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야당 대표가 연루된 재판을 맡고 있던 판사가 사표를 던졌다. 재판 일정이 흐트러지면서 정국도 요동쳤다. 특히 4월 총선이 100일도 채 남지 않은 상황서 판사가 법원을 떠나자 그 배경을 두고 갑론을박이 오갔다. <일요시사>가 법관 인사 시즌과 맞물린 정치권의 사법 리스크를 분석했다.
지난해 9월 퇴임한 김명수 전 대법원장 시절, 이른바 ‘김명수 코트’서 불거진 재판 지연 문제는 법원의 화두가 된 지 오래다. 지난해 12월 취임한 조희대 대법원장은 취임사에서 재판 지연 문제를 해결하겠다고 공언했다. 더딘 재판 진행으로 고통받는 국민을 줄이겠다는 의지를 드러낸 것이다.
법원 의지
먹힐까?
조 대법원장은 취임 일성을 통해 “모든 국민은 신속한 재판을 받을 권리를 가지는데도 법원이 이를 지키지 못해 국민의 고통을 가중시키고 있다”면서 “구체적인 절차의 사소한 부분서부터 재판 제도와 법원 인력 확충과 같은 큰 부분에 이르기까지 각종 문제점을 찾아 함께 개선해나가야 한다”고 말했다.
‘조희대표 사법개혁’의 첫 단추로 여겨지는 천대엽 법원행정처장 역시 지난 15일 취임과 동시에 재판 지연 해결을 최대 현안으로 꼽았다. 천 처장은 취임식서 “당면한 사법 과제는 재판 지연의 해소”라며 “신속·공정한 재판을 통한 국민의 기본권 보장은 사법부의 소명”이라고 강조했다.
천 처장은 그 방안으로 법관 인사를 언급했다. 그는 “한 법원에서는 가급적 한 재판부에 안정적으로 근무할 수 있는 인사 및 사무분담 원칙이 정립돼야 한다”며 “고등법원 중심으로 기수 제한 등 다수 지방법원 법관의 진입장벽을 없애는 한편 불필요한 전보 등 인사를 최소화하는 방안도 마련하겠다”고 약속했다.
실제 천 처장은 대법원은 재판장 2년, 배석 판사 1년으로 교체 주기가 정해져 있는데 이를 예규 개정을 통해 각각 3년과 2년으로 늘리겠다고 밝히는 등 재판 지연 해결에 강한 드라이브를 걸었다.
사무 분담이 자주 바뀌면서 심리 주체와 판결 주체가 분리되는 경우가 발생하고 그에 따라 재판 지연 등의 부작용이 나오는 것을 막겠다는 취지다.
실제 재판 도중 재판부가 바뀌면 새로운 재판부가 사건 내용을 다시 검토하게 된다. 법조계에서는 법관 인사 전후로 재판 적체가 심해진다는 지적이 나왔다. 법원행정처는 인사 주기를 늘려 이를 완화하겠다는 뜻을 드러낸 것이다.
대법원장·법원행정처장 해결 의지
잦은 이동, 재판 지연 원인으로
‘조희대 코트’의 첫 시험대는 법관 인사가 될 것으로 보인다. 특히 다음 달 2일에 있을 정기 법관 인사가 조희대 코트의 방향성을 제시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지난 26일 단행된 법원장, 고등법원 부장판사·판사 등 고위 법관급 인사에 이어 전국 지방법원 부장판사 이하 법관 정기인사가 진행되면서 본격적인 인사 시즌에 접어들었다.
눈여겨볼 부분은 법관 인사가 가져올 후폭풍이다. 4·10 총선이 코앞으로 다가온 시점서 법관 인사는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이재명 대표의 사법 리스크와 완벽하게 맞닿아 있다. 민주당 대선후보 경선 시기 불거진 대장동 개발사업 특혜·로비 의혹을 비롯한 각종 사건은 이 대표의 가장 무거운 꼬리표로 자리 잡은 상태다.
이미 이 대표의 사법 리스크는 법관 인사에 영향을 받고 있다.
최근 이 대표의 공직선거법 위반 재판을 심리 중이던 강규태 서울중앙지법 부장판사가 사표를 제출하면서 1심 선고 시기가 불투명해졌다. 이 대표는 지난 대선 과정에 방송사 인터뷰와 국정감사 등에서 대장동·백현동 개발사업 관련 의혹에 대해 허위 사실을 공표한 혐의로 2022년 9월 기소됐다.
이 대표의 공직선거법 재판 1심 판결은 총선과 맞물려 최대 화두로 떠오른 상태였다. 판결에 따라 정치권에 미칠 영향이 엄청날 것이라는 분석도 나왔다. 하지만 강 판사가 다음 달 법관 정기인사를 앞두고 사표를 제출하면서 총선 전 1심 선고는 물 건너 간 상태다.
강 판사의 사의 표명은 정치적 논란으로 번졌다. 여당인 국민의힘은 강 판사의 행보를 두고 “이재명 방탄의 1등 공신”이라고 비판했다. 국민의힘 김민수 대변인은 “선거법 사건은 6개월 이내에 끝내도록 법이 규정하고 있지만 (강 판사는)이 대표 재판을 16개월 동안 지연시켰다”고 지적했다.
비판의 목소리가 커지자 강 판사는 이례적으로 공개 해명을 내놨다. 강 판사는 지난 19일 재판 시작에 앞서 “법관이 세상을 향한 마이크를 잡아서는 안 되지만 제 사직 문제가 언론에 보도돼 설명을 해야겠다”고 말을 꺼냈다.
인사 전
줄사표
그는 “저희 재판부(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34부)는 경제범죄 사건을 전담하는데 증인이 30명 안팎인 경제 사건이 8건 이상 계속 진행 중”이라면서 “사건 배당이 중지되지 않은 상황서 불구속 사건인 이 대표 사건을 매주 진행할 여력이 없었고, 물리적으로 총선 전 판결은 선고하기 어려웠다”고 말했다.
강 판사의 사표 제출로 총선 전 1심 선고가 어려워졌다는 비판을 의식한 듯한 발언이었다.
그러면서 “남은 증인이 16명에 달하는 데다가 검찰 구형과 판결문 작성 등이 남아 있고 (제가)사직하지 않았더라도 법관 정기인사에 따라 재판장 및 배석판사가 재판부를 옮길 예정이었다”고 주장했다.
일각에서는 2주에 한 번씩 열린 공판을 주1회 재판으로 진행했다면 총선 전에 1심 선고가 났을 것이라는 지적이 나왔다.
문제는 이 대표가 연루된 사건이 공직선거법 위반만이 아니라는 점이다. 법관 인사와 맞물리면 공직선거법 재판 사례처럼 재판부 교체로 사건이 한도 끝도 없이 늘어질 가능성이 존재한다. 이 대표 입장에서는 사법 리스크의 꼬리표를 떼지 못하는 것이고 법원 입장서도 재판 지연이라는 비판을 피해갈 수 없는 대목이다.
현재 이 대표는 공직선거법 위반 재판을 포함해 총 3개 재판을 동시에 받고 있다. 서울중앙지법 형사33부는 이 대표의 위증교사 혐의 사건 재판을 지난 22일 시작했다. 이 대표는 경기도지사 후보로 출마한 2018년 6·13 지방선거 당시 선거방송서 ‘검사 사칭 사건’과 관련해 허위 사실을 공표했다는 혐의(공직선거법 위반)로 기소됐다.
검찰은 이 대표가 자신의 선거법 위반 혐의 재판에 증인으로 나선 김모씨에게 ‘유리한 진술을 해달라’고 수차례 연락해 위증을 부탁했다며 위증교사 혐의를 적용한 바 있다.
1심 선고
언제 나나
여기에 이 대표와 민주당 정진상 전 당 대표실 정무조정실장이 뇌물 및 배임 혐의로 기소된 ‘대장동·위례·백현동·성남FC사건’ 재판도 서울중앙지법 형사33부서 진행 중이다. 이 대표 측은 해당 사건과 위증교사 사건을 병합해 달라고 재판부에 요청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당초 위증교사 사건은 사실관계와 적용 법리가 간단해 심리에 오랜 시간이 소요되지 않을 것이라는 관측이 제기됐다. 또 지난해 9월 이 대표의 구속영장이 기각될 당시 법원이 “위증교사 혐의는 소명되는 것으로 보인다”고 밝혀 총선 전에 1심 선고가 나올 것이라는 분석이 나오기도 했다.
하지만 두 재판 모두 법관 인사로 인해 재판부 교체 가능성이 나오면서 진행 일정이 늘어질 수 있다는 분석이 나왔다. 다음 달 2일로 예정된 법관 정기인사는 한 법원서 2년간 근무한 판사도 대상인데 대장동·위례·백현동·성남FC사건 재판의 주심 판사가 이름을 올린 상태다.
주심 판사는 재판서 사건 심리나 판결문 작성에 주도적인 역할을 한다. 주심 판사가 교체되면 재판 결과가 나올 때까지 시간이 더 걸릴 수밖에 없다는 뜻이다. 특히 대장동·위례·백현동·성남FC사건은 이미 공전을 거듭하면서 당초 계획과 달리 상당히 늘어지고 있는 상태다.
지난해 9월에는 이 대표의 단식 투쟁으로 재판이 3주간 연기되기도 했다.
김만배씨 등 대장동 민간 개발업자들이 연루된 ‘대장동 본류’ 사건 재판도 재판부 교체 가능성이 크다. 재판장을 포함해 주심 판사 모두 정기인사 대상이다. 이 대표가 직접 재판을 받고 있는 사건은 아니지만 결과에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는 구조다.
일각에서는 1심 선고에만 4년이 걸린 양승태 전 대법원장 사법 농단 사건처럼 초장기 재판이 될 가능성도 제기된다.
대장동 재판 재판부 교체 가능성
흉기 피습 사건으로 더 늦어지나
이 대표의 상황도 재판 지연에 한몫을 하고 있다. 이 대표는 부산서 흉기 피습을 당해 병원에 입원했다가 최근 퇴원했다.
이 대표 측은 흉기 피습 사건 이후 건강상의 이유로 당분간 출석이 어렵다고 밝혔다. 당시 재판부는 “이 대표 일정에 맞춰 재판을 진행하면 끝이 없다”며 “피고인이 없어도 증인신문을 할 수 있는 규정을 활용해 재판을 진행하겠다”는 입장을 밝힌 바 있다. 원칙적으로 형사재판에는 피고인이 참석해야 한다.
이 대표는 지난 23일 대장동·위례·백현동·성남FC사건 재판에 출석했다가 재판부 허가를 얻어 일찍 퇴정했다. 오전에는 자리를 지키다가 오후 재판에 퇴정을 요청한 것. 재판부가 이 대표의 건강상태를 고려해 퇴정을 허가한 것으로 보인다.
검찰은 “형사재판은 피고인이 출석해 진행하는 게 원칙”이라며 “피고인의 상황을 확인할 수 없어 의견을 제시할 순 없지만 향후에는 재발하지 않았으면 한다”고 불편한 기색을 드러냈다. 재판부는 “피고인의 말을 믿고 퇴정을 허가하는 것”이라며 “(앞으로)출석은 원칙적으로 해야 한다”고 이 대표에 당부했다.
이 대표의 사법 리스크는 총선이 다가오면서 존재감을 키우는 모양새다. 당 안팎에서는 사법 리스크, 재판 리스크에 휩싸인 이 대표를 중심으로 총선을 치를 수 없다는 비명계 의원들의 반발이 상당하다. 갈등이 심화되면 당이 완전히 쪼개질 가능성도 있다.
여기에 흉기 피습 사건의 전원 과정에서 불거진 특혜 의혹으로 의료계가 반발하고 부정적 여론이 번지는 등 타격이 상당한 상태다.
4월 총선
영향 가나
이 대표는 2020년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로 항소심서 당선 무효형을 받고 위기에 빠졌다가 대법원의 무죄 취지 파기환송으로 기사회생한 바 있다.
당시 판결로 권순일 전 대법관과 김만배씨의 재판거래 의혹이 불거지기도 했다. 검찰의 구속영장 청구, 국회의 체포동의안 통과로 나락에 떨어졌던 때에도 유창훈 판사의 기각으로 부활했다. 이번 법관 인사가 이 대표에 어떤 영향을 끼칠지 관심이 집중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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