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연재]‘레드모델바’ 김동이 대표의 <여자의 밤을 디자인하는 남자 25>

2011.04.11 11:26:36 호수 0호

드디어 탈출, “안녕 지바! 반갑다 가와사끼”

‘지금이 아니면 다시는 기회가 안올 수도 있다!’
‘가자, 택시야, 제발 좀 출발을 하자고’

전국 20여개 지점을 가지고 있는 국내 최고의 여성전용바인 ‘레드모델바’를 모르는 여성은 아마 별로 없을 것이다. 현재 레드모델바는 기존의 어두운 밤 문화의 하나였던 ‘호스트바’를 건전하게 바꿔 국내에 정착시킨 유일한 업소로 평가받고 있다. 이곳에 근무하는 ‘꽃미남’들만 전국적으로 무려 2000명에 이르고, 여성들의 건전한 도우미로 정착하는데 성공했으며 매일 밤 수많은 여성손님들에게 생활의 즐거움을 주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이러한 성공의 배경에는 한때 ‘전설의 호빠 선수’로 불리던 김동이 대표의 고군분투가 녹아있다. 그런 그가 자신의 삶과 유흥업소의 창업 이야기를 담은 자서전 <여자의 밤을 디자인하는 남자>를 펴낸다. <일요시사>는 김 대표의 책 발행에 앞서 책 내용을 단독 연재한다.




■ 출발, 자유를 향해
고개를 돌려 식구들을 보니 모두들 곤히 잠들어 있는 상태였다. 아마도 전화벨이 조금이라도 더 울렸으면 누군가가 깨었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숨을 죽이며 정우의 이야기를 듣고 있었다.
“왜 안 가? 거기 지금 오픈해서 대박 났대. 그러니까 빨리 가. 거기 사쪼가 우리 사촌누나니까 걱정하지 말고 믿어도 돼.”
마마가 몸을 일으켜 세웠다.
“누구 전화냐?”
나는 고개에서 수화기를 떼고 정우도 들으라는 듯이 이야기했다.
“아, 예 한국에서 정우가 전화했는데요, 마마 바꿔 달래요.”
눈치 빠른 정우가 마마와 대화를 한 후 이내 전화를 끊었다.
정우의 전화를 받은 뒤로부터는 나도 이제 마음이 급해졌다. 이제는 어떻게 해서든지 이 지옥 같은 생활을 끝내야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탈출 시간이 문제였다. 그나마 옷이라도 몇 벌 챙겨가려면 식구들이 모두 잠들어 있을 때 탈출을 해야 한다. 하지만 만약에 누군가 단 한 명이라도 그 모습을 본다면 분명히 나에게 뭔가를 물을 것이고 그렇게 되면 보통 난감한 상황이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탈출할 수 있는 유일한 시간은 그때밖에 없었다.
다음 날. 또다시 전화벨이 울렸다.
‘정우일까?’
마마가 전화를 받더니 이내 전화를 끊었다.
“얘들아 오늘 사쪼 생일이라서 집에 와서 밥 먹으란다. 지금 다 같이 가자.”
그 얘기를 듣는 순간 온 몸에 전율이 퍼져 나갔다. 그때 드는 생각은 단 하나였다.
‘지금이다! 지금이 아니면 다시는 기회가 안 올 수도 있다!’
마마에게 말을 했다.
“저, 몸살기가 좀 있어서요. 그냥 좀 쉬고 싶습니다.”
그렇지 않아도 며칠 전부터 말수도 적었던 터라 마마도 내가 어디가 아픈 줄 알고 있었다. 선수 한 명은 아침에 손님과 약속이 있다고 했다. 다들 사쪼 집으로 가고 남은 것은 거실에 있는 나와 욕실에 있는 또 한 명의 선수. 하지만 샤워가 끝나고 외출을 할 때까지 기다릴 수 없었다. 사쪼의 집은 우리 숙소에서 3분 정도의 거리밖에 되지 않는다. 샤워를 끝내고 외출 준비를 할 때라면 이미 식구들은 밥을 다 먹고 다시 숙소로 돌아올 것이다.
이제 더 이상 생각과 고민은 아무런 필요가 없었다. 결단하지 않으면 영원히 이곳을 빠져 나가지 못할 것이라는 예감이 강하게 들었다.
옷과 몇 가지의 소지품을 챙기는 데에는 고작 1분도 걸리지 않았다. 가방을 메고 현관을 나섰다. 저 계단을 내려가면 마마, 부쪼와 마주칠 것 같았다. 떨리고 무서웠고, 다리는 후들거렸다. 1층으로 달려가 정원의 나무 밑을 손으로 파 내려가기 시작했다. 10만 엔 정도의 돈과 전화번호. 그때부터 무작정 뛰기 시작했다. 아마도 내 인생에서 가장 빨리 뛴 것은 아마도 그때가 아닐까 싶다. 머릿속은 온통 택시만이 떠올랐다.

■ 새로운 도전, 희망
‘이제 택시만 타면 된다, 그러면 이 지옥의 공간에서 탈출할 수 있다. 택시, 택시를 타야 한다.’
하지만 우리 숙소가 좀 외진 데 있었던 탓일까. 온몸이 땀으로 흠뻑 젖을 때까지 뛰었지만 택시는 보이지 않았다. 그렇게 30분 정도를 뛰었을까. 드디어 저쪽에서 택시 한 대가 오고 있었다. 눈물이 날 지경이었다. 성공이었다. 택시에 올라탄 뒤 나는 가쁜 숨을 몰아쉬면서 다시 한 번 뒤를 돌아봤다. 다행히 나를 쫓아오는 사람은 없었다. 택시 기사를 향해 말했다.
“가와사끼 에끼 오네가이시마스!”
너무 장거리이기 때문일까. 택시 기사가 다시 물었다.
나는 숨도 쉬지 않고 대답했다.
“하이! 가와사끼 에끼 오네가이시마스!”
나는 속으로 외쳤다.
‘가자, 택시야, 제발 좀 출발을 하자고’
고속도로가 나왔다. 나는 한 번도 일본에 와서 고속도로를 달려본 적이 없었다. 자유가 느껴졌다. 24시간 동안 감시를 받는 생활에서 드디어 벗어날 수 있었던 것이었다. 다시 정우의 얼굴이 떠올랐다.
‘짜식, 이럴 때 나랑 같이 있으면 좋을텐데’
아마도 벌써 숙소에서는 난리가 났을 것이다. 내가 없어졌으니 마마는 부쪼에게, 부쪼는 사쪼에게 연락을 했을 것이다. ‘노예’가 탈출했으니 사쪼는 아마도 지금쯤 길길이 날뛰고 있을 것이다. 어쩌면 벌써 야쿠자에게 전화를 하고 있을지도 모를 일이다.
평온한 택시 안에서 나의 머리는 또다시 복잡해졌다. 지나간 과거가 마음을 복잡하게 만들었다. 그런데 이제 내가 해야 할 일이 선명하게 머리에 떠올랐다. 이제 돈을 벌어야 했다. 오로지 돈만이 나를 구원해줄 수 있었다. 그러고 보니 혹시 지금 타고 있는 택시가 가와사끼로 가는 건 맞는지 모르겠다는 생각을 했다. 나도 이제 정우처럼 아무도 믿지 않게 되었던 것이다. 그것은 아마도 내가 완전히 변하고 있음을 의미하기도 했다. 이제까지의 삶에서 벗어나 강인하게 다시 태어나고 있는지도 몰랐다. 돈에 대한 열망은 곧 살아남기 위한 열망과 동일했다. 내가 잘돼야 남도 도와줄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잘되기 전까지는 철저하게 혼자일 것이고, 혼자서 살아갈 것이라고 다짐했다. 가와사끼. 어쩌면 이제 나에게 남은 마지막 기회의 땅이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그렇게 택시로 두 시간을 달리자 드디어 ‘가와사끼 스테이션’이라는 문구가 눈에 들어왔다. 택시에서 내려 공중전화를 찾았다. 정우의 사촌누나는 반갑게 인사를 해주었다. 전화를 끊은 후 담배를 피워 물었다. 후~. 가와사끼와 지바와는 크게 다른 점이 없었다. 알아들을 수 없는 일본어를 하는 행인들, 야트막한 건물들, 비슷한 전철역의 구조들. 하지만 나는 완전히 달라져 있었다. 새로운 미래에 대한 꿈이 생겼던 것이다.
그로부터 20여분 후. 저 한편에서 꽤나 남자에게 인기 있을 법한 외모를 한 여성이 나에게 다가왔다.
“동이씨 맞나요?”
“네, 맞습니다.”
이제 됐다. 드디어 지바에서의 탈출이 완전히 성공했음을 느낄 수 있었다.

<다음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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