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신

2017.11.24 17:46:33 호수 1142호

아비샤이 마갈릿 저 / 을유문화사 / 1만8000원

<배신>은 세계적인 철학자이자 사회학자인 아비샤이 마갈릿이 영국의 옥스퍼드대, 독일의 자유베를린대, 미국의 프린스턴 고등연구소 및 뉴욕대, 스탠퍼드대 등 세계 유수 대학을 돌아다니며 오랫동안 강의하고 연구한 주제인 ‘배신’에 관하여 철학적으로 고찰한 내용을 한 권에 담은 책이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배신을 수없이 접한다. 배신은 영화나 드라마의 단골 소재이며, 현실 속 정치·경제·사회·역사적 사건에서도 자주 등장한다. 여기서 그치지 않고 배신을 직접 겪거나 가까운 주변 사람들의 경험을 종종 전해 듣기도 한다. 이처럼 일상에서 흔해 빠진 것이 배신이라 그런지 배신이란 단어에 큰 무게감이 느껴지지 않는다. 또한 배신을 많이 말하지만, 배신이란 개념과 ‘배신자’와 ‘배신행위’에 대해서는 깊이 있게 생각해 본 적이 거의 없다. 
그렇다면 무엇이 배신인가? 배신에 대한 판단은 왔다 갔다 해서 도무지 신뢰할 수 없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정의로운 내부고발자라고 해도 어떤 사람에게는 중상모략가일 수 있다. 누군가의 눈에는 반역자로 보여도 대중의 눈에는 영웅으로 보이기도 한다. 내가 하면 로맨스고, 남이 하면 불륜이라는 말이 여기에 딱 맞는 표현인 듯하다. 
설령 배신행위를 했어도 역사적으로 봤을 때 배신자가 아닌 경우도 많다. 예를 들어 정치가 샤를르 드골은 프랑스 군부와 알제리에서 거주하는 프랑스인의 열렬한 지지를 받았지만, 알제리의 독립을 선언하여 그들을 배신하고 말았다. 여기서 드골은 자신의 지지자들에게 배신행위를 했지만 인류애를 생각했을 때 배신자는 아니다. 남아프리카공화국의 정치인 프레데리크 빌렘 데클레르크가 백인 보수 정치 가문 출신임에도 불구하고 아파르트헤이트를 폐지한 일이나, 미국의 리처드 닉슨 전 대통령이 지지 세력인 우파의 우려에도 불구하고 적국인 중국을 방문한 일, 이스라엘의 정치가 메나헴 베긴이 과거 이집트에게서 빼앗은 시나이반도를 되돌려 준 일 등도 함께 생각해 볼만하다. 
아비샤이 마갈릿은 말한다. 배신이란 두터운 관계에 있는 사람들에게서 신뢰라는 접착제를 떼어 내는 것이라고. 경제가 세계화를 추구하고 인터넷이 발달하면서 서로 모르는 사람들 사이의 신뢰, 즉 얕은 신뢰에 대해서도 큰 관심이 쏠리고 있다. 저자는 이런 관계를 이끄는 것은 도덕이고, 윤리는 두터운 신뢰나 소속감을 주는 사람들과 집단에 지니는 의무라고 말한다. 이 책은 윤리적 관점에서, 즉 가족이나 연인, 친구나 공동체 등 두터운 인간관계에서 발생하는 배신에 대해 고찰한다. 또한, 배신을 통해 두터운 관계란 무엇이고, 그런 관계는 어떠해야 하는가를 생각해 볼 수 있는 시간을 제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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