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계뒷담화> 재벌가 ‘아삼륙’ 누구누구?

2010.01.19 10:15:00 호수 0호

그들도 우리처럼 친구가 있다


이재용(삼성전자 부사장)-정의선(현대차 부회장)간 우정이 세간의 관심을 모으면서 ‘재벌 아삼륙’들이 새삼 주목받고 있다. 재계엔 단순히 사업적 파트너를 떠나 끈끈한 개인적 친분으로 평소 친형제 같은 우애를 자랑하는 이들이 많다. 특히 그들만의 울타리를 치고 있는 재벌가의 경우 더하다. 이런저런 인연으로 각별한 관계를 이어가고 있는 로열패밀리들의 절친노트를 펼쳐봤다.


이재용·정의선 우정 화제 “친형제 안 부럽다”   
최태원·이웅열, 정몽규·전인장 평소 호형호제


“형님, 승진 축하드립니다.” 정의선 현대차 부회장이 지난 연말 전무에서 승진한 이재용 삼성전자 부사장에게 보낸 문자메시지다. 정 부회장은 최근 한 공식석상에서 기자들과 만나 이 부사장과의 돈독한 관계를 우회적으로 표현했다.

사업 교류로 발전



한국 재계를 대표하는 삼성그룹과 현대·기아차그룹을 이끌 차세대 주자의 끈끈한 우정이 화제다. 두 살 터울인 이 부사장(1968년생)과 정 부회장(1970년생)은 사석에서 ‘형-동생’으로 부를 정도로 친분이 두텁다. 개인적으로 자주 연락하거나 만나 골프를 치는가 하면 가끔씩 술자리도 같이 해 서로의 속내를 털어놓고 의견을 나누는 것으로 전해진다.

이들의 특별한 사이가 알려진 것은 2007년 8월 세상을 떠난 정 부회장의 조모 고 변중석 여사의 빈소에 이건희 전 삼성그룹 회장 대신 이 부사장이 조문하면서다. 둘은 당시 접객실에서 두 시간 넘게 얘기를 나눠 우애를 외부에 알렸다. 이후 정 부회장이 감사의 표시로 현대차 소유의 남양주 해비치컨트리클럽에 이 부사장을 초대해 동반 라운딩을 갖는 등 ‘두 황태자’는 더 가까워졌다.

지난해 10월 정 부회장의 모친 고 이정화 여사의 빈소에선 이 부사장이 일반 조문객들과 달리 눈시울을 붉혀 애틋한 친밀감을 드러내기도 했다. 두 사람의 우정은 사업적 교류로 이어지고 있다. 지난해 11월 삼성전자가 TV 브랜드인 ‘파브’광고를 그룹 계열인 제일기획이 아닌 현대차그룹 계열 이노션에 맡긴 것이 대표적이다.
 
앞서 지난해 7월 삼성전자와 현대차는 지능형 차량용 반도체를 개발하는 ‘자동차·반도체 상생협력에 관한 양해각서(MOU)’를 체결, 공동 프로젝트를 진행 중이다. 나아가 이 부사장은 자신의 업무용 차량으로 수년째 현대차가 만든 에쿠스만 고집하고 있으며 정 부회장은 종종 임원들에게 ‘삼성 학습론’을 강조하기도 한다. 이들의 조부와 부친인 이병철-정주영, 이건희-정몽구 역시 남다른 친분관계를 과시해 삼성과 현대차간 3대에 걸친 우정이 더욱 빛나고 있다.

재계엔 단순히 사업적 파트너를 떠나 끈끈한 개인적 친분으로 평소 친형제 같은 우애를 자랑하는 이들이 많다. 특히 그들만의 울타리를 치고 있는 재벌가는 더하다. ‘귀족 가문화’ 현상이 심화되는 상황에서 재벌과 보통 사람이 ‘절친’이 되는 것은 ‘언감생심’ 꿈도 꾸지 못할 일이다. 간혹 부를 넘어선 우정이 주목받는 사례도 있지만 극히 일부에 불과하다.

보통 로열패밀리들은 명문 초·중·고등학교를 거치면서 친분을 쌓고 대학, 유학 등 ‘스페셜 코스’를 통해 라인이 형성된다. 경영 전면에 나선 후엔 ‘상류 1%’만 모이는 은밀한 ‘사교모임’에서 호형호제가 자연스러울 만큼 각별한 사이로 발전한다. 이렇게 쌓은 우정은 비즈니스로 연결되기 일쑤다. 최태원 SK그룹 회장과 이웅열 코오롱그룹 회장의 우정도 같은 맥락에서 눈에 띈다.

두 회장은 2008년 4월 SKC와 ㈜코오롱에서 연성회로기판(FPCB) 소재인 폴리이미드(PI)필름 사업부문을 각각 분사해 첨단 전자소재 합작회사를 설립했다. 지분은 양사가 50%씩 보유하고 있다. 경쟁업체끼리 손을 잡는 건 드문 일이었다. 화학업계 ‘라이벌’인 두 회사가 의기투합할 수 있었던 배경은 직접 협상에 나선 최 회장과 이 회장이 “외국 기업을 견제하자”는데 의견을 모았기 때문이다.

두 총수가 웬만한 친분 관계가 아니면 동업이 성사되기 어려웠다는 게 업계 관계자의 전언이다. 실제 이 사업은 최태원-이웅열 회장의 우정이 발판이 됐다. 고등학교, 대학교 선후배 사이인 최 회장과 이 회장은 평소 호형호제할 정도로 친분이 깊다. 이들은 신일고 동문. 이 회장이 4년 선배다. 둘은 신일고 출신의 재계 인사 모임인 ‘신수회’멤버다.

신수회 멤버들은 재계에서 가장 끈끈한 정으로 뭉쳐있다는 평가를 받는다. 뿐만 아니라 두 회장은 모두 고려대 출신이며 재벌 2·3세 사교클럽인 ‘브이소사이어티’ 회원이기도 하다. 무엇보다 이들은 ‘개방’이란 코드로 통한다. 두 회장은 어깨에 힘을 쫙 뺀 ‘격식 파괴’ 행보로 유명하다. 대기업 총수란 무거운 이미지를 벗고 한층 부드럽고 친근한 이미지를 보여주고 있는 것. 사내 직급제를 없애고 자율복장제를 도입하는 등 자유분방한 경영 모토도 닮은꼴이다.

우정의 힘으로 회사를 살린 경우도 있다. 정몽규 현대산업개발 회장과 전인장 삼양식품 부회장 얘기다. 2005년 1월 삼양식품이 적대적 인수합병(M&A)될 위기에 처하자 현대산업개발이 우호 지분을 확보해 ‘백기사’로 나선 것. 당시 CJ와 농심 등 굵직한 회사들이 삼양식품에 군침을 흘렸지만 현대산업개발이 삼양식품 지분을 집중 매입해 삼양일가의 경영권을 보호해줬다.

일각에선 현대산업개발의 경영 관여 가능성도 제기됐지만 끝까지 의리를 지켰다. 이는 고 정세영 현대산업개발 명예회장과 전중윤 회장의 오랜 친분관계가 있었기에 가능했다. 정 명예회장과 전 회장은 강원도 동향 출신이다. 정 회장은 통천군 송전면, 전 회장은 철원군 김화읍이다.

전 회장이 강원도민회장직 바통을 정 명예회장에게 넘겨주면서 관계가 더 가까워졌다. 이런 인연으로 두 회장의 아들인 정몽규 회장과 전인장 부회장도 어릴 적부터 교류가 잦았다. 이들은 지금도 아무리 바쁜 일이 있어도 자주 만나 사담을 나누는 것으로 알려졌다. 정 명예회장이 2005년 5월 별세했을 때 전 부회장이 내리 사흘간 빈소로 ‘출근’한 일화는 이들의 우정을 보여주는 일례다.

잘 지내다 절교도

그런가 하면 수십년 우정이 순식간에 깨진 사례도 있다. 한화그룹과 대림그룹은 1999년 50%씩 출자해 국내 최대의 나프타분해설비 업체인 여천NCC를 설립했다.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과 이준용 대림그룹 회장의 ‘절친 관계’가 합심 배경이었다. 이 명예회장은 경기고 52회 출신으로 66회인 김 회장의 14년 선배다. 두 집안은 이 명예회장의 막내딸 윤영씨가 김 회장의 사촌형 김요섭씨의 아들과 2004년 결혼해 사돈지간이기도 하다.

하지만 2003년 인력 구조조정 등 경영 문제를 놓고 두 업체의 갈등이 불거져 양측 간 고발 사태로까지 확대됐다. 급기야 이 회장이 김 회장을 명예훼손으로 고소하기도 했다. 결국 ‘동업은 형제끼리도 하면 안 된다’는 속설대로 재벌그룹간 동업이 두 회장을 ‘친구에서 앙숙으로’만든 셈이다.

저작권자 ©일요시사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설문조사

진행중인 설문 항목이 없습니다.






Copyright ©일요시사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