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5세 이상 ‘실버 결혼’ 급증 진단

2011.01.18 10:45:39 호수 0호

“살 날 많이 남았는데 혼자는 외로워”

대한민국은 자타가 공인한 고령화 국가다. 평균연령의 증가와 함께 노인인구는 날이 갈수록 늘고 있으며, 이와 함께 ‘실버 신혼’도 해마다 늘고 있다. 실제 65세 이상 남성의 혼인신고를 기준으로 2009년 ‘실버 신혼’은 2140쌍으로 나타나 1990년의 753쌍의 세 배가 됐다.

75세 이상의 결혼도 같은 기간 128명에서 307명으로 세 배 늘었다. 공식적인 추산은 세 배 늘었지만 전문가들은 혼인신고를 하지 않은 사실혼까지 따지면 매년 실버 커플 2만 쌍이 새로 탄생하는 것으로 추정했다. 과거 자식들 보기 창피해서 혹은 사회적 통념이 가로막혀 늦깎이 결혼에 소극적이었던 어르신들의 당당한 ‘실버 결혼’ 러시에 대해 취재했다.

‘100세 시대’ 다가오면서 실버 결혼 ‘급증’
과거와 달리 자녀들이 더 적극적으로 나서
동거·사실혼 형태 실버 커플도 많아 ‘눈길’



대한민국이 고령화 사회로 진입한 이후 노년의 성과 사랑이 자주 회자되고 있다. 그동안 노년의 연애를 종종 소재화했던 드라마에서는 그것을 일종의 ‘죄악’처럼 다뤘었지만 최근에는 태도 변화를 분명히 하고 있다. 이는 노년의 로맨스도 충분히 아름다울 수 있고, 지금 어디에선가 이뤄지고 있을 우리 부모의 일일지도 모른다는 점을 넌지시 시사하고 있다.

우리도 ‘사랑’한다

실제 주위를 둘러보면 노년의 로맨스가 생각보다 많이 이뤄지고 있다. 그도 그럴 것이 혼자 집에만 머물렀던 과거 노인들과 달리 고령화 사회에 접어든 이후 우리 사회의 노인들은 과감히 자리를 털고 일어나 밖으로 나섰다. 흔해빠진 동네 양로원 대신 지역 복지회관이나 등산모임 등에 참여하는 노인들이 늘어났고, 대도시로 갈수록 노인들의 모임은 더욱 활발하게 이뤄졌다.

이런 과정에서 젊은이들 못지않게 눈빛을 주고받으며 감정을 키워가는 어르신들이 늘어나게 된 것. 여든이 훌쩍 넘은 강모(85) 할머니는 노인전문병원에서 이모(78) 할아버지를 처음 만났다. 강 할머니는 기초생활수급자로 혼자 살고 있기 때문에 몸이 조금만 아프면 사회복지사들의 손에 이끌려 병원에 입원한다. 집에 있어봐야 돌봐줄 사람도 없거니와 정부에서 병원비를 지원하기 때문에 혼자 끙끙 아파할 필요가 없는 이유에서다.

지난해 가을 어지럼증을 호소하며 병원에 입원한 강 할머니는 그 곳에서 이 할아버지를 만났다. 병원 내에서 흡연을 하고 있던 강 할머니를 나무라던 이 할아버지와의 첫 만남은 여느 젊은 커플 못지않게 신선하다. 이후 강 할머니는 금연을 시도했고, 아직 완벽하진 않지만 흡연 횟수를 많이 줄였다고 전했다.
 
강 할머니는 “90을 바라보는 나이에 다시 결혼은 언감생심 쑥스럽고, 앞으로도 친구처럼 이야기를 나누며 지내고 싶은 게 사실”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이 할아버지는 입장이 달랐다. 티격태격 다투는 날도 있지만 남은 여생을 강 할머니와 알콩달콩 지내고 싶다는 것.

두 황혼기의 할머니 할아버지의 결혼이 그리 비관적이지 않은 이유는 혼인 신고 자료상 가장 최근 통계인 2009년에 95세 신랑, 92세 신부도 있었다는 데 있다. 그런가 하면 과거에는 ‘자식 보기 민망해’ 재혼이나 황혼 결혼을 꺼렸지만 고령화 사회, 나아가 100세 가까이 산다는 ‘100세 시대’가 닥쳐오면서 요즘은 자녀들이 더 적극적인 경우가 많다.


결혼정보회사 닥스클럽이 지난해 10월 미혼남녀 974명(남성 435명, 여성 539명)을 대상으로 부모님의 황혼 결혼에 대한 의견을 물은 결과 46%가 찬성했다. 물론 아직까지는 반대 의견이 앞서지만 46%의 찬성은 장족의 발전이다. 특히, 나이가 어릴수록, 교육 수준과 소득 수준이 높을수록 찬성하는 사람이 많은 것으로 나타났다.

실버 결혼시장 뜬다

이 때문일까. 제2의 인생을 살기 위해 결혼정보회사를 찾는 노령인구 또한 크게 늘고 있다. 사별과 황혼 이혼 등으로 싱글 실버족들이 늘면서 재혼을 위해 결혼정보회사에 가입하는 노령 인구가 큰 폭으로 증가하고 있는 것. 지난해 여름, 결혼정보회사 듀오에 따르면 지난 10년 동안 듀오에 가입한 싱글 실버족 회원 수가 10배 이상 불어났다. 연평균 80% 이상 가입자가 폭증했다는 것이 듀오 측의 설명이다.

결혼정보업체 레드힐스도 2009년 2.6%에 불과했던 실버족 가입자 비율이 2010년 7.4%로 3배가량 높아졌다. 결혼정보업체 역시 실버 결혼시장 규모가 커지는 이유에 대해 “급격한 고령화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이와 관련 결혼정보 시장에서는 “평균 수명이 늘고 고령화 사회가 진행되면서 실버 혼인율은 향후 10년 간 전체 혼인 건수의 20% 정도를 차지하게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이처럼 실버 결혼시장의 전망이 밝다는 사실을 파악한 결혼정보업체들은 앞 다퉈 신 수요 잡기 전략 짜기에 나섰다. 결혼정보업체 애플은 지난해 50세 이상 남녀를 대상으로 한 만남 프로그램 ‘실버 클래스’를 국내 최초로 선보였다. 애플은 ‘온천여행’ ‘추억 속으로’ 등 테마가 있는 이벤트를 함께 하며 싱글 실버족들이 자연스럽게 친숙해지도록 만들어주는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레드힐스도 70세 이상 고령자를 대상으로 특화된 ‘로맨스그레이’라는 프로그램을 개발해 마케팅에 나섰다. 하지만 일각에서는 실버 결혼 확산에 대해 좀 더 신중해야 한다는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유산’ 문제를 이유로 부모의 실버 결혼을 반대하는 자식들이 적지 않고, 젊은이처럼 달콤하게 사는 실버 결혼도 늘었지만 젊은이처럼 격렬하게 결별하는 황혼 이혼도 급증했기 때문이다.

실제 2009년 65세 이상 노인의 재혼 건수는 남성 2065건, 여성 641건으로 10년 전에 비해 각각 1.8배, 2.7배씩 늘어났다. 하지만 이혼은 남녀 각각 4370건과 1739건으로, 10년 전과 비교해 3.3배, 4.6배 늘었다. 실버 신혼보다 황혼 이혼이 더 많이, 더 빨리 늘고 있는 셈이다.

이와 관련 전문가들은 “실버 결혼과 황혼 이혼의 공통점은 남성보다 여성이 ‘패권’을 쥐고 추진하는 경우가 많다는 데 있다”면서 “수명 연장으로 남녀 모두 ‘남은 삶’에 대한 기대치가 높아진 상황에서 과거에 비해 가정 내에서 발언권이 세진 여성들이 노년의 결혼과 이혼을 주도하고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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