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르포]집창촌 폐쇄 반발 시위 속 영등포를 가다

2011.04.28 14:00:00 호수 0호

"레드존 안에서 제도적 성매매 하겠다"

이른바 ‘성전(性戰)’이 또 발발했다. 서울 영등포 집창촌 업소 업주와 성매매 여성들이 집창촌 철거에 따른 대안 마련을 촉구하며 본격적인 시위를 시작한 것. 지난달 영등포경찰서가 업주들에게 단속방침을 통보한 뒤, 이달 1일부터 성매매를 집중 단속하고 있는 것에 대한 전면 도전이다. 이들은 지난 12일을 시작으로 4월에만 벌써 3차례나 반발 시위를 진행했고, 앞으로 시위의 규모와 방식은 더욱 커질 것으로 전망된다. 2004년 성매매특별법이 시행된 이후 전국 각지의 집창촌에서 비슷한 시위가 진행됐지만 이번 분위기는 사뭇 다르다. 한터전국연합회(전국집창촌운영자모임)와 전국성노동자연대가 똘똘 뭉칠 조짐이 감지되고 있는 이유에서다. 집창촌 폐쇄 이전에 성노동자들의 생존권과 인권에도 관심을 갖고 대안을 마련해줘야 한다는 입장이다. 2008년 장안대첩에 이은 2차 성전의 승전보는 과연 어느 쪽에서 울리게 될까. 지난 20일 전운이 감도는 영등포 집창촌을 직접 찾았다.


영등포 집창촌 폐쇄 위한 집중 단속 개시 
업주와 성매매 여성들, 생존권 달라 반발

2004년 성매매특별법이 시행된 이후 정부의 성매매 단속은 화룡점정(畵龍點睛)을 이뤘다. 하지만 반짝에 불과했다. 어느날 갑자기 어느 지역을 특정지어 집중 단속을 벌였고, 당분간 잠잠하다가 다시 또 어느 지역에 불을 붙였다.

일괄성 없는 단속에 단속칼을 맞은 일부 업주와 성노동자들은 자살을 선택하기도 했고, 일부는 한국을 떠나 외국에서 성매매를 하기도 했다. 그러는 사이 국내에는 온갖 퇴폐적인 유사성행위업소가 우후죽순 생겨났다. 결국 성매매 업소는 더욱 늘어났다는 얘기다.
한터전국연합회(전국집창촌운영자모임)와 성노동자들이 목소리를 높이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성매매특별법의 역효과로 수많은 퇴폐업소가 생겨났고, 결국 집창촌만 단속의 집중포화로 무너지게 됐으며, 같은 법을 같은 기준으로 적용하지 않는 이상한 정부와 공권력으로 인해 성매매근절은 커녕 더욱 음성적으로 번질 것이라는 주장이다. 



대안 없는 폐쇄 말도 안돼
"생존권 보장하라"

취재기자가 영등포 집창촌을 찾은 지난 20일. 이날 영등포지역 성매매 여성들은 집창촌 철거에 따른 대안을 제시하라며 가두시위를 벌였다.

한터전국연합회 영등포지부 소속 성매매여성 수십여명은 이날 오후 서울 영등포구 당산동 1가에 위치한 한나라당 전여옥 의원 사무실 앞에서 집회를 가졌다.

이들은 대안없이 폐쇄하겠다는 전여옥 의원 사퇴하라 생존권을 보장하라 ‘내년 4월 총선 두고 보자 등의 구호가 적힌 팻말을 들고 함께 구호를 외쳤다.

전 의원이 자신의 지역구에서 집창촌을 없애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는 각종 매체의 보도와 지난 선거 당시 지역민들에게 지지를 호소하면서 성노동자들에 대해 적절한 대안을 제시하겠다는 약속을 지키지 않았다는 이유에서다.

한터전국연합회 강현준(58) 사무국장에 따르면 전 의원은 성노동자들의 만남요청도 번번이 묵살했다. 지역구 사무실의 문이 잠겨 있어 국회 의원회관으로도 찾아가봤지만 여직원 한명이 나와 "저는 잘 모르는 일"이라는 말만 남기고 다시 사무실로 들어갔다는 것.

이와 관련 강 사무국장은 "전 의원은 누가 지역주민인지 잘 깨달아야 할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실제 영등포에 수십년간 거주하며 집창촌이라도 꾸려 터전을 구성한 것은 집창촌 업소 업주와 아가씨들이지 타임스퀘어 사장과 직원들이 아니라는 주장이다.

강 사무국장이 이 같이 말하는 이유는 따로 있다. 타임스퀘어가 들어서기 전부터 그 자리에는 집창촌이 이미 형성되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타임스퀘어 측은 영업 시작 이후 유동인구가 더욱 많아지자 그 제서야 집창촌이 눈쌀을 찌푸리게 하고, 지역 이미지에 타격을 준다고 주장하고 있다는 설명이다.

이와 관련 강 사무국장은 "이것이야 말로 굴러들어온 돌이 박힌 돌 빼는 것 아니겠느냐"고 목소리를 높였다.

커튼에 가려진 홍등
오늘의 ‘영등포 집창촌’

실제 그곳에 가보니 첨단 쇼핑몰인 타임스퀘어와 집창촌은 불편한 동거를 하고 있었다. 과거와 현재가 공존하는 듯한 착각을 일으키기에 충분했다.

서울 영등포구 타임스퀘어는 국내 최대규모의 복합쇼핑몰로 유명하다. 바로 그 남쪽 출구에 다닥다닥 붙어 커다란 창문 사이로 분홍빛을 쉴 새 없이 발산하는 집창촌이 자리잡고 있는 것.

이에 대한 자구책으로 타임스퀘어 측은 남쪽 출입구 한편에 ‘고객 및 직원들의 통행을 금지합니다. 생태공원 쪽으로 우회해 주십시오’라는 팻말을 세웠다. 인도에는 작은 초소까지 마련돼 직원 1명이 상시 대기하며 사람들의 통행을 막고 있다.

혹시 실수로 집창촌에 발을 들여놓을 수 있는 어린 학생들과 여성들의 발걸음을 애초에 차단시키려는 것. 바로 옆의 신세계백화점에서도 직원들을 배치해 집창촌 쪽으로의 유입을 통제했다.

하지만 이는 타임스퀘어와 신세계백화점이 내놓은 자구책일 뿐, 그럼에도 불구하고 유유히 이곳을 지나는 어린 학생들도 간혹 눈에 띄었다. 그나마 지난 20일은 성노동자들의 시위집회로 오후 8시 정도까지 영업을 시작한 업소가 없었다. 아마 이날은 대부분의 업소가 영업을 하지 않았을 것으로 예상된다.

영등포 집창촌은 과거에 비해 규모가 작아진 것도 사실이다. 80여개 업소가 줄줄이 붙어 성업하던 과거와는 달리 현재는 20곳 정도만 실제 문을 열고 있는 것으로 추산되고 있는 것.

돌고 도는 보여주는 단속 “지겹다 지겨워”
합법화 원하지도 않아…“레드존만 지키자”


1950년대 헌병대와 육군 보급부대가 영등포역 앞에 자리 잡으면서 형성된 영등포 집창촌은 2004년 성매매특별법 시행 이후 급격히 쇠락했지만 일부 업소들은 끝까지 버티며 홍등을 밝히고 있다.

하지만 업주들은 "사실상 성매매 영업은 거의 이뤄지지 않는다"고 털어놨다. 문을 열고는 있지만 수시로 단속에 나서는 경찰차량과 통행을 막는 타임스퀘어 직원들 때문에 마음을 먹고 왔던 남성들도 민망함에 돌아서곤 한다는 것.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들이 이곳을 떠나지 못하고 있는 것에 대해 일각에서는 "재개발 시행에 따른 보상비를 기대하기 때문인 것"으로 분석하고 있다. 하지만 그것이 문제만은 아니었다.

업주들은 어차피 업소의 세입자다. 땅도 건물도 자신의 것이 아니라는 것. 때문에 업주들이 챙길 수 있는 보상비는 이주보상비 뿐이라는 설명이다. 자신들은 이주보상비라도 받아 나간다 치지만 성노동자들은 갑자기 여기서 나가게 되면 돈 한 푼 없이 거리로 내몰리게 된다는 것.

"재개발도 좋고 보상도 좋지만 어차피 그건 돈 있는 땅주인, 건물주인의 이야기일 뿐 우리와는 상관도 없는데 보상금과 결부지어 알박기를 하고 있는 것처럼 언론에 호도되는 것이 기가 막히다." 강 사무국장의 말이다.

‘두더지 잡기’식 단속
문제 지적해서 뭐하나 

이어 강 사무국장은 "용산의 경우가 지금 영등포의 앞날로 보면 딱 맞겠다"면서 "용산은 과거 150개가 넘었던 업소 중 현재 10개 업소가 남아 근근이 영업을 하고 있다. 재개발을 앞두고 10개 업소가 영업을 하는 것을 두고 외부에서는 돈을 더 받으려고 저러고 있다고 얘기를 하는데 업소 업주들과는 상관없는 이야기다"고 말했다.

집창촌을 둘러싸고 있는 상권 상인들 중 일부가 동의하지 않아 처리되지 않고 있는 것일 뿐 집창촌 업주들이 보상금 극대화를 노리고 나가지 않는 것이 아니라는 설명이다.

영등포 집창촌 업주들과 강 사무국장을 만나 얘기를 나누는 40여분의 시간에도 경찰차는 몇 번이나 기자가 앉아있는 업소 앞을 지나갔다. 단속을 하는 것인지 보호를 하려는 것인지 헷갈리는 경찰차의 움직임에 취재기자가 고개를 꺄우뚱 거리자 한 업주가 낌새를 알아채고 말을 보탰다.

"경찰이 영업은 하게 한다. 그리고 남자손님이 가게에 들어가는 모습을 보면 5~10분 뒤 급습해 현장을 덮친다. 그게 바로 단속이다. 백날 백차타고 돌아다녀봐야 동시에 10개 업소에 손님이 들어갔다 치자, 그 중 경찰 눈에 현장을 들킨 업소만 단속이 되는 것이다."
‘두더지 잡기’식 단속이 따로 없다. ‘두더지는 시력이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 업주들 역시 보여도 안 보이는 척 알아도 모르는 척 경찰의 단속에 적당히 ‘잡혀줘야’ 벌금이라도 물고 그나마 다시 영업을 할 수 있다고 입을 모았다.

영등포 집창촌을 뒤로 하고 나올 무렵 강 사무국장은 향후 여의도 국회 인근에서 전국 성매매 여성 3000여명이 참가하는 대규모 집회는 물론, 국회와 청와대 청원 등 대규모 시위를 준비 중이라고 밝혔다. 영등포 집창촌을 빠져나오는 그길 분홍빛 조명이 유독 시리게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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