날 화교 학교에서는 어린이날 행사를 준비하고 있었다. 학교에서는 헌재 판결을 의식할 수밖에 없었다.

주 부회장은 “그날 어린이날 행사가 혹여나 축제처럼 비칠 것을 우려해 조용히 치르자는 분위기였다”고 설명했다.

중국 혐오의 피해는 화교 학교 학생들만이 겪는 문제는 아니었다. 일반 학교에 재학 중인 중국계 학생들이 학교서 중국계라는 이유로 차별을 당하는 일이 빈번했다. 주 부회장에 따르면, 중국식 이름을 가진 아이들은 이름 때문에 놀림을 받거나 차별을 겪는 사례가 늘고 있다.

탄핵 선고에도 숨죽인 차이나타운
갈수록 따가운 눈길에 ‘개명’까지

심지어 중국식 이름으로 따돌림을 당하는 아이들이 한국식 이름으로 개명하기 위해 협회로 발걸음하는 일이 잦아졌다. 그는 “화교들은 개명을 하려면 협회를 방문해야 하는데 부모가 아이들을 데리고 자주 온다”고 말했다.


미세먼지나 코로나19 관련 논란서 비롯된 혐오 발언들은 그동안 차이나타운 내에서 자주 발생했지만, 정치적 갈등이 양극화되면서 혐오의 방향은 더욱 공격적이고 뚜렷하게 나타났다.

주 부회장은 혐오가 단순한 개인의 감정서 나온 것이 아니라 정치적인 선동에 의해 유도되고 있다는 점을 강조했다. 그러면서 “혐오는 정치적 상황서 도구로 활용되고 있다”며 “이 사회가 계속 방관한다면, 혐오는 계속해서 살아남을 것”이라고 경고했다.

화교 사회에선 이제는 외부의 혐오와 싸워야 하는 시점에 이르렀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차이나타운 주민들이 겪는 혐오와 차별은 더 이상 일시적인 사회적 갈등으로만 치부할 수 없다. 중국 혐오는 한국 사회 내의 구성원으로 자리 잡은 화교 사회의 삶에 깊숙이 자리 잡고 있으며, 이는 단순히 이들의 피해를 넘어 사회 구조적인 문제로 다가오고 있다.

주 부회장은 “우리도 여기서 살아가고 있는 사회 구성원이다. 차이나타운과 화교 사회는 이제 혐오의 정서를 넘어, 우리가 이 사회서 동등한 권리를 갖고 살아갈 길이 열리길 바라고 있다”고 말했다.

대선 기대

화교 사회는 지난 정권에 몸살을 앓은 만큼 정권교체에 대한 기대도 크다. 주 부회장은 “우리는 진보 정권이 들어설 때 상황이 나아질 것이라고 기대하고 있다”면서 “차이나타운 상인들은 정권이 바뀐다면 지역경제가 되살아나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을 갖고 있다”고 말했다. 

<imsharp@ilyosisa.co.kr>


<기사 속의 기사> 차이나타운과 한중 관계

한중 관계의 변화는 차이나타운 경제에 중요한 영향을 미쳐 왔다. 특히, 사드(THAAD) 배치 문제와 같은 외교적 갈등은 차이나타운을 비롯한 화교 사회에 실질적인 경제적 타격을 입혔다. 

과거 차이나타운은 주말에는 관광객들로 붐볐고, 평일에는 주로 중국인들이 찾았으나, 한중 관계가 악화된 이후에는 중국인 관광객의 발길이 현저히 줄어들었다.


중국인 관광객들에게 차이나타운은 필수 관광 코스였지만, 대중국 외교 갈등으로 인해 타격을 입게 된 것이다. 

주희풍 인천화교협회 부회장은 “차이나타운이 잘될 때는 평일에 ‘요커(중국인 관광객)’들로 메워졌지만, 외교 갈등 문제로 중국인 관광객의 발길이 뚝 끊겼다”고 전했다. <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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