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시사 정치팀] 설상미 기자 = 한반도는 지정학적으로 대륙세력과 해양세력이 충돌하는 단층선에 있기 때문에 고도의 외교 스킬이 필수였다. 2020년 역시 북·미·일 곳곳에 갈등이 고조되면서 내년 역시 험난한 해가 될 것이라는 관측들이 우세하다. <일요시사>가 문재인정부의 가장 큰 난제로 꼽히는 ‘외교’ 분야에 어떤 과제들이 있는지 분석해봤다.
2019년은 남북한을 둘러싼 미국, 일본, 중국, 러시아 등 주변국들의 복잡한 이해관계로 인해 그 어떤 해보다 외교적 논란이 많았던 해다. 특히 한일관계는 강제징용 판결 이후 최악으로 치달으면서 ‘루비콘 강(돌이킬 수 없는 선택)’의 기로에 서 있다는 평가가 나오고 있다.
한일관계 기로
한일군사정보보호협정(GSOMIA, 이하 지소미아) 종료로 흔들리고 있는 한·미·일 삼각 동맹의 뇌관에는 한일 역사를 둘러싼 여러 갈등들이 도사리고 있다. 특히 올해 한일 갈등의 시발점으로 꼽히는 강제징용 문제의 근본적인 해결 없이는, 화이트리스트 제외 철회와 지소미아 종료 문제를 해결하기는 어려울 것으로 예상된다.
지난 8월 문정부는 미국이 한미일 안보 협력의 중요한 상징으로 여기는 지소미아 종료를 전격 발표했다. 일본정부가 강제 징용 판결에 대한 보복으로 한국을 화이트리스트(수출 심사 우대국)서 제외하자 강경대응 카드를 꺼낸 것이다. 문정부는 지금까지 일제 강점기 강제징용 피해자에 대한 한국 대법원의 배상 판결에 따라 ‘삼권분립의 기본원칙에 따라 행정부는 사법부의 판단을 존중한다’는 입장을 고수해왔다. 그러자 일본정부는 국가 간 외교협정을 위반했다며 문정부와 평행선상을 달리고 있다.
최근 문희상 국회의장이 발의한 ‘1+1+α’안이 한일 관계를 풀 수 있는 해법으로 부상하는 듯 했지만 문정부는 피해자 치유가 우선시돼야 한다며 문희상안을 부정적으로 보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현재 강제징용 피해자 및 일본군 성노예 피해자들은 문희상안에 대해 강력하게 반대하고 있는 상황이다.
청와대는 지난 24일 문재인 대통령이 일본 아베 총리와의 한일 정상회담서 강제징용 문제와 관련해 양국 정부의 속도감 있는 해결을 강조했다고 밝혔다. 문 대통령은 이날 “중요한 것은 해법을 찾는 일이다. 본질을 둘러싸고 (다른)논쟁을 하는 것은 문제 해결을 더 어렵게 할 뿐”이라며 “해법을 찾을 수 있도록 지혜를 모아나가자”고 당부했다.
문 대통령이 언급한 ‘논쟁’은 한일 양측 언론을 통해 강제징용 해결 방안과 엇갈린 주장이 나오고 있는 상황을 가리킨 것으로 해석된다.
문정부와 일본정부는 이 문제를 대화로 풀어갈 것이라는 큰 틀에는 합의했지만, 역사 문제를 둘러싼 근본적 문제는 해결되기 어려울 것이라는 분석이다. 피해자 중심의 해법을 고수하고 있는 문정부와 대척점에 있는 일본정부가 서로 언제든 지소미아와 화이트리스트 제외 카드를 꺼내 들 가능성이 농후하기 때문이다.
한국의 지소미아 종료 결정에 따른 미국정부의 노골적인 불만 표출이 계속되면서 한미동맹이 균열을 입은 점도 문정부에 큰 부담으로 작용하고 있다. 또 연초부터 논란이 커진 방위비 분담금은 1년 내내 한미동맹의 뜨거운 감자로 떠올랐다.
‘평행가도’ 한반도 위기 고조
평화 프로세스 좌초? 앞날은?
문정부는 지소미아는 “한미동맹과 전혀 관계없다”고 밝혔지만 미국정부는 지소미아는 북한 경계를 위한 한미일 동맹의 핵심으로 꼽으며 한국의 지소미아 파기 발표에 이례적으로 불만을 표해왔다.
미국정부는 한국은 인도·태평양 전략의 다이아몬드 안보 체제의 핵심 축으로, 지소미아 파기는 한·미·일 공조에 균열을 내려는 북·중·러에 도움을 주는 것이라며 지소미아 종료 결정 재고를 압박했다. 아울러 중국과 러시아 군용기들이 지난 10월과 11월에 잇달아 한국과 일본의 방공식별구역(KADIZ)을 침범하는 사태까지 벌어지면서 한반도 긴장이 고조되기도 했다.
국민들 사이에서는 지소미아 종료 방침에는 변함이 없다고 함에도 불구하고 미국정부가 지소미아 파기 재고를 강요하자, 동북아시아의 핵심 동맹이라는 한국의 결정을 존중한다는 목소리는 어디에도 없다는 비판이 잇따랐다.
주한미군 방위비 분담금 협상 역시 문정부가 2020년에 풀어야 할 과제다. 미국정부는 한국정부가 부담할 방위비 분담금으로 2019년의 방위비(1조389억원)의 5배 수준인 50억달러를 요구했다. 이에 대해 문정부는 “과도한 요구”라며 “합리적 수준서 공평하게 방위비 분담이 이뤄져야 한다”고 맞서왔다.
하지만 최근 미국 의회서 트럼프 대통령의 과도한 방위비 분담금 증액이 오히려 한미 동맹관계를 약화시키는 빌미를 제공했다며 트럼프 대통령이 역풍을 맞자 분위기가 전환되고 있는 추세다. 내년 대선서 재선을 도전하는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외교력 과시를 위해 동맹국의 방위비 분담금 증액을 강하게 추진한 것이라는 의회의 분석 때문이다.
일각에선 평행선을 달리던 양측 입장이 중소폭의 방위비 인상 쪽으로 좁혀질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한반도 평화 프로세스에 다시 드라이브를 걸어야 한다는 것도 문정부의 과제 중 하나다. 하노이 회담 결렬 이후 6월 남·북·미 정상의 깜짝 판문점 회동에도 불구하고, 한반도 평화 프로세스가 좌초될 위기에 처했다. 비핵화 협상이 교착상태에 빠진 가운데 북한의 계속되는 도발로 인해 한반도를 둘러싼 긴장감이 고조되면서 문정부는 고심이 깊어질 것으로 예상된다.
중국 시진핑 국가주석은 지난 23일 한·중·일 정상회의 참석 차 중국을 방문 중인 문 대통령과 베이징 인민대회당 회담서 최근 한반도 평화프로세스가 교착상태에 이른 데 대해 “한반도 긴장 상황을 걱정하는 사람들이 많다” “중국과 한국은 북미가 대화의 모멘텀을 이어가게 하는 데 힘을 모아야 한다”며 “한반도 평화에 일관된 지지를 보낸다”고 말했다.
집중과 선택
북한이 예고한 ‘새로운 길’을 두고 여러 관측이 나오는 가운데 주변국과 협의를 통해 비핵화 협상판이 깨지는 것을 막아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한승주 아산정책연구원 이사장은 최근 ‘2020 아산국제정세 전망’ 간담회서 “한국은 주변국에 모순되는 듯한 정책을 추구해야 한다”며 “북한과 평화를 유지하는 한편, 미·일과 군사 공조로 강한 억지력을 확보하고, 미국의 핵우산 포함 전략 자산을 활용하며 중국과도 좋은 관계를 유지해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