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 중년부부 살인사건 전말

2014.05.26 11:37:53 호수 0호

사람 잡은 해병 '잔인한 복수극'

[일요시사=사회팀]  강현석 기자= 지난 20일 오전 9시께 대구 달서구 한 아파트에서 사람이 떨어졌다. 떨어진 사람은 20살 권모양이었다. 아파트 4층에서 추락한 권양은 출동한 119구조대에 의해 인근 병원으로 옮겨졌다. 추락 과정에서 생긴 골절로 골반 등을 다친 권양. 그러나 권양은 다행히 목숨을 건졌다. 그런데 권양의 입에서 놀라운 증언이 나왔다. 자신의 아버지와 어머니가 살해됐다는 내용이었다. 권양의 부모를 죽인 범인은 바로 권양의 전 남자친구였다.



출동한 경찰은 아파트 문을 두들겼다. '경찰입니다. 누구 없어요?' 수차례 노크에도 인기척이 없자 경찰은 강제로 현관문을 열었다. 그러자 눈앞에 끔찍한 광경이 펼쳐졌다.

돌발적인 범행?

50대로 보이는 한 중년남성은 신발장 앞에 피범벅이 돼 쓰러져 있었다. 거실 옆 욕실에는 한 중년여성이 피를 흘린 채 누워있었다. 발견 당시 두 사람은 모두 숨을 쉬지 않았다. 이들은 같은 날 흉기에 찔려 숨진 것으로 추정됐다.

살해된 남녀의 신원은 각각 권모(56)씨와 이모(48)씨로 확인됐다. 이들은 이 아파트에 수년째 살고 있던 부부였다. 슬하에 딸 권모(20)양을 두고 있던 권씨 부부. 이들은 왜 자택에서 싸늘한 주검으로 발견된 것일까.

사건 당일(20일) 오전 9시께. 대구 달서구에 있는 권씨의 아파트에서 사람이 화단으로 추락하는 사고가 발생했다. 추락자는 권양. 아파트 4층에서 떨어진 권양은 오른쪽 골반 등을 다쳐 병원으로 옮겨졌다. 다행히 생명에는 지장이 없었다. 그런데 권양의 입에서 놀라운 증언이 나왔다. 헤어진 옛 남자친구가 자신의 부모를 살해했다는 내용이었다.


이날 대구 달서경찰서는 자신과 사귀다 헤어진 권양의 부모를 흉기로 찔러 숨지게 하고 권양을 감금한 장모(25)씨를 살인 등 혐의로 긴급체포했다. 경찰은 권양의 증언을 토대로 용의자 장씨를 쫓던 중 장씨가 경북 경산의 자취방에 숨어있다는 사실을 확인하고 오후 1시께 검거했다. 경찰은 체포 당시 장씨가 술에 취해 있었으며, 잠을 자고 있었다고 전했다.

장씨는 권양과 같은 학교 선·후배 사이로 지난 2월 중순부터 4월 중순까지 교제했다. 그런데 장씨에게는 나쁜 습관이 있었다. 술에 취하면 늘 권양에게 손찌검을 했던 것이다. 장씨는 해병대 복무기간 중 초병폭행죄로 처벌받은 전력이 있다. 유독 가까운 사람들에게 폭력적인 성향을 띠었던 것이다.

장씨의 폭행사실을 뒤늦게 알게 된 권양의 부모는 곧 장씨의 부모를 찾아갔다. 그리고 "우리 딸과 헤어지게 해 달라"고 요구했다. 이를 계기로 장씨는 권양과 이별했다. 장씨는 이 일이 있은 후부터 약 한 달간 학교에 나오지 않았다고 한다. 경찰은 이 기간 장씨가 살의를 품고 범행을 준비한 것으로 보고 있다.

실제로 장씨는 범행 직전 피해자의 집을 사전 답사하는 등 치밀하게 살인을 계획한 것으로 드러났다. 장씨는 지난 19일 오후 5시30분께 배관수리공으로 위장해 권씨의 집을 방문한 뒤 5∼6분 가량 집 안을 살폈다. 당시 장씨가 휴대한 공구함 안에는 흉기가 들어있었다.

답사를 마친 장씨는 불과 1시간여 만에 다시 권씨의 집을 찾았다. 별 다른 의심 없이 문을 열어준 권씨 부부. 그러나 이들에게 닥친 운명은 가혹했다. 장씨는 먼저 욕실에서 부인 이씨를 흉기로 찔러 살해했다. 비명이 들리자 권씨는 본능적으로 현관을 향해 뛰쳐나갔다. 그러나 장씨는 권씨를 놔주지 않았다. 현관 앞 신발장에서 권씨는 흉기에 찔려 무참히 살해됐다.

"헤어져" 전 여친 부모에 앙심 흉기로 살해
여성은 추락사고…알고 보니 필사의 탈출

살인사건이 일어난 시각 권양은 외출 중이었다. 권양이 집에 돌아온 건 20일 오전 0시30분께였다. 그때까지 장씨는 권씨 부부의 시신을 그대로 놔둔 채 술을 마셨던 것으로 확인됐다. 놀란 권양이 손 쓸 틈도 없이 장씨는 흉기로 위협하며 "복수하러 왔다"고 말했다.

장씨는 권양을 감금하고 위협을 가했다. 이날 아침까지 장씨는 횡설수설하며 권양을 협박한 것으로 전해졌다. 8시간30분 동안 권양은 그곳에서 지옥을 경험했다. 날이 밝아왔지만 장씨는 권양을 풀어주지 않았다.

오전 9시께 권양에게 기회가 왔다. 장씨가 잠시 한눈을 판 사이 권양은 필사의 탈출을 감행했다. 4층 베란다로 달려가 화단으로 뛰어내린 권양. 오른쪽 골반 등을 다쳤지만 생명에는 지장이 없었다. 그러자 장씨는 권양을 포기하고 아파트를 빠져나갔다. 같은 날 오전 9시18분께 일이었다.

아파트 CCTV를 확인한 경찰은 장씨가 손에 수건을 감은 채 밖으로 나가는 장면을 포착했다. 장씨는 오른손 엄지손가락에 봉합 수술이 필요한 정도의 부상을 입은 것으로 알려졌다. 경찰은 장씨가 권씨 부부에게 흉기를 휘두르다 상처를 입은 것으로 판단하고 있다.


체포된 장씨는 경찰 조사에서 혐의를 대부분 시인한 것으로 알려졌다. 피 묻은 반바지를 입고 경찰서에 모습을 드러낸 장씨는 "죄송하다"며 말을 잇지 못했다. 경찰은 "장씨가 '권씨 부부 때문에 여자친구와 헤어졌다'며 범행 동기를 자백했다"고 밝혔다.

경찰 관계자는 "추가로 조사한 결과 장씨가 전 여자친구인 권양을 살해할 의도는 없었던 것으로 보여 살인 및 감금치상 혐의를 적용해 구속영장을 청구했다"고 알렸다. 영장을 심사한 대구지법 서부지원은 "범죄 사실에 대한 소명이 있고, 도주나 증거 인멸의 우려가 있다"면서 구속영장을 발부했다.

대단히 용의주도!

한편 경찰은 범행 당일 엘리베이터를 타고 권씨 부부의 집으로 향했던 장씨가 찍힌 CCTV를 공개했다. CCTV 속 장씨는 거울을 보며 머리를 만지고 있었다. 또 도주 과정에서 그의 손을 감았던 수건은 핏물이 흥건했다. 표창원 표창원범죄과학연구소장은 21일 한 라디오 방송에 출연해 "(돌발적인 범행은 아니고) 대단히 용의주도하게 범행을 저질렀으며, (인격장애자의) 계획적인 분노표출이었다"고 진단했다.

 

<angeli@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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