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시사 취재2팀] 함상범 기자 = 대중의 사랑을 받는 배우는 보호가 필요한 직업이다. 연기를 비롯해 각종 행사에서 집중력을 발휘해 업무를 담당하기 때문에 매니저나 코디네이터의 지원을 받는다. 각종 업무를 도맡으며 뒤에서 배우를 서포팅하는 매니저는 관계가 특별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아무나 대체할 수 없는 업무를 하는 배우와 비교적 대체 가능한 업무를 하는 매니저 간에는 서열이 생기기 마련이다. 가까울수록 서로를 존중해야 하나, 때론 위력을 무기 삼아 비윤리적인 행위를 일삼는 배우도 있다.
배우는 감정노동을 한다. 작품 내에서 비중이 큰 경우 다양한 감정을 구현해야 한다. 작품에 따라 분노나 광기, 깊은 우울을 직접 체화해야 한다. 단순히 극단적으로 표현하면 좀 더 쉽긴 하겠지만, 작품 속 이야기의 흐름과 캐릭터 간의 관계성, 현장감, 창작자의 요구 등을 모두 고려하기 때문에 그 정도를 정확히 짚어내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예민하고
괴롭히고
드라마의 경우 한 회 내내 슬픈 장면을 찍어야 할 수도 있다. 때에 따라선 종일 눈물을 흘려야 하는 날도 있고, 영화에서는 몇 달 내내 깊은 감정에 사로잡힌 연기를 해야 하기도 한다. 쉽게 인물에서 빠져나오는 배우는 비교적 정신적 고통을 덜 느낄 수 있지만, 연기한 인물에 애착이 깊게 형성된 경우에는 후유증이 크기도 하다.
또 연기를 잘하고 싶은 욕망이 큰 배우일수록, 깊게 예민해지고 상당한 불안감과 압박감 속에서 연기를 펼쳐 나간다. 혼신을 다해 연기했음에도, 흥행 면에서 결과가 좋지 않거나 스스로 만족하지 못한 결과물을 맞닥뜨리게 되면 큰 상실감에 빠지기도 한다.
이럴 때는 불안감이 커지고 지속될 수 있다. 안 그래도 심리적으로 불안한 상황인데, 늘 대중의 눈에 쉽게 띌 수 있는 직업이라 자유롭게 활동하는 데도 제약이 생긴다. 짧게 국내 여행을 다니며 스트레스를 풀기도 어렵다. 또 공개적인 자리에서는 매사 언행을 조심해야 한다. 평상시에는 어려운 일이 아니지만, 불안감이 큰 상황에서의 제약은 강한 스트레스를 주기도 한다.
배우와 같은 방송인은 인간이 받아들일 수 있는 한도를 넘은 긴장감을 유지하다, 또 혼자만의 조용한 공간에 놓이게 되는 상황이 잦다. 그런 경우 신체가 갑자기 상황에 맞지 않게 오작동을 하기도 한다. 곧 죽을 것만 같은 증상까지 느껴 쉽게 벗어나기 힘든 트라우마에 사로잡힐 수도 있다. 공황장애의 대표적인 증상이다.
불안함과 괴로움이 심할 경우 약물을 복용해야 하는 상황도 생긴다. 극심한 감정노동을 하는 배우에게 이런 심리질환은 어쩌면 자연스러운 현상으로도 보인다.
배우가 얻은 정신적 스트레스를 지근거리에서 지켜봐야 하는 매니저도 영향을 받는다. 심리적으로 힘들어 하는 배우를 챙겨주는 건 매니저 업무 차원에서 자연스럽기도 하지만, 때로는 비윤리적인 대우를 받는 상황에 놓인다.
일부 배우는 가장 편하고 대하기 쉬운 매니저에게 온갖 짜증을 내고 심한 경우 언어폭력을 행사하며, 술을 마시면 폭력을 빈번하게 행사하기도 한다.
시대가 변하면서 많이 나아졌다고 하지만, 여전히 주위 스태프에게 폭력을 행사하는 사례가 적지 않게 발생한다.
술 먹으면 손찌검 “돈으로 막는다”
재발 방지 소홀 소속사 대표도 문제
어린 나이에 일찍 인기를 얻은 여배우 A는 여성 매니저에게 잦은 언어폭력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차 안에서는 물론 드라마 현장의 대기실에서도 나이 많은 매니저에게 상스러운 욕설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대기실 문이 열려 있어 어린 여배우의 언어폭력이 다른 배우와 스태프는 물론, 현장 스태프들에게까지 전해졌다고 한다.
나오는 작품마다 흥행해 ‘천만 배우’로 불리는 B는 업계에서 매니저를 때리는 배우로 거론된다. 평소에는 매우 얌전한 태도를 보이다가 술만 먹으면 돌변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최근에도 매니저를 때렸다고 한다.
천성이 모질지는 않아 바로 사과하고 금전적인 보상을 한 것으로 전해진다. 심지어 매니저의 집에 찾아가 부모님께 사죄했다고 한다. 그런다 한들 술 먹고 또 매니저를 때리는 일이 발생하지 않을 보장은 없다. 이미 워낙 많은 매니저를 때려왔기 때문이다.
국내 최정상급 연기력을 가진 배우 C도 술만 마시면 주위에 행패를 부리고, 매니저나 영화 스태프를 때리는 것으로 알려졌다. 술 먹기 전에는 매우 인간적이지만, 술만 마시면 안하무인으로 타인을 대한다. 그는 스태프는 물론 후배 배우들에게도 비윤리적인 행동을 일삼는 것으로 전해졌다.
워낙 뛰어난 연기력을 가진 터라, 여전히 이야기 시장에서 캐스팅 1순위로 꼽히지만, 주사 때문에 C와는 일하지 않겠다고 선언한 배우도 적지 않다.
영화 스태프와 돈독히 지내는 배우 D는 최근 영화 현장에서 영화 스태프를 때려 논란이 됐다. 자고 일어난 뒤 자신이 현장 스태프를 때린 것조차 몰랐다고 한다. 그는 이미 여러 현장에서 스태프들과 언쟁을 벌이기도 하고, 심한 폭력을 행사에 문제가 된 배우다.
그 역시 매니저들에게 잦은 폭력을 행사했다. 그 장면을 본 매니저가 한둘이 아니다.
꽃미남 이미지의 배우 E도 음주 후 한 매니저를 때린 것으로 알려졌다. 워낙 바른 생활 이미지에 인간적이라는 평가도 나온 배우라 업계에서는 충격이라는 말이 나온다. 그 역시 매니저를 때리고 금전적인 보상을 한 것으로 전해진다.
자리 때문에
성격 때문에
그런 가운데 E의 소속사 대표는 구타당한 매니저에게 “심하게 맞은 것도 아니지 않냐. 적당히 넘어가라”라고 했다고 한다. 해당 매니저는 대표의 말에 충격받고, 이직한 것으로 알려졌다.
가까이 붙어 있는 관계일 경우 알게 모르게 감정이 상하는 일들이 생길 수도 있어, 술 먹고 실수를 할 수도 있다. 폭력이 정당화되진 않지만, 때린 사람이 더 이해되는 때도 있다. 하지만 거론된 배우들이 문제가 되는 건 타인을 때리는 행위가 빈번하다는 데 있다.
술 먹고 사죄하고, 금전적인 보상을 하기는 하나, 어찌됐든 사건이 잘 무마되면 이 문제를 두고 큰 책임을 지게 하지 않는 문화가 만연해 술만 먹으면 또 손찌검하는 일이 발생한다.
한 연예 기획사 관계자는 “회사를 먹여 살리는 수준의 배우라면, 소속사 대표도 눈치를 본다. 재계약과 연관돼있으면 아무리 잘못을 했다고 하더라도 책임을 강하게 묻기 어려울 수도 있다”고 말했다.
엄청난 인기에 회사의 존폐를 좌우하는 매출을 기록하는 배우일수록 직언을 해줄 대상이 없어진다. 오히려 소속사 대표가 나서서 일을 무마하기도 한다. 제작 스태프와 문제가 불거졌을 때는, 소문이 잘못 나기라도 하면 영화에 큰 타격을 입기 때문에 제작사 임원이 나서서 문제를 막는다.
그렇게 쉬쉬하는 상황이 발생하고, 적당히 돈으로 입막음을 한다. 그렇게 무마가 되면 배우는 자신의 잘못에 큰 경각심을 느끼지 못한다는 것.
또 다른 연예 기획사 관계자는 “재발을 방지해야 하는 위치의 대표가 오히려 문제를 막아버리는 사례가 있다. 그런 행위는 회사 차원에서도 배우에게도 좋지 않다. 결국 폭력 사태가 다시 발생한다”고 말했다.
한 연예기획사 대표는 “매니저 폭력 건이 발생하면, 아무리 톱스타라고 하더라도 계약을 포기할 생각으로 책임을 강하게 물어야 한다. 강하게 책임을 묻지 않으면, 손찌검하는 사람은 또 누군가를 때릴 것”이라며 “한 회사의 대표라면 재계약을 포기할 각오를 하고 재발방지에 힘을 써야 한다”고 말했다.
술 대기
골프 대기
최근 배우가 소속사를 상대로 하는 갑질 중의 하나는 매니저를 대기시키는 일이다. 술자리가 있거나, 최근 연예인 사이에서 붐이 일어난 골프를 칠 때 매니저와 동행하는 것이다. 이를 두고 ‘술 대기’ ‘골프 대기’라고 일컫는다.
최근 코로나19 감염자 수가 증가하면서, 거리두기 단계가 지속해서 상향되는 가운데 오후 10시면 문을 닫는 곳이 많아 늦게까지 술을 마시는 상황은 줄어들었다. 일반적인 회식도 없어진 편이다. 하지만 코로나19가 발생하기 전까지, 매니저의 주 업무 중 하나는 소속 연예인의 술자리가 끝날 때까지 기다리는 것이다.
길게는 새벽 늦게까지 술자리를 대기하기 때문에 매니저도 지칠 뿐 아니라, 다음날 회사 업무에도 지장을 미친다. 그렇게 늦게까지 일을 한다고 해서, 오버페이를 지급하는 것도 아니다. 매우 당연하게 매니저를 부리는 행위가 만연화돼있었다.
특정 배우는 회사에 노골적으로 자신의 ‘픽업’과 관련된 모든 제반사항을 요구하는 예도 있었다고 한다. 운동 및 술자리 등 자신이 움직이는 모든 상황에 매니저를 동행시키도록 요구하는 것.
배우 F는 술자리를 비롯한 거의 모든 개인 일정에 매니저를 동행시킨다. F의 매니저는 F가 부르면 업무를 보다가도 달려가야 한다.
한 소속사 관계자는 “평소에 성품이 좋은 배우 중에도 공과 사를 구별하지 못하고 비합리적인 요구를 하는 때도 있다. 사실 이건 성품이 좋은 게 아니다. 그렇게 운전을 하고 다닐 시간에 회사에 앉아 배우의 미래를 고민하는 게 더 발전적”이라며 “이런 부분을 해당 매니저가 말하긴 곤란하니, 배우 스스로가 경각심을 느끼거나 주위에서 직언해야 한다. 하지만 그렇게 말하는 이가 거의 없다. 오랫동안 굳어진 습관이 쉽게 고쳐질 수 없는 배경”이라고 말했다.
최근에는 골프 대기가 만연화되고 있다. 크랭크인을 앞둔 드라마나 영화 스태프들과 친목을 위해 골프를 치는 것은 배우의 업무일 수 있어 매니저가 동행하는 것이 자연스럽지만, 사적인 관계의 사람들과 골프를 치는 자리까지도 매니저를 동행하게 하는 것은 무리한 요구다.
일 아닌 사생활까지…악습 되풀이
“매니저 명확한 업무 지침 필요해”
대부분 골프장이 서울 밖에 있어 최소 한 시간 넘게 운전을 해야 하며, 전체 라운딩은 아무리 빨리 끝나야 네 시간이 소요된다. 저녁까지 먹게 되면 하루에 10시간 넘게 대기를 해야 하는 상황이 발생한다.
제작사와 겸임하는 배우 소속사의 경우에는 ‘주 52시간 근무제’로 인해 많이 고쳐지기도 했고, 의식이 깨인 배우들은 사적 모임에 직접 운전을 하고 나가지만, 여전히 타성에 젖어있는 일부 배우는 여전히 매니저와 동행한다.
한 소속사 매니저는 “오래전부터 나왔던 말이 ‘매니저가 집사냐’는 말이었다. 90년대부터 이름을 알린 배우들은 여전히 과거에 사로잡혀 무리한 요구를 하기도 한다. 그렇다고 꼭 과거의 배우들만 해당하는 얘기도 아니다. 많이 고쳐졌지만, 여전히 문제가 되고 있다”고 하소연했다.
배우와 매니저 사이의 업무에는 경계가 불분명하다. 소속 배우가 요구하는 일을 대체로 매니저가 들어준다. 각종 심부름은 물론 때로 가족의 일까지 봐주기도 한다. 배우가 촬영장에 있거나 중요한 약속이 있는 상황에 매니저가 가족의 일을 도울 수도 있지만, 가족 간에 발생하는 모든 문제를 떠넘기는 사례도 있다.
예를 들어 배우가 학부모인 경우에는 자식들의 학교 픽업을 맡게 하며, 부모 해외여행 시 공항에 데려다주고 데려오는 일을 시키기도 한다. 촬영에 집중해야 하는 배우에게 주어지는 다양한 일을 대신 처리해주는 게 매니저의 업무라고 하지만, 정도를 넘는 업무 요구도 분명 존재한다는 것.
대다수 연예 기획사 관계자는 매니저의 업무 범위를 어떻게 구분지어야 할지 어렵다는 볼멘소리가 나온다. 과거에는 더 심한 갑질이 존재했기 때문에, 최근 변화된 시류조차 감지덕지하다며 받아들이는 이도 있다. 또 회사마다 문화가 다르기도 하고, 배우마다 성향이 달라 일관된 업무의 범위를 정하는 것이 매우 어렵다는 의견도 있다.
그럼에도 매니저 업무에 대한 명확한 가이드가 재정립돼야 한다는 주장이 나온다. 무조건 배우가 원하는 대로 처리해주는 것이 아니라, 불의한 요구에는 정당하게 거부할 수 있는 가이드 라인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한 연예기획사 관계자는 “매니저 업무에 대한 가이드라인은 상식적으로 결정하면 된다. 배우가 손을 쓸 수 없는 상황에 급한 일이 발생했을 경우, 매니저가 배우의 사적인 일을 대신 처리하는 건 통용될 수 있다”며 “하지만 특별한 사고가 없는 평일, 아이들 픽업이나 공항 픽업을 당연하게 요구하는 건 문제가 있다는 얘기다. 정당한 도움이냐, 위계를 이용한 불합리한 요구냐를 따져보면 명확한 가이드라인이 만들어질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위계 이용
악습 근절
이 관계자는 “엔터테인먼트 산업이 날로 발전하고 있고, 전 세계적으로 한국의 엔터테인먼트가 관심을 받고 있지만 과거의 악습은 여전히 지속되고 있다”며 “국내 엔터테인먼트 산업이 시류에 발맞춰 더 발전하려면 악습을 끊어내는 노력이 꼭 필요하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