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늘 부족한’ 산모 지원사업 실상

2025.12.09 09:22:11 호수 1561호

빚내서 운영하는 산후조리

[일요시사 취재1팀] 안예리 기자 = 수천명의 산모와 신생아를 돌보며 저출산 복지의 최전선에서 일하는 산모건강관리서비스 업체들의 지원금이 수개월째 밀리고 있다. 정부는 매년 ‘저출산 대책’을 내세워 새로운 정책들을 발표하고 있지만, 정작 이미 운영 중인 출산·돌봄 지원사업조차 제때 예산을 받지 못해 중단 위기에 놓여 있는 실정이다.



출산 직후 집으로 찾아가 산모의 회복을 돕고, 갓 태어난 아기를 돌보는 산모·신생아 건강관리 지원사업은 대표적인 국가 돌봄 서비스다. 그러나 이 서비스를 제공하는 기관들이 지자체로부터 지원금을 받지 못해 어려움을 겪고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임금체불

일부 지역은 지난 5월부터, 다른 지역은 7월 이후부터 비용 지급이 밀리기 시작했고, 제공 기관이 감당해야 하는 금액은 수천만원에서 억대 규모까지 쌓였다. 지급이 한두 달 밀리는 것을 넘어, 3개월 이상 밀린 지역도 적지 않아 제공 기관들은 운영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산모·신생아 건강관리 지원사업은 산후관리사가 산모와 신생아가 있는 가정에 직접 방문해 일정 기간 돌봄을 제공하는 국가 바우처 사업이다. 이 사업은 산모와 신생아가 가장 취약한 시기인 출산 직후에 제공된다.

산후관리사는 가정으로 직접 방문해 산모의 회복을 돕고, 육아가 낯선 부모 대신 신생아의 기본 돌봄을 맡는다. 출산 후 산모의 회복을 돕고, 초기 신생아 돌봄에 필요한 도움을 제공하는 것이 목적이다. 산후조리원을 이용하기 어렵거나, 출산 후 도움이 필요한 가정에 중요한 역할을 해왔다.


지원 방식은 출산 가정이 복지로에 신청을 하면, 서비스 제공 기관에서 각 가정으로 인력을 파견하는 방식이다. 바우처를 신청한 가정은 등록된 제공 기관 중 한 곳을 선택해 서비스를 이용하고, 제공 기관은 산후관리사를 배정해 해당 가정을 방문하도록 한다.

이 사업은 2022년 지방이양사업으로 전환돼 현재는 중앙정부가 아닌 지방자치단체가 예산을 편성하는 방식으로 운영된다. 광역자치단체가 예산을 편성해 기초자치단체에 내려보내면, 기초자치단체는 이 돈을 한국사회보장정보원에 예탁한다. 사회보장정보원은 이 예탁금을 운용해 산모 건강관리 서비스를 제공한 기관에 비용을 지급한다.

7월부터 예산 조기 소진
매년 지원금 지급 지연

그런데 올해 들어 일부 지역의 예탁금이 예상보다 빨리 소진되며 지급이 중단되는 상황까지 발생했다. 경기도의 경우, 여름 이후 일부 시·군 지역에서 예탁금이 모두 소진돼 지난 7~10월 사이 제공 기관들이 수개월간 비용을 받지 못했다.

충청권에서도 비슷한 시기에 지급이 중단됐다. 부산은 5월부터 정산 지연이 시작됐고, 9월에는 당해 예산이 조기 소진됐다는 업체들의 호소가 이어졌다.

연말에 지급이 조금씩 밀리는 경우는 많았지만, “올해처럼 오랫동안 지급이 밀린 적은 처음”이라는 게 업계 설명이다. 여러 지역 제공 기관들은 청구 자체는 정상적으로 이뤄졌지만, 예탁금 부족이라는 이유로 지급이 무기한 ‘대기’로 넘어갔다고 토로했다.

지급 지연의 피해는 제공 기관이 고스란히 떠안고 있다. 서비스는 시기와 상관없이 먼저 제공되기 때문에 지급 지연이 발생하면 그 부담은 대부분 제공 기관이 감당하게 된다.

산후관리사는 매일 가정에 방문해 정해진 시간만큼 서비스를 제공하는데, 제공 기관은 이들의 급여를 우선 지급해야 한다. 그러나 지원금이 끊기는 순간부터 임금·보험료·운영비 전부가 제공 기관 부담이 된다. 실제 지원금을 받지 못한 대부분의 기관들은 사비나 대출을 통해 대금을 충당하고 있다.

실제 평택에 위치한 한 산후 조리업체는 “석 달간 밀린 비용을 온전히 개인 대출로 메우고 있다”고 호소했다. 이 구조는 제도 자체가 ‘선제공-후지급’ 형태기 때문에 생긴 문제다.

제공 기관은 서비스 중단이 불가하고, 지자체가 예탁금을 보충할 때까지 기다릴 수밖에 없다. 가장 큰 문제는 지원금 문제가 바로 인력 문제로 이어지고 있다는 점이다.


여러 지역 제공 기관들은 “몇 년간 함께 일한 관리사들이 그만두기 시작했다”고 밝혔다. 임금 지급이 늦어지거나 지급일이 일정하지 않아 관리사들이 생계 문제로 하나둘 떠나고 있는 것이다.

다른 일자리를 찾아 떠나는 관리사가 늘면서, 신규 인력 충원도 어려워졌다. 특히 오랜 기간 함께한 베테랑 관리사들이 떠나면 신규 인력이 대체하기 어려워 서비스 질도 낮아졌다.

기관 운영비 대출로 충당
생계 어려워 관리사 이탈

산모·신생아 건강관리 지원사업의 예산 부족은 비단 올해만의 문제는 아니다. 지원금 지급이 밀리는 상황은 매년 있었다. 일부 기관들의 지난해 미지급분이 올해로 이월되기도 했다. 이런 방식으로 한 해의 부족분이 다음 해 예산을 압박하면 연말 미지급이 반복되는 구조가 만들어지기도 한다.

예산이 부족해진 이유로 지적되는 건 수요는 크게 늘었지만 예산이 충분히 늘지 않았다는 점이다. 경기도의 경우 이용 인원은 크게 증가했는데, 예산은 정해진 틀 안에서 운영되면서 일부 시·군의 예탁금이 예상보다 빨리 소진됐다.

부산의 한 제공 기관은 “실제 수요 증가와 단가 인상을 반영하지 않은 예산 편성 때문에 매년 연말마다 정산 지연이 반복돼왔다”고 말했다.

2022년 지방이양 이후 변화된 사업구조도 영향을 줬다. 예전에는 국비 비중이 높았지만, 지금은 도·시군이 함께 예산을 부담하는 구조다. 시군이 예산을 제대로 편성하지 않으면 그 지역은 예산이 조기 소진되는 경우가 빈번해진다.

한편 평택시, 화성시, 수원시, 용인시, 오산시 등 5개 시도협회(이하 협회)가 속한 한국산모신생아건강관리협회는 미지급된 지원금 지급을 촉구하고 나섰다.

협회는 “수개월째 지원금이 지급되지 않아 기관들은 대출과 차입에 의존한 채 운영을 이어가고 있으며, 일부 기관은 사실상 폐업 위기에 처해 있다”면서 “그럼에도 불구하고, 관리감독 권한을 가진 지자체에서는 예산 집행 지연에 대한 명확한 해결 방안조차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 이로 인해 현장은 혼란에 빠졌으며, 산후관리사 인건비 지급 지연으로 노동청 신고, 법적 분쟁이 이어지고 있다”고 주장했다.


현재 전국적인 지급 지연 사태가 발생하고 있지만, 각 지자체는 명확한 지원금 지급 시점에 대한 설명이 없는 상황이다.

지지부진

경기 지역의 한 산후관리업체 대표 A씨는 “정부에서는 매년 ‘저출산 대책’을 말하지만 정작 출산 후 산모를 돌보는 복지사업은 지원금이 끊기고 있다”고 호소했다.

<imsharp@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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