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부건설 순화동서 ‘고개 떨군’ 사연

2008.11.25 01:07:57 호수 0호

웃자니 속보이고, 울자니 창피하고

동부건설이 요즘 답답하다. 예정대로라면 공사가 한창 진행돼야 할 현장에 손도 못 대고 있는 탓이다. 서울 중구 순화동 재개발 지역 얘기다. 동부건설은 첫 주상복합 프로젝트인 만큼 도심 한복판에 그럴싸한 건물을 세워 신 주거문화를 선보인다는 계획이었다. 그러나 분양 연기만 수차례. 사업을 수주한 지 3년이 넘도록 아직 첫 삽도 못 뜨고 있는 형편이다. 순화동 현장은 현재 빈터만 덩그러니 놓인 채 묘한 적막감에 휩싸인 상태다.

순화동 재개발 3년째 제자리 ‘빈터만 덩그러니’
법원, 공사중단 명령…“분양침체 어차피 잘됐다”


아파트 브랜드 ‘센트레빌’로 유명한 동부건설이 서울 중구 순화동 1-24번지 일대 도심재개발 공사를 수주한 것은 2005년 4월. 2003년 9월 서울시의 도시환경정비사업 지역으로 확정된 순화 제1-1구역이 그곳이다. 동부건설은 당시 재개발 조합 총회에서 압도적인 찬성으로 시공사로 선정된 것으로 알려졌다.

빌딩 속 흉물 전락

동부건설로선 첫 주상복합 프로젝트이자 최초로 서울 도심으로 진출한 사업이었다. 그만큼 큰 의미를 두고 총 1000억원 정도의 공사비를 들여 강북의 대표적 랜드마크 건물을 건설한다는 야심찬 계획을 세웠다.

152∼270㎡ 대지에 최고 23층 높이의 아파트 2개동과 오피스 1개동 등 총 156가구(일반분양 107세대)와 상업시설을 묶는다는 구상이었다. 서울 도심권에 위치해 편의시설 이용이 쉽고, 지하철 1·2호선 시청역과 2·5호선 충정로역, 5호선 서대문역 등이 인접해 대중교통 여건도 좋았다.

동부건설은 인근 덕수궁 이미지에 맞춰 건물 외관을 흙을 소재로 한 테라코다와 라임스톤을 사용해 전통적인 디자인을 도입하기로 했다. 브랜드에도 공을 들여 기존의 센트레빌이 아닌 타워팰리스나 하이페리온 등과 같은 개념의 전혀 새로운 ‘센트레빌 아스테리움 덕수궁’이란 이름을 내걸은 것도 같은 맥락이다.
동부건설 측은 “센트레빌의 디자인 수준을 한층 더 업그레이드하기 위해 미국의 대형 설계사무소인 RTKL International Design이 외관디자인을, LBL Architects & Interiors사가 내부인테리어 디자인에 참여한다”며 “센트레빌만의 도시적이고 세련된 이미지를 강화시켜 ‘디자인 아파트다운 디자인 아파트’를 선보일 예정”이라고 강조했다.

지난 7월과 11월엔 경사를 맞기도 했다. 센트레빌 아스테리움 덕수궁 분양 티저 홈페이지가 국내 건설사 최초로 2008 국제비지니스대상(IBA) 브랜드 빌딩·프로모션 분야에서 우수상을 수상한 것. 또 한국디자인진흥원이 주관한 2008 하반기 우수디자인 건축디자인부문에서 GD(Good Design) 인증을 획득하기도 했다.

하지만 동부건설의 속은 까맣게 타들어갔다. 아스테리움 공사가 별다른 진척이 없었기 때문이다. 순화동 현장은 현재 빈터만 덩그러니 놓인 상태. 동부건설은 벌써 3년째 첫 삽도 못 뜨고 있는 형편이다. 사실상 공사가 중단된 채 방치돼 도심의 랜드마크는커녕 빌딩 속 흉물로 전락한 실정이다.
순화동 재개발 공사가 전면 중단된 것은 동부건설이 공사를 수주한 2005년 3월 직후 주민들간 갈등이 시작되면서다. 주민들과 동부건설은 이때부터 평형대 시행인가와 추가 분담금 등의 문제를 둘러싸고 첨예한 대립각을 세우다 급기야 지난해 법정공방을 벌이게 됐다.
비조합원인 주민들이 동부건설과 조합을 상대로 직무무효 소송 및 직무집행정지 가처분 신청을 법원에 낸 것. 결국 법원은 올초 주민들의 손을 들어줬고 순화동 재개발 공사는 모두 중단됐다. 이 사건은 동부건설과 조합의 항소로 2심이 진행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런 과정을 거치면서 분양 일정도 수차례 연기됐다. 동부건설은 당초 2006년 9월 아스테리움 분양을 계획했으나 조합 측과의 협의가 마무리되지 않아 분양을 연기했다. 이어 같은 해 12월, 지난해 5월과 9월 등으로 분양을 미뤘지만 이 역시 이뤄지지 않았다. 올해 들어서도 지난 4월과 8월, 그리고 이달 분양 일정을 잡았지만 공염불에 그쳤다. 사실상 연내 분양이 물 건너갔다는 전망이 여기서 나온다.

동부건설은 내년 초 분양을 재개한다는 방침이지만 제대로 진행될 수 있을지 이 또한 불확실하다. 오는 12월 중 2심 판결의 결과가 아직 미지수이기 때문이다. 결과적으로 동부건설이 순화지구 재개발사업 수주시 공시했던 2009년 3월 완공 예정일도 상당 기간 지연될 수밖에 없을 것으로 보인다.
동부건설로선 여간 부담스런 대목이 아닐 수 없다. 국내 다른 건설사 사정과 마찬가지로 동부건설도 불황의 벽 앞에서 숨을 헐떡이는 처지다. 장·단기 부채가 증가하는 등 자금 상황이 그리 녹록치 않은 것.

실제 시공능력 순위 20위권인 동부건설은 건설사 가운데 올해 상반기 부채비율 상위 10개사에 이름을 올리고 있다.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동부건설은 지난 6월 현재 지난해 같은 기간에 비해 294.7%에서 319.6%로 부채비율이 더욱 악화됐다. 차입금도 지난해 말 5000억원대에서 6개월 새 2000억원 정도가 늘어나 7000억원을 오르내리고 있다.
동부건설 측은 애써 태연한 눈치다. 오히려 순화 재개발 지역의 공사·분양 지연이 잘됐다는 반응이다.



‘해도, 안해도 그만?’

동부건설 관계자는 “분양을 해봐야 청약자를 모집하기가 쉽지 않는 등 안 그래도 얼어붙은 주택경기로 건설사들이 대거 분양을 내년 이후로 미루고 있는 가운데 이유를 떠나 자연스레 숨 고를 여유가 생겼다”며 “소송 중인 순화동 주민들과 협의를 진행하고 있지만 침체된 분양시장 분위기를 감안해 무리수는 두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순화지구는 개발부지만 정해놓고 공사가 전혀 진척되지 않아 회사의 손해도 없다”며 “금융비용 우려가 있는 프로젝트파이낸싱(PF) 지급보증을 섰지만 아직 우발채무가 발생하지 않아 리스크도 전혀 없다”고 덧붙였다.
동부건설의 지난해 분양 성적은 눈부시다. 부동산 침체에도 불구하고 5개 사업장이 모두 100%에 가까운 분양률을 보였다. 사업성 여부를 미리 판단해 과감히 포기하거나 연기한 것이 주효했다는 분석이다.

그러나 올해 사정은 다르다. 올 들어 주택사업부문을 확대한 동부건설은 ‘바람 잘 날 없는’재개발과 재건축 사업을 줄줄이 엮어 놨다. 동부건설이 꼭 풀어야 할 첫 숙제인 순화지구 문제를 언제까지 미루다 어떻게 해결할지 두고 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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