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4년 제자리’ 여순사건 현주소

2022.10.24 13:07:07 호수 1398호

아무도 눈물 닦아주지 않았다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매년 10월이면 전남 여수와 순천에 슬픔이 내려앉는다. 지금껏 아무도 희생자와 그 가족의 눈물을 닦아주지 않았다. 70여년, 세대가 두 번 바뀔 만큼의 시간이 흐르고 나서야 정부가 손을 내밀었다. 



지난 19일은 여순사건이 일어난 지 74주년 되는 날이었다. 여순사건은 정부 수립 초기인 1948년 10월19일 전남 여수·순천 지역에 주둔하고 있던 국방경비대 제14연대 소속 군인들이 제주 4·3사건 진압 명령을 거부하면서 일으킨 반란을 정부군이 진압하는 과정에서 벌어진 일이다.

군대서 촉발

여수·순천 등 전남과 전북, 경남 일부 지역에서 무력 충돌‧진압 과정에서 다수의 민간인이 억울하게 죽임을 당했다. 오랜 시간 사건에 대한 진상규명과 명예 회복에 대한 요구가 있어왔지만 정부는 큰 움직임이 없었다. 

‘74년 눈물, 우리가 닦아줘야 합니다’. 지난 19일 전남 광양시에서 여순사건 74주기 합동추념식이 정부 주최로 열렸다. 여순사건 추념식이 정부 주도로 진행된 건 이번이 처음이다. 이날 추념식에는 정부 대표로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을 비롯해 김영록 전남지사, 여수·순천·광양·고흥·구례·보성 등 전남 6개 시·군 단체장과 부단체장, 지역 국회의원, 유족, 시민 등이 참석했다. 

특히 전국에 흩어져 있는 여순사건 유족이 한자리에 모였다는 점에서 그 의미가 컸다. 유족은 지난달 유족회 연합체인 ‘여순10·19항쟁전국유족총연합’(이하 유족총연합)을 출범시켰다. 희생자·유족 배·보상, 국가기념일 지정, 평화공원 건립 등 현안에 한 목소리를 내기 위해 뭉쳤다.


이규종 유족총연합 상임대표는 “10·19 항쟁 이후 죽지 못해 살았던 모진 세월이 올해로 74년이 됐다. 매년 80~90세 노령의 유족이 세상을 떠나고 있고 그분들이 살아왔을 한 많은 삶을 생각하면 가슴 밑바닥부터 뜨거운 눈물이 솟구쳐 앞을 가린다”고 인사말을 전했다. 

그러면서 “여순사건이 대한민국 역사라고 정당하게 규명되고 진실이 명백히 밝혀져 명예 회복이 되는 그날이 우리 아버지를 만나는 날이 될 것”이라고 강조하면서 “왜곡된 진실을 바로잡기 위해 유족과 뜻있는 지역사회 지도자들이 오랜 세월 노력해온 결과, 소병철 의원이 대표발의한 특별법이 통과됐고 그에 근거해 유족 신고가 되고 있으나 아직 미흡하다”고 설명했다.

첫 정부 주최 추념식
지난해 특별법 제정

지난해 6월29일 국회는 ‘여수·순천 10·19사건 진상규명 및 희생자 명예회복에 관한 특별법’, 이른바 여순사건 특별법을 통과시켰다. 국무총리 소속으로 ‘여순사건 진상규명 및 희생자 명예회복위원회’를, 전남지사 소속으로 ‘실무위원회’를 설치하도록 했다. 

해당 위원회는 구성 이후 2년간 진상규명 조사권, 조사 대상자 및 참고인에 대한 진술서 제출 및 출석 요구권을 갖는다. 3회 이상 출석 요구에 불응하는 중요 참고인에 대해서는 동행 명령장 발부도 가능하다. 여기에 국가가 희생자에게 의료·생활지원금을 지급할 수 있는 규정도 포함됐다. 

여순사건 특별법은 2001년 16대 국회 이후 4차례 발의됐으나 국회 문턱을 넘지 못하다가 지난해 여야 합의로 통과됐다. 국가가 관리하는 군대에서 시작된 사건을 국가 차원에서 진상을 규명하고 희생자의 명예 회복을 위한 첫발을 뗐다는 점에서 큰 의미를 지닌다. 

당시 법안을 대표발의한 더불어민주당 소병철 의원은 “73년의 피맺힌 한과 20년 동안 국회에서 법안 통과가 무산된 좌절을 오늘로써 마침표를 찍게 됐다”며 “긴 세월 견뎌 오신 희생자와 유족에게 진심으로 머리 숙여 위로와 감사의 말씀을 드린다”고 밝힌 바 있다. 

일각에서는 희생자와 유족에 대한 배‧보상 등 구체적인 지원방안이 특별법에 명시되지 않아 ‘아쉽다’는 반응이 나오긴 했지만 국가가 여순사건을 위한 ‘첫 걸음’에 나섰다는 점에서 긍정적인 평가가 많았다. 

이후 여순사건에 대한 정부의 보폭이 넓어졌다. 지난 6일에는 ‘여수·순천 10·19사건 진상규명 및 희생자 명예회복위원회’(이하 위원회)가 여순사건 희생자 45명과 유족 214명을 결정했다. 지난 1월 위원회 출범 후 첫 희생자 결정이다.

위원회에 따르면 이번에 결정된 희생자 45명은 전원 사망자다. 유족은 배우자 1명, 직계존비속 190명, 형제자매 19명, 4촌 이내 방계혈족 4명 등이다. 


위원회 출범·희생자 결정
“유족 위한 보상 필요해”

위원회는 본격적으로 진상규명 조사도 시작했다. 2024년 10월까지 위원회와 실무위원회, 관련 시‧군이 합동으로 조사단을 꾸려 진행한다. 그동안 접수된 신고 건수는 지난달 말 기준 3200건이다. 문헌상 다수의 희생자가 발생한 것으로 파악되지만 희생자 신고 접수가 저조한 전북 남원지역에 대한 직권조사도 실시된다. 

당시 한덕수 국무총리는 “여순사건 추념식을 앞두고 실질적인 첫 조치를 할 수 있게 돼 매우 뜻깊게 생각한다”며 “오늘의 조치가 희생자와 유족에게 아주 작은 위안이라도 되기를 소망한다”고 밝혔다. 

이어 “정부는 여순사건의 진상을 철저히 규명하고 희생자 한 분의 누락도 없도록 최선을 다할 것”이라며 “희생자와 유족의 아픔이 온전히 치유될 때까지 국가의 책무를 끝까지 다하겠다”고 덧붙였다. 

정부의 의미 있는 첫걸음을 이어가기 위해서는 미흡한 신고, 유족에 대한 배·보상 문제 등 해결해야 할 부분도 많다는 지적이 나온다. 특히 사건이 처음 발생하고 74년이 흐른 만큼 유족의 높은 연령대에 대한 우려가 끊임없이 제기된 바 있다.

희생자의 유족이 정부의 빠른 대처를 바라는 이유도 이 때문이다. 

민주당 서동용 의원은 지난 18일 여순사건 희생자와 유족에 대한 국가 보상이 가능하도록 여순사건 특별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진상규명과 희생자의 명예 회복에 초점을 맞추고 있는 현행법에 보상 규정을 추가했다. 개정안은 ▲희생자 및 유족에 생활지원금 지급 ▲특별 재심 규정 신설 ▲진실‧화해조사위원회 조사 결정에 대한 경과조치 신설 등을 골자로 한다. 

국가 책임

서 의원은 “한평생 사건의 진상규명과 명예 회복을 바라며 특별법 제정만을 기다려온 희생자와 유족을 위해 진상조사가 완료되는 대로 즉시 보상이 이뤄지고 유족에게 실질적인 지원이 가능하도록 개정할 필요가 있다”고 법안 발의 배경을 밝혔다. 



<jsjang@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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