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체로 강도나 절도와 같은 전통적 범죄는 서로 알지 못하는 사람들 사이에 발생한다. 이런 이유로 사람들은 낯선 사람들로부터의 공격과 범죄를 두려워한다.
살인은 놀랍게도 낯선 사람보다 아는 사람 사이서 더 빈번하게 발생한다. 가해자와 피해자의 관계, 범행의 상황, 동기 등을 연구하는 학자들은 이를 살인에 대한 첫 번째 통념이라고 한다. 학자들의 연구결과나 공식 범죄통계는 살인의 가해자와 피해자가 면식관계, 즉 서로 아는 사이가 많다는 사실을 잘 보여준다.
물론 살인이라고 모두가 이런 통념이 적용되지는 않는다.
강도 살인, 강도 강간과 같이 물질적 취득이나 기타 마른 목적을 위한 수단으로서의 살인을 학문적으로 ‘도구적(Instrumental) 범죄’라고 한다. 도구적 범죄로서의 살인은 서로 알지 못하는 관계서 일어날 확률이 더 높다.
치정이나 보복 등을 목적으로 하거나 다수의 증오범죄를 포함하는 범죄 그 자체가 목적인 범죄를 이른바 ‘표출적(Expressive) 범죄’라고 한다. 다수 살인범죄는 표출적 범죄에 해당되는데 대부분이 면식 관계서 발생한다.
그렇다면 살인은 왜 우리의 상식적 사고와는 사뭇 다를까? 그 이유는 살인을 포함하는 대부분의 폭력범죄의 특성 때문이다.
범죄학에서는 대인범죄의 경우 가해자와 피해자가 물리적 거리는 가까우면서 감정적·심리적 거리가 멀어질 때 일어날 개연성이 높다고 한다. 이 같은 주장의 논거는 폭력이 행사될 수 있는 물리적 사정거리 안에 표적, 피해자가 있어야만 폭력이 행사될 수 있기 때문이다.
보편적으로 살인과 같은 극단적인 폭력은 그야말로 범죄의 극단성에 버금가는, 아니 그 이상의 극단적인 감정을 요구하기 마련인데 아무런 감정적 관계가 없는 낯선 사람에게 극단적 감정을 느끼는 건 쉽지 않다.
금전적 이득과 같은 다른 목적을 위한 수단이나 도구가 아닌 폭력범죄를 ‘관계의 범죄(relational crime)’라고 하는데, 이 관계는 서로 알지 못한다면 성립될 수 없다. 아는 사이여서 물리적 거리는 확보되고, 갈등관계서 동기도 주어질 수 있기 때문에 아는 관계서 일어나기 쉬운 관계의 범죄가 적어도 표출적 살인의 모습이라는 것이다.
피해자학에서는 살인을 계획된 범죄인가, 아니면 우발적 충동의 범죄인가에 따라서 피해자와 가해자의 관계가 구별되기도 한다.
동기가 분명하고 면식 관계의 살인이라면 그 피해자는 아무나 될 수 있는 것이 아니고 관계가 있는 특정한 사람이어야 하는데 이런 피해자를 우리는 ‘바뀔 수 없는 피해자(unexchangeable victim)’라고 한다.
반면 아무런 관계가 없이 누구라도 그 시간과 장소에 있었으면 피해자가 될 수 있는 피해자를 ’바뀔 수 있는 피해자(Exchangeable victim)’라고 한다. 표적이 특정되지 않고 불특정 다수인을 대상으로 하는 살인을 우리는 흔히 ‘묻지마 범죄’ ‘무동기 범죄’라고 부르는 ‘무작위 폭력(Random violence)’이라고 한다.
살인범죄의 또 다른 하나의 통념은 사람들이 무조건적으로 가해자, 즉 살인범죄자가 그 피해자보다 훨씬 나쁜 사람이고, 그래서 가해자보다 피해자에게 더 많은 동정을 보내기 쉽지만, 현실은 반드시 그렇지만은 않다는 것이다.
이와 함께 가해자가 사람을 살해했다는 단순한 이유로 가해자가 피해자보다 더 강하고 힘이 센 사람으로 생각하기 쉬우나 이 또한 꼭 그런 것만은 아니다. 힘센 사람은 상대를 죽이지 않아도 이길 수 있는 자원과 방법과 능력이 다양하지만, 가해자는 강한 상대를 이길 수 있는 기술, 능력, 자원, 방법이 별로 없어서 상대를 살해하는 것만이 유일한 선택일 수도 있다는 것이다.
미국 필라델피아 연구 결과로 Wolfgang이 주장한 ‘피해자 촉발, 유발’의 범죄, 예를 들어 주거침입 강도가 집 주인에게 살해당하거나, 매 맞는 아내가 견디다 못하고 극단적 선택으로 때리는 남편을 살해한 가정폭력과 같은 사례가 여기에 해당된다.
[이윤호는?]
동국대 경찰행정학과 명예교수
고려사이버대 경찰학과 석좌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