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KT에스테이트 직원 갑질 고발

2022.07.07 12:58:28 호수 1382호

“내 물고기 밥 좀 줘”

[일요시사 취재1팀] 남정운 기자 = KT 계열사 직원이 하청업체 직원에게 ‘갑질’을 일삼았다는 폭로가 나왔다. 그중 일부는 증거마저 명확하다. ‘센터장’으로 불리는 직원은 피해자에게 소리를 지르고, 사적 지시를 강요했다. 회사 측 대처도 탐탁지 않았다. 회사는 이를 인지하고도 3주 동안 가해자와 피해자를 분리하지 않았다. 더군다나 자체조사 결과는 한 달 반째 감감무소식. 이제 피해자는 사건이 조용히 묻힐 것이란 불안에 떨고 있다.



피해자 A씨를 간접 고용한 KT에스테이트 이야기다. KT에스테이트는 비주거용 건물을 개발·관리하는 KT그룹 계열사다. 보유 건물이 많은 만큼 건물(센터)마다 직원을 배치하고 시설관리·경비·환경미화 등은 하청업체를 통해 간접 고용하는 방식을 취했다.

감감무소식

가해자로 지목된 직원 B씨는 KT에스테이트 소속이고 피해자 A씨는 하청업체 소속의 시설관리인이다. 센터장 B씨는 회사 건물에서 각종 화분과 물고기를 키운다. 꽤 정성을 쏟아야 하는 취미생활이다. 어느 날 A씨는 B씨에게 “물고기 밥을 부탁한다”는 연락을 받았다. 이것이 업무와 관련 있을 리는 만무했다.

<일요시사>는 A씨가 사적 지시를 받았다는 메신저 내용을 직접 확인했다. 메신저 속 B씨는 A씨에게 “내일 물고기 밥 부탁해요. 오늘 주고 온다는 것을 깜빡했네요”라고 지시했다. 다른 날 있었던 대화에서도 비슷한 지시를 찾아볼 수 있었다.

A씨는 “업무와 상관없는 일이라는 것도, 내가 해줄 필요가 없는 일이라는 것도 알고 있었다”면서도 “하지만 거절할 수 없었다. 늘 ‘재계약’ 이야기를 듣다 보니, 혹시 불이익을 받게 되는 건 아닌지 두려웠다”고 털어놨다.


A씨 주장에 따르면 B씨는 평소 그에게 “70(세)까지 일해야 하지 않겠느냐” “(하청업체)간부에게 잘 말해주겠다”는 말을 반복했다. A씨는 1년짜리 계약직으로, 매년 계약을 갱신하는 형태로 고용됐다.

또 B씨는 A씨에게 “어항을 바꿔야 한다. 판매처를 알아보고 하나 구매해오라”고 지시했다. A씨는 이 지시 역시 거부하지 못했다. B씨가 “얼마에 샀느냐”며 내미는 5만원 지폐도 선뜻 받지 못했다. A씨는 “돈을 받았다가 어떤 문제가 불거질지 몰라 받기 꺼려졌다”고 설명했다.

어항 청소도 A씨 몫이었다. B씨는 A씨에게 어항 청소를 지시하는 대신, 넌지시 말을 흘렸다. 눈치가 보인 A씨는 B씨가 말을 꺼낼 때마다 어항을 청소했다.

A씨는 “B씨에게 시설 보수·행정 사항 등을 보고할 때 (B씨가)가끔 어항 청소 얘기를 꺼냈다”며  “‘청소할 때가 됐네’ ‘어항 청소해야지’라는 식으로 말하면, 그냥 나올 수 없었다. 결국 청소하게 됐다”고 토로했다. 이어 “직접적인 지시는 없었다고 해도, 그 상황에서 어떤 계약직이 그냥 나올 수 있었겠느냐”고 반문했다.

하청업체 직원에 막말·고성
화분·어항관리 사적 지시도 

또 A씨는 B씨가 “이상한 업무지시를 내렸다”고 하소연했다. 목적과 실익은 불분명한데, 무리한 강도의 업무지시가 반복됐다는 것. 심지어 A씨 주장에 따르면 이 같은 지시들은 대부분 A씨 업무 범위를 벗어나는 것이었다. A씨는 B씨가 하청업체 직원들을 괴롭히기 위해 일부러 이상한 업무지시를 내렸다고 의심하고 있다.

B씨는 지난 2월 그에게 “폐쇄된 테니스장 낙엽을 치우고, 고사목을 자르라”고 지시했다. 그와 경비원·미화원 등 3명은 영하의 날씨에 언 손을 녹여가며 작업에 열중했다. 꼬박 닷새가 걸렸다. 

겨우 일을 끝내자, B씨는 “화단 너머의 낙엽도 모두 치우라”고 지시했다. 30년 동안 쌓인 낙엽을 직원 단 세 명이 처리하라는 지시였다. 시작할 엄두도 나지 않을 만큼 많은 양이었다. 결국 우여곡절 끝에 인근 건물 시설관리인까지 동원됐다. 낙엽 치우기는 인력 7명이 투입되고 마대자루 24개가 가득 차고서야 끝이 났다.

A씨는 “겨울날 온갖 고생을 다 하며 폐쇄된 테니스장 주변을 치워놨는데, 치운 지 다섯 달이 다 돼가는 지금까지도 그곳을 활용한 적이 없다”며 “이럴 거면 왜 굳이 그 추운 겨울날, 그런 일을 시킨 것인지 이해가 되지 않는다. 누가 봐도 괴롭히려는 의도가 다분했던 것으로 보이지 않느냐”고 지적했다.

B씨는 A씨의 거취를 압박하는 듯한 발언을 여러 번 남긴 것도 모자라 막말과 고성까지 이어갔다. 그는 A씨가 자초지종을 설명하자 “뭐 이렇게 말이 많느냐. 말대꾸 하지 말라”고 윽박질렀다. B씨는 A씨보다 나이가 5살가량 적다. 


A씨가 지시에 난색을 표하자 “하려면 하고, 하지 않으려면 말라. 하려면 제대로 하고 못 하겠으면 뻗든가”라고 말하기도 했다. A씨는 <일요시사>와의 통화에서 “모멸감에 쉽게 잠을 이루지 못할 정도였다. B씨와 대화를 나누는 것 자체가 압박이자 스트레스였다”고 고백했다.

결국 A씨는 지난 5월17일 B씨를 KT에스테이트 윤리경영실에 신고했다. 하지만 가해자로 신고당한 B씨는 그 후로도 3주간 정상 출근했다. 이 기간 중 회사는 A씨에 대한 별다른 보호조치도, 가해자·피해자 분리조치도 하지 않았다. B씨는 3주가 지나서야 다른 건물로 근무지를 옮겼다.

<일요시사>는 KT에스테이트 측에 A씨와 B씨를 즉각 분리하지 않은 이유를 문의했다. KT에스테이트 관계자는 “신고가 들어왔어도 의혹만으로 업무 중인 직원을 배제할 수는 없었다”며 “처음부터 분리를 고려했던 것도 아니었고, 업무 대체 인력을 마련하는 대로 분리했다. 그러다 보니 3주 정도가 소요됐다”고 답했다.

한 달 넘게 “사실 확인 중”
사측 뭉그적에 불안감 호소

그 사이 A씨는 B씨에게 장문의 연락을 받았다. B씨는 A씨 책상에 어항값을 올려두고 메신저를 통해 연락했다. B씨는 메신저에 “소장님 자의가 아니라 제가 시켜서 했다고 하니 기름값 포함해서 드린다”며 “그동안 저한테 했던 것이 순수한 마음인 줄 알고 나름 잘해드리려고 했는데 제 착각이었다”고 적었다.

이어 “생전 처음 소리 한 번 질렀는데 상처가 됐나 보다. 상처 받았다면 죄송하다”면서도 “소리를 지른 것은 인정하나 업무 강요한 적은 없는 것 같은데 무슨 말씀인지 모르겠다. (A씨가)오히려 제게 갑질한다는 생각은 안 드시는지요?”라고 따져 물었다. 

글 말미에는 “스트레스로 심장병 생기기 직전”이라는 말도 따라붙었다.

A씨는 자신이 신고한 사실을 알고 있는 B씨와 여전히 마주치며 압박감을 느꼈다. 회사가 업무에 차질이 없도록 ‘방책’을 찾는 동안, 그는 어떤 보호도 받지 못하고 ‘방치’됐다.

회사 측은 A씨에게 “사실관계를 파악하는 대로 적절한 조치를 하겠다”는 입장을 전했다. 하지만 신고가 들어간 지 한 달 반이 지났음에도, 회사는 별다른 조치를 하지 않았다.


A씨는 이대로 사건이 묻히지 않을지 노심초사하고 있다. 그는 “회사에서 계속 ‘증거가 부족하다’는 식으로 말해서 녹취, 사진까지 여러 번 제출했다”며 “그런데도 지금까지 인사위원회 일정조차 잡지 않았다. 그냥 쉬쉬하다가 적당히 끝내려는 속셈은 아닐까 걱정된다”고 말했다.

KT에스테이트 관계자는 <일요시사>와의 통화에서 “현재 회사 내부적으로 사안을 살펴보고 있어 자세한 설명은 어렵다”며 “신고된 내용이 워낙 다양해서 각각 살피는 데 시간이 많이 들어가는 것 같다”고 해명했다. 이 관계자는 “회사 입장에서도 유야무야할 수 없는 사안이라 더 철저하게 조사하고 있다. 조사가 끝나는 대로 합당한 조치를 취하겠다”며 ‘뭉개기’ 지적을 일축했다.

늑장 대처

A씨는 그저 평화로운 직장생활을 바라고 있다. 그는 “KT에서 은퇴하고 이젠 하청 직원으로 돌아왔다”며 “다른 바라는 건 하나도 없다. 갑질이 개선돼 노년 계약직들이 고용불안 없이 일할 수 있기만을 바랄 뿐”이라고 힘줘 말했다.


<jeongun15@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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