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계에 떠도는 ‘대주단 살생부’ 추적

2008.11.25 01:11:51 호수 0호

반투명‘공포의 초대장’ 발송되나

재계가 잔뜩 긴장하고 있다. 금융권 안팎에서 ‘대주단 살생부’리스트가 회자되는 탓이다. 정부는 부실기업 지원을 위해 대주단(채권단) 협약을 마련했다. 저축은행, 건설사, 조선사 등이 가입 대상이다. 그러나 업계는 묵묵부답으로 일관하고 있다. 도살장에 제 발로 찾아갈 수 없다는 비장감마저 흐른다. 이렇게 대주단 협약이 별다른 성과를 내지 못하면서 금융권에서 척출 명단이 나오고 있다. 조만간 구체화될 것으로 보이는 ‘공포의 초대장’의 발송지는 어디일까.

금융권에 ‘대주단 살생부’가 떠돌고 있다. 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대주단 협약이 별다른 성과를 내지 못하면서 업계와 증권가를 중심으로 대상 기업 명단이 오르내리고 있다. 경영 악화설에 휩싸인 중견기업들이 협약 1순위로 거론되고 있다.

‘할 수도…안 할 수도’



최근 금융권에 따르면 증권가와 사채시장을 중심으로 ‘대주단 살생부’가 나돌고 있다. 정부와 금융권이 이미 대주단에 가입해야 할 만큼 부도 위기에 몰린 지방과 중견업체들의 리스트를 작성했다는 내용이다. 이는 자금 압박을 받고 있는 기업들의 ‘연쇄부도 시나리오’와 맞물린다. 증권가에서 끊이지 않고 있는 ‘A사, B사, C사 등이 곧 무너질 것’이란 소문이 그것이다.

대주단 협약 불가피 중견업체 블랙리스트 나돌아
금융권 부실사 ‘옥석 가리기’종료…“발표할까”


대주단 가입이 가시화되고 있는 업종은 건설이다. 정부는 건설업계를 상대로 강한 러브콜을 보내고 있다. 그만큼 부실 우려가 크다는 판단에서다.
건설업계는 “대주단에 가입할 경우 부실 회사로 낙인 찍혀 신인도 하락 등으로 국내외 사업에서 타격을 입을 수 있고 금융사가 경영권 간섭을 할 수 있다”며 난색을 표하고 있지만, 금융권의 눈도장을 피할 수 없는 처지에 몰렸다.

실제 각 은행들은 부실건설사를 고르는 ‘옥석 가리기’작업을 마친 것으로 파악된다. 물론 구조조정이 절실한 부실업체가 명단에 오른 것으로 알려졌다. 유동성 위기에 몰린 S건설, 오너가 구속 직전인 D건설, 현금이 마른 S건설, 프로젝트파이낸싱(PF) 부실 우려가 큰 H건설, 미분양 물량이 쌓인 D건설, 공사미수금 회수가 지연되고 있는 W건설 등이 대주단 가입 1순위로 찍힌 것으로 전해진다.

금융권 관계자는 “대부분의 건설업체들이 부실 낙인 등을 걱정해 대주단 가입을 놓고 눈치만 보고 있지만 정작 해당 기업들은 대주단에 가입해야 할 처지에 놓였다는 사실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을 것”이라며 “은행들도 건설사들의 대출과 영업자료 등 토대로 등급을 나누어 부도 가능성이 높은 순서로 지원 여부를 파악한 ‘건설업 블랙리스트’를 작성한 상태”라고 말했다.

사정은 조선업계도 다르지 않다. 잘나가던 조선사들도 수주 물량이 뚝 끊기는 등 좌초 위기에 몰리면서 대주단 가입 압력을 받고 있다.
업계에 따르면 올해 중소 조선업체의 3·4분기 수주액은 지난해보다 50% 가까이 줄었다. 게다가 은행들은 하반기부터 조선업체의 부실 가능성을 우려해 신규 대출을 사실상 중단했다. 보통 한 조선사당 대출금액은 적게는 수백억원에서 많게는 수천억원에 달한다.

이에 따라 건설업계와 마찬가지로 조선업계도 구조조정이 불가피한 가운데 누가 구조조정 대상이 될지가 관심거리다. 업계에선 상장사 1∼2곳과 S조선, D조선, C조선, E조선, J조선, O조선 등 중소형 조선업체의 대주단 가입이 유력하다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여기에 2000년 이후 조선 호황을 타고 생겨난 영세조선소 20여곳도 포함된다.

이중 C조선의 사정이 가장 심각하다. 올해 중반 이후 선박 수주가 완전 중단됐고, 건조 중인 선박은 언제 제 모습을 찾을지 미지수다. 무엇보다 C조선은 모그룹의 자금난으로 다른 계열사들과 같이 매각될 위기에 놓였다.
뒤늦게 조선업에 뛰어든 D조선도 대주단 가입서를 만지작거리고 있는 눈치다. D조선 역시 선박 수주가 끊긴 상황에서 모그룹마저 자금난에 시달리는 형편이다.

조선업계 관계자는 “지난 몇년 새 수십 업체가 생길 정도로 탄탄했던 조선업도 금융위기를 피하지 못했다”며 “만약 대형업체 한두 곳이 대주단에 가입한다면 중소형 조선업체들의 대주단 가입이 러시를 이룰 것”이라고 전망했다.
은행권도 예외가 아니다. 저축은행이 대상이다. 조만간 부실 저축은행 걸러내기가 본격화될 것으로 보인다. 현재 전국에서 영업 중인 저축은행은 100여곳. 이 가운데 프로젝트 파이낸싱(PF) 등으로 문제가 된 곳은 10여곳이 꼽힌다.
전광우 금융위원장도 최근 기자간담회에서 “현재 영업 중인 저축은행이 100여곳인데 PF 등으로 문제가 된 것은 10여곳에 이른다”고 밝혔다.

탐색전…눈치만 살살

정부는 ‘대주단 살생부’자체를 부인하고 있다. 대주단 협약이 기업의 살생부가 아닌 상생부란 논리다. 한편으론 대주단 가입을 유도하기 위해 대상 업체들의 분류작업에 들어갔다는 의사를 내비치기도 했다.

정부 관계자는 “대주단 협약이 상생부임에도 살생부로 잘못 비쳐지고 있어 기업들이 가입을 꺼리고 있다”며 “다른 업체들의 눈치를 살피며 가입을 미적거렸다가는 오히려 나중에 불리해질 수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이어 “채권은행들이 이미 거래 업체들에 대한 분류작업을 마친 상태”라며 “구조조정이 필요한 기업은 주채권은행 차원에서 대주단 가입을 권유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대주단 살생부’에 사명이 오르내리는 기업은 ‘희생양’이 되지 않기 위해 자체 정보망을 확대하는 등 철저한 대비책을 강구하느라 분주한 형국이다. 대주단 협약이 약이 될지 독이 될지 어려움을 겪고 있는 기업들의 불안감만 커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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