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주성 전 국세청장 ‘두 얼굴’

2008.11.18 09:59:35 호수 0호

낮엔 ‘혁신왕’ 밤엔 ‘수뢰왕’

이주성 전 국세청장의 뇌물수수 수법이 적나라하게 드러났다. 프라임그룹의 대우건설 인수 로비 관련 검찰 수사 과정에서 이 전 청장의 뻔뻔한 수뢰 행각이 밝혀진 것. 그야말로 갖가지 방식으로 받아 챙겼다. 아파트도 모자라 최고급 가구까지 요구했고, 명절 때마다 선물 대납 강요도 서슴지 않았다. 이 전 청장이 재임 시절 ‘혁신’과 ‘청렴’을 강조했다는 점에서 충격을 더한다. ‘두 얼굴’의 윤곽이 서서히 드러나고 있는 이 전 청장의 뒷돈 챙기기 행각을 따라가 봤다.

프라임그룹의 대우건설 로비 의혹을 수사 중인 검찰은 지난 12일 이주성 전 국세청장을 특가법상 알선수재 및 뇌물수수 혐의로 구속했다. 검찰에 따르면 이 전 청장은 프라임그룹으로부터 대우건설 인수 청탁을 받고 강남의 19억원대 아파트를 건네받은 혐의를 받고 있다. 또 건설업자 기모씨로부터 세금을 깎아달라는 청탁과 함께 7천3백만원대의 뇌물을 받은 혐의도 받고 있다.



측근 명의로 차명관리
검찰 관계자는 “국세청 차장과 청장을 지낸 사람으로서 도저히 할 수 없는 비리 행각을 포착했다”며 “그동안 국세청에서 익힌 갖가지 수법을 뇌물수수에 이용한 것 같다”고 말했다.

이 전 청장은 뇌물 챙기기 행각에 일반인의 상상을 초월할 만한 다양한 기법을 동원했다. 이 전 청장이 백종헌 프라임그룹 회장을 소개받은 것은 2005년 1월. 평소 친분이 있었던 기씨가 ‘마담뚜’역할을 했다. 이후 이들 세 사람은 자주 골프를 치는 등 친분을 유지해왔다.

그러던 중 프라임그룹이 대우건설 인수전에 뛰어든 2006년 1월 이 전 청장은 대뜸 기씨에게 “강남 50평대 아파트를 알아봐 달라”고 부탁했다. 이 전 청장은 차명 관리인까지 지정해 줬다. 바로 이 전 청장의 측근인 모그룹 부사장의 처남 A씨였다.

기씨는 A씨 명의로 시가 19억원짜리 강남 삼성동의 1백81.5㎡(55평) 넓이의 S아파트를 구입했다. 이 과정에서 백 회장이 개입했다. 기씨가 프라임그룹 측에 아파트값을 요구한 것. 백 회장은 아파트 구입비용으로 계열사인 프라임상호저축은행에서 20억원을 무담보로 대출해 줬다.

검찰은 “기씨는 백 회장과 프라임그룹이 대우건설을 인수하면 5년 내 3천억원대의 공사를 하청 받아 대출금을 갚기로 약속했다”고 밝혔다.


이 전 청장이 프라임그룹의 대우건설 인수에 막후 역할을 조건으로 이 아파트를 받은 것으로 검찰이 의심하는 대목이다.

이 전 청장은 2006년 6월 퇴임 후에도 지난 3월까지 이 아파트를 차명으로 소유하고 있었다. 프라임그룹이 대우건설 인수에 실패한 뒤였다. A씨가 이 전 청장에게 “돌려주지 않으면 나중에 큰 문제가 될 수 있다”고 설득하자 그제야 아파트를 도로 내주었다.

이 전 청장은 앞서 2006년 3월 기씨 소유의 서울 삼성동 I아파트에 10억원 전세로 입주하면서 ‘집주인’기씨에게 황당한 요구를 쏟아내기도 했다. “아내가 백화점에서 가구, 오디오 등을 봐놓았다”며 은근히 결제를 부추긴 것. 오디오는 덴마크제 ‘뱅앤올룹슨’, 소파는 미국산 ‘이튼알렌’등이었다. 기씨는 5천8백만원어치의 이 제품들을 계산한 뒤 이 청장의 아파트로 배송했다.

나아가 이 전 청장은 기씨를 ‘선물 배달부’로 활용했다. 명절 때마다 선물리스트를 기씨에게 전달했다. 물론 비용은 모두 기씨가 부담했다. 기씨는 한번에 5백만원씩 세 차례에 걸쳐 1천5백만원 상당의 선물을 이 전 청장 대신 돌렸다. 이 전 청장은 퇴임 후에도 두 차례나 더 기씨에게 선물보따리를 메게 했다.

검찰 관계자는 “이 전 청장은 기씨로부터 세금을 깎아달라는 청탁을 들어주는 대가로 7천3백만원어치의 제품과 선물 대납을 강요한 혐의가 있다”며 “백 회장과 기씨를 통해 혐의 사실을 대부분 확인했지만 이 전 청장은 관련 혐의를 부인하고 있다”고 전했다.

이 전 청장은 그동안 검찰의 수사망을 요리조리 피해왔다. 그는 2001년 9월 모 업체로부터 룸살롱에서 향응을 받고 도박을 벌이다 국무총리실 암행감찰반에 적발됐으나 보고에서 빠져 징계를 모면한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 8월엔 신성해운 세무조사를 무마해주는 대가로 금품을 받은 혐의로 조사를 받았지만 결국 무혐의로 풀려났다. 검찰은 올초 이 전 청장이 1백개에 가까운 차명계좌를 갖고 있던 것으로 밝혀냈지만 역시 ‘검은 돈’추적엔 실패했다.

꼬리가 길었다
이번에 이 전 청장의 뇌물수수 수법이 적나라하게 드러나자 국세청은 침통한 분위기다. 사건을 수사 중인 검찰도 ‘설마’하면서 수사를 진행했다는 후문.

그도 그럴 것이 이 전 청장은 ‘혁신’과 ‘청렴’의 대명사였다. 이 전 청장이 세간의 관심을 받은 것도 1996년 세무공무원들이 뇌물을 받고 세금을 감면해준 이른바 ‘북인천세무서 사건’을 깔끔하게 마무리하면서다. 1999년부터는 국세청 개혁 작업에 참여해 조사업무 체제의 전면적 개편작업을 맡아 세정발전에 크게 기여했다.

청와대는 2005년 3월 이 전 청장의 국세청장 발탁 배경에 대해 “뛰어난 판단력과 치밀한 일 처리로 공사 구별이 확실하고 궂은일을 마다하지 않는 스타일”이라며 “세정의 투명성 제고 등 세무행정개혁을 지속적으로 잘 추진해 나갈 것으로 기대한다”고 설명하기도 했다.

국세청 관계자는 “검찰의 혐의가 사실이라면 국세청 차장과 청장을 지내는 동안 평소 직원들에게 혁신과 청렴을 강조하면서 뒤로는 챙길 건 다 챙긴 셈”이라며 “단지 이 전 청장의 개인적인 문제인데 국세청 전체가 흔들리지나 않을지 걱정”이라고 말했다.

이 전 청장은 2006년 6월 돌연 청장직을 사퇴했다. “뭔가 냄새가 난다” 등의 관측이 쏟아졌지만 그는 “단지 후배들에게 길을 터주기 위한 것”이라며 유유히 자리를 떴다. 이번 검찰의 발표대로 법원에서 그때 그 소문이 사실로 확인될지 주목된다.


국세청장 잔혹사 ‘굿이라도 해야하나’
국가정보원, 검찰, 경찰과 함께 4대 권력기관으로 불리는 국세청의 굴욕이 계속되고 있다. 역대 국세청장들이 줄줄이 비리 의혹에 연루돼 검찰의 수사를 받는 곤욕을 치른 것.
안무혁(5대), 성용욱(6대) 전 청장은 1987년 대통령 선거 불법 선거자금 모금으로 법정에 섰다. 임채주(10대) 전 청장도 대통령 선거 당시 ‘세풍’으로 불린 불법 선거자금 모금 사건에 연루돼 유죄판결을 받았다.
안정남(12대) 전 청장은 임기를 마치고 2001년 건설교통부 장관으로 임명됐다가 축재 비리 의혹 등으로 20여일 만에 불명예 퇴진했다. 손영래(13대) 전 청장도 퇴임 후인 2003년 썬앤문그룹(현 라미드그룹)에 대한 감세청탁과 관련해 뇌물을 받은 혐의로 집행유예를 선고받았다.
이주성(15대) 전 청장은 특가법상 알선수재 및 뇌물수수 혐의로 구속된 상태다. 전군표(16대) 전 총장은 정상곤 전 부산국세청장으로부터 8천만원을 받은 혐의로 지난 2월 1심에서 징역 3년6개월을 선고받은데 이어 항소심에서 원심대로 징역 3년6월을 선고받았다.

저작권자 ©일요시사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설문조사

진행중인 설문 항목이 없습니다.


Copyright ©일요시사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